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사기꾼 잡고 보니 12년 전 숨진 유령?

입력 2012.08.16 (09:06) 수정 2012.08.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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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좋은 투자처가 있다,사업자금을 잠시만 융통해 달라, 이런 식으로 돈을 받아서 가로챈 혐의로 50대 남성이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피의자를 잡은 후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서류상으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김기흥 기자, 사망 상태로 어떻게 10년 넘게 생활할 수가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기자 멘트>

정확히 말하면 12년 전 사망한 이 남성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12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시간은 12년 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찰에 붙잡힌 안모 씨는 사업을 하다 실패하자 지난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고 부인은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안 씨는 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민법에 따라 신고 5년이 지난 2000년, 안씨는 서류상 '사망 처리'됐습니다.

이후 안씨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음주 운전 단속 때 신분이 드러날 수도 있는 만큼 핸들은 절대 잡지 않고 오직 대중교통만을 이용했다는 안씨, 그의 사기행각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 씨.

아직도 사기 당한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합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아이고, 당했구나 싶었죠, 완전히.”

지난해, 잘 알고 지내던 법인회사 대표의 부탁을 받고 돈을 건넨 게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내가 진짜 급하게 됐다, 일주일만 돈 빌려달라고 해서... 오늘 당장 안 하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박 씨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53살의 안모 씨.

지난 2009년 식당을 처음으로 찾은 손님으로 알게 된 안 씨는 선한 얼굴은 물론 호탕한 성격까지, 게다가 건실한 회사까지 운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손님으로 오다가 손님 없으면 '주인장 여기로 오소' 해가지고 술 한 잔 마시면서 내 고등학교 선배래요. 확 믿었지 집도 바로 여기고 하니까...”

또 다른 피해자 한모 씨. 그도 비슷한 이유로 안 씨와 친해졌는데요.

<녹취> 한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아주 깔끔하게 생겼죠. 옷 같은 것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입고 다니고, 여자들이 보면 호감이 갈 수 있게 행동도 그렇게 합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돈을 빌릴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다는 안 씨.

곧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투자를 제안하기 시작했고, 사업경비를 이유로 크고 작은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안 씨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는데요.

이미 피해자 3명으로부터 1억2천여 만 원을 가로챈 뒤였습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그 다음부터는 연락도 안 돼요. 전화를 걸면 수신자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라고 계속 그런 메시지가 뜨고...”

취재진이 확인해본 결과, 안 씨가 대표이사로 있다는 경기도 남양주의 모 기업은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였습니다.

<녹취> 건물 관계자 (음성변조) :“(여기가 00이라는 기업체 터라고 하던데 모르세요?) 00은 모르겠는데요. 건설회사가 없죠.”

안 씨를 찾은 건 지난 3일.

수개월 동안 끈질긴 추적 끝에, 월세방에 숨어 지내던 안 씨를 피해자들이 직접 붙잡은 건데요.

곧바로 경찰서로 안 씨를 끌고 간 피해자들.

조사를 위해 안 씨의 신원을 확인하려던 경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신원을 확인했더니 사망자로 돼있어서 본인 지문 확인을 했더니 실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어요. 그렇다면 일단 이 사람의 신병을 확보해야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긴급체포가 이뤄지게 된 겁니다.”

무려 12년 전 안 씨는 이미 사망 처리돼 있었던 것.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던 안 씨는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나자,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는데요.

가족들은 실종 신고를 냈지만 5년이 지나도록 행방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00년 안 씨는 법률상 사망자가 되고 만 겁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전처가 실종신고를 했고 실종 생사불명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이 사람이 사망자로 등록이 된 겁니다. 사망 간주 처리가 된 거죠.”

그때부터 사기꾼이 된 안 씨.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직접 운전을 하는 대신 대중교통만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명의를 빌렸습니다.

휴대전화, 통장, 건강보험증은 물론이고, 그동안 거주해온 집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얻은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들통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녹취> 집주인 (음성변조) : “계약자 이름은 여자인데 그 여자하고 같이 들어왔어요. 000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이 안 돼 있고 그 부인 이름으로 계약이 돼 있어요.”

심지어 명의를 빌려 법인회사까지 설립해 사기행각을 벌여온 안 씨.

안 씨는 사망자로 살아도 다른 사람 명의로 살 수 있었던 만큼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일상생활 중에는 차명으로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불심검문 자체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이 10여 년 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오히려 사망자라는 신분은 사기를 치는데 유리했습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찾아 신고를 해도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기를 치냐며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녹취> 한모 씨 (사기피해자, 음성변조) : “고발이 안 됐을 뿐이지 계좌 한번 보면 얼마씩, 얼마씩 입금된 돈이 전부 피해자입니다. 100만원 200만원가지고 고발하기 귀찮잖아요. 그래서 안 하는 것뿐이에요.”

경찰은 안 씨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한편,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여죄 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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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16 09:06:52
    • 수정2012-08-16 09: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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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좋은 투자처가 있다,사업자금을 잠시만 융통해 달라, 이런 식으로 돈을 받아서 가로챈 혐의로 50대 남성이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피의자를 잡은 후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서류상으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김기흥 기자, 사망 상태로 어떻게 10년 넘게 생활할 수가 있었는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기자 멘트> 정확히 말하면 12년 전 사망한 이 남성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12년 동안 살아왔습니다. 시간은 12년 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경찰에 붙잡힌 안모 씨는 사업을 하다 실패하자 지난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고 부인은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안 씨는 부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민법에 따라 신고 5년이 지난 2000년, 안씨는 서류상 '사망 처리'됐습니다. 이후 안씨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음주 운전 단속 때 신분이 드러날 수도 있는 만큼 핸들은 절대 잡지 않고 오직 대중교통만을 이용했다는 안씨, 그의 사기행각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 씨. 아직도 사기 당한 일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합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아이고, 당했구나 싶었죠, 완전히.” 지난해, 잘 알고 지내던 법인회사 대표의 부탁을 받고 돈을 건넨 게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내가 진짜 급하게 됐다, 일주일만 돈 빌려달라고 해서... 오늘 당장 안 하면 내가 죽는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박 씨에게 돈을 빌린 사람은 53살의 안모 씨. 지난 2009년 식당을 처음으로 찾은 손님으로 알게 된 안 씨는 선한 얼굴은 물론 호탕한 성격까지, 게다가 건실한 회사까지 운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손님으로 오다가 손님 없으면 '주인장 여기로 오소' 해가지고 술 한 잔 마시면서 내 고등학교 선배래요. 확 믿었지 집도 바로 여기고 하니까...” 또 다른 피해자 한모 씨. 그도 비슷한 이유로 안 씨와 친해졌는데요. <녹취> 한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아주 깔끔하게 생겼죠. 옷 같은 것도 상당히 고급스럽게 입고 다니고, 여자들이 보면 호감이 갈 수 있게 행동도 그렇게 합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돈을 빌릴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다는 안 씨. 곧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투자를 제안하기 시작했고, 사업경비를 이유로 크고 작은 돈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안 씨는 종적을 감추고 말았는데요. 이미 피해자 3명으로부터 1억2천여 만 원을 가로챈 뒤였습니다. <녹취> 박모 씨 (피해자, 음성변조) : “그 다음부터는 연락도 안 돼요. 전화를 걸면 수신자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라고 계속 그런 메시지가 뜨고...” 취재진이 확인해본 결과, 안 씨가 대표이사로 있다는 경기도 남양주의 모 기업은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였습니다. <녹취> 건물 관계자 (음성변조) :“(여기가 00이라는 기업체 터라고 하던데 모르세요?) 00은 모르겠는데요. 건설회사가 없죠.” 안 씨를 찾은 건 지난 3일. 수개월 동안 끈질긴 추적 끝에, 월세방에 숨어 지내던 안 씨를 피해자들이 직접 붙잡은 건데요. 곧바로 경찰서로 안 씨를 끌고 간 피해자들. 조사를 위해 안 씨의 신원을 확인하려던 경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신원을 확인했더니 사망자로 돼있어서 본인 지문 확인을 했더니 실제 생존한 사실이 확인됐어요. 그렇다면 일단 이 사람의 신병을 확보해야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긴급체포가 이뤄지게 된 겁니다.” 무려 12년 전 안 씨는 이미 사망 처리돼 있었던 것.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던 안 씨는 운영하던 건설업체가 부도나자,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1995년 가족과 연락을 끊었는데요. 가족들은 실종 신고를 냈지만 5년이 지나도록 행방을 찾지 못했고, 결국 2000년 안 씨는 법률상 사망자가 되고 만 겁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전처가 실종신고를 했고 실종 생사불명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이 사람이 사망자로 등록이 된 겁니다. 사망 간주 처리가 된 거죠.” 그때부터 사기꾼이 된 안 씨.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직접 운전을 하는 대신 대중교통만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명의를 빌렸습니다. 휴대전화, 통장, 건강보험증은 물론이고, 그동안 거주해온 집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얻은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들통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녹취> 집주인 (음성변조) : “계약자 이름은 여자인데 그 여자하고 같이 들어왔어요. 000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이 안 돼 있고 그 부인 이름으로 계약이 돼 있어요.” 심지어 명의를 빌려 법인회사까지 설립해 사기행각을 벌여온 안 씨. 안 씨는 사망자로 살아도 다른 사람 명의로 살 수 있었던 만큼 불편한 점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진용(형사/수서경찰서) : “일상생활 중에는 차명으로 가능한 것들이 많습니다. 불심검문 자체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이 10여 년 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나...” 오히려 사망자라는 신분은 사기를 치는데 유리했습니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경찰서를 찾아 신고를 해도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기를 치냐며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녹취> 한모 씨 (사기피해자, 음성변조) : “고발이 안 됐을 뿐이지 계좌 한번 보면 얼마씩, 얼마씩 입금된 돈이 전부 피해자입니다. 100만원 200만원가지고 고발하기 귀찮잖아요. 그래서 안 하는 것뿐이에요.” 경찰은 안 씨를 사기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한편,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여죄 수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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