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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한반도] 영상편지…부칠 날은 언제쯤?
입력 2012.08.25 (11:42) 수정 2012.09.15 (10:02)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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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안녕하십니까?



8월25일 토요일.



남북의 창 가애란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 ]입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중단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행사를 재개할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영상 편지를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북측에 전달하겠다는 뜻인데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60년 넘게 생이별을 이어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조아란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6.25 전쟁으로 생이별한 이산가족은 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7만 명 정도가 남아 다시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산가족들의 사무친 그리움을 영상편지에 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든 한 살의 현국태 할아버지.



6.25 전쟁 당시 아버지를 북녘 고향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동생들만을 데리고 남쪽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로부터 60여 년.



아버지의 생사조차 불분명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영상편지를 띄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주관으로 진행되는 영상편지 제작 사업은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달 말까지 신청을 받고 오는 11월부터는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영상편지를 만듭니다.



향후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북측에 전달한다는 계획입니다.



<녹취> "영상편지 관련해서 혹시 신청은 하실 건가요. "



<녹취> "영상편지요?"



<녹취> "저희가 이산가족 분들 상봉 못하시니까 영상편지를 제작해서"



<인터뷰> 김상근(대한적십자회 국제남북본부장 ) : "아무래도 가족들의 여러 가지 애틋한 사연들을 북측에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만나야 되는데 만나지를 못하니까 영상으로 잘 이렇게 기록을 해놨다가 어떤 좋은 계기가 되면 그런 가족들의 사연들을 북측 가족에게 전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내 손을 붙잡고 초등학교 입학했,. 세라복에다가 가방을 사주시고 해서 냉면집에 가서 같이 둘이 음식을 식사했던 일들이라든가.



어느덧 6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허갑섬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피난길인줄도 모르고 이웃집 어른을 따라 나선 게 생이별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상봉 신청을 한 지도 벌써 10여 년. 하지만 허 할머니 차례는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기다리다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상편지를 찍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부가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영상편지 제작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5년, 정부는 이산가족 4천 명의 영상편지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8년. 남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영상편지를 교환했습니다.



상봉행사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은 스무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시범교환이었습니다.



<녹취> 김재호(이산가족/북측 동생) : "오늘 이렇게 화상을 통해서 소식을 전하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

 

<녹취> 김재환(이산가족/남측 형) : "그나마도 영상편지라도 가끔 보면서 얼굴 익히고 옛날도 회고하고 그러겠죠."



당시 남북은 분기마다 서른 가족씩 10에서 20분 분량의 영상편지를 교환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뒤로 영상 편지가 오간 적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습니다

.

지난달 말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 8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청자 중 절반 가까운 5만 천여 명은 상봉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생존자는 7만 7천 명 남짓. 마지막 상봉행사가 열렸던 지난 2010년과 비교하면 그 수가 5천3백 명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아직 상봉을 못한 신청자 역시 아흔 살 이상이 8.3% 등 80% 정도가 일흔을 넘긴 고령자입니다.



<녹취> "나중에 사후에라도 북측에 전달해 드릴 수 있도록 저희가 직접 찾아서"



<녹취> "지금 내가 찾는 분이 연세도 많고 돌아가셨을 거예요. 100살이 넘었어요. 나도 병들어서 걷질 못해요."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남은 시간 자체가 굉장히 없는 사업입니다. 가능하면 한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분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좀 마련하는 것이 굉장히 시급성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고. 또 하나는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부대사업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돌아가시기 전에 정보도 좀 더 많이 취득을 해놔야 되고 관리도 해놔야 되고 이런 준비사업 자체도 해야 되고."



지난 2000년 8월 15일. 분단 반세기 만에 생이별했던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들이 만났습니다.



남북 각각 100명 씩, 천 여 명의 이산가족은 서울과 평양에서 한 맺힌 그리움을 털어냈습니다.



제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으로 지난 2010년 추석 상봉까지 총 18차례에 걸쳐 만 8천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직접 얼굴을 맞댔습니다.



2005년부터는 화상상봉도 시작 돼, 3천 7백여 명의 이산가족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두 차례 꼴로 치러져 온 상봉행사는 현 정부 들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습니다.



갈수록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5년 간 단 2차례 열리는데 그쳤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7차례나 열렸던 화상상봉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족을 만나겠다는 희망으로 살아온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녹취> 문명순(이산가족/2005년 영상편지 제작) : "이북에 있는 아들 하나 있는 것만 내가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또 그 자식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지난 8일, 우리 정부는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습니다.



<녹취> 박수진(통일부 부대변인/지난 8일) : "이산가족 상봉 관련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정부가 2월에 실무접촉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해 중간에 여러 계기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지만 현재도 유효합니다. "



하지만 북측은 바로 다음날 우리 정부가 먼저 5.24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월에 이어 또다시 우리 정부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최우선 과제라며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일차적 책임은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켜 온 북한 당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상봉의 제안 시기 등에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정치적 환경에 상관없이 어떤 정부나 국가라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기본적 소명감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어느 정도 조성한 다음에 제의를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북한이 문제 삼았던 조치 같은 것들 그런 것을 하나도 대응 안하다가 뜬금없이 이산가족 상봉하자 그러니까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많다."



지난 2010년 9월을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요.



지금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7명이나 된다고 하는데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령의 이산가족들.



이들이 하루 빨리 상봉의 기쁨을 만끽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슈&한반도] 영상편지…부칠 날은 언제쯤?
    • 입력 2012-08-25 11:42:21
    • 수정2012-09-15 10:02:49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안녕하십니까?



8월25일 토요일.



남북의 창 가애란입니다.



먼저 남북간 주요 이슈 현장을 찾아가는 [이슈 & 한반도 ]입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중단된 지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행사를 재개할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영상 편지를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북측에 전달하겠다는 뜻인데요.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60년 넘게 생이별을 이어가고 있는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조아란 리포터가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6.25 전쟁으로 생이별한 이산가족은 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대부분은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7만 명 정도가 남아 다시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산가족들의 사무친 그리움을 영상편지에 담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든 한 살의 현국태 할아버지.



6.25 전쟁 당시 아버지를 북녘 고향에 남겨둔 채 어머니와 동생들만을 데리고 남쪽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로부터 60여 년.



아버지의 생사조차 불분명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 할아버지는 아버지께 영상편지를 띄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주관으로 진행되는 영상편지 제작 사업은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음 달 말까지 신청을 받고 오는 11월부터는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영상편지를 만듭니다.



향후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북측에 전달한다는 계획입니다.



<녹취> "영상편지 관련해서 혹시 신청은 하실 건가요. "



<녹취> "영상편지요?"



<녹취> "저희가 이산가족 분들 상봉 못하시니까 영상편지를 제작해서"



<인터뷰> 김상근(대한적십자회 국제남북본부장 ) : "아무래도 가족들의 여러 가지 애틋한 사연들을 북측에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만나야 되는데 만나지를 못하니까 영상으로 잘 이렇게 기록을 해놨다가 어떤 좋은 계기가 되면 그런 가족들의 사연들을 북측 가족에게 전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



내 손을 붙잡고 초등학교 입학했,. 세라복에다가 가방을 사주시고 해서 냉면집에 가서 같이 둘이 음식을 식사했던 일들이라든가.



어느덧 6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허갑섬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피난길인줄도 모르고 이웃집 어른을 따라 나선 게 생이별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상봉 신청을 한 지도 벌써 10여 년. 하지만 허 할머니 차례는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기다리다 못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상편지를 찍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부가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영상편지 제작을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5년, 정부는 이산가족 4천 명의 영상편지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8년. 남북의 이산가족이 처음으로 영상편지를 교환했습니다.



상봉행사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은 스무 가족을 대상으로 한 시범교환이었습니다.



<녹취> 김재호(이산가족/북측 동생) : "오늘 이렇게 화상을 통해서 소식을 전하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

 

<녹취> 김재환(이산가족/남측 형) : "그나마도 영상편지라도 가끔 보면서 얼굴 익히고 옛날도 회고하고 그러겠죠."



당시 남북은 분기마다 서른 가족씩 10에서 20분 분량의 영상편지를 교환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뒤로 영상 편지가 오간 적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습니다

.

지난달 말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12만 8천 명을 넘어섰습니다.



2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청자 중 절반 가까운 5만 천여 명은 상봉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생존자는 7만 7천 명 남짓. 마지막 상봉행사가 열렸던 지난 2010년과 비교하면 그 수가 5천3백 명 넘게 줄어들었습니다.



아직 상봉을 못한 신청자 역시 아흔 살 이상이 8.3% 등 80% 정도가 일흔을 넘긴 고령자입니다.



<녹취> "나중에 사후에라도 북측에 전달해 드릴 수 있도록 저희가 직접 찾아서"



<녹취> "지금 내가 찾는 분이 연세도 많고 돌아가셨을 거예요. 100살이 넘었어요. 나도 병들어서 걷질 못해요."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남은 시간 자체가 굉장히 없는 사업입니다. 가능하면 한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분이라도 더 만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좀 마련하는 것이 굉장히 시급성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고. 또 하나는 만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부대사업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돌아가시기 전에 정보도 좀 더 많이 취득을 해놔야 되고 관리도 해놔야 되고 이런 준비사업 자체도 해야 되고."



지난 2000년 8월 15일. 분단 반세기 만에 생이별했던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들이 만났습니다.



남북 각각 100명 씩, 천 여 명의 이산가족은 서울과 평양에서 한 맺힌 그리움을 털어냈습니다.



제 1차 이산가족 상봉을 시작으로 지난 2010년 추석 상봉까지 총 18차례에 걸쳐 만 8천 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직접 얼굴을 맞댔습니다.



2005년부터는 화상상봉도 시작 돼, 3천 7백여 명의 이산가족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두 차례 꼴로 치러져 온 상봉행사는 현 정부 들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습니다.



갈수록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5년 간 단 2차례 열리는데 그쳤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7차례나 열렸던 화상상봉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가족을 만나겠다는 희망으로 살아온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녹취> 문명순(이산가족/2005년 영상편지 제작) : "이북에 있는 아들 하나 있는 것만 내가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또 그 자식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지난 8일, 우리 정부는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습니다.



<녹취> 박수진(통일부 부대변인/지난 8일) : "이산가족 상봉 관련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지만 정부가 2월에 실무접촉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해 중간에 여러 계기에 걸쳐서 말씀을 드렸지만 현재도 유효합니다. "



하지만 북측은 바로 다음날 우리 정부가 먼저 5.24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월에 이어 또다시 우리 정부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최우선 과제라며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 정부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일차적 책임은 이산가족 상봉을 정치적 사안과 연계시켜 온 북한 당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도 이산가족 상봉의 제안 시기 등에서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우영(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정치적 환경에 상관없이 어떤 정부나 국가라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기본적 소명감의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어느 정도 조성한 다음에 제의를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북한이 문제 삼았던 조치 같은 것들 그런 것을 하나도 대응 안하다가 뜬금없이 이산가족 상봉하자 그러니까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런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많다."



지난 2010년 9월을 마지막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요.



지금도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가슴에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7명이나 된다고 하는데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고령의 이산가족들.



이들이 하루 빨리 상봉의 기쁨을 만끽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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