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파문 어디까지

입력 2011.05.3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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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지난 16일, 미국 KPHO-TV 방송 : "재향 군인들이 미국 정부의 은폐를 도왔던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인터뷰>스티브 하우스(퇴역 주한미군) : "잊을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로) 병에 걸리거나 암으로 죽었을 텐데 자신이 무엇에 노출됐는지도 모를 겁니다."

사태는 미국의 한 지역방송에서 전직 주한미군들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인터뷰>로버트 트래비스(퇴역 주한미군) : "초록색으로 된 약 250개의 드럼통이었는데 화학물질 형태의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로 '1967년, 베트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1978년 경북 칠곡의 미군 기지 캠프 캐럴에 근무한 군인들입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독극물, 다이옥신이 다량 함유돼 있는 고엽제.

당시 미군이 매립한 화학물질이 고엽제가 맞는지, 국내 다른 미군 기지는 괜찮은지, 의혹은 커져만 갑니다.

한 퇴역 주한미군의 증언으로 시작된 이곳 캠프 캐럴의 고엽제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마셔왔던 물, 딛고 살아왔던 땅이 심각하게 오염된 것은 아닌지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앞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지 취재파일 4321에서 알아봤습니다.

캠프 캐럴은 주한 미8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주한미군의 전시 대비 물자가 저장, 관리되고 있습니다.

1960년 캠프 캐럴이 조성될 때 카투사로 근무한 서병기 씨.

서 씨는 퇴역 주한미군들이 1978년 이전까지 고엽제가 모여 있었다고 말한 도랑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인터뷰>서병기(60년대 캠프 캐럴 근무) : "위험물들을 묻었다고 보면, 양쪽 외부에서 그 때는 산이 있었고 또 보이지 않는 곳이라 거기다가 묻었을 가능성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00%다 이겁니다."

문제의 위험물질은 서 씨가 짚어낸 도랑에서 지금의 헬기장 옆으로 옮겨져 매립됐습니다.

<녹취>전 캠프캐럴 군무원(음성변조) : "도로가 있고 그 밑에 중앙 저수장 있고. 분명히 (헬기장) 거기다. 뭘 묻고 막 그런 걸 봤다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고."

1979년부터 미 육군 공병단의 보고서에는 2년에 걸쳐 묻혀있던 화학물질과 주변 흙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했다고 돼있습니다.

문제는 이 화학물질에 고엽제가 포함돼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됐는지 아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폭스(준장/주한 미 육군기지 관리사령관) : "(고엽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캠프 캐럴 내에 고엽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78년 매립 이후 이를 처리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적은 양의 다이옥신을 검출한 2004년 후속 조사에 이르기까지, 미군은 우리 정부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30여년 동안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인터뷰>칠곡 주민(46년 거주) : "이 물 먹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이렇게 고엽제인지 뭔지 몰랐지. 그런데 고엽제가 얼마가 묻혀 있다고 그러니 기분이 얼마나 나빠..."

한평생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주민들은 속이 탑니다.

<인터뷰>김판수(경북 칠곡/50년 거주) : "그런 걸 왜 우리나라에 왜 갖다 묻었나. 30년 됐다 하는데...30년 동안 있다가 이제 와서 밝히나."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변 상인들도 침체된 분위기입니다.

<녹취> 캠프 캐럴 인근 상인(음성변조) : "지금 비상 걸려 가지고 나오지도 않아요. 미군들이. (조금 줄었어요? 손님이요?) 예. 여기 동네 사람들은 전부 다 미군들 위주로 해가지고 생업을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안좋은 결과 나오는 거 싫어하죠."

지난 24일 저녁, 캠프 캐럴 주변 14개 마을에 일제히 긴급 반상회가 소집됐습니다.

농번기인데도 반상회에 불참한 가구는 거의 없습니다.

<녹취>주민 : "한미 공조라 하면 최소한 저런 걸 묻었을 때 적어도 군수님한테는 알려줘야 된다..."

<녹취>주민 : "우리가 바라는 거는 군이나 도나 이런 데서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어서 우리에게 피해가 덜가도록 만들어줘야지..."

칠곡군에는 지금도 223가구, 789명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문 이후 캠프 캐럴 인근 마을의 지하수에서도 미량이지만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주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34개 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군의 화학물질 매립을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인터뷰>백현국(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 : "드럼통이 상하지 않았다면 즉시 제거를 해서 미국으로 가져가기 부탁드립니다. 만약에 침출이 됐다면 적극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당연히 사과도 이뤄져야 합니다."

맹독성 혼합 제초제인 고엽제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작전을 위해 삼림을 말려죽이는 데 사용됐습니다.

주성분인 다이옥신은 인체 유전자를 조금씩 변형시켜 접촉 후 5년에서 20년 뒤 증상을 일으킵니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베트남에서만 3백만 명 이상이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중 10%는 피해자의 2세들입니다.

<인터뷰>응엔 티 쩐(4자녀 어머니) : "지금은 내가 살아 있지만, 늙어서 죽게 되면 누가 저 아이들을 돌볼지 가장 큰 걱정이에요."

많은 베트남인들이 2세들의 장애가 고엽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지만 분명한 증거를 찾기 어려워 더욱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마이클 머린(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 "베트남인들은 장애가 보이면 모두 고엽제와 연관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과장됐다고 믿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들도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고엽제 후유증 환자 : "모기약인 줄 알고, 그게 고엽제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맨 처음에 뇌경색이 왔어요. 한번 길을 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국내에서도 1968년부터 69년까지 휴전선 일대에 주한미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22만 리터의 고엽제가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와 달리 70년대 초반에도 민간인들까지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전화녹취>권종인(강원도 철원군/72세) : "위험물 포대에 X표 위에 해골을 그려놓고 취급주의라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살포해준 것은 70년도에서 73년도 3년 사이에 했어."

국내에 자신도 모르는 고엽제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혹은 미군기지가 있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국에 100곳 가까이 산재해 있는 주한 미군 기지 중에는 위험물질을 사용한 뒤 땅에 대충 묻어버린 경우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캠프 머서에서, 이어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에서 각각 1960년대와 80년대 온갖 종류의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주장이 나와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 조속한 조처를 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조사 결과 유해물질이 검출된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쉽사리 단정 짓기도 어렵습니다.

<녹취>옥 곤(부경대 교수/한미공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 : "(다이옥신은) 가장 큰 발생원이라고 하는 것은 대기로부터 유입이에요. 쓰레기 소각도 있을 수 있고... 발생원에 대한 비교 검토를 전부 다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 많이 있죠. 그렇게 하려면 오랜 시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터 축적이 많아야 되는 거죠."

2004년 캠프 캐럴에 대한 미군 조사 결과처럼 소량의 다이옥신이 나왔을 때 그것을 미군 활동에 의한 결과로 결론짓기도 쉽지만은 않다는 얘기입니다.

미군 기지 안팎의 오염 실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까지는 현행 SOFA, 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한계가 많습니다.

미군 영내에서 일어난 사안에 대해서는 미군 협조 없이는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장희(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법) : "오염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해를 줬는지 안줬는지 이건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되거든요. 그걸 누가 증명을 하고, 실질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못지우는 거죠."

전문가들은 오염 징후 등 시급한 일이 있을 때 우리 측의 긴급방제조치권 등 특별 조항이 명시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국민 건강이 당장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사실상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만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규정도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인터뷰>이장희 : "말은 합의라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쪽에서 미국 주도로 합동위원회가 다 이뤄지고 있죠. 여기에 사실은 비공개로 된단 말이에요. 해당 오염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조사권 및 대한민국 정부의 감독권이 명시적으로 규정이 돼야 하죠."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국토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고엽제의 행방을 찾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캠프 캐럴에 대한 한미 합동 조사단 활동이 시작됐지만 아직 진척은 더딘 상황입니다.

부천 등 다른 지역에 대한 조사는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습니다.

미군 기지 주변 주민들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문제를 전면 재점검하고 오염원 제공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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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엽제 파문 어디까지
    • 입력 2011-05-30 08:45:39
    취재파일K
<녹취> 지난 16일, 미국 KPHO-TV 방송 : "재향 군인들이 미국 정부의 은폐를 도왔던 비밀을 폭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인터뷰>스티브 하우스(퇴역 주한미군) : "잊을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로) 병에 걸리거나 암으로 죽었을 텐데 자신이 무엇에 노출됐는지도 모를 겁니다." 사태는 미국의 한 지역방송에서 전직 주한미군들의 증언을 보도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인터뷰>로버트 트래비스(퇴역 주한미군) : "초록색으로 된 약 250개의 드럼통이었는데 화학물질 형태의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로 '1967년, 베트남'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1978년 경북 칠곡의 미군 기지 캠프 캐럴에 근무한 군인들입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독극물, 다이옥신이 다량 함유돼 있는 고엽제. 당시 미군이 매립한 화학물질이 고엽제가 맞는지, 국내 다른 미군 기지는 괜찮은지, 의혹은 커져만 갑니다. 한 퇴역 주한미군의 증언으로 시작된 이곳 캠프 캐럴의 고엽제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마셔왔던 물, 딛고 살아왔던 땅이 심각하게 오염된 것은 아닌지 불안을 떨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앞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는지 취재파일 4321에서 알아봤습니다. 캠프 캐럴은 주한 미8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주한미군의 전시 대비 물자가 저장, 관리되고 있습니다. 1960년 캠프 캐럴이 조성될 때 카투사로 근무한 서병기 씨. 서 씨는 퇴역 주한미군들이 1978년 이전까지 고엽제가 모여 있었다고 말한 도랑의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인터뷰>서병기(60년대 캠프 캐럴 근무) : "위험물들을 묻었다고 보면, 양쪽 외부에서 그 때는 산이 있었고 또 보이지 않는 곳이라 거기다가 묻었을 가능성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00%다 이겁니다." 문제의 위험물질은 서 씨가 짚어낸 도랑에서 지금의 헬기장 옆으로 옮겨져 매립됐습니다. <녹취>전 캠프캐럴 군무원(음성변조) : "도로가 있고 그 밑에 중앙 저수장 있고. 분명히 (헬기장) 거기다. 뭘 묻고 막 그런 걸 봤다 그런 사람들도 있더라고." 1979년부터 미 육군 공병단의 보고서에는 2년에 걸쳐 묻혀있던 화학물질과 주변 흙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처리했다고 돼있습니다. 문제는 이 화학물질에 고엽제가 포함돼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처리됐는지 아는 게 없다는 겁니다. <인터뷰>폭스(준장/주한 미 육군기지 관리사령관) : "(고엽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캠프 캐럴 내에 고엽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78년 매립 이후 이를 처리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적은 양의 다이옥신을 검출한 2004년 후속 조사에 이르기까지, 미군은 우리 정부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30여년 동안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인터뷰>칠곡 주민(46년 거주) : "이 물 먹고 살고 있었는데 그게 이렇게 고엽제인지 뭔지 몰랐지. 그런데 고엽제가 얼마가 묻혀 있다고 그러니 기분이 얼마나 나빠..." 한평생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주민들은 속이 탑니다. <인터뷰>김판수(경북 칠곡/50년 거주) : "그런 걸 왜 우리나라에 왜 갖다 묻었나. 30년 됐다 하는데...30년 동안 있다가 이제 와서 밝히나."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변 상인들도 침체된 분위기입니다. <녹취> 캠프 캐럴 인근 상인(음성변조) : "지금 비상 걸려 가지고 나오지도 않아요. 미군들이. (조금 줄었어요? 손님이요?) 예. 여기 동네 사람들은 전부 다 미군들 위주로 해가지고 생업을 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안좋은 결과 나오는 거 싫어하죠." 지난 24일 저녁, 캠프 캐럴 주변 14개 마을에 일제히 긴급 반상회가 소집됐습니다. 농번기인데도 반상회에 불참한 가구는 거의 없습니다. <녹취>주민 : "한미 공조라 하면 최소한 저런 걸 묻었을 때 적어도 군수님한테는 알려줘야 된다..." <녹취>주민 : "우리가 바라는 거는 군이나 도나 이런 데서 조금이라도 더 파고들어서 우리에게 피해가 덜가도록 만들어줘야지..." 칠곡군에는 지금도 223가구, 789명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문 이후 캠프 캐럴 인근 마을의 지하수에서도 미량이지만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오면서 주민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민사회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34개 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군의 화학물질 매립을 범죄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인터뷰>백현국(대구경북진보연대 상임대표) : "드럼통이 상하지 않았다면 즉시 제거를 해서 미국으로 가져가기 부탁드립니다. 만약에 침출이 됐다면 적극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당연히 사과도 이뤄져야 합니다." 맹독성 혼합 제초제인 고엽제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작전을 위해 삼림을 말려죽이는 데 사용됐습니다. 주성분인 다이옥신은 인체 유전자를 조금씩 변형시켜 접촉 후 5년에서 20년 뒤 증상을 일으킵니다. 베트남전이 끝난 지 35년이 지났지만 베트남에서만 3백만 명 이상이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중 10%는 피해자의 2세들입니다. <인터뷰>응엔 티 쩐(4자녀 어머니) : "지금은 내가 살아 있지만, 늙어서 죽게 되면 누가 저 아이들을 돌볼지 가장 큰 걱정이에요." 많은 베트남인들이 2세들의 장애가 고엽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지만 분명한 증거를 찾기 어려워 더욱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마이클 머린(전 베트남 주재 미국 대사) : "베트남인들은 장애가 보이면 모두 고엽제와 연관시키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과장됐다고 믿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인 고엽제 피해자들도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고엽제 후유증 환자 : "모기약인 줄 알고, 그게 고엽제인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맨 처음에 뇌경색이 왔어요. 한번 길을 가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국내에서도 1968년부터 69년까지 휴전선 일대에 주한미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22만 리터의 고엽제가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정부 발표와 달리 70년대 초반에도 민간인들까지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전화녹취>권종인(강원도 철원군/72세) : "위험물 포대에 X표 위에 해골을 그려놓고 취급주의라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살포해준 것은 70년도에서 73년도 3년 사이에 했어." 국내에 자신도 모르는 고엽제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혹은 미군기지가 있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국에 100곳 가까이 산재해 있는 주한 미군 기지 중에는 위험물질을 사용한 뒤 땅에 대충 묻어버린 경우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 부천의 캠프 머서에서, 이어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에서 각각 1960년대와 80년대 온갖 종류의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주장이 나와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 조속한 조처를 취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조사 결과 유해물질이 검출된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쉽사리 단정 짓기도 어렵습니다. <녹취>옥 곤(부경대 교수/한미공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 : "(다이옥신은) 가장 큰 발생원이라고 하는 것은 대기로부터 유입이에요. 쓰레기 소각도 있을 수 있고... 발생원에 대한 비교 검토를 전부 다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이 많이 있죠. 그렇게 하려면 오랜 시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데이터 축적이 많아야 되는 거죠." 2004년 캠프 캐럴에 대한 미군 조사 결과처럼 소량의 다이옥신이 나왔을 때 그것을 미군 활동에 의한 결과로 결론짓기도 쉽지만은 않다는 얘기입니다. 미군 기지 안팎의 오염 실태에 대해 보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까지는 현행 SOFA, 즉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에 한계가 많습니다. 미군 영내에서 일어난 사안에 대해서는 미군 협조 없이는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구체적인 피해를 입증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장희(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법) : "오염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위해를 줬는지 안줬는지 이건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해야 되거든요. 그걸 누가 증명을 하고, 실질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못지우는 거죠." 전문가들은 오염 징후 등 시급한 일이 있을 때 우리 측의 긴급방제조치권 등 특별 조항이 명시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 국민 건강이 당장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사실상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만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규정도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인터뷰>이장희 : "말은 합의라 하지만 실질적으로 미국 쪽에서 미국 주도로 합동위원회가 다 이뤄지고 있죠. 여기에 사실은 비공개로 된단 말이에요. 해당 오염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조사권 및 대한민국 정부의 감독권이 명시적으로 규정이 돼야 하죠."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국토 어딘가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고엽제의 행방을 찾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캠프 캐럴에 대한 한미 합동 조사단 활동이 시작됐지만 아직 진척은 더딘 상황입니다. 부천 등 다른 지역에 대한 조사는 논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됐습니다. 미군 기지 주변 주민들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문제를 전면 재점검하고 오염원 제공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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