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누나 보고 싶어”…짧은 만남 긴 가슴앓이

입력 2010.11.05 (09:20) 수정 2010.11.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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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커 멘트>



13개월 만에 재게 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60년 만에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화면을 통해 모두 보셨을텐데요.



오늘로서 2차 상봉도 끝이 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앞서 북측 가족의 연락으로 1차 상봉을 가졌던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더 커진 그리움과 아쉬움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민우 기자, 1차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을 만나보셨다고요?



<리포트>



네, 마지막 작별 상봉이 지난 월요일이었죠.



채 일주일도 안됐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살아있는 그 얼굴 한 번만이라도 보면, 그래도 한결 마음이 놓일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맺혔던 가슴 속 한도 다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니었습니다.



더 그립습니다. 더 사무칩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이제 일흔이고 여든인데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겠지.



힘들 거라는 거 뻔히 알면서 자꾸만 묻고 또 물어봅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60년을 기다렸습니다.



가슴 속 깊이 응어리졌던 이산의 한.



이렇게나마 잠시 달랬습니다.



하지만 눈물의 재회도 잠시, 꿈에 그리던 혈육을 남겨 두고 또 다시 작별입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60년만에 만난 남동생과 찍은 사진 한 장.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시려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아휴, 난 기절해서 입술이 다 부르트고, 막 덜덜덜 떨려서 뭐 내가 어디 가서 죄를 지은 것처럼 막 가슴이 아프고 두근두근 떨리는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60년 전, 하지만 남동생과 헤어졌던 그 순간 만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피난 가다가. 겨울 피난 가는 길에. 피난 나가다가 저기 정동진, 어딘지 모르겠어. 그때 (남동생이) 나를 세 번 돌아다보고 울더라고. 이제 다시 못 보겠거니 하고 그랬는지..."



그렇게 피난길에 놓쳐버린 남동생의 손, 그 손을 다시 잡는데 60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기가 막혀서, 가슴이 막혀서 말도 안 나오고, 눈물 밖에 안 나와. 기가 막혀서."



동생과의 짧았던 2박 3일. 그렇게라도 만나고 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감당 못 할 그리움만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아휴. 다 소용없고, 가슴 아픈 말을 어디다 다 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내가 요새 와서 음식을 먹어도 걸리고 이게 부모라면 그 마음은 오죽 할까..."



이풍길씨는 이번 상봉에서 누나를 만났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육남매를 도맡아 키우던 큰 누나였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남달리 우리들을 가장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줬기 때문에 정말 그 잃어버린 누님이, (북으로) 떠나간 누님이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그 당시에."



보고 또 봐도 그리운 얼굴...



누나가 손에 쥐어준 과자는 아예 사무실에 가져다놨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한 봉지는 내가 여기 놓고 우리 누님 생각날 때마다 없어질 때까지 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나마 감격스러웠던, 하지만 너무도 짧았던 상봉의 추억을 되새겨봅니다.



<인터뷰> 강순옥(동료) : "전날 6.25 노래를 불렀어요. 어찌 잊으랴~ 혼자. 혼자서 책상에 앉아서 계속 흥얼거리셨어요. 우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잖아요. 그런데 그때 좀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고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리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됐던 이별의 순간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마지막이지. 그러니까 누님이 그러시더라고. 서로 손 흔들고 뒤에서 앞에서 매달려서 떠나는데. 참, 분단의 비극이 너무 애처롭고 냉철하구나. 많이 서글프더라고..."



누나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왔던 장기화 할아버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뭐 그냥 기쁘기만 하고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어요. 비극이에요. 민족의 비극. 빨리 통일이 돼서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이죠."



돌아가시는 날까지 딸을 그리워했던 부모님 생각에 할아버지는 더욱 마음이 무거운데요.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우리는 먼저 1차로 차편에 피난을 갔고, 어머니는 나는 내일 가겠다면서 거짓말하시고 안 오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니까 (나간) 누나가 혹시나 이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여든 두 살, 허리가 아파 힘겨워하는 누이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누님이 허리가 아파서 허리 밴드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본인이 의사인데도. 그런 통로가, 편안한 통로가 있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의약품의 하나니까. 허리밴드를 하나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자신은 행복한 편입니다.



아직도 혈육의 생사조차 모르는 다른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이산가족) 8만 3천 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재정이,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그래도 만나서 살아계신 모습이라도 봤잖아요.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 빨리 만나게 했으면 좋겠고..."



60년 만에 다시 만나 흘린 서러운 눈물. 그렇게 이들은 어느덧 7-80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버렸습니다.



언제 또 다시 그리운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누이야, 누이야 건강해. 건강해서 우리 또 만나” 하기에, 내가 “그래, 그렇지만 모르겠다. 또 만날 지. 이게 마지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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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누나 보고 싶어”…짧은 만남 긴 가슴앓이
    • 입력 2010-11-05 09:20:47
    • 수정2010-11-05 11: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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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커 멘트>

13개월 만에 재게 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60년 만에 가족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화면을 통해 모두 보셨을텐데요.

오늘로서 2차 상봉도 끝이 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앞서 북측 가족의 연락으로 1차 상봉을 가졌던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더 커진 그리움과 아쉬움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민우 기자, 1차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을 만나보셨다고요?

<리포트>

네, 마지막 작별 상봉이 지난 월요일이었죠.

채 일주일도 안됐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살아있는 그 얼굴 한 번만이라도 보면, 그래도 한결 마음이 놓일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맺혔던 가슴 속 한도 다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니었습니다.

더 그립습니다. 더 사무칩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이제 일흔이고 여든인데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만날 수 있겠지.

힘들 거라는 거 뻔히 알면서 자꾸만 묻고 또 물어봅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60년을 기다렸습니다.

가슴 속 깊이 응어리졌던 이산의 한.

이렇게나마 잠시 달랬습니다.

하지만 눈물의 재회도 잠시, 꿈에 그리던 혈육을 남겨 두고 또 다시 작별입니다.

그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60년만에 만난 남동생과 찍은 사진 한 장.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 켠이 시려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아휴, 난 기절해서 입술이 다 부르트고, 막 덜덜덜 떨려서 뭐 내가 어디 가서 죄를 지은 것처럼 막 가슴이 아프고 두근두근 떨리는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60년 전, 하지만 남동생과 헤어졌던 그 순간 만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피난 가다가. 겨울 피난 가는 길에. 피난 나가다가 저기 정동진, 어딘지 모르겠어. 그때 (남동생이) 나를 세 번 돌아다보고 울더라고. 이제 다시 못 보겠거니 하고 그랬는지..."

그렇게 피난길에 놓쳐버린 남동생의 손, 그 손을 다시 잡는데 60년이 걸렸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기가 막혀서, 가슴이 막혀서 말도 안 나오고, 눈물 밖에 안 나와. 기가 막혀서."

동생과의 짧았던 2박 3일. 그렇게라도 만나고 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감당 못 할 그리움만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아휴. 다 소용없고, 가슴 아픈 말을 어디다 다 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고, 내가 요새 와서 음식을 먹어도 걸리고 이게 부모라면 그 마음은 오죽 할까..."

이풍길씨는 이번 상봉에서 누나를 만났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육남매를 도맡아 키우던 큰 누나였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남달리 우리들을 가장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 줬기 때문에 정말 그 잃어버린 누님이, (북으로) 떠나간 누님이 얼마나 그리웠겠어요. 그 당시에."

보고 또 봐도 그리운 얼굴...

누나가 손에 쥐어준 과자는 아예 사무실에 가져다놨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한 봉지는 내가 여기 놓고 우리 누님 생각날 때마다 없어질 때까지 먹으려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나마 감격스러웠던, 하지만 너무도 짧았던 상봉의 추억을 되새겨봅니다.

<인터뷰> 강순옥(동료) : "전날 6.25 노래를 불렀어요. 어찌 잊으랴~ 혼자. 혼자서 책상에 앉아서 계속 흥얼거리셨어요. 우리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잖아요. 그런데 그때 좀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고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리움은 좀처럼 가시지 않습니다.

눈물로 뒤범벅됐던 이별의 순간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풍길(72/이산가족 상봉자) : "마지막이지. 그러니까 누님이 그러시더라고. 서로 손 흔들고 뒤에서 앞에서 매달려서 떠나는데. 참, 분단의 비극이 너무 애처롭고 냉철하구나. 많이 서글프더라고..."

누나를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왔던 장기화 할아버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뭐 그냥 기쁘기만 하고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어요. 비극이에요. 민족의 비극. 빨리 통일이 돼서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뿐이죠."

돌아가시는 날까지 딸을 그리워했던 부모님 생각에 할아버지는 더욱 마음이 무거운데요.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우리는 먼저 1차로 차편에 피난을 갔고, 어머니는 나는 내일 가겠다면서 거짓말하시고 안 오셨어요. 그래서 나중에 물어보니까 (나간) 누나가 혹시나 이 집을 찾아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여든 두 살, 허리가 아파 힘겨워하는 누이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누님이 허리가 아파서 허리 밴드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본인이 의사인데도. 그런 통로가, 편안한 통로가 있으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의약품의 하나니까. 허리밴드를 하나 보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자신은 행복한 편입니다.

아직도 혈육의 생사조차 모르는 다른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인터뷰> 장기화(72/이산 가족 상봉자) : "(이산가족) 8만 3천 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재정이,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그래도 만나서 살아계신 모습이라도 봤잖아요. 그리워하는 이산가족들 빨리 만나게 했으면 좋겠고..."

60년 만에 다시 만나 흘린 서러운 눈물. 그렇게 이들은 어느덧 7-80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버렸습니다.

언제 또 다시 그리운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정희(78/이산가족 상봉자) : "“누이야, 누이야 건강해. 건강해서 우리 또 만나” 하기에, 내가 “그래, 그렇지만 모르겠다. 또 만날 지. 이게 마지막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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