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이탈리아, 중병 앓는 문화유산

입력 2011.05.2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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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이탈리아입니다. 고대 로마부터 이어진 찬란한 역사 덕분이죠. 그런데 국가 재정난으로 문화재 보존 예산이 대폭 깎이면서 복원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난받는 인류 문화유산...함철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구릉지대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기원전 8세기 때 형성된 로마는 그 자체가 문화유적입니다. 팔레티노 언덕, 로만광장 시내 부감 스케치 고대는 물론,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들어찬 건물을 통해 유럽의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봐도 초기 로마 황제 궁전을 비롯해 판테온 신전, 콜로세움, 바티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돕니다.

특파원은 지금 기원전 4세기 때 지어진 고대의 성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중세 때 지어진 성의 망루도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짧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근대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고대와 중세, 근대의 건축물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지만 보존이나 복원이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콜로세움의 시커먼 외벽은 언뜻 보기엔 고색창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차량 배기가스와 먼지에 오염된 것입니다. 일부 복원이 이뤄진 흰색 벽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내부 또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벽체의 내구성이 떨어진데다 지하철의 진동까지 더해지면서 붕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콜로세움 벽체는 매일 점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천정이나 벽체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속출하면서 일부 구역은 2년 넘게 관광객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통로 바닥에는 부서지거나 떨어진 석재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 메오그라시(콜로세움 건축담당 감독관):"콜로세움의 상.중.하층에 걸쳐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복원이 필요한 현장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일부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수많은 복원 작업을 계속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초기에 형성된 광장은 상황이 더욱 열악합니다. 바닥 여기저기에는 부서진 기둥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신전의 일부분도 위태롭게 방치돼 있습니다. 보존 대책이라곤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철 구조물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 전붑니다. 정교하고도 섬세한 조각들로 고대 로마 조형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티투스 개선문도 곳곳이 훼손됐지만 복원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복원해야 할 곳은 많은데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로베르코 에지디(로마광장 담당 고고학자):"로마 광장과 같이 광범위한 유적지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재정이나 예산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재의 훼손 양상도 너무 다양합니다. 특히 최근엔 날씨 기후변화 때문에 더 심합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삭감한 문화 관련 예산만 올해부터 3년 동안 2억 8천만 유로, 4000억 원이 넘습니다. 복원 대상은 느는데 반해 예산이 줄어들면서 복원 사업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콜로세움의 경우, 오염된 벽면을 세척하는 작업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콜로세움의 바닥을 덮는 공사는 중단돼 있습니다.

<인터뷰> 콜라루치(바티칸 성당 복원가):"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복원 전문가를 양성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수준있는 복원은 높은 수준의 복원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인데, 많은 곳이 수준이 낮은 상태입니다."

로마 황제들의 궁전이 있는 팔레티노 언덕은 계속되는 집중 호우로 훼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지만 복원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올바르게 복원하기 위해선 사업비용도 문제지만 수준 높은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콜라루치(복원 전문가):"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복원가를 양성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수준있는 복원은 높은 수준의 복원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인데, 많은 곳이 수준이 낮은 상태입니다."

문화재에 대한 보존 대책도 겉돌면서 사라져가는 유적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2천 년이 넘은
'검투사의 집'은 지난해 11월 집중 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또 인접해 있는 고대의 한 저택 담장이 붕괴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시볼리(이탈리아 고고학회장):"1년에 7번의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짧은 기간에, 특히 여름에 그렇게 많은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은 조만간 심각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합니다."

훼손된 문화재가 대책 없이 방치되자 시민사회단체가 직접 나섰습니다. 이탈리아 환경기금은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해 세워진 신전이 있는 티볼리 계곡을 복원해 지난 2005년부터 민간에 개방하고 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의 별장으로 이름 붙여질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지금같은 모습을 되찾기 전에는 사실상 쓰레기장이었습니다.

<인터뷰> 몬테사노(이탈리아 환경기금 미술사학자):"정말로 훼손상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우리가 3년 동안 5톤 정도의 쓰레기를 치웠는데, 이 쓰레기는 가전제품과 세탁기 등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길에는 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물과 꽃을 다시 정리하고 주변을 복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환경기금이 이처럼 복구한 유적만도 23군데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대신하는
민간의 이 같은 행동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늘곤 있지만 규모가 작은 유적지 복원에 그칠 정도로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수많은 유적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선 어디서나 줄지어 선 관광객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계 4위의 관광대국이란 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만 61개로 세계 1윕니다. 연간 관광수입은 40조 원이 넘습니다. 선조들이 물려 준 고대 로마의 유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 줄이기에만 급급해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나단 (미국 관광객):"우리가 이런 유산들을 보면서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죠. 제 생각에는 돈을 내고 지원해서 사람들이 이런 곳을 볼 수 있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고고학회 등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은 건조한 기후에서 비가 많이 오는 기후로 바뀌고 있어 고대 유적들의 대량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천문학적인 관광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에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점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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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이탈리아, 중병 앓는 문화유산
    • 입력 2011-05-29 08:53:4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나라가 이탈리아입니다. 고대 로마부터 이어진 찬란한 역사 덕분이죠. 그런데 국가 재정난으로 문화재 보존 예산이 대폭 깎이면서 복원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난받는 인류 문화유산...함철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구릉지대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기원전 8세기 때 형성된 로마는 그 자체가 문화유적입니다. 팔레티노 언덕, 로만광장 시내 부감 스케치 고대는 물론,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들어찬 건물을 통해 유럽의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봐도 초기 로마 황제 궁전을 비롯해 판테온 신전, 콜로세움, 바티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돕니다. 특파원은 지금 기원전 4세기 때 지어진 고대의 성문을 지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중세 때 지어진 성의 망루도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짧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는 근대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고대와 중세, 근대의 건축물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박물관인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지만 보존이나 복원이 제대로 안 된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콜로세움의 시커먼 외벽은 언뜻 보기엔 고색창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차량 배기가스와 먼지에 오염된 것입니다. 일부 복원이 이뤄진 흰색 벽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내부 또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벽체의 내구성이 떨어진데다 지하철의 진동까지 더해지면서 붕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콜로세움 벽체는 매일 점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천정이나 벽체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속출하면서 일부 구역은 2년 넘게 관광객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통로 바닥에는 부서지거나 떨어진 석재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인터뷰> 메오그라시(콜로세움 건축담당 감독관):"콜로세움의 상.중.하층에 걸쳐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복원이 필요한 현장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일부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하게 수많은 복원 작업을 계속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초기에 형성된 광장은 상황이 더욱 열악합니다. 바닥 여기저기에는 부서진 기둥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신전의 일부분도 위태롭게 방치돼 있습니다. 보존 대책이라곤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철 구조물로 고정시켜 놓은 것이 전붑니다. 정교하고도 섬세한 조각들로 고대 로마 조형물의 진수를 볼 수 있는 티투스 개선문도 곳곳이 훼손됐지만 복원은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복원해야 할 곳은 많은데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로베르코 에지디(로마광장 담당 고고학자):"로마 광장과 같이 광범위한 유적지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 재정이나 예산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재의 훼손 양상도 너무 다양합니다. 특히 최근엔 날씨 기후변화 때문에 더 심합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삭감한 문화 관련 예산만 올해부터 3년 동안 2억 8천만 유로, 4000억 원이 넘습니다. 복원 대상은 느는데 반해 예산이 줄어들면서 복원 사업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콜로세움의 경우, 오염된 벽면을 세척하는 작업만 진행되고 있습니다. 콜로세움의 바닥을 덮는 공사는 중단돼 있습니다. <인터뷰> 콜라루치(바티칸 성당 복원가):"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복원 전문가를 양성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수준있는 복원은 높은 수준의 복원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인데, 많은 곳이 수준이 낮은 상태입니다." 로마 황제들의 궁전이 있는 팔레티노 언덕은 계속되는 집중 호우로 훼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지만 복원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올바르게 복원하기 위해선 사업비용도 문제지만 수준 높은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콜라루치(복원 전문가):"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복원가를 양성하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수준있는 복원은 높은 수준의 복원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인데, 많은 곳이 수준이 낮은 상태입니다." 문화재에 대한 보존 대책도 겉돌면서 사라져가는 유적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2천 년이 넘은 '검투사의 집'은 지난해 11월 집중 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또 인접해 있는 고대의 한 저택 담장이 붕괴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인터뷰> 시볼리(이탈리아 고고학회장):"1년에 7번의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짧은 기간에, 특히 여름에 그렇게 많은 붕괴가 일어났다는 것은 조만간 심각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봐야 합니다." 훼손된 문화재가 대책 없이 방치되자 시민사회단체가 직접 나섰습니다. 이탈리아 환경기금은 기원전 3세기를 전후해 세워진 신전이 있는 티볼리 계곡을 복원해 지난 2005년부터 민간에 개방하고 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16세의 별장으로 이름 붙여질 정도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지금같은 모습을 되찾기 전에는 사실상 쓰레기장이었습니다. <인터뷰> 몬테사노(이탈리아 환경기금 미술사학자):"정말로 훼손상태가 너무 심각했습니다. 우리가 3년 동안 5톤 정도의 쓰레기를 치웠는데, 이 쓰레기는 가전제품과 세탁기 등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길에는 풀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물과 꽃을 다시 정리하고 주변을 복구하게 된 것입니다." 이탈리아 환경기금이 이처럼 복구한 유적만도 23군데에 달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대신하는 민간의 이 같은 행동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늘곤 있지만 규모가 작은 유적지 복원에 그칠 정도로 아직은 역부족입니다. 수많은 유적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선 어디서나 줄지어 선 관광객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계 4위의 관광대국이란 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만 61개로 세계 1윕니다. 연간 관광수입은 40조 원이 넘습니다. 선조들이 물려 준 고대 로마의 유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탈리아 정부는 재정 줄이기에만 급급해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지켜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나단 (미국 관광객):"우리가 이런 유산들을 보면서 역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죠. 제 생각에는 돈을 내고 지원해서 사람들이 이런 곳을 볼 수 있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고고학회 등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은 건조한 기후에서 비가 많이 오는 기후로 바뀌고 있어 고대 유적들의 대량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서 천문학적인 관광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축복입니다. 그러나 문화재 보존에 막대한 예산이 든다는 점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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