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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밀족 난민 캠프를 가다
입력 2010.10.10 (11:54) 수정 2010.10.10 (12:22)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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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해 5월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스리랑카는 무려 26년 동안이나 내전에 시달렸습니다.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다수족 싱할리족에 대항해 소수족인 타밀족이 무장투쟁을 벌인 건데요.. 정부군의 대공세 앞에 반군은 궤멸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타밀족 수십만 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정부군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살아가고 있는데요.. 난민 캠프에 수용된 사람들 역시 열악한 여건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에 굳게 닫혀 있던 타밀족 난민촌의 실상을 국내 언론 최초로 손은혜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983년 시작돼 26년 동안 내전을 겪은 스리랑카. 아시아 최장기 내전으로 기록된 이번 분쟁은 지난해 정부군의 대대적인 반군 소탕 작전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모두 6만여명. 내전 종료 1년이 지난 지금 스리랑카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것일까.

타밀 반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동북부 와우니아 지역으로 가는 길.. 포성은 멎었지만 도로 곳곳에서 엄격한 검문이 몇 번씩이나 이어집니다.

<녹취> 검문소 군인: "신분증 보여주세요."

내전이 끝난 후 와우니아 지역에 설치된 난민 캠프.. 치열한 전투로 생활 터전을 잃은 타밀족 주민들이 이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캠프 바깥으로 나가려는 난민들이 검문소 입구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일이 신분증을 보여주고 외출 목적을 밝혀야 합니다. 외부인의 방문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이 곳에 취재진은 어렵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창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난민 캠프 안. 불과 1년 반 전까지 치열한 전쟁터였음을 말해주듯 당시 사용됐던 지뢰들은 캠프 곳곳에 남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부군과 타밀 반군이 격전을 벌인 스리랑카 동북부 지역에는 150만 개가 넘는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후세인(지뢰제거반장): "작은 금속이 있으면 소리가 납니다. 이런 식으로요."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돼 받는 일당은 10달러 가량, 우리돈으로 만 이천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 무기들을 직접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타밀족들. 이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정부군의 눈을 피해 도착한 난민 캠프 안의 한 마을. 캠프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가족을 만났습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모두 잃었다는 이 가족은, 새 집을 짓기 위한 준비에 한창입니다.

<인터뷰>에거든(타밀족 난민): “전쟁 후에 이 캠프로 들어왔습니다. 집과 먹을 음식을 요구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 텐트만 받았죠.”

한 달 전 태어난 아기는 열악한 위생 탓에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피부병과 설사에 시달리고 있지만 캠프 안에서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인터뷰>세르멘사(타밀족 난민): “집이 가장 필요합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에서 지내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스리랑카 븍동부 거주하던 타밀족은 전쟁이 끝난 후 정부군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 있습니다.

원래의 집을 잃은 타밀 난민들은 이런 임시거처를 지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하루의 생계를 잇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의 난민 캠프에는 약 30만 명의 타밀족이 수용돼 있습니다. 유엔은 난민들 상당수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고, 어린이의 30% 이상이 영양 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의 상황에 대해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캠프 총사령관을 찾아갔습니다. 사령관은 이 지역의 치안 안정에만 몰두해 있을 뿐, 주민들의 생존권 보호에는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녹취>난민 캠프 총사령관: “전쟁이 끝난 지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여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폭탄이 터졌죠.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사령관은 정부군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혼란스런 상황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난민 캠프 총사령관: “30년 동안 (반군들은) 자신들의 부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돈했죠.”

외부와의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을 지나, 접근이 극도로 제한된 또 다른 난민 캠프를 찾아봤습니다.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 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전쟁 막바지에 급하게 조성한 이른바 '복지센터'. 캠프 주변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곳곳에서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오후 5시 30분, 토마토와 계란 등 최소한의 식료품이 반입되는 시간이 되자 굳게 닫혀 있던 캠프 문이 열립니다.

<녹취> 식료품 자루 옮기는 주민: "이 자루 저기로 옮겨요. 저기로. 같이 들고."

구호 단체 활동가들조차 자유롭게 드나들기 힘들다는 난민 캠프. 적십자 요원들과 함께 구호 차량을 빌려타고 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금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난민 캠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취재진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이렇게 차 안에서 캠프 안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적십자 차량을 보자 구호 물자 배급을 기대하고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이 캠프에서 지내는 주민들은 생존의 한계 선상에서 향후의 자립 의지마저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전적으로 구호물자에 의지해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 말고는 미래도, 희망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랑카 차 재배를 위해 강제 이주된 이후, 수십년 동안 차별과 박해에 시달려온 타밀족들. 싱할리족이 정치 경제 등 실권을 쥐고 있는 땅에서 과연 두 종족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한 것일까.

<녹취>타밀족 난민: “여전히 우리에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엔 평화가 없어요.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족 싱할리족과 소수족 타밀족과의 뿌리깊은 갈등은 완화될 수 있을까... 지난 20여년 동안 타밀족 대표로 일해온 실바 씨를 난민 캠프 안에서 만났습니다. 스리랑카 정부가 종족과 종교를 떠나 자국인 모두를 똑같은 스리랑카 국민으로 대접해준다면 화합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실바(타밀족 지도자): “인도의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경우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어떤 부족에 속하든 상관하지 않죠. 그런 식의 통합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감시와 통제,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차별. 포성이 오가는 타밀 반군의 전쟁은 끝났지만, 난민 캠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 타밀족 난민 캠프를 가다
    • 입력 2010-10-10 11:54:50
    • 수정2010-10-10 12:22:2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지난해 5월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스리랑카는 무려 26년 동안이나 내전에 시달렸습니다.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다수족 싱할리족에 대항해 소수족인 타밀족이 무장투쟁을 벌인 건데요.. 정부군의 대공세 앞에 반군은 궤멸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과정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타밀족 수십만 명이 난민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정부군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 아래 살아가고 있는데요.. 난민 캠프에 수용된 사람들 역시 열악한 여건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언론에 굳게 닫혀 있던 타밀족 난민촌의 실상을 국내 언론 최초로 손은혜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983년 시작돼 26년 동안 내전을 겪은 스리랑카. 아시아 최장기 내전으로 기록된 이번 분쟁은 지난해 정부군의 대대적인 반군 소탕 작전과 함께 막을 내렸습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모두 6만여명. 내전 종료 1년이 지난 지금 스리랑카에는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 것일까.

타밀 반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한 동북부 와우니아 지역으로 가는 길.. 포성은 멎었지만 도로 곳곳에서 엄격한 검문이 몇 번씩이나 이어집니다.

<녹취> 검문소 군인: "신분증 보여주세요."

내전이 끝난 후 와우니아 지역에 설치된 난민 캠프.. 치열한 전투로 생활 터전을 잃은 타밀족 주민들이 이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캠프 바깥으로 나가려는 난민들이 검문소 입구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일이 신분증을 보여주고 외출 목적을 밝혀야 합니다. 외부인의 방문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이 곳에 취재진은 어렵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창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난민 캠프 안. 불과 1년 반 전까지 치열한 전쟁터였음을 말해주듯 당시 사용됐던 지뢰들은 캠프 곳곳에 남아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부군과 타밀 반군이 격전을 벌인 스리랑카 동북부 지역에는 150만 개가 넘는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후세인(지뢰제거반장): "작은 금속이 있으면 소리가 납니다. 이런 식으로요."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돼 받는 일당은 10달러 가량, 우리돈으로 만 이천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 무기들을 직접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타밀족들. 이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정부군의 눈을 피해 도착한 난민 캠프 안의 한 마을. 캠프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가족을 만났습니다.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모두 잃었다는 이 가족은, 새 집을 짓기 위한 준비에 한창입니다.

<인터뷰>에거든(타밀족 난민): “전쟁 후에 이 캠프로 들어왔습니다. 집과 먹을 음식을 요구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 텐트만 받았죠.”

한 달 전 태어난 아기는 열악한 위생 탓에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피부병과 설사에 시달리고 있지만 캠프 안에서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인터뷰>세르멘사(타밀족 난민): “집이 가장 필요합니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에서 지내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스리랑카 븍동부 거주하던 타밀족은 전쟁이 끝난 후 정부군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여 있습니다.

원래의 집을 잃은 타밀 난민들은 이런 임시거처를 지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하루의 생계를 잇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스리랑카 북동부 지역의 난민 캠프에는 약 30만 명의 타밀족이 수용돼 있습니다. 유엔은 난민들 상당수가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고, 어린이의 30% 이상이 영양 실조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의 상황에 대해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캠프 총사령관을 찾아갔습니다. 사령관은 이 지역의 치안 안정에만 몰두해 있을 뿐, 주민들의 생존권 보호에는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녹취>난민 캠프 총사령관: “전쟁이 끝난 지 1년 반 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여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도 폭탄이 터졌죠.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사령관은 정부군이 들어오면서 이 지역의 혼란스런 상황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난민 캠프 총사령관: “30년 동안 (반군들은) 자신들의 부족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정돈했죠.”

외부와의 교류가 비교적 자유로운 지역을 지나, 접근이 극도로 제한된 또 다른 난민 캠프를 찾아봤습니다. 스리랑카 정부가 타밀 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전쟁 막바지에 급하게 조성한 이른바 '복지센터'. 캠프 주변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곳곳에서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오후 5시 30분, 토마토와 계란 등 최소한의 식료품이 반입되는 시간이 되자 굳게 닫혀 있던 캠프 문이 열립니다.

<녹취> 식료품 자루 옮기는 주민: "이 자루 저기로 옮겨요. 저기로. 같이 들고."

구호 단체 활동가들조차 자유롭게 드나들기 힘들다는 난민 캠프. 적십자 요원들과 함께 구호 차량을 빌려타고 캠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지금 정부가 관리하고 있는 난민 캠프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취재진은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이렇게 차 안에서 캠프 안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적십자 차량을 보자 구호 물자 배급을 기대하고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이 캠프에서 지내는 주민들은 생존의 한계 선상에서 향후의 자립 의지마저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전적으로 구호물자에 의지해 하루 하루를 버티는 것 말고는 미래도, 희망도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스리랑카 차 재배를 위해 강제 이주된 이후, 수십년 동안 차별과 박해에 시달려온 타밀족들. 싱할리족이 정치 경제 등 실권을 쥐고 있는 땅에서 과연 두 종족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한 것일까.

<녹취>타밀족 난민: “여전히 우리에겐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엔 평화가 없어요.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족 싱할리족과 소수족 타밀족과의 뿌리깊은 갈등은 완화될 수 있을까... 지난 20여년 동안 타밀족 대표로 일해온 실바 씨를 난민 캠프 안에서 만났습니다. 스리랑카 정부가 종족과 종교를 떠나 자국인 모두를 똑같은 스리랑카 국민으로 대접해준다면 화합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실바(타밀족 지도자): “인도의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경우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 어떤 부족에 속하든 상관하지 않죠. 그런 식의 통합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슬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감시와 통제,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차별. 포성이 오가는 타밀 반군의 전쟁은 끝났지만, 난민 캠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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