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맨발 대학’이 가르치는 자립

입력 2010.10.10 (11:54) 수정 2010.10.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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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인도에는 출생에 따른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카스트상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불가촉천민입니다.

다른 계급에 비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이 많은데 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해주며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인도 하층민의 희망, 맨발대학을 임종빈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수도 델리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함께 북인도 관광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꼽히는 자이푸르. 300년 전 거리 전체에 칠해진 분홍빛에 끌려 매년 수십 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분홍 도시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비포장길을 2시간 동안 달리면, 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잡은 맨발 대학 캠퍼스로 접어듭니다.

대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낡고 허름한 건물이 듬성듬성 흙바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 옥상 곳곳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돼 빛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력선이 닿지 않는 오지 마을에서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겁니다.

태양광 집열판을 만드는 작업장. 학생들이 직접 집열판을 만듭니다. 집열판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축전지로 모여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펙트녹취>바와테라 난단(맨발대학 태양에너지 담당자): "이렇게 하면 휴대전화도 태양광으로 충전할 수 있어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십여 명의 학생들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 출신 불가촉 천민 여성들입니다. 맨발 대학은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여성으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자립의 꿈을 제공합니다. 정식 대학이나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맨발대학은, 이름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맨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인터뷰>산디아 라이(비하르주 거주): "특히 아이들이 형편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석유로 불을 켜고 있거든요."

또 다른 교육장에선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접시 안테나 모양의 수십 개의 거울로 태양열을 모아 물을 끓이는 원립니다. 자신이 사용할 태양열 조리기를 직접 만드는 학생들 역시 여성들입니다. 교과 과정도 교과서도 없는 맨발 대학에서는 먼저 교육받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배움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인터뷰>셰나즈 발루(태양열 조리기 교육생):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구요."

여성 2명이 조리기 1개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 정도. 학생들은 보통 여섯 달을 맨발 대학에서 머물며 조리기를 만듭니다. 이들이 만든 조리기구는 인도 전역으로 팔려나가며, 가난한 마을에는 무료로 보급되기도 합니다.

<인터뷰>셰나즈 발루(태양열 조리기 교육생): “(여성들은)얼굴까지 가리는 전통 옷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돼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정전이 되는 인도에서 태양에너지는 가난한 천민들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 외부의 도움 없이 마을 스스로 일어날 힘을 키워주려는 맨발 대학이 선택한 최상의 자원입니다.

<인터뷰>바와테라 난단(맨발대학 태양에너지 담당자): "시골에서는 불을 비춰도 사람 얼굴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시골 사람한테 밝은 불빛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맨발대학의 목표입니다."

이 밖에도 맨발 대학 학생들은 옷감 짜는 일부터 생활용품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일까지 다양한 기술을 배우며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계사와 건축가, 의사 같은 전문직까지 길러내는 등, 맨발 대학의 가르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맨발대학의 치과 진료실. 지난 2006년 이탈리아 의사인 크리스티나 고비가 맨발 대학으로 찾아와 직접 만든 시설입니다. 그녀는 학생들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를 했고, 틈틈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지난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병으로 숨졌지만 지금은 그녀의 제자였던 게산 데비 씨가 진료실을 물려받았습니다.

<인터뷰>게산 데비(맨발대학 치과진료사):"전혀 이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어요. 맨발대학에는 다른 일을 배우러 왔었는데 이 일을 도와주다가 의사를 만나게 됐고, 의사가 다 가르쳐 줬어요."

맨발 대학의 설립자는 카스트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출신의 산짓 벙커 로이. 지난 1972년 사막과 벌판 뿐이었던 틸로니아를 찾아와 천민들의 생활을 몸으로 접한 뒤 맨발 대학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이란 결국 주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 우물이 필요한 마을에서는 펌프 기술자를 길러내고, 집이 필요한 마을에서는 건축가를 길러내며 가난한 농촌 마을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인터뷰>산짓 벙커 로이(맨발대학 설립자): "인간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에게 자신감과 존경심을 심어주면서도 다른 대학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대학이 존재한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맨발 대학은 대안 학교 혹은 사회적 기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설립자인 벙커로이는 올해 초 타임지가 선정한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제품과 태양에너지 제품을 팔아 지난해에는 5억 4천만원의 수입도 올렸습니다.

맨발대학의 가르침은 이곳 틸로니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터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다 낮은 곳을 찾는 맨발 대학의 시선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는 인도 외무부와 함께 아프리카의 최빈국 여성들을 초대했습니다. 지금은 여섯 개 나라에서 온 26명의 여성들이 마을의 태양열 전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훈련받고 있습니다.

<인터뷰>메리 다요(시에라리온):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어둠보다는 빛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난 2년동안 탄자니아와 나미비아 등 모두 23개 나라에서 115명이 교육을 받고 돌아가
고향 마을을 일궈나가고 있습니다.

맨발 대학에서 만든 태양광 전등이 환하게 밤을 밝히는 이곳은 인근 마을에서 열린 야학 교실입니다. 학교갈 틈도 없이 낮에는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아이들. 야학에서 만큼은 신나게 노래와 글을 배우고, 소박한 꿈을 키워나갑니다.

<녹취>마뭇다(11살): "야학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성장한 뒤 맨발 대학을 찾아와 기술을 배우거나, 다시 야학 교사를 지원해 지역 사회의 빛이 됩니다.

<인터뷰>락슈미(야학 교사): "우리 마을에도 야학이 있었어요. 저도 야학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은 여기서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죠."

전국으로 퍼져나간 맨발 대학 야학은 현재 100여 곳에 이르며, 2천 5백여 명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맨발 대학은 인도의 가장 가난한 마을을 찾아 전국에 20여 곳의 지부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카스트와 성별, 장애와 나이 등, 모든 차별을 벗어던진 맨발의 학생들이 언젠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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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맨발 대학’이 가르치는 자립
    • 입력 2010-10-10 11:54:50
    • 수정2010-10-10 12:23:4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인도에는 출생에 따른 신분제인 카스트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카스트상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 불가촉천민입니다. 다른 계급에 비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이 많은데 이들에게 무료로 교육을 제공해주며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인도 하층민의 희망, 맨발대학을 임종빈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수도 델리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함께 북인도 관광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꼽히는 자이푸르. 300년 전 거리 전체에 칠해진 분홍빛에 끌려 매년 수십 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습니다. 끝없이 이어진 분홍 도시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비포장길을 2시간 동안 달리면, 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잡은 맨발 대학 캠퍼스로 접어듭니다. 대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낡고 허름한 건물이 듬성듬성 흙바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 옥상 곳곳에는 태양광 집열판이 설치돼 빛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력선이 닿지 않는 오지 마을에서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겁니다. 태양광 집열판을 만드는 작업장. 학생들이 직접 집열판을 만듭니다. 집열판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축전지로 모여 언제 어디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펙트녹취>바와테라 난단(맨발대학 태양에너지 담당자): "이렇게 하면 휴대전화도 태양광으로 충전할 수 있어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십여 명의 학생들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 출신 불가촉 천민 여성들입니다. 맨발 대학은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여성으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자립의 꿈을 제공합니다. 정식 대학이나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맨발대학은, 이름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맨발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인터뷰>산디아 라이(비하르주 거주): "특히 아이들이 형편이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석유로 불을 켜고 있거든요." 또 다른 교육장에선 태양열 조리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접시 안테나 모양의 수십 개의 거울로 태양열을 모아 물을 끓이는 원립니다. 자신이 사용할 태양열 조리기를 직접 만드는 학생들 역시 여성들입니다. 교과 과정도 교과서도 없는 맨발 대학에서는 먼저 교육받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배움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인터뷰>셰나즈 발루(태양열 조리기 교육생):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구요." 여성 2명이 조리기 1개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달 정도. 학생들은 보통 여섯 달을 맨발 대학에서 머물며 조리기를 만듭니다. 이들이 만든 조리기구는 인도 전역으로 팔려나가며, 가난한 마을에는 무료로 보급되기도 합니다. <인터뷰>셰나즈 발루(태양열 조리기 교육생): “(여성들은)얼굴까지 가리는 전통 옷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돼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정전이 되는 인도에서 태양에너지는 가난한 천민들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자원. 외부의 도움 없이 마을 스스로 일어날 힘을 키워주려는 맨발 대학이 선택한 최상의 자원입니다. <인터뷰>바와테라 난단(맨발대학 태양에너지 담당자): "시골에서는 불을 비춰도 사람 얼굴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적어도 시골 사람한테 밝은 불빛 하나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맨발대학의 목표입니다." 이 밖에도 맨발 대학 학생들은 옷감 짜는 일부터 생활용품과 수공예품을 만드는 일까지 다양한 기술을 배우며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뿐만 아니라 회계사와 건축가, 의사 같은 전문직까지 길러내는 등, 맨발 대학의 가르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맨발대학의 치과 진료실. 지난 2006년 이탈리아 의사인 크리스티나 고비가 맨발 대학으로 찾아와 직접 만든 시설입니다. 그녀는 학생들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무료 진료를 했고, 틈틈이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지난해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 병으로 숨졌지만 지금은 그녀의 제자였던 게산 데비 씨가 진료실을 물려받았습니다. <인터뷰>게산 데비(맨발대학 치과진료사):"전혀 이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어요. 맨발대학에는 다른 일을 배우러 왔었는데 이 일을 도와주다가 의사를 만나게 됐고, 의사가 다 가르쳐 줬어요." 맨발 대학의 설립자는 카스트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출신의 산짓 벙커 로이. 지난 1972년 사막과 벌판 뿐이었던 틸로니아를 찾아와 천민들의 생활을 몸으로 접한 뒤 맨발 대학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이란 결국 주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 우물이 필요한 마을에서는 펌프 기술자를 길러내고, 집이 필요한 마을에서는 건축가를 길러내며 가난한 농촌 마을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인터뷰>산짓 벙커 로이(맨발대학 설립자): "인간을 발전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에게 자신감과 존경심을 심어주면서도 다른 대학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대학이 존재한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맨발 대학은 대안 학교 혹은 사회적 기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설립자인 벙커로이는 올해 초 타임지가 선정한 '100명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제품과 태양에너지 제품을 팔아 지난해에는 5억 4천만원의 수입도 올렸습니다. 맨발대학의 가르침은 이곳 틸로니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터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다 낮은 곳을 찾는 맨발 대학의 시선은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는 인도 외무부와 함께 아프리카의 최빈국 여성들을 초대했습니다. 지금은 여섯 개 나라에서 온 26명의 여성들이 마을의 태양열 전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훈련받고 있습니다. <인터뷰>메리 다요(시에라리온):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어둠보다는 빛을 보여주고 싶어요." 지난 2년동안 탄자니아와 나미비아 등 모두 23개 나라에서 115명이 교육을 받고 돌아가 고향 마을을 일궈나가고 있습니다. 맨발 대학에서 만든 태양광 전등이 환하게 밤을 밝히는 이곳은 인근 마을에서 열린 야학 교실입니다. 학교갈 틈도 없이 낮에는 가축을 키우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 아이들. 야학에서 만큼은 신나게 노래와 글을 배우고, 소박한 꿈을 키워나갑니다. <녹취>마뭇다(11살): "야학에서 공부하고 나중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성장한 뒤 맨발 대학을 찾아와 기술을 배우거나, 다시 야학 교사를 지원해 지역 사회의 빛이 됩니다. <인터뷰>락슈미(야학 교사): "우리 마을에도 야학이 있었어요. 저도 야학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은 여기서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죠." 전국으로 퍼져나간 맨발 대학 야학은 현재 100여 곳에 이르며, 2천 5백여 명의 아이들과 주민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맨발 대학은 인도의 가장 가난한 마을을 찾아 전국에 20여 곳의 지부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는 카스트와 성별, 장애와 나이 등, 모든 차별을 벗어던진 맨발의 학생들이 언젠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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