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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버려진 땅, 체르노빌의 비극
입력 2011.05.01 (09:18) 특파원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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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폭 사망자가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방사능 오염을 피해 떠난 이재민도 3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남겼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방사능 오염의 후유증은 대를 이어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데요...특히 당시 사고 수습에 동원됐던 작업자들 가운데도 지금까지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김명섭 특파원이 비극의 현장 체르노빌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키예프 시내에 있는 한 방사선치료병원입니다. 병실에 유독 어린이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5살난 베로니카는 올해 초 급성백혈병 증세를 보여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녹취> 베로니카/백혈병 어린이(5살) : "내가 만든 것 엄마한테 줄게."

<녹취> 레나/베로니카 어머니 : “고마워.”

베로니카의 엄마, 레나는 어릴 적부터 체르노빌 근처 마을에서 살아 왔습니다.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아버지가 갑상선암에 걸렸지만 자신은 지금까지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레나/베로니카(백혈병 어린이) 어머니 : "난 건강했는데 방사능 피해가 내 아이에게 나타났습니다."

원전 사고의 영향은 체르노빌을 떠난 사람들의 후손에게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나타샤/백혈병 어린이 어머니 : “아버지 혼자 살아 계시는데 체르노빌에 대한 얘기는 안하십니다.”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 대한 비상전원 출력 실험이 무리하게 진행되다 원전이 폭발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며칠 간 감추던 소련은 주변 국가들이 원전 사고를 감지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폭발 사실을 시인합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은 사고 이틀 뒤에서야 대피를 했습니다. 원전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프리퍄티시, 한 때 5만 명의 주민들이 살았던 이 도시는 이제 텅빈 건물 잔해만 남아 있습니다. 시내 중심 한 호텔은 뼈대만 남았습니다.

당시 개장을 앞뒀던 놀이시설은 손님을 맞아보지도 못한채 녹슨 채 방치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유령의 도시라 부릅니다. 한 때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원도시로 유명했던 이곳은 하루 사이에 단 한사람도 살 수 없는 오염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폐허가 된 유치원에는 어린이들이 쉬던 침대와 가지고 놀던 인형들이 버려져 있습니다. 무너져 내린 건물 속의 간판이 이곳이 상점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거리 곳곳에 떨어진 방독면은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증언합니다. 원전 30킬로미터 이내 마을에 대한 폐쇄 명령이 떨어지면서 주민들이 제대로 짐을 챙기지 못한 채 4시간 만에 모두 마을을 떠났습니다.

이재민만 35만 명, 사고로 인한 희생자는 현재까지 최대 약 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희생자 피해 규모가 컸던 이유중 하나는 원전 사고의 위험이 인근 주민들이나 방재 작업에 동원됐던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원전 근로자들은 사고 처리를 위해 작업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농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해 특수부대 요원들이 투입되는 등 사고 이후 4년간 연인원 80만 명이 폐기물 처리와 매몰, 정화 작업에 동원됐습니다.

이들은 방사선량 피폭을 줄이기 위해 온몸에 철판을 두르고 방독면과 특수장갑,신발 등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원전 폐기물 처리작업에 동원된 작업자에게 허용된 작업 시간은 단 10분, 그러나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며칠씩 수십 시간에 걸쳐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야 했습니다.

이 가운데 만2천여 명이 방사능에 심각하게 피폭돼 목숨을 잃거나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당시 군인이었던 알렉산드르씨는 사고 직후부터 20일 간 원전 주위에서 헬기로 각종 장비와 음식을 날랐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지난 96년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1년에 절반 이상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알렉산드르/사고 당시 수송헬기 조종사 :"얼마나 위험한 지 잘 몰랐고 소련 시절이어서 명령이 있으면 그냥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폐기물 작업자들과 주민들에게서 백혈병과 갑상선 암은 매우 흔한 병입니다.

<인터뷰> 이리나/키예프 방사능치료센터 연구소장 :"만성림프구성백혈병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근무자들을 포함한 주민들은 키예프 등 주변 도시로 집단 이주해 함께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여기가 체르노빌 이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곳입니다.”

당시 원전 근무자들 중 생존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류드밀라/당시 원전 근무자 : "아들이 호르몬 이상으로 아픈데 손자가 2명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못해 야단입니다."

3년 동안 원전 폐기물 제거 작업에 참여했던 빅토르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씨 역시 임파선 질환과 얼굴 실핏줄이 드러나는 괴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우리 유전 탓에 손자들은 다리가 약해 제대로 걸어다니지 못합니다. 원전 근처에 살던 아내는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고요."

체르노빌 사고 추모행사를 준비하는 원전 작업자 모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크게 안타까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모든 원전 사고의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현재 석관으로 뒤집어 씌워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내부엔 아직 30톤 이상의 핵 연료가 남아 있고 방사선이 계속 누출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취재진들도 4호기 주변에 15분 이상 머무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특히 방사능 낙진이 심했던 원전 주변 토양은 지금도 환경방사선량 평균 수치를 수백 배나 초과하는 방사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4호기 이외의 다른 3기의 원전도 현재 가동을 중단한 상탭니다. 폐쇄된 원전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25년 전 동료들의 희생을 다시금 회상합니다.

<인터뷰> 피쿨/체르노빌 원전 직원 ; "우리는 25년 당시 우리들을 보호해준 근무자들을 추모합니다."

수도 키예프에서는 사고 25주기를 맞아 체르노빌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원전 작업자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의약품과 보조금 지급이 점점 줄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인터뷰> 파블렌코/원전 작업자단체 회원 :"원전 폐기물 처리에 동원됐던 작업자들은 25주년에 받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원전 작업 증명서만 받았어요."

과거 소련은 사고 정보를 감추고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웠고 그 후유증은 소련 붕괴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인터뷰> 발렌티나/원전 사고 희생자 어머니 :"25년간 변한게 없어요. 사고 이후에도 사망자는 계속 발생했고 집들은 아직도 텅 비어있어요. (체르노빌의) 상황이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매우 염려됩니다."

체르노빌의 희생이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추모식장을 가득 채웁니다.
  • [월드리포트] 버려진 땅, 체르노빌의 비극
    • 입력 2011-05-01 09:18:2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기록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폭 사망자가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 방사능 오염을 피해 떠난 이재민도 3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남겼습니다.

2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방사능 오염의 후유증은 대를 이어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데요...특히 당시 사고 수습에 동원됐던 작업자들 가운데도 지금까지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김명섭 특파원이 비극의 현장 체르노빌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키예프 시내에 있는 한 방사선치료병원입니다. 병실에 유독 어린이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5살난 베로니카는 올해 초 급성백혈병 증세를 보여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녹취> 베로니카/백혈병 어린이(5살) : "내가 만든 것 엄마한테 줄게."

<녹취> 레나/베로니카 어머니 : “고마워.”

베로니카의 엄마, 레나는 어릴 적부터 체르노빌 근처 마을에서 살아 왔습니다.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아버지가 갑상선암에 걸렸지만 자신은 지금까지 건강에 별 이상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레나/베로니카(백혈병 어린이) 어머니 : "난 건강했는데 방사능 피해가 내 아이에게 나타났습니다."

원전 사고의 영향은 체르노빌을 떠난 사람들의 후손에게도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나타샤/백혈병 어린이 어머니 : “아버지 혼자 살아 계시는데 체르노빌에 대한 얘기는 안하십니다.”

25년 전,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 대한 비상전원 출력 실험이 무리하게 진행되다 원전이 폭발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며칠 간 감추던 소련은 주변 국가들이 원전 사고를 감지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서야 폭발 사실을 시인합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은 사고 이틀 뒤에서야 대피를 했습니다. 원전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프리퍄티시, 한 때 5만 명의 주민들이 살았던 이 도시는 이제 텅빈 건물 잔해만 남아 있습니다. 시내 중심 한 호텔은 뼈대만 남았습니다.

당시 개장을 앞뒀던 놀이시설은 손님을 맞아보지도 못한채 녹슨 채 방치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유령의 도시라 부릅니다. 한 때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원도시로 유명했던 이곳은 하루 사이에 단 한사람도 살 수 없는 오염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폐허가 된 유치원에는 어린이들이 쉬던 침대와 가지고 놀던 인형들이 버려져 있습니다. 무너져 내린 건물 속의 간판이 이곳이 상점이었음을 상기시킵니다.

거리 곳곳에 떨어진 방독면은 당시의 심각한 상황을 증언합니다. 원전 30킬로미터 이내 마을에 대한 폐쇄 명령이 떨어지면서 주민들이 제대로 짐을 챙기지 못한 채 4시간 만에 모두 마을을 떠났습니다.

이재민만 35만 명, 사고로 인한 희생자는 현재까지 최대 약 2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희생자 피해 규모가 컸던 이유중 하나는 원전 사고의 위험이 인근 주민들이나 방재 작업에 동원됐던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원전 근로자들은 사고 처리를 위해 작업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농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해 특수부대 요원들이 투입되는 등 사고 이후 4년간 연인원 80만 명이 폐기물 처리와 매몰, 정화 작업에 동원됐습니다.

이들은 방사선량 피폭을 줄이기 위해 온몸에 철판을 두르고 방독면과 특수장갑,신발 등으로 무장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원전 폐기물 처리작업에 동원된 작업자에게 허용된 작업 시간은 단 10분, 그러나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며칠씩 수십 시간에 걸쳐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야 했습니다.

이 가운데 만2천여 명이 방사능에 심각하게 피폭돼 목숨을 잃거나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당시 군인이었던 알렉산드르씨는 사고 직후부터 20일 간 원전 주위에서 헬기로 각종 장비와 음식을 날랐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지난 96년 만성림프구성백혈병을 진단받고 1년에 절반 이상은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알렉산드르/사고 당시 수송헬기 조종사 :"얼마나 위험한 지 잘 몰랐고 소련 시절이어서 명령이 있으면 그냥 수행할 뿐이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폐기물 작업자들과 주민들에게서 백혈병과 갑상선 암은 매우 흔한 병입니다.

<인터뷰> 이리나/키예프 방사능치료센터 연구소장 :"만성림프구성백혈병 발병률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게 나오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근무자들을 포함한 주민들은 키예프 등 주변 도시로 집단 이주해 함께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여기가 체르노빌 이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곳입니다.”

당시 원전 근무자들 중 생존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류드밀라/당시 원전 근무자 : "아들이 호르몬 이상으로 아픈데 손자가 2명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못해 야단입니다."

3년 동안 원전 폐기물 제거 작업에 참여했던 빅토르씨는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씨 역시 임파선 질환과 얼굴 실핏줄이 드러나는 괴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우리 유전 탓에 손자들은 다리가 약해 제대로 걸어다니지 못합니다. 원전 근처에 살던 아내는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고요."

체르노빌 사고 추모행사를 준비하는 원전 작업자 모임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크게 안타까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빅토르/원전 작업자 단체 대표 : "후쿠시마 원전을 비롯한 모든 원전 사고의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현재 석관으로 뒤집어 씌워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내부엔 아직 30톤 이상의 핵 연료가 남아 있고 방사선이 계속 누출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취재진들도 4호기 주변에 15분 이상 머무는 것이 금지돼 있습니다. 특히 방사능 낙진이 심했던 원전 주변 토양은 지금도 환경방사선량 평균 수치를 수백 배나 초과하는 방사성물질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4호기 이외의 다른 3기의 원전도 현재 가동을 중단한 상탭니다. 폐쇄된 원전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25년 전 동료들의 희생을 다시금 회상합니다.

<인터뷰> 피쿨/체르노빌 원전 직원 ; "우리는 25년 당시 우리들을 보호해준 근무자들을 추모합니다."

수도 키예프에서는 사고 25주기를 맞아 체르노빌 희생자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당시 원전 작업자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의약품과 보조금 지급이 점점 줄고 있다고 불평합니다.

<인터뷰> 파블렌코/원전 작업자단체 회원 :"원전 폐기물 처리에 동원됐던 작업자들은 25주년에 받은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원전 작업 증명서만 받았어요."

과거 소련은 사고 정보를 감추고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웠고 그 후유증은 소련 붕괴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인터뷰> 발렌티나/원전 사고 희생자 어머니 :"25년간 변한게 없어요. 사고 이후에도 사망자는 계속 발생했고 집들은 아직도 텅 비어있어요. (체르노빌의) 상황이 일본에서도 일어나고 있어 매우 염려됩니다."

체르노빌의 희생이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이 추모식장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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