[이슈&한반도] 세계 청소년들의 분단 체험

입력 2010.08.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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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0주년, 사람으로 치면 환갑에 해당할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해 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의 참혹함을 잊고 그냥 오래전에 있었던 일로만 기억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격렬한 포성이 멈춘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끊임없이 안정과 평화를 위협받으며 긴장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분단의 현장에서 한국과 외국의 청소년들이 한 데 어울려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 체험의 현장을 <남북의 창>이 취재했습니다.



6.25전쟁 휴전 57주년을 맞이한 지난 주 화요일, ‘평화통일대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닷새 동안, 휴전선 분단현장을 탐방할 대행진에는 전국의 중․고․대학생 570명과 6.25참전국 후손 55명이 참가했는데요.



모두 625명, 6.25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이 대행진의 단장을 맡았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강원도 민통선 안, 조금씩, 조금씩 휴전선 쪽으로 다가갈수록 긴장감은 더욱 커집니다.



참전국에서 온 외국학생들에게 이번 행사는 할아버지가 몸 바쳐 싸웠던 땅, 한국과 6.25전쟁을 바로 아는 첫걸음이 됐는데요.



<인터뷰> 마이클 니네스(호주 대학생) : “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이십니다. 77명의 호주 공군 중 한 명이셨는데, 이런 행사가 있다고 알려주셔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최전방 관측소로 향하는 길엔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해금강까지도 볼 수 있어 금강산 전망대로 불리는 남한 최북단의 717 관측소.



불과 2년 전에야 민간인에게 개방됐습니다.



<인터뷰> 최민정(단국대학교 1학년) : "북한이랑 너무 가까이 있어서 실감이 안 났어요. 가까이 있는데 못 가본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다음 날, 행진 참가자들은 휴전선 250km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칠봉 관측소로 향했습니다.



금강산 만 2천봉의 남쪽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펀치볼 분지와 함께 6.25 전쟁 최대 격전지였습니다.



1951년, 휴전 협상이 시작되면서 가칠봉 일대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뺏고 뺏기는 전투 속에서 가칠봉의 주인은 6번이나 바뀌었고,혈전 끝에 국군이 점령했습니다.



이 덕분에 동쪽 휴전선은 38선 북쪽으로 확정될 수 있었습니다.



선두에서 행진을 이끌어온 산악인 오은선 단장. 청소년들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은선(산악인/히말라야 14좌 완등) : “피를 흘려가며 지킨 강산입니다. 우리 젊은 청소년들은 지금 자기의 땀을 흘리면서 평화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이런 걸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는 체험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고요.”



선배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 지켜낸 소중한 산야,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학생들은 그 고귀한 숨결을 느낍니다.



<인터뷰> 고유림(원곡고등학교 1학년) : "학교에서 배우는 건 이론적이니까 아 그렇구나 하는데 막상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까 가슴 속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행진에 동참한 같은 또래 연예 사병도 격전의 현장에 온 소감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민호(붐/연예 사병) :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침내 해발 1,242미터 가칠봉 정상.



이 곳 관측소에서 북한군 초소까지는 불과 750m, 하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게 느껴집니다.



<인터뷰> 아놀드 와세이즈(벨기에 대학생) : “저는 한반도 통일을 지지합니다. 언젠가 남과 북이 하나의 큰 나라를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정부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현인택(통일부 장관) : “우리가 마치 평화가 왔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우리가 꺠닫는 위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미래의 통일을 향해 가야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과 외국의 청소년들이 한 데 어울려 종을 울립니다.



평화의 댐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계 평화의 종’은 6.25 전쟁 당시 사용됐던 탄피와 중국, 태국, 에티오피아, 이스라엘 등 세계 29개 분쟁지역의 탄피를 녹여 만들어졌습니다.



평화의 댐 주변에는 비목공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청년장교가 6.25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지은 노랫말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곡 ‘비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6.25와 분단 등을 주제로 진행한 통일 골든벨 퀴즈.



6.25 참전 인도 군인들이 종교 때문에 거부했던 음식, 소고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 노르웨이에서 온 학생은 진지하게 엉뚱한 답변을 합니다.



<인터뷰> 노르웨이 대학생 : “(뭐라고 답했나요?) 김치!”



군사 무장이 금지되는 DMZ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기발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녹취> 문지희 :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민간인 통제선이었네요... (답은?) 민간인 통제선!”



60년 간극만큼이나 6.25와 분단의 실체에 다가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관심이 필요함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폭격을 맞고 60년 동안이나 멈춰선 열차는 분단의 아픔을 안은 채 앙상하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북한 평강까지는 불과 19km.



길게 이어진 철책선을 따라 평화통일대행진은 막바지로 향했습니다.



닷새 동안 진행된 평화통일대행진의 마지막 밤.



통일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진행된 열린음악회에서 참가 학생들은 한 데 어울려 노래하고 환호했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끝마친 뜻 깊은 행진을 가슴 속에 새기며, 청소년들은 저마다 통일조국을 꾸려나갈 주인으로서 힘찬 각오를 다졌습니다.



국내외 참전용사들이 피로서 지켜낸 땅을 자신의 발로, 땀 흘리며 몸소 체험한 청소년들에게 전쟁과 분단은 더 이상 교과서 속의 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선배들의 값진 희생을 기억하고 냉혹한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를 만만히 볼 상대는 없을 것이고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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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한반도] 세계 청소년들의 분단 체험
    • 입력 2010-08-07 10:38:36
    남북의 창
6.25전쟁 60주년, 사람으로 치면 환갑에 해당할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요.

그래서인지 저를 포함해 요즘 젊은 세대들은 6.25의 참혹함을 잊고 그냥 오래전에 있었던 일로만 기억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격렬한 포성이 멈춘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반도는 끊임없이 안정과 평화를 위협받으며 긴장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분단의 현장에서 한국과 외국의 청소년들이 한 데 어울려 평화와 통일을 얘기하는 체험의 현장을 <남북의 창>이 취재했습니다.

6.25전쟁 휴전 57주년을 맞이한 지난 주 화요일, ‘평화통일대행진’이 시작됐습니다.

닷새 동안, 휴전선 분단현장을 탐방할 대행진에는 전국의 중․고․대학생 570명과 6.25참전국 후손 55명이 참가했는데요.

모두 625명, 6.25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이 대행진의 단장을 맡았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강원도 민통선 안, 조금씩, 조금씩 휴전선 쪽으로 다가갈수록 긴장감은 더욱 커집니다.

참전국에서 온 외국학생들에게 이번 행사는 할아버지가 몸 바쳐 싸웠던 땅, 한국과 6.25전쟁을 바로 아는 첫걸음이 됐는데요.

<인터뷰> 마이클 니네스(호주 대학생) : “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이십니다. 77명의 호주 공군 중 한 명이셨는데, 이런 행사가 있다고 알려주셔서 참가하게 됐습니다.”

최전방 관측소로 향하는 길엔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해금강까지도 볼 수 있어 금강산 전망대로 불리는 남한 최북단의 717 관측소.

불과 2년 전에야 민간인에게 개방됐습니다.

<인터뷰> 최민정(단국대학교 1학년) : "북한이랑 너무 가까이 있어서 실감이 안 났어요. 가까이 있는데 못 가본다는 게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에요."

다음 날, 행진 참가자들은 휴전선 250km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가칠봉 관측소로 향했습니다.

금강산 만 2천봉의 남쪽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펀치볼 분지와 함께 6.25 전쟁 최대 격전지였습니다.

1951년, 휴전 협상이 시작되면서 가칠봉 일대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뺏고 뺏기는 전투 속에서 가칠봉의 주인은 6번이나 바뀌었고,혈전 끝에 국군이 점령했습니다.

이 덕분에 동쪽 휴전선은 38선 북쪽으로 확정될 수 있었습니다.

선두에서 행진을 이끌어온 산악인 오은선 단장. 청소년들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오은선(산악인/히말라야 14좌 완등) : “피를 흘려가며 지킨 강산입니다. 우리 젊은 청소년들은 지금 자기의 땀을 흘리면서 평화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이런 걸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는 체험의 시간이 됐으면 좋겠고요.”

선배들이 피와 목숨을 바쳐 지켜낸 소중한 산야,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학생들은 그 고귀한 숨결을 느낍니다.

<인터뷰> 고유림(원곡고등학교 1학년) : "학교에서 배우는 건 이론적이니까 아 그렇구나 하는데 막상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까 가슴 속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행진에 동참한 같은 또래 연예 사병도 격전의 현장에 온 소감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민호(붐/연예 사병) :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침내 해발 1,242미터 가칠봉 정상.

이 곳 관측소에서 북한군 초소까지는 불과 750m, 하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거리는 그보다 훨씬 멀게 느껴집니다.

<인터뷰> 아놀드 와세이즈(벨기에 대학생) : “저는 한반도 통일을 지지합니다. 언젠가 남과 북이 하나의 큰 나라를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정부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통일부 장관은 한반도의 안보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현인택(통일부 장관) : “우리가 마치 평화가 왔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우리가 꺠닫는 위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미래의 통일을 향해 가야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과 외국의 청소년들이 한 데 어울려 종을 울립니다.

평화의 댐을 내려다보고 있는 ‘세계 평화의 종’은 6.25 전쟁 당시 사용됐던 탄피와 중국, 태국, 에티오피아, 이스라엘 등 세계 29개 분쟁지역의 탄피를 녹여 만들어졌습니다.

평화의 댐 주변에는 비목공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청년장교가 6.25때 전사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하고 지은 노랫말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곡 ‘비목’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6.25와 분단 등을 주제로 진행한 통일 골든벨 퀴즈.

6.25 참전 인도 군인들이 종교 때문에 거부했던 음식, 소고기를 묻는 질문에 대해 노르웨이에서 온 학생은 진지하게 엉뚱한 답변을 합니다.

<인터뷰> 노르웨이 대학생 : “(뭐라고 답했나요?) 김치!”

군사 무장이 금지되는 DMZ가 뭔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기발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녹취> 문지희 : “민간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민간인 통제선이었네요... (답은?) 민간인 통제선!”

60년 간극만큼이나 6.25와 분단의 실체에 다가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관심이 필요함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폭격을 맞고 60년 동안이나 멈춰선 열차는 분단의 아픔을 안은 채 앙상하게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북한 평강까지는 불과 19km.

길게 이어진 철책선을 따라 평화통일대행진은 막바지로 향했습니다.

닷새 동안 진행된 평화통일대행진의 마지막 밤.

통일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 진행된 열린음악회에서 참가 학생들은 한 데 어울려 노래하고 환호했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끝마친 뜻 깊은 행진을 가슴 속에 새기며, 청소년들은 저마다 통일조국을 꾸려나갈 주인으로서 힘찬 각오를 다졌습니다.

국내외 참전용사들이 피로서 지켜낸 땅을 자신의 발로, 땀 흘리며 몸소 체험한 청소년들에게 전쟁과 분단은 더 이상 교과서 속의 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선배들의 값진 희생을 기억하고 냉혹한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할 때 우리를 만만히 볼 상대는 없을 것이고 그래야만 진정한 평화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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