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담배에 포위된 아이들

입력 2011.07.1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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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금연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어른은 물론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담배를 피우는 데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릴 인도네시아가 그런 나란데요, 흡연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에 담배 회사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아이들이 담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네시아의 한 대중식당.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웁니다.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한눈에 봐도 어린 아이들이지만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리스키(13살,중학생) :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따라 저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바유(13살,중학생) : “와룽(인도네시아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담배가 없으면 커피맛이 없잖아요.”

올해 17살의 에노도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웁니다. 에노가 담배를 손에 댄 건 중학교 일 학년, 열 두 살 때입니다.

<인터뷰> 에노(17살,고등학생) :“처음엔 그냥 재미로 흡연을 시작했죠. 친구들과 같이 대화하려고 피웠는데 그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끊기가 쉽지 않죠.”

인도네시아 청소년들은 담배를 사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도 없습니다. 올해 15살인 또하의 흡연량은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끊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또하(15살,고등학생) :“이 지역(마글랑)에서는 15살 정도 되면 (청소년들이) 거의 다 피운다고 보면 되죠.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죠.”

중고등학생의 경우 3명 중 1명이 담배를 피우거나 피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흡연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자의 절반 이상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담배 한 갑은 우리 돈 1500원 정도, 청소년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한번 중독되면 용돈을 쏟아붓게 됩니다. 또 낱개로도 살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아리(17살,고등학생) :“제 친구 알키이도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습니다. 하루라도 담배를 안 피우면 입이 심심한 애연가입니다.”

요즘 인도네시아 학교는 흡연 학생들로 고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학교 밖에서 흡연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뤄지다보니, 학교 안에서도 통제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꾸마르세(중학교 교감) : “학교 안은 금연구역을 지정해서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고 있죠. 그런데 학교 밖은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지요.”

인도네시아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청소년보다 나이 어린 아동들도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아기가 담배를 피우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공개됐습니다. 두 돌을 갓 넘긴 아기의 흡연 장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아기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취재진은 수마트라 섬의 한 농촌에 있는 아기의 집을 찾았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아기는 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아기로 유명해진 알디는 이 달로 태어난 지 44개월이 됐습니다.

<인터뷰> 로하나(알디 어머니) : “태어난 지 11 개월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담배를 끊었습니다. 이년 조금 넘게 담배를 피운 거죠.”

어른들이 무심코 건넨 담배에 맛을 들여 아예 흡연자가 돼 버린 알디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타르와 니코틴이 우리나라 담배의 8배 정도 되는 독한 담배였습니다. 알디는 당시 하루에 60개피 이상을 피웠습니다. 어머니는 흡연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 봤지만 실패했습니다.

<인터뷰> 로하나(알디 어머니) :“담배를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으면 화를 많이 냈습니다. 알디에게 담배를 안 주면 머리로 사람들을 박고 치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상처가 많이 났죠.”

알디의 흡연 중독은 더욱 심해져 부모가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알디는 마지막 수단으로 국가아동보호위원회에서 금연치료를 받게 됩니다.

<인터뷰> 사프리안(국가아동보호위원회 직원) :“(금연치료가)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왜냐 하면 하루에 담배 네 갑을 피우는 아기에게 한 개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알디는 담배를 숨기고 안 주는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저도 성냥을 숨겼는데 그 일로 인해 알디가 저를 미워했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알디와 같은 유아들의 흡연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담배를 시작하는 아이들. 아동청소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프리안씨는 어린 아기가 담배를 피우는 현실이 슬프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사프리안(국가아동보호위원회 직원) :“TV에 나오는 수많은 담배 광고, 등교 길에 보이는 담배 광고판, 담배 회사가 주최하는 다양한 스폰서 활동 등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담배 광고에 노출돼 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아동과 청소년 흡연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무분별한 담배광고입니다. 이런 광고들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멋있고 용기있고 강한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청소년들을 흡연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광고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흡연 청소년의 90%가 TV 광고를 통해 처음 담배를 접한다는 게 아동청소년위원회의 조사 결과입니다.

게다가 담배 제조회사들은 인도네시아 유수의 대기업들입니다. 청소년 흡연의 폐해가 심각함에도, 규제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외국 담배회사도 인도네시아 담배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구스 쁘리앙까(중학교 교사) :“청소년들이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는 법이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흡연 지역 혹은 금연 지역을 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는 '흡연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통적으로 흡연에 관대합니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세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까지 담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강력한 담배 규제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인도네시아에서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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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담배에 포위된 아이들
    • 입력 2011-07-17 08:54:27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금연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어른은 물론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담배를 피우는 데도 있습니다. 지금 소개해드릴 인도네시아가 그런 나란데요, 흡연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에 담배 회사들의 공격적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아이들이 담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지형욱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인도네시아의 한 대중식당.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웁니다.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한눈에 봐도 어린 아이들이지만 누구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리스키(13살,중학생) :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따라 저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바유(13살,중학생) : “와룽(인도네시아 찻집)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담배가 없으면 커피맛이 없잖아요.” 올해 17살의 에노도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담배를 피웁니다. 에노가 담배를 손에 댄 건 중학교 일 학년, 열 두 살 때입니다. <인터뷰> 에노(17살,고등학생) :“처음엔 그냥 재미로 흡연을 시작했죠. 친구들과 같이 대화하려고 피웠는데 그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끊기가 쉽지 않죠.” 인도네시아 청소년들은 담배를 사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미성년자에게 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규정도 없습니다. 올해 15살인 또하의 흡연량은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끊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또하(15살,고등학생) :“이 지역(마글랑)에서는 15살 정도 되면 (청소년들이) 거의 다 피운다고 보면 되죠.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죠.” 중고등학생의 경우 3명 중 1명이 담배를 피우거나 피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흡연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자의 절반 이상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담배 한 갑은 우리 돈 1500원 정도, 청소년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한번 중독되면 용돈을 쏟아붓게 됩니다. 또 낱개로도 살 수 있습니다. <인터뷰> 아리(17살,고등학생) :“제 친구 알키이도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습니다. 하루라도 담배를 안 피우면 입이 심심한 애연가입니다.” 요즘 인도네시아 학교는 흡연 학생들로 고민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학교 밖에서 흡연이 워낙 광범위하게 이뤄지다보니, 학교 안에서도 통제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꾸마르세(중학교 교감) : “학교 안은 금연구역을 지정해서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고 있죠. 그런데 학교 밖은 저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지요.” 인도네시아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청소년보다 나이 어린 아동들도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입니다. 지난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아기가 담배를 피우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공개됐습니다. 두 돌을 갓 넘긴 아기의 흡연 장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아기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취재진은 수마트라 섬의 한 농촌에 있는 아기의 집을 찾았습니다.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아기는 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아기로 유명해진 알디는 이 달로 태어난 지 44개월이 됐습니다. <인터뷰> 로하나(알디 어머니) : “태어난 지 11 개월 때부터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담배를 끊었습니다. 이년 조금 넘게 담배를 피운 거죠.” 어른들이 무심코 건넨 담배에 맛을 들여 아예 흡연자가 돼 버린 알디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타르와 니코틴이 우리나라 담배의 8배 정도 되는 독한 담배였습니다. 알디는 당시 하루에 60개피 이상을 피웠습니다. 어머니는 흡연을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써 봤지만 실패했습니다. <인터뷰> 로하나(알디 어머니) :“담배를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으면 화를 많이 냈습니다. 알디에게 담배를 안 주면 머리로 사람들을 박고 치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상처가 많이 났죠.” 알디의 흡연 중독은 더욱 심해져 부모가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알디는 마지막 수단으로 국가아동보호위원회에서 금연치료를 받게 됩니다. <인터뷰> 사프리안(국가아동보호위원회 직원) :“(금연치료가)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왜냐 하면 하루에 담배 네 갑을 피우는 아기에게 한 개비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알디는 담배를 숨기고 안 주는 사람을 미워했습니다. 저도 성냥을 숨겼는데 그 일로 인해 알디가 저를 미워했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알디와 같은 유아들의 흡연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담배를 시작하는 아이들. 아동청소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프리안씨는 어린 아기가 담배를 피우는 현실이 슬프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사프리안(국가아동보호위원회 직원) :“TV에 나오는 수많은 담배 광고, 등교 길에 보이는 담배 광고판, 담배 회사가 주최하는 다양한 스폰서 활동 등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담배 광고에 노출돼 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아동과 청소년 흡연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무분별한 담배광고입니다. 이런 광고들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멋있고 용기있고 강한 사람들로 묘사합니다. 청소년들을 흡연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광고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흡연 청소년의 90%가 TV 광고를 통해 처음 담배를 접한다는 게 아동청소년위원회의 조사 결과입니다. 게다가 담배 제조회사들은 인도네시아 유수의 대기업들입니다. 청소년 흡연의 폐해가 심각함에도, 규제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외국 담배회사도 인도네시아 담배시장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아구스 쁘리앙까(중학교 교사) :“청소년들이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는 법이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히 흡연 지역 혹은 금연 지역을 정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담배 피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는 '흡연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전통적으로 흡연에 관대합니다. 여기에 대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세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까지 담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돼 있습니다. 강력한 담배 규제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인도네시아에서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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