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아랍권에서 지금 민주화 시위도 격렬하고 탄압도 무자비한 곳이 바로 시리아입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고국을 탈출해 이웃나라로 넘어가고 있다구요?
네.. 주로 레바논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데요..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난민이 된 이들에겐 기약 없고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영석 특파원이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북쪽의 한 마을입니다. 트럭 한 대가 부지런히 어딘가를 향해 달려갑니다. 트럭이 도착한 곳은 한 가정집. 이곳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 가족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기 위해섭니다.
오늘 전달된 구호품은 국제 사회가 마련한 기저귀와 분유 등 생필품입니다. 시리아 홈스에 살던 이 난민 가족은 두 달 전,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어린 자녀가 셋이나 됐지만 치안 상황이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군인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아무 데나 총을 쐈습니다.큰 도로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안까지 총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평소 알고 지내던 남편 친구 집에 머물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정기적으로 음식과 옷 등 생필품도 지원받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레바논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등록해 줬고, 책과 옷도 줬습니다."
그나마 이 가족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유엔이 운영하는 난민 수용 시설. 학교 건물로 쓰이던 이곳에 임시로 난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난민 20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올해 12살인 아프라즈 양도 강당 건물 한 구석에서 아빠, 동생과 머물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7개월째입니다.
<인터뷰>아프라즈(12살/시리아 난민) :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선 참 좋았는데 여기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집과 할아버지 집을 보고 싶어요.”
전체 난민들이 함께 쓰는 공동 부엌. 유엔에서 마련해 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한 대씩이 전부입니다.
난민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들게 국경을 넘었지만 이곳 레바논에서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민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움므 압두 씨도 아이 셋과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살던 집이 군인들에 약탈당하면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국경 부근에서 시리아 군에 붙잡혀 끌려갔고, 자신과 아이들만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인터뷰>움므 압두(시리아 난민)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잘 있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곳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지만 지금은 겨울 추위가 가장 걱정입니다. 아이만 씨 가족은 11일 전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남부 다라에서 저격수가 배치된 국경을 넘기까지
꼬박 나흘을 걸었습니다. 만삭이던 아내는 사흘 전 이곳에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아내가 힘들어 하면 업고 걸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삭인 아내까지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 것은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모진 고초를 겪었고, 보복 차원에서 다섯살 배기 어린 아들까지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다라에서만 어린이 135명이 숨졌습니다. 때때로 아이들을 광장에 몰아넣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내 아들도 그랬습니다."
지난 3월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동 이웃 국가들까지 가세해 탄압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학살에 가까운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숨진 민간인이 4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경 부근의 한 레바논 종합 병원. 최근 젊은 총상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시위 도중 등과 복부에 3발의 총상을 입고 실려온 시리아 청년입니다.
<인터뷰>아부 마흐무드(시리아 환자) :"시위대가 돌을 던지자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총알 3발을 맞았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인 아부 빌릴 씨도 열흘 전 이곳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것도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저격수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의식은 깨어 났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시리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레바논에서 치료받은 환자만 70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무함마드 맘룩(레바논 구호위원회) : "지난주에는 10여 명의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주 국경을 넘어 환자가 이송되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조그만 하천이 두 나라의 경계를 나누고 있습니다. 30여 미터 다리 건너편엔 시리아 군 초소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끔씩 국경 너머에서 들리는 총성은 위태로운 시리아의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곳이 바로 시리아의 국경 마을입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이곳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난민들의 탈출이 계속되자 시리아군은 국경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평소 주민들이 오고 가던 다리에 흙더미가 쌓여 있습니다. 자국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시리아 군이 다리를 폐쇄한 것입니다. 국경 주요 탈출로를 따라 지뢰도 설치됐습니다. 얼마 전 시리아 군이 국경에 지뢰를 설치하는 모습이 외신 화면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제 2의 도시 트리폴리. 금요일 합동 예배가 끝난 뒤 한 모스크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입니다. 이번 시위는 레바논의 한 이슬람 정파가 주도하고,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동참했습니다.
<인터뷰>알라아 알 가민(시리아 인) : "이렇게 지지를 해준 트리폴리 형제들에게 감사합니다. 트리폴리 순니파 형제들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여론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달 레바논에서 열린 한 TV 토론회.
시리아 찬반 정파에서 나온 두 정치인이 토론을 벌이다 의자까지 집어들며 몸싸움을 벌입니다. 시리아 문제를 둘러싼 레바논의 극심한 내부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시아파 헤즈볼라가 장악한 현 레바논 정부는 지난달 아랍연맹의 대 시리아 제재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시리아 탈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도 소극적입니다.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은 유엔에 등록된 사람만 약 3천5백 명, 비공식 난민을 합하면 5천 명에 이릅니다.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지만, 이곳에서도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쯤 평화롭고 자유로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난민들의 기약 없고 고단한 타향살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랍권에서 지금 민주화 시위도 격렬하고 탄압도 무자비한 곳이 바로 시리아입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고국을 탈출해 이웃나라로 넘어가고 있다구요?
네.. 주로 레바논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데요..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난민이 된 이들에겐 기약 없고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영석 특파원이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북쪽의 한 마을입니다. 트럭 한 대가 부지런히 어딘가를 향해 달려갑니다. 트럭이 도착한 곳은 한 가정집. 이곳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 가족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기 위해섭니다.
오늘 전달된 구호품은 국제 사회가 마련한 기저귀와 분유 등 생필품입니다. 시리아 홈스에 살던 이 난민 가족은 두 달 전,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어린 자녀가 셋이나 됐지만 치안 상황이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군인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아무 데나 총을 쐈습니다.큰 도로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안까지 총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평소 알고 지내던 남편 친구 집에 머물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정기적으로 음식과 옷 등 생필품도 지원받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레바논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등록해 줬고, 책과 옷도 줬습니다."
그나마 이 가족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유엔이 운영하는 난민 수용 시설. 학교 건물로 쓰이던 이곳에 임시로 난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난민 20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올해 12살인 아프라즈 양도 강당 건물 한 구석에서 아빠, 동생과 머물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7개월째입니다.
<인터뷰>아프라즈(12살/시리아 난민) :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선 참 좋았는데 여기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집과 할아버지 집을 보고 싶어요.”
전체 난민들이 함께 쓰는 공동 부엌. 유엔에서 마련해 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한 대씩이 전부입니다.
난민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들게 국경을 넘었지만 이곳 레바논에서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민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움므 압두 씨도 아이 셋과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살던 집이 군인들에 약탈당하면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국경 부근에서 시리아 군에 붙잡혀 끌려갔고, 자신과 아이들만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인터뷰>움므 압두(시리아 난민)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잘 있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곳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지만 지금은 겨울 추위가 가장 걱정입니다. 아이만 씨 가족은 11일 전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남부 다라에서 저격수가 배치된 국경을 넘기까지
꼬박 나흘을 걸었습니다. 만삭이던 아내는 사흘 전 이곳에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아내가 힘들어 하면 업고 걸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삭인 아내까지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 것은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모진 고초를 겪었고, 보복 차원에서 다섯살 배기 어린 아들까지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다라에서만 어린이 135명이 숨졌습니다. 때때로 아이들을 광장에 몰아넣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내 아들도 그랬습니다."
지난 3월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동 이웃 국가들까지 가세해 탄압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학살에 가까운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숨진 민간인이 4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경 부근의 한 레바논 종합 병원. 최근 젊은 총상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시위 도중 등과 복부에 3발의 총상을 입고 실려온 시리아 청년입니다.
<인터뷰>아부 마흐무드(시리아 환자) :"시위대가 돌을 던지자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총알 3발을 맞았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인 아부 빌릴 씨도 열흘 전 이곳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것도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저격수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의식은 깨어 났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시리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레바논에서 치료받은 환자만 70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무함마드 맘룩(레바논 구호위원회) : "지난주에는 10여 명의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주 국경을 넘어 환자가 이송되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조그만 하천이 두 나라의 경계를 나누고 있습니다. 30여 미터 다리 건너편엔 시리아 군 초소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끔씩 국경 너머에서 들리는 총성은 위태로운 시리아의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곳이 바로 시리아의 국경 마을입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이곳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난민들의 탈출이 계속되자 시리아군은 국경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평소 주민들이 오고 가던 다리에 흙더미가 쌓여 있습니다. 자국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시리아 군이 다리를 폐쇄한 것입니다. 국경 주요 탈출로를 따라 지뢰도 설치됐습니다. 얼마 전 시리아 군이 국경에 지뢰를 설치하는 모습이 외신 화면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제 2의 도시 트리폴리. 금요일 합동 예배가 끝난 뒤 한 모스크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입니다. 이번 시위는 레바논의 한 이슬람 정파가 주도하고,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동참했습니다.
<인터뷰>알라아 알 가민(시리아 인) : "이렇게 지지를 해준 트리폴리 형제들에게 감사합니다. 트리폴리 순니파 형제들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여론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달 레바논에서 열린 한 TV 토론회.
시리아 찬반 정파에서 나온 두 정치인이 토론을 벌이다 의자까지 집어들며 몸싸움을 벌입니다. 시리아 문제를 둘러싼 레바논의 극심한 내부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시아파 헤즈볼라가 장악한 현 레바논 정부는 지난달 아랍연맹의 대 시리아 제재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시리아 탈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도 소극적입니다.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은 유엔에 등록된 사람만 약 3천5백 명, 비공식 난민을 합하면 5천 명에 이릅니다.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지만, 이곳에서도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쯤 평화롭고 자유로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난민들의 기약 없고 고단한 타향살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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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리포트] 시리아 난민의 타향살이
-
- 입력 2011-12-11 09:19:41
<앵커 멘트>
아랍권에서 지금 민주화 시위도 격렬하고 탄압도 무자비한 곳이 바로 시리아입니다.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고국을 탈출해 이웃나라로 넘어가고 있다구요?
네.. 주로 레바논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는데요..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난민이 된 이들에겐 기약 없고 고단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영석 특파원이 레바논 국경 지역에서 시리아 난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 북쪽의 한 마을입니다. 트럭 한 대가 부지런히 어딘가를 향해 달려갑니다. 트럭이 도착한 곳은 한 가정집. 이곳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 가족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기 위해섭니다.
오늘 전달된 구호품은 국제 사회가 마련한 기저귀와 분유 등 생필품입니다. 시리아 홈스에 살던 이 난민 가족은 두 달 전,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었습니다. 어린 자녀가 셋이나 됐지만 치안 상황이 나빠지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군인들이 시위 진압을 위해 아무 데나 총을 쐈습니다.큰 도로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안까지 총알 세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평소 알고 지내던 남편 친구 집에 머물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충분하진 않지만 정기적으로 음식과 옷 등 생필품도 지원받고 있습니다.
<인터뷰>움므 샤디(시리아 난민) : "레바논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 학교도 등록해 줬고, 책과 옷도 줬습니다."
그나마 이 가족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유엔이 운영하는 난민 수용 시설. 학교 건물로 쓰이던 이곳에 임시로 난민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난민 20여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올해 12살인 아프라즈 양도 강당 건물 한 구석에서 아빠, 동생과 머물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온 지 벌써 7개월째입니다.
<인터뷰>아프라즈(12살/시리아 난민) :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선 참 좋았는데 여기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집과 할아버지 집을 보고 싶어요.”
전체 난민들이 함께 쓰는 공동 부엌. 유엔에서 마련해 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한 대씩이 전부입니다.
난민들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힘들게 국경을 넘었지만 이곳 레바논에서의 삶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민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움므 압두 씨도 아이 셋과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살던 집이 군인들에 약탈당하면서
탈출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국경 부근에서 시리아 군에 붙잡혀 끌려갔고, 자신과 아이들만 간신히 빠져 나왔습니다.
<인터뷰>움므 압두(시리아 난민)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잘 있는지 어떤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곳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 가고 있지만 지금은 겨울 추위가 가장 걱정입니다. 아이만 씨 가족은 11일 전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남부 다라에서 저격수가 배치된 국경을 넘기까지
꼬박 나흘을 걸었습니다. 만삭이던 아내는 사흘 전 이곳에서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 "중간에 멈출 수가 없어서 아내가 힘들어 하면 업고 걸었습니다. 신의 은총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만삭인 아내까지 데리고 탈출을 감행한 것은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모진 고초를 겪었고, 보복 차원에서 다섯살 배기 어린 아들까지 무참히 살해됐습니다.
<인터뷰>아이만(시리아 난민) :"다라에서만 어린이 135명이 숨졌습니다. 때때로 아이들을 광장에 몰아넣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내 아들도 그랬습니다."
지난 3월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동 이웃 국가들까지 가세해 탄압을 중단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시리아 정부는 요지부동입니다. 학살에 가까운 강경 진압이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숨진 민간인이 4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경 부근의 한 레바논 종합 병원. 최근 젊은 총상 환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몰려오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시위 도중 등과 복부에 3발의 총상을 입고 실려온 시리아 청년입니다.
<인터뷰>아부 마흐무드(시리아 환자) :"시위대가 돌을 던지자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총알 3발을 맞았습니다."
또 다른 시리아 인 아부 빌릴 씨도 열흘 전 이곳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것도 아닌데 거리를 지나다 저격수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습니다. 큰 수술을 받고 의식은 깨어 났지만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시리아 사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레바논에서 치료받은 환자만 70여 명에 이릅니다.
<인터뷰>무함마드 맘룩(레바논 구호위원회) : "지난주에는 10여 명의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매주 국경을 넘어 환자가 이송되고 있습니다."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조그만 하천이 두 나라의 경계를 나누고 있습니다. 30여 미터 다리 건너편엔 시리아 군 초소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끔씩 국경 너머에서 들리는 총성은 위태로운 시리아의 현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 뒤로 보이는 곳이 바로 시리아의 국경 마을입니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이곳에선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난민들의 탈출이 계속되자 시리아군은 국경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하고 있습니다.
평소 주민들이 오고 가던 다리에 흙더미가 쌓여 있습니다. 자국민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시리아 군이 다리를 폐쇄한 것입니다. 국경 주요 탈출로를 따라 지뢰도 설치됐습니다. 얼마 전 시리아 군이 국경에 지뢰를 설치하는 모습이 외신 화면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제 2의 도시 트리폴리. 금요일 합동 예배가 끝난 뒤 한 모스크에서 시위가 열렸습니다.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고,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입니다. 이번 시위는 레바논의 한 이슬람 정파가 주도하고, 시리아 출신 난민들이 동참했습니다.
<인터뷰>알라아 알 가민(시리아 인) : "이렇게 지지를 해준 트리폴리 형제들에게 감사합니다. 트리폴리 순니파 형제들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여론이 시리아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달 레바논에서 열린 한 TV 토론회.
시리아 찬반 정파에서 나온 두 정치인이 토론을 벌이다 의자까지 집어들며 몸싸움을 벌입니다. 시리아 문제를 둘러싼 레바논의 극심한 내부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시아파 헤즈볼라가 장악한 현 레바논 정부는 지난달 아랍연맹의 대 시리아 제재안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레바논 정부는 이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시리아 탈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도 소극적입니다.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은 유엔에 등록된 사람만 약 3천5백 명, 비공식 난민을 합하면 5천 명에 이릅니다. 살기 위해 고국을 떠났지만, 이곳에서도 생존을 위한 또 다른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쯤 평화롭고 자유로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난민들의 기약 없고 고단한 타향살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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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기자 zeroston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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