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스타파 압델 잘릴(과도국가위원회 위원장) :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카다피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요새 아브 알 아지지야에 시민군의 깃발이 걸렸습니다.
42년 독재가 무색하게 바닥에 나뒹구는 카다피 동상.
그러나 교전은 계속됩니다.
<인터뷰> 무아마르 카다피 : "트리폴리 주민과 리비아 국민들은 트리폴리에서 반역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지난 2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된 리비아 내전이 지난한 교전 속에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42년 카다피 독재의 끝.
리비아의 앞날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또 그동안 리비아에서 360만 달러의 규모의 공사를 해왔던 국내 기업과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지 정리해봤습니다.
여인의 전신을 본 뜬 커다란 황금 소파.
널찍한 거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집 안 곳곳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대형 욕조도 눈에 띕니다.
시민군이 발견한 카다피 자녀들의 호화 빌라입니다.
지난 23일, 시민군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도시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후 '카다피 찾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미로같은 비밀통로 뿐.
<인터뷰> 리비아 시민군 : "카다피는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카다피와 아들을 잡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카다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직 전쟁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42년 철권통치의 독재자가 이제는 시민군을 피해 달아난 도망자 신세가 됐습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델(국가과도위원장) : "벵가지의 사업가들이 카다피를 잡는 사람에게 200만 디나르(18억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로 악명을 쓴 카다피도 한때, 젊은 혁명 영웅이었습니다.
지난 1969년 27살의 대령 카다피는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습니다.
석유 자원을 국유화하는 등 서방 국가들과 선을 그으며 '이슬람 사회주의'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카다피는 부패한 왕정을 몰아냈다는 이유로 국민적 인기를 받았지만,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면서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해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의회도 헌법도 없는 1인 독재.
270명이 숨진 지난 1988년 미국 팬암기 폭파 사건 등 테러를 지시하고, 무장 단체를 지원해오다 서방 측으로부터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UN 총회에 참석해서도 유목민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국제회의 연설에서 장시간 독설을 퍼붓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카다피(2009년 UN총회 90분연설) : "안보리는 봉건적입니다. 영원한 권좌를 위한 봉건제도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입니다. 안보리가 아니라 테러 위원회입니다 "
내 앞날이 너무 밝아 선글래스를 써야 한다고 말할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카다피.
지난 2월,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시위대에 호통을 칠 만큼 자신만만했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25일) : "알 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줘서 애들은 약에 취해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부모들은 거리로 나간 아들들을 집으로 데려와 대화를 하시오."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시민군을 몰아부쳤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시위대가 리비아 땅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싸워서 그들을 모두 처단할 것입니다."
시위대에 대한 발포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무력 진압이 계속됐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총으로 사람들의 등 뒤를 쏴 사람들이 죽는 것도 봤습니다."
<인터뷰> 토니(리비아 탈출 그리스인/지난 2월) : "바로 제 앞에서 총 쏘는 걸 봤습니다. 거리에서 4명이 총격으로 피살되는 걸 직접 봤어요."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차량 한 대가 시위대 캠프로 오더니 차에 발포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됩니다."
그러나 UN이 리비아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녹취> 수전 라이스(유엔 주재 미국 대사/ 3월 18일) : "이 결의안은 즉각적인 휴전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완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사막 지역이 대부분인 리비아에서 전투기를 이용한 지상공격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다피 공군력에 힘이 빠졌습니다.
반면, 시민들의 지지와 서방국가의 지원을 업은 시민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카다피 정권 내부의 이탈도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파라즈(시위대) : "후회는 없습니다. 빈 손으로 부딪치더라도 진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미국, 영국, 프랑스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일명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이 감행됐습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리비아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카다피의 전쟁무기들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하는지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UN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제재를 결의하고, 나토군까지 트리폴리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23일, 철옹성같았던 카다피의 요새가 시민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인터뷰> 시위대 :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카다피의 요새에 있습니다."
<인터뷰> 벵가지 시민 : "아주아주 행복한 소식입니다. 시민군이 바브 알 아지지야에 진입했고 카다피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서방국가들은 시민군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오바마 : "리비아는 국민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은 노력에 미국은 리비아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 : "카다피 군대는 병영으로 복귀하고 카다피는 리비아를 떠나야 합니다."
내전이 마무리의 수순을 밟아가자 재건과 복구 프로젝트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UN은 그동안 동결됐던 리비아 자산 15억 달러를 해제하는 결의안을 체결해 재건을 도울 예정입니다.
주한 리비아 대사관도 과도국가위원회의 상징인 옛 리비아 왕정기로 깃발을 바꿔달았습니다.
내전을 피해 국내로 들어왔던 리비아 진출 기업들은 발걸음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호텔 거의 완공을 했잖아, 이거 우리가 들어가서 운영을 해야돼."
지난 2월, 내전이 터지기 전까지 20여 개의 국내 건설업체들이 리비아에서 11조 5천억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기운 상황에서 6개월 동안 중단됐던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현지 사정을 살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리비아 인근의 튀니지나 몰타 등으로 직원을 급파했습니다.
<녹취> 정재학(대우건설 상무/리비아 인근 몰타 체재 중) : "아직 두고온 현장이나 장비들 상태가 얼마나 손상됐는지를 모르니까 그것부터 살피려고 한다. 상황을 좀 봐야하니까 리비아에는 적어도 1,2주는 지나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트라도 서둘러 대책 상황반을 꾸렸습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중단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전후 리비아의 재건, 복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인터뷰> 윤재천(코트라 지역조사처장) : "먼저 재건과 복구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를 조사하는데 집중하면서 복구 프로젝트에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경제적인 교류 뿐 아니라 정치적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될 시기.
특히, 북한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 온 '카다피 리비아'에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서정민(한국외대 교수) :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부상할 경우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친서방,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런 정치 체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와 정치분야, 문화분야 또한 민간교류 부분에서 상당히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지난 1주일 동안 트리폴리에서만 3천 명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동안 흘린 피가 적지 않지만,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의 몰락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42년의 철권통치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리비아 시민들이 독재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민주국가를 이루기까지는 카다피 일가의 체포와 처리, 140여 개 부족들의 이해관계, 내전 단계부터 개입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정립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리비아 과도정부의 숙제들은 내전때문에 철수했다가 하나둘 복귀하는 국내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변수로 고스란히 남게됐습니다.
그리고 리비아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시켜 나갈지는 앞으로 우리 외교력이 보여줄 대목입니다.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요새 아브 알 아지지야에 시민군의 깃발이 걸렸습니다.
42년 독재가 무색하게 바닥에 나뒹구는 카다피 동상.
그러나 교전은 계속됩니다.
<인터뷰> 무아마르 카다피 : "트리폴리 주민과 리비아 국민들은 트리폴리에서 반역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지난 2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된 리비아 내전이 지난한 교전 속에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42년 카다피 독재의 끝.
리비아의 앞날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또 그동안 리비아에서 360만 달러의 규모의 공사를 해왔던 국내 기업과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지 정리해봤습니다.
여인의 전신을 본 뜬 커다란 황금 소파.
널찍한 거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집 안 곳곳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대형 욕조도 눈에 띕니다.
시민군이 발견한 카다피 자녀들의 호화 빌라입니다.
지난 23일, 시민군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도시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후 '카다피 찾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미로같은 비밀통로 뿐.
<인터뷰> 리비아 시민군 : "카다피는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카다피와 아들을 잡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카다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직 전쟁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42년 철권통치의 독재자가 이제는 시민군을 피해 달아난 도망자 신세가 됐습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델(국가과도위원장) : "벵가지의 사업가들이 카다피를 잡는 사람에게 200만 디나르(18억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로 악명을 쓴 카다피도 한때, 젊은 혁명 영웅이었습니다.
지난 1969년 27살의 대령 카다피는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습니다.
석유 자원을 국유화하는 등 서방 국가들과 선을 그으며 '이슬람 사회주의'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카다피는 부패한 왕정을 몰아냈다는 이유로 국민적 인기를 받았지만,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면서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해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의회도 헌법도 없는 1인 독재.
270명이 숨진 지난 1988년 미국 팬암기 폭파 사건 등 테러를 지시하고, 무장 단체를 지원해오다 서방 측으로부터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UN 총회에 참석해서도 유목민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국제회의 연설에서 장시간 독설을 퍼붓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카다피(2009년 UN총회 90분연설) : "안보리는 봉건적입니다. 영원한 권좌를 위한 봉건제도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입니다. 안보리가 아니라 테러 위원회입니다 "
내 앞날이 너무 밝아 선글래스를 써야 한다고 말할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카다피.
지난 2월,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시위대에 호통을 칠 만큼 자신만만했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25일) : "알 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줘서 애들은 약에 취해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부모들은 거리로 나간 아들들을 집으로 데려와 대화를 하시오."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시민군을 몰아부쳤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시위대가 리비아 땅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싸워서 그들을 모두 처단할 것입니다."
시위대에 대한 발포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무력 진압이 계속됐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총으로 사람들의 등 뒤를 쏴 사람들이 죽는 것도 봤습니다."
<인터뷰> 토니(리비아 탈출 그리스인/지난 2월) : "바로 제 앞에서 총 쏘는 걸 봤습니다. 거리에서 4명이 총격으로 피살되는 걸 직접 봤어요."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차량 한 대가 시위대 캠프로 오더니 차에 발포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됩니다."
그러나 UN이 리비아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녹취> 수전 라이스(유엔 주재 미국 대사/ 3월 18일) : "이 결의안은 즉각적인 휴전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완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사막 지역이 대부분인 리비아에서 전투기를 이용한 지상공격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다피 공군력에 힘이 빠졌습니다.
반면, 시민들의 지지와 서방국가의 지원을 업은 시민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카다피 정권 내부의 이탈도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파라즈(시위대) : "후회는 없습니다. 빈 손으로 부딪치더라도 진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미국, 영국, 프랑스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일명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이 감행됐습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리비아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카다피의 전쟁무기들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하는지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UN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제재를 결의하고, 나토군까지 트리폴리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23일, 철옹성같았던 카다피의 요새가 시민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인터뷰> 시위대 :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카다피의 요새에 있습니다."
<인터뷰> 벵가지 시민 : "아주아주 행복한 소식입니다. 시민군이 바브 알 아지지야에 진입했고 카다피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서방국가들은 시민군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오바마 : "리비아는 국민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은 노력에 미국은 리비아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 : "카다피 군대는 병영으로 복귀하고 카다피는 리비아를 떠나야 합니다."
내전이 마무리의 수순을 밟아가자 재건과 복구 프로젝트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UN은 그동안 동결됐던 리비아 자산 15억 달러를 해제하는 결의안을 체결해 재건을 도울 예정입니다.
주한 리비아 대사관도 과도국가위원회의 상징인 옛 리비아 왕정기로 깃발을 바꿔달았습니다.
내전을 피해 국내로 들어왔던 리비아 진출 기업들은 발걸음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호텔 거의 완공을 했잖아, 이거 우리가 들어가서 운영을 해야돼."
지난 2월, 내전이 터지기 전까지 20여 개의 국내 건설업체들이 리비아에서 11조 5천억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기운 상황에서 6개월 동안 중단됐던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현지 사정을 살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리비아 인근의 튀니지나 몰타 등으로 직원을 급파했습니다.
<녹취> 정재학(대우건설 상무/리비아 인근 몰타 체재 중) : "아직 두고온 현장이나 장비들 상태가 얼마나 손상됐는지를 모르니까 그것부터 살피려고 한다. 상황을 좀 봐야하니까 리비아에는 적어도 1,2주는 지나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트라도 서둘러 대책 상황반을 꾸렸습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중단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전후 리비아의 재건, 복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인터뷰> 윤재천(코트라 지역조사처장) : "먼저 재건과 복구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를 조사하는데 집중하면서 복구 프로젝트에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경제적인 교류 뿐 아니라 정치적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될 시기.
특히, 북한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 온 '카다피 리비아'에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서정민(한국외대 교수) :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부상할 경우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친서방,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런 정치 체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와 정치분야, 문화분야 또한 민간교류 부분에서 상당히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지난 1주일 동안 트리폴리에서만 3천 명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동안 흘린 피가 적지 않지만,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의 몰락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42년의 철권통치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리비아 시민들이 독재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민주국가를 이루기까지는 카다피 일가의 체포와 처리, 140여 개 부족들의 이해관계, 내전 단계부터 개입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정립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리비아 과도정부의 숙제들은 내전때문에 철수했다가 하나둘 복귀하는 국내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변수로 고스란히 남게됐습니다.
그리고 리비아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시켜 나갈지는 앞으로 우리 외교력이 보여줄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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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비아 앞날은?
-
- 입력 2011-08-29 08:43:40
<인터뷰> 무스타파 압델 잘릴(과도국가위원회 위원장) :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카다피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트리폴리에 있는 카다피의 요새 아브 알 아지지야에 시민군의 깃발이 걸렸습니다.
42년 독재가 무색하게 바닥에 나뒹구는 카다피 동상.
그러나 교전은 계속됩니다.
<인터뷰> 무아마르 카다피 : "트리폴리 주민과 리비아 국민들은 트리폴리에서 반역자들을 물리쳐야 한다."
지난 2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된 리비아 내전이 지난한 교전 속에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시민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42년 카다피 독재의 끝.
리비아의 앞날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또 그동안 리비아에서 360만 달러의 규모의 공사를 해왔던 국내 기업과의 관계는 어떻게 바뀔지 정리해봤습니다.
여인의 전신을 본 뜬 커다란 황금 소파.
널찍한 거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집 안 곳곳이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대형 욕조도 눈에 띕니다.
시민군이 발견한 카다피 자녀들의 호화 빌라입니다.
지난 23일, 시민군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도시 트리폴리를 장악한 이후 '카다피 찾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아낸 것은 미로같은 비밀통로 뿐.
<인터뷰> 리비아 시민군 : "카다피는 도망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카다피와 아들을 잡기 위해 뭐든 할 겁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카다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직 전쟁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42년 철권통치의 독재자가 이제는 시민군을 피해 달아난 도망자 신세가 됐습니다.
<인터뷰> 무스타파 압델(국가과도위원장) : "벵가지의 사업가들이 카다피를 잡는 사람에게 200만 디나르(18억 원)을 주기로 했습니다."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로 악명을 쓴 카다피도 한때, 젊은 혁명 영웅이었습니다.
지난 1969년 27살의 대령 카다피는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습니다.
석유 자원을 국유화하는 등 서방 국가들과 선을 그으며 '이슬람 사회주의'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카다피는 부패한 왕정을 몰아냈다는 이유로 국민적 인기를 받았지만,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면서 자신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해 본격적인 독재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의회도 헌법도 없는 1인 독재.
270명이 숨진 지난 1988년 미국 팬암기 폭파 사건 등 테러를 지시하고, 무장 단체를 지원해오다 서방 측으로부터 '중동의 미친 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UN 총회에 참석해서도 유목민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국제회의 연설에서 장시간 독설을 퍼붓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카다피(2009년 UN총회 90분연설) : "안보리는 봉건적입니다. 영원한 권좌를 위한 봉건제도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입니다. 안보리가 아니라 테러 위원회입니다 "
내 앞날이 너무 밝아 선글래스를 써야 한다고 말할만큼 자신감이 넘쳤던 카다피.
지난 2월,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을 때도 시위대에 호통을 칠 만큼 자신만만했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25일) : "알 카에다가 젊은이들에게 마약을 줘서 애들은 약에 취해 살인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부모들은 거리로 나간 아들들을 집으로 데려와 대화를 하시오."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시민군을 몰아부쳤습니다.
<녹취> 카다피(지난 2월) :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시위대가 리비아 땅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싸워서 그들을 모두 처단할 것입니다."
시위대에 대한 발포와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무력 진압이 계속됐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총으로 사람들의 등 뒤를 쏴 사람들이 죽는 것도 봤습니다."
<인터뷰> 토니(리비아 탈출 그리스인/지난 2월) : "바로 제 앞에서 총 쏘는 걸 봤습니다. 거리에서 4명이 총격으로 피살되는 걸 직접 봤어요."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지난 2월) "차량 한 대가 시위대 캠프로 오더니 차에 발포했습니다. 사람들이 걱정됩니다."
그러나 UN이 리비아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녹취> 수전 라이스(유엔 주재 미국 대사/ 3월 18일) : "이 결의안은 즉각적인 휴전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완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사막 지역이 대부분인 리비아에서 전투기를 이용한 지상공격이 불가능해지면서 카다피 공군력에 힘이 빠졌습니다.
반면, 시민들의 지지와 서방국가의 지원을 업은 시민군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고, 카다피 정권 내부의 이탈도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파라즈(시위대) : "후회는 없습니다. 빈 손으로 부딪치더라도 진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미국, 영국, 프랑스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일명 '오디세이의 새벽' 작전이 감행됐습니다.
<인터뷰> 데이비드 캐머런(영국 총리) : "리비아의 민간인을 보호하고 카다피의 전쟁무기들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하는지 우리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UN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카다피 정권에 대한 제재를 결의하고, 나토군까지 트리폴리에 폭격을 퍼부으면서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습니다.
마침내 지난 23일, 철옹성같았던 카다피의 요새가 시민군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인터뷰> 시위대 :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많은 이들이 희생했습니다. 이 순간 우리는 카다피의 요새에 있습니다."
<인터뷰> 벵가지 시민 : "아주아주 행복한 소식입니다. 시민군이 바브 알 아지지야에 진입했고 카다피가 도망쳤다고 합니다."
서방국가들은 시민군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오바마 : "리비아는 국민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같은 노력에 미국은 리비아의 친구이자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인터뷰> 사르코지(프랑스 대통령) : "카다피 군대는 병영으로 복귀하고 카다피는 리비아를 떠나야 합니다."
내전이 마무리의 수순을 밟아가자 재건과 복구 프로젝트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UN은 그동안 동결됐던 리비아 자산 15억 달러를 해제하는 결의안을 체결해 재건을 도울 예정입니다.
주한 리비아 대사관도 과도국가위원회의 상징인 옛 리비아 왕정기로 깃발을 바꿔달았습니다.
내전을 피해 국내로 들어왔던 리비아 진출 기업들은 발걸음이 다시 바빠졌습니다.
<녹취> "트리폴리 호텔 거의 완공을 했잖아, 이거 우리가 들어가서 운영을 해야돼."
지난 2월, 내전이 터지기 전까지 20여 개의 국내 건설업체들이 리비아에서 11조 5천억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내전이 시민군의 승리로 기운 상황에서 6개월 동안 중단됐던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현지 사정을 살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일부 업체들은 리비아 인근의 튀니지나 몰타 등으로 직원을 급파했습니다.
<녹취> 정재학(대우건설 상무/리비아 인근 몰타 체재 중) : "아직 두고온 현장이나 장비들 상태가 얼마나 손상됐는지를 모르니까 그것부터 살피려고 한다. 상황을 좀 봐야하니까 리비아에는 적어도 1,2주는 지나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코트라도 서둘러 대책 상황반을 꾸렸습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중단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전후 리비아의 재건, 복구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
<인터뷰> 윤재천(코트라 지역조사처장) : "먼저 재건과 복구가 예상되는 프로젝트를 조사하는데 집중하면서 복구 프로젝트에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입니다."
경제적인 교류 뿐 아니라 정치적 관계도 다시 정립해야 될 시기.
특히, 북한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해 온 '카다피 리비아'에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터뷰> 서정민(한국외대 교수) :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부상할 경우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친서방,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그런 정치 체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에 향후 우리나라와 정치분야, 문화분야 또한 민간교류 부분에서 상당히 협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리비아에서는 지난 1주일 동안 트리폴리에서만 3천 명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그동안 흘린 피가 적지 않지만,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의 몰락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트리폴리 시민 : "42년의 철권통치가 끝났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리비아 시민들이 독재를 청산하고 제대로 된 민주국가를 이루기까지는 카다피 일가의 체포와 처리, 140여 개 부족들의 이해관계, 내전 단계부터 개입한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정립 등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리비아 과도정부의 숙제들은 내전때문에 철수했다가 하나둘 복귀하는 국내 기업들이 고려해야 할 변수로 고스란히 남게됐습니다.
그리고 리비아 새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발전시켜 나갈지는 앞으로 우리 외교력이 보여줄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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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영 기자 magnol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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