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월 18일 토요일, 남북의 창 이현줍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북한을 떠나 우리나라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이 제 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 3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정착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난민' 으로 인정받는 대신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정소라 리포터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주영 북한대사관에 조기가 게양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북한 대사관이 추모 분위기에 젖었던 그때, 난데없이 축하 꽃다발을 들고 대사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아, 됐습니다.) 잠시만요. (일없습네다.)"
북한 대사관의 신고로 영국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이들은 모두 영국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입니다.
<인터뷰> 영국 거주 탈북자 : "북한 사회가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독재사회를 종식시키고."
현재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대략 500여 명선, 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 정착에 실패한 뒤 영국으로 온 이른바 ‘탈남 탈북자’들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남한에 있다가 오신 분들도 있고, 남한을 거치지 않고 오신 분들도 있고. 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네가 남한 거쳐서 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통계로 잡긴 좀 어려워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남한 내 탈북자 수가 2만 3천여 명을 넘어섰습니다.
탈북자들의 입국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남한 사회 정착에 실패한 일부 탈북자들은 또 다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제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찾은 남한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무엇일까요?
지난 2008년 북한을 탈출한 김순철 씨.
김씨는 최근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알게 된 탈북자 동료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그 음력설 아침이었어요. 음력설 아침에 전화가 와서 어디냐 하니까 공항이래요. 왜 공항이냐 하니까 자기 이민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 하더라고. 마음이 참 짠하더라구요."
한국을 떠나 제 3국행을 선택한 김씨의 지인은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 몸도 성치 않은 상황, 한국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나이도 50대 중반이고 하니까. 일을 할 수가 없대요. 그렇다고 사회복지 혜택을 받자면 연령이 아직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연금이 있기를 하나, 자기가 저축해놓은 그것도 없지 하니까 하루하루 사는 게 참 힘들다."
결국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자 한국보다 더 복지 제도가 좋다는 유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역시 50대에 접어든 김씨도 한 때 탈남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저도 50대 중반으로 가는 사람인데 (제 3국행을 고민한 적이)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역시 생각지 않게 그럴 기회가 있었죠. 근데 내 생각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인생이 유랑, 유랑민 인생 같은 그런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탈북자들의 제3국행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917명의 탈북자가 난민 신분으로 영국 등 제 3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한국에 정착했다가 제3국행을 선택한 탈북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탈북자들은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자칫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민 신분의 탈북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탈북자 17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영국에 체류하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이후 영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탈북자수가 급격히 늘어나 2010년 말에는 580명에 이르렀고, 이에 부담을 느낀 영국 정부는 최근 난민인정 심사를 강화했습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2009년도, 2010년도까지는 좀 들어왔는데 2011년도하고 2012년도에는 현저하게 많이 줄어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서 난민 비자 발급이 잘 안되고 있거든요."
<녹취> "절대 북한에서 왔다는 말 하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겠다 그래. (네) 너 살아남아야 될 거 아냐, 그치?"
<녹취> "아이고 안된다니까요. 쟤 북한에서 왔죠? (그럼 어떡해. 쟤들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냐.)"
<녹취> "이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것저것 가려가지고 하면 언제 돈을 벌어?)"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탈남’의 가장 큰 이유는 남한 사회에서 느낀 차별과 정체성 혼란, 3등 국민이라는 패배의식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조선인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북한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똑같은 일, 똑같은 설거지를 하는데 남한이냐 북한이냐의 차이 때문에 월급의 수준도 달라지고. 북한에서 왔다는 게 창피하니까 고향이 강원도라든가 부산이라든가 이런 쪽으로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또 남한 사람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과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수준도 탈남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세금 내고 또 가끔 고향에서 전화 오면 돈도 좀 보내줘야 되고 또 대한민국 사회에 와서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누려보고도 싶거든요. 우리가 여기 와서 생계비를 많이 타야, 많이 벌어야 200만 원 번다고 해도 실지 세금내고 하면 몇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노후가 어떻게 그런 고민도 있고 하니까."
부모세대가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자녀에게 영어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 떠난다는 탈북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7개월 전, 탈북자 김영희 씨는 피자반죽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취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김영희(2008년 탈북) : "어쨌든 일은 시작해야 되겠고. 아는 사람은 없고 하잖아요. 내 적성에 맞겠다 생각하고 왔어요. 그저 들뜬 기분으로 출근하고 시작하고 처음에는 힘들었다가 그래도 차츰 사람들하고 익숙해지면서 좋은 생활 하게 됐어요."
김씨의 취업을 도운 것은 탈북자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탈북자 채용박람회였습니다.
<인터뷰> 홍성민(진우식품 대표) : "새터민들은 다 그렇겠지만 신념이 또 강합니다. 회사에 와서 뭐든지 찾아서 일을 하려고 하고 일의 흐름을 빨리 이해하시고 같은 민족이라 말이 통하는 것도 괜찮고 그래서 굉장히 저희한테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채용박람회를 통해 취업문을 두드린 탈북자는 3900여명.
이 가운데 242명의 탈북자가 중소기업 101곳에 채용됐습니다.
취업성공률은 6% 수준, 아직도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실제로 탈북자들의 실업률은 12.1%로 일반 국민보다 3배나 높습니다.
또 취업한 탈북자 가운데 47%는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고용의 불안정성도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를 통틀어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아현 씨.
김씨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째, 경기도내 탈북자의 정착과 자립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아현(탈북자 출신 1호 공무원) : "서로 문화차이가 있어서 대화가 이제 소통이잘 안되는데 근데 저희랑 하면
남한사회하고도 소통이 되고, 북한분들하고도 소통이 되고 하니까."
현재 김씨와 같은 탈북자 출신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29명.
탈북자들의 정착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차원의 지원, 또 긍정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구(경기도 남북협력담당관실 사무관) :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북한이탈공무원들이 제일 큰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안내하는데 제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례로 남아서 자신 있고 정말 내가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잘 적응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긍지를 심어주는 기회를 드린 것입니다."
탈북자에게 입국과 동시에 국적을 부여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의 삶이 아니라 제3국의 난민으로의 삶을 선택한 탈북자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정책만큼 편견 대신 따뜻한 체온을 담아 이들을 진정한 한민족,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북한을 떠나 우리나라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이 제 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 3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정착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난민' 으로 인정받는 대신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정소라 리포터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주영 북한대사관에 조기가 게양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북한 대사관이 추모 분위기에 젖었던 그때, 난데없이 축하 꽃다발을 들고 대사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아, 됐습니다.) 잠시만요. (일없습네다.)"
북한 대사관의 신고로 영국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이들은 모두 영국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입니다.
<인터뷰> 영국 거주 탈북자 : "북한 사회가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독재사회를 종식시키고."
현재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대략 500여 명선, 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 정착에 실패한 뒤 영국으로 온 이른바 ‘탈남 탈북자’들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남한에 있다가 오신 분들도 있고, 남한을 거치지 않고 오신 분들도 있고. 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네가 남한 거쳐서 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통계로 잡긴 좀 어려워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남한 내 탈북자 수가 2만 3천여 명을 넘어섰습니다.
탈북자들의 입국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남한 사회 정착에 실패한 일부 탈북자들은 또 다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제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찾은 남한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무엇일까요?
지난 2008년 북한을 탈출한 김순철 씨.
김씨는 최근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알게 된 탈북자 동료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그 음력설 아침이었어요. 음력설 아침에 전화가 와서 어디냐 하니까 공항이래요. 왜 공항이냐 하니까 자기 이민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 하더라고. 마음이 참 짠하더라구요."
한국을 떠나 제 3국행을 선택한 김씨의 지인은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 몸도 성치 않은 상황, 한국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나이도 50대 중반이고 하니까. 일을 할 수가 없대요. 그렇다고 사회복지 혜택을 받자면 연령이 아직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연금이 있기를 하나, 자기가 저축해놓은 그것도 없지 하니까 하루하루 사는 게 참 힘들다."
결국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자 한국보다 더 복지 제도가 좋다는 유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역시 50대에 접어든 김씨도 한 때 탈남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저도 50대 중반으로 가는 사람인데 (제 3국행을 고민한 적이)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역시 생각지 않게 그럴 기회가 있었죠. 근데 내 생각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인생이 유랑, 유랑민 인생 같은 그런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탈북자들의 제3국행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917명의 탈북자가 난민 신분으로 영국 등 제 3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한국에 정착했다가 제3국행을 선택한 탈북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탈북자들은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자칫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민 신분의 탈북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탈북자 17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영국에 체류하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이후 영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탈북자수가 급격히 늘어나 2010년 말에는 580명에 이르렀고, 이에 부담을 느낀 영국 정부는 최근 난민인정 심사를 강화했습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2009년도, 2010년도까지는 좀 들어왔는데 2011년도하고 2012년도에는 현저하게 많이 줄어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서 난민 비자 발급이 잘 안되고 있거든요."
<녹취> "절대 북한에서 왔다는 말 하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겠다 그래. (네) 너 살아남아야 될 거 아냐, 그치?"
<녹취> "아이고 안된다니까요. 쟤 북한에서 왔죠? (그럼 어떡해. 쟤들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냐.)"
<녹취> "이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것저것 가려가지고 하면 언제 돈을 벌어?)"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탈남’의 가장 큰 이유는 남한 사회에서 느낀 차별과 정체성 혼란, 3등 국민이라는 패배의식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조선인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북한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똑같은 일, 똑같은 설거지를 하는데 남한이냐 북한이냐의 차이 때문에 월급의 수준도 달라지고. 북한에서 왔다는 게 창피하니까 고향이 강원도라든가 부산이라든가 이런 쪽으로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또 남한 사람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과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수준도 탈남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세금 내고 또 가끔 고향에서 전화 오면 돈도 좀 보내줘야 되고 또 대한민국 사회에 와서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누려보고도 싶거든요. 우리가 여기 와서 생계비를 많이 타야, 많이 벌어야 200만 원 번다고 해도 실지 세금내고 하면 몇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노후가 어떻게 그런 고민도 있고 하니까."
부모세대가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자녀에게 영어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 떠난다는 탈북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7개월 전, 탈북자 김영희 씨는 피자반죽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취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김영희(2008년 탈북) : "어쨌든 일은 시작해야 되겠고. 아는 사람은 없고 하잖아요. 내 적성에 맞겠다 생각하고 왔어요. 그저 들뜬 기분으로 출근하고 시작하고 처음에는 힘들었다가 그래도 차츰 사람들하고 익숙해지면서 좋은 생활 하게 됐어요."
김씨의 취업을 도운 것은 탈북자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탈북자 채용박람회였습니다.
<인터뷰> 홍성민(진우식품 대표) : "새터민들은 다 그렇겠지만 신념이 또 강합니다. 회사에 와서 뭐든지 찾아서 일을 하려고 하고 일의 흐름을 빨리 이해하시고 같은 민족이라 말이 통하는 것도 괜찮고 그래서 굉장히 저희한테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채용박람회를 통해 취업문을 두드린 탈북자는 3900여명.
이 가운데 242명의 탈북자가 중소기업 101곳에 채용됐습니다.
취업성공률은 6% 수준, 아직도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실제로 탈북자들의 실업률은 12.1%로 일반 국민보다 3배나 높습니다.
또 취업한 탈북자 가운데 47%는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고용의 불안정성도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를 통틀어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아현 씨.
김씨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째, 경기도내 탈북자의 정착과 자립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아현(탈북자 출신 1호 공무원) : "서로 문화차이가 있어서 대화가 이제 소통이잘 안되는데 근데 저희랑 하면
남한사회하고도 소통이 되고, 북한분들하고도 소통이 되고 하니까."
현재 김씨와 같은 탈북자 출신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29명.
탈북자들의 정착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차원의 지원, 또 긍정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구(경기도 남북협력담당관실 사무관) :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북한이탈공무원들이 제일 큰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안내하는데 제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례로 남아서 자신 있고 정말 내가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잘 적응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긍지를 심어주는 기회를 드린 것입니다."
탈북자에게 입국과 동시에 국적을 부여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의 삶이 아니라 제3국의 난민으로의 삶을 선택한 탈북자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정책만큼 편견 대신 따뜻한 체온을 담아 이들을 진정한 한민족,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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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한반도] 탈북자 왜 한국을 떠나나?
-
- 입력 2012-02-18 09:02:39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월 18일 토요일, 남북의 창 이현줍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입니다.
북한을 떠나 우리나라에 정착했던 탈북자들이 제 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제 3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정착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난민' 으로 인정받는 대신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정소라 리포터가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해 12월, 주영 북한대사관에 조기가 게양됐습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으로 북한 대사관이 추모 분위기에 젖었던 그때, 난데없이 축하 꽃다발을 들고 대사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아, 됐습니다.) 잠시만요. (일없습네다.)"
북한 대사관의 신고로 영국 경찰의 조사를 받은 이들은 모두 영국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입니다.
<인터뷰> 영국 거주 탈북자 : "북한 사회가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독재사회를 종식시키고."
현재 영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대략 500여 명선, 이 가운데 일부는 한국 정착에 실패한 뒤 영국으로 온 이른바 ‘탈남 탈북자’들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남한에 있다가 오신 분들도 있고, 남한을 거치지 않고 오신 분들도 있고. 본인들 스스로가 자기네가 남한 거쳐서 왔다는 소리를 하지 않으니까 통계로 잡긴 좀 어려워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남한 내 탈북자 수가 2만 3천여 명을 넘어섰습니다.
탈북자들의 입국이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남한 사회 정착에 실패한 일부 탈북자들은 또 다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제3국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찾은 남한을 다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은 무엇일까요?
지난 2008년 북한을 탈출한 김순철 씨.
김씨는 최근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에서 알게 된 탈북자 동료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그 음력설 아침이었어요. 음력설 아침에 전화가 와서 어디냐 하니까 공항이래요. 왜 공항이냐 하니까 자기 이민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 하더라고. 마음이 참 짠하더라구요."
한국을 떠나 제 3국행을 선택한 김씨의 지인은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 몸도 성치 않은 상황, 한국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나이도 50대 중반이고 하니까. 일을 할 수가 없대요. 그렇다고 사회복지 혜택을 받자면 연령이 아직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연금이 있기를 하나, 자기가 저축해놓은 그것도 없지 하니까 하루하루 사는 게 참 힘들다."
결국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자 한국보다 더 복지 제도가 좋다는 유럽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역시 50대에 접어든 김씨도 한 때 탈남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저도 50대 중반으로 가는 사람인데 (제 3국행을 고민한 적이)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저도 역시 생각지 않게 그럴 기회가 있었죠. 근데 내 생각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 인생이 유랑, 유랑민 인생 같은 그런 느낌이 딱 들더라고요."
탈북자들의 제3국행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2010년 말 현재 917명의 탈북자가 난민 신분으로 영국 등 제 3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가 한국에 정착했다가 제3국행을 선택한 탈북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탈북자들은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 자칫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난민 신분의 탈북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입니다.
영국은 지난 2004년 처음으로 탈북자 17명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해 이들이 합법적으로 영국에 체류하고 취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이후 영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탈북자수가 급격히 늘어나 2010년 말에는 580명에 이르렀고, 이에 부담을 느낀 영국 정부는 최근 난민인정 심사를 강화했습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 조선인 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2009년도, 2010년도까지는 좀 들어왔는데 2011년도하고 2012년도에는 현저하게 많이 줄어든 거 같아요. 왜냐하면 여기서 난민 비자 발급이 잘 안되고 있거든요."
<녹취> "절대 북한에서 왔다는 말 하지마. (네, 알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겠다 그래. (네) 너 살아남아야 될 거 아냐, 그치?"
<녹취> "아이고 안된다니까요. 쟤 북한에서 왔죠? (그럼 어떡해. 쟤들도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냐.)"
<녹취> "이건 제가 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것저것 가려가지고 하면 언제 돈을 벌어?)"
한국을 떠나는 탈북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탈남’의 가장 큰 이유는 남한 사회에서 느낀 차별과 정체성 혼란, 3등 국민이라는 패배의식입니다.
<인터뷰> 김주일(재영조선인협회(탈북자 단체) 사무총장) : "북한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똑같은 일, 똑같은 설거지를 하는데 남한이냐 북한이냐의 차이 때문에 월급의 수준도 달라지고. 북한에서 왔다는 게 창피하니까 고향이 강원도라든가 부산이라든가 이런 쪽으로 많이 이야기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또 남한 사람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는 현실과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수준도 탈남을 고민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 김순철(2008년 탈북) : "세금 내고 또 가끔 고향에서 전화 오면 돈도 좀 보내줘야 되고 또 대한민국 사회에 와서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누려보고도 싶거든요. 우리가 여기 와서 생계비를 많이 타야, 많이 벌어야 200만 원 번다고 해도 실지 세금내고 하면 몇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노후가 어떻게 그런 고민도 있고 하니까."
부모세대가 정착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자녀에게 영어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어 떠난다는 탈북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7개월 전, 탈북자 김영희 씨는 피자반죽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취업이 됐습니다.
<인터뷰> 김영희(2008년 탈북) : "어쨌든 일은 시작해야 되겠고. 아는 사람은 없고 하잖아요. 내 적성에 맞겠다 생각하고 왔어요. 그저 들뜬 기분으로 출근하고 시작하고 처음에는 힘들었다가 그래도 차츰 사람들하고 익숙해지면서 좋은 생활 하게 됐어요."
김씨의 취업을 도운 것은 탈북자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탈북자 채용박람회였습니다.
<인터뷰> 홍성민(진우식품 대표) : "새터민들은 다 그렇겠지만 신념이 또 강합니다. 회사에 와서 뭐든지 찾아서 일을 하려고 하고 일의 흐름을 빨리 이해하시고 같은 민족이라 말이 통하는 것도 괜찮고 그래서 굉장히 저희한테는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채용박람회를 통해 취업문을 두드린 탈북자는 3900여명.
이 가운데 242명의 탈북자가 중소기업 101곳에 채용됐습니다.
취업성공률은 6% 수준, 아직도 탈북자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실제로 탈북자들의 실업률은 12.1%로 일반 국민보다 3배나 높습니다.
또 취업한 탈북자 가운데 47%는 임시직과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어 고용의 불안정성도 일반 국민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를 통틀어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공무원으로 임용된 김아현 씨.
김씨는 지난 2008년부터 5년 째, 경기도내 탈북자의 정착과 자립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아현(탈북자 출신 1호 공무원) : "서로 문화차이가 있어서 대화가 이제 소통이잘 안되는데 근데 저희랑 하면
남한사회하고도 소통이 되고, 북한분들하고도 소통이 되고 하니까."
현재 김씨와 같은 탈북자 출신 공무원은 전국적으로 29명.
탈북자들의 정착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는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 차원의 지원, 또 긍정적인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구(경기도 남북협력담당관실 사무관) :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북한이탈공무원들이 제일 큰 영향을 끼치고 그들을 안내하는데 제일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례로 남아서 자신 있고 정말 내가 이곳에서 열심히 하면 잘 적응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그런 긍지를 심어주는 기회를 드린 것입니다."
탈북자에게 입국과 동시에 국적을 부여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의 삶이 아니라 제3국의 난민으로의 삶을 선택한 탈북자들의 고충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정책만큼 편견 대신 따뜻한 체온을 담아 이들을 진정한 한민족,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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