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가 교과서?”

입력 2012.08.27 (07: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녹취> "70%이상의 문항을 EBS교재 및 강의 내용과 연계하여 출제했습니다."

<녹취> "학교에서는 거의 EBS교재로" (교과서는 안써요?) "교과서는 거의 안쓰는데요."

<녹취> "교과서는 한 번도 안 봤어요."

<녹취>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도 EBS가?) 다 그걸로 100% 반영돼서 나와요"

<녹취> 교사 : "거기서 70% 이상 나온다는데 그거 말고 다른 수업하면 들을 아이들이 없어요."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됐습니다.

올해 수능도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이어 EBS교재에서 70% 이상이 출제됩니다.

이처럼 EBS교재의 수능 연계비율이 높아지면서,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보다 EBS교재가 더 중시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교육비 절감과 쉬운 수능을 목표로 추진한 EBS-수능 연계정책이,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고등학교 3학년 교실,

거의 모든 수업이 EBS 교재의 문제 풀이로 진행됩니다.

<인터뷰> 김지선 : "EBS로 풀고 기출 보고 다시 EBS 보고 계속 돌리고 있어요, 반복해서"

다른 참고서나 문제집은 물론이고, 교과서도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인터뷰> 이상현 : "교과서는 사놓고 안본 것도 많죠 진도가 전혀 안 나가니까."

학교 교과 학습도를 평가하는 내신시험마저도 EBS 교재에서 출제될 정돕니다.

<인터뷰> 지용수 :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수업한 거에서 내야 하니까 EBS교재로 수업했으니까요."

EBS 교재에 대한 절대적 의존, 학생들은 일단 수능의 시험범위가 정해진 것처럼 보여 심리적으로는 다소 안정이 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박선영 : "미리 다 볼 수 있어서 뭔가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인터뷰> 이아윤 : "수능에 같은 지문이 출제되니까, 아무래도 한번 읽고 들어가면 풀기 수월하다고"

그러나 막상 공부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선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필수인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교재 수만 문과 16권, 이과 20권, 거기에 선택과목까지 합하면 수능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EBS 교재 수는 30권 가까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인터뷰> 박정길 : "양적으로 부담이 돼요, 예전에는 기출문제만 공부하면 되었었는데, 이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되는 게 있는 거잖아요"

<인터뷰> 김지선 : "풀고 풀어도 계속 남아있으니까, 되게 풀기 싫어지고 되게 질려요."

난이도 문제도 제기됩니다.

EBS 교재의 수준이 대체로 중상위권 이상에 맞춰져 있어 어렵다는 게 학교 현장의 평갑니다.

<인터뷰> 노은엽(고3 사회탐구 교사) : "일정한 난이도를 유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중상위권 애들, 어떤 문제는 상위권 애들한테도 부담이 되는 문제도 있고.."

<인터뷰> 박은경(고3 영어 교사) : "처음 맞닥뜨렸을 때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지문들이예요, 해석이 잘 되더라도 우리말로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학생들이 이미 본 지문을 가지고 수능에 실제로 반영이 되기 때문에 난이도가 좀 올라간 것 아닐까"

EBS 측은 수능 연계율이 높아진 뒤, 수능 출제에 직접 활용될 수 있도록 문항을 만들면서,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워진 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 이창용 : "여러 가지 난이도나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평가 문항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즉 문항 완성도가 제대로 갖춰졌는가를 (평가원에서)굉장히 깊이있게 감수를 하거든요, (연계 때문인가요?) 연계 때문에 그래서 단순한 문항을 내면 그걸 가지고 어렵게 가공을 하거나 쉽게 하거나 하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많아지면서 어떤 학생들은 문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아예 외워버립니다.

지문이나 도표 등이 그대로 수능 시험에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소라 : "바뀌지 않으니까 해설집을 줘서 그걸 외우라고 하고"

<인터뷰> 이아윤 : "잘하는 애보다는 EBS를 더 많이 외운 애들이 더 시험을 잘치는 것 같아서"

대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자 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가 문제풀이와 단순암기식으로 전락하는 상황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교 교실에서 교사들이 더 이상 창의적인 수업이나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를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남자교사 : "완전히 EBS문제풀이 기계처럼 돼버렸다 자기가 뭔가 가르치고 싶은 게 있어도 전혀 못 가르치고, 교재에 있는 대로 획일적인 해석만 해야 한다..."

<인터뷰> 여자교사 : "선생님의 해석이라든가 학생들의 해석, 다양한 해석이 필요 없고 정답에 나와있는 해석이 교과서나 교사의 역량이 무시될 정도로 EBS 문제집이 중시되는 상황"

교육계는 EBS-수능의 지나친 연계가 공교육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설현수(중앙대 교육학과) : "교사들의 창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학생들에게도 어떤 학교교육의 근본 목적인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의 신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그에 따라 학교교육이 약화되고 이것은 결국 공교육의 역행이라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연 수능 문제가 EBS 교재와 어느 정도 유사하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2012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2번, 같은 질문, 같은 도표에 선택지까지 유사합니다.

거의 같은 예시를 놓고, 사상가의 주장으로 옳지 않은 것을 물었던 문제를 옳은 것을 묻는 문제로 바꿨습니다.

<녹취> "EBS를 봤던 애들은 사상가가 누군지 알고 있어요. 사상가를 파악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자기 사고력 적용해 자료를 분석해야 하는데 그 단계가 없어진 거죠"

영어 36번, 같은 도표에 거의 똑같은 지문, 변형조차 거의 없는 문젭니다.

지문에 들어갈 어휘를 물었던 문제를 그 지문의 주장을 묻는 질문으로 바꿨는데, 선택지가 한글로 돼있습니다.

<녹취> "어차피 내용 다 알고 있는데, 이걸 한글로 내면은... 사실 읽을 필요도 없는 문제죠"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전공서적을 이해할 능력을 평가하는, 언어영역의 비문학 문제까지도 EBS 교재와 똑같은 주제의 지문으로 출제했을 정돕니다.

<녹취> 문학박사 : "본질적으로 언어 능력 평가는 이해, 감상 추론 능력 등을 평가해야 하는데, 배경지식을 준 상태에서 시험을 보면 그런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볼 수가 없죠."

이같은 높은 연계 출제 결과, 지난해 수능에서는 외국어 영역의 만점자가 3% 가까이 나왔을 정도로 수능의 절대 점수가 올라갔습니다.

교과부는 당초 목표였던 쉬운 수능을 실현했다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수능의 절대 점수가 올라간 이유가 문제가 정말 쉬워졌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EBS 교재를 미리 봤기 때문인지는 논란거립니다.

지난 20여 년간 수능 외국어 영역, 즉 영어에 출제된 단어의 수를 분석한 결과, 2000년대 중반까지 800~900단어 정도에 머물렀던 총 단어 수가 최근엔 1400단어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인터뷰> 임형택 : "수능은 분명이 더 어려워졌거든요. 그런데 만점자가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은 수능시험의 출제경향이 EBS의 출제 경향과 정확히 일치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

교과부가 EBS - 수능 연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또 다른 목표는 사교육비의 감솝니다.

학원에 가거나 다른 참고서를 사지 않고 EBS 교재만 봐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정종철(교과부) : "농산어촌지역 EBS 교재 활용비율 높아 사교육 혜택조차 받기 어려운 수험생에게 교육 격차 해소 차원에서 EBS 수능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약 24만 원으로 그 전해에 비해 줄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손주은 : "수능이 변별력이 없다 보니까, 다른 여러 가지 스펙이라든지 새로운 어떤 전형 요소에 대비해 필요한 사교육비가 오히려 파생적으로 늘어서 실질적으로 정부가 기대한 만큼 사교육비가 감소하지 않았다"

교과부는 사교육기관보다는 EBS가 교육의 주도권을 갖는 게 낫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정종철(교과부) : (학교교육이 EBS에 의해 거의 점령되다시피 한 상황인데요?) "사교육기관에 내준 주도권을 학교가 가져오는 과정에서 EBS에서 그 역할을 하도록 했다, EBS한테 내줬다는 게 사교육기관 즉 학원에 내준 것과는 차별화되는 것으로 달리 봐야 되지 않을까?"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면 공교육이 EBS로 대체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종철 : "수능을 국가가 책임지려면 어떤 수능으로 할 것인가 그걸 잘 생각해야 할 텐데 국가가 그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인 사교육비 문제에만 몰두해 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진 게 아닌가?"

EBS 교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지난해 교재의 오답과 오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뒤 EBS는 이를 없애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는 불만이나, 일부 비교육적인 지문 내용 등에 대한 지적은 여전합니다.

<인터뷰> 이창용 : "아무래도 영어학습을 하는 것이고 훈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 어떤 가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적인 어떤 그런 학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집은 문제집일 뿐 교과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공교육의 가치는 시험을 잘 보는 데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종국 : "역사와 경험을 통해 누적된 그런 지식 내용을 담아야 하고, 교육적으로 정당한 가치 신념을 담아낸 것이어야 하고 그 나라의 언어 문자를 가장 정체성 있게 정선해서 만드는 것을 우리는 교과서라고 얘기합니다."

학벌 중시 풍토, 대학 서열화 등 근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교육적 해법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를 흔드는 정책이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EBS가 교과서?”
    • 입력 2012-08-27 07:44:00
    취재파일K
<녹취> "70%이상의 문항을 EBS교재 및 강의 내용과 연계하여 출제했습니다." <녹취> "학교에서는 거의 EBS교재로" (교과서는 안써요?) "교과서는 거의 안쓰는데요." <녹취> "교과서는 한 번도 안 봤어요." <녹취>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도 EBS가?) 다 그걸로 100% 반영돼서 나와요" <녹취> 교사 : "거기서 70% 이상 나온다는데 그거 말고 다른 수업하면 들을 아이들이 없어요."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가 시작됐습니다. 올해 수능도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이어 EBS교재에서 70% 이상이 출제됩니다. 이처럼 EBS교재의 수능 연계비율이 높아지면서,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보다 EBS교재가 더 중시되고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교육비 절감과 쉬운 수능을 목표로 추진한 EBS-수능 연계정책이,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데요, 그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고등학교 3학년 교실, 거의 모든 수업이 EBS 교재의 문제 풀이로 진행됩니다. <인터뷰> 김지선 : "EBS로 풀고 기출 보고 다시 EBS 보고 계속 돌리고 있어요, 반복해서" 다른 참고서나 문제집은 물론이고, 교과서도 사라진지 오래됐습니다. <인터뷰> 이상현 : "교과서는 사놓고 안본 것도 많죠 진도가 전혀 안 나가니까." 학교 교과 학습도를 평가하는 내신시험마저도 EBS 교재에서 출제될 정돕니다. <인터뷰> 지용수 :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도 수업한 거에서 내야 하니까 EBS교재로 수업했으니까요." EBS 교재에 대한 절대적 의존, 학생들은 일단 수능의 시험범위가 정해진 것처럼 보여 심리적으로는 다소 안정이 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박선영 : "미리 다 볼 수 있어서 뭔가 긴장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인터뷰> 이아윤 : "수능에 같은 지문이 출제되니까, 아무래도 한번 읽고 들어가면 풀기 수월하다고" 그러나 막상 공부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선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필수인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의 교재 수만 문과 16권, 이과 20권, 거기에 선택과목까지 합하면 수능시험 범위에 포함되는 EBS 교재 수는 30권 가까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인터뷰> 박정길 : "양적으로 부담이 돼요, 예전에는 기출문제만 공부하면 되었었는데, 이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되는 게 있는 거잖아요" <인터뷰> 김지선 : "풀고 풀어도 계속 남아있으니까, 되게 풀기 싫어지고 되게 질려요." 난이도 문제도 제기됩니다. EBS 교재의 수준이 대체로 중상위권 이상에 맞춰져 있어 어렵다는 게 학교 현장의 평갑니다. <인터뷰> 노은엽(고3 사회탐구 교사) : "일정한 난이도를 유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보통 중상위권 애들, 어떤 문제는 상위권 애들한테도 부담이 되는 문제도 있고.." <인터뷰> 박은경(고3 영어 교사) : "처음 맞닥뜨렸을 때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지문들이예요, 해석이 잘 되더라도 우리말로 봐도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학생들이 이미 본 지문을 가지고 수능에 실제로 반영이 되기 때문에 난이도가 좀 올라간 것 아닐까" EBS 측은 수능 연계율이 높아진 뒤, 수능 출제에 직접 활용될 수 있도록 문항을 만들면서,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워진 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인터뷰> 이창용 : "여러 가지 난이도나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평가 문항을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 즉 문항 완성도가 제대로 갖춰졌는가를 (평가원에서)굉장히 깊이있게 감수를 하거든요, (연계 때문인가요?) 연계 때문에 그래서 단순한 문항을 내면 그걸 가지고 어렵게 가공을 하거나 쉽게 하거나 하는 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많아지면서 어떤 학생들은 문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아예 외워버립니다. 지문이나 도표 등이 그대로 수능 시험에 출제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소라 : "바뀌지 않으니까 해설집을 줘서 그걸 외우라고 하고" <인터뷰> 이아윤 : "잘하는 애보다는 EBS를 더 많이 외운 애들이 더 시험을 잘치는 것 같아서" 대학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는지를 평가하고자 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가 문제풀이와 단순암기식으로 전락하는 상황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교 교실에서 교사들이 더 이상 창의적인 수업이나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지도를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남자교사 : "완전히 EBS문제풀이 기계처럼 돼버렸다 자기가 뭔가 가르치고 싶은 게 있어도 전혀 못 가르치고, 교재에 있는 대로 획일적인 해석만 해야 한다..." <인터뷰> 여자교사 : "선생님의 해석이라든가 학생들의 해석, 다양한 해석이 필요 없고 정답에 나와있는 해석이 교과서나 교사의 역량이 무시될 정도로 EBS 문제집이 중시되는 상황" 교육계는 EBS-수능의 지나친 연계가 공교육을 망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설현수(중앙대 교육학과) : "교사들의 창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학생들에게도 어떤 학교교육의 근본 목적인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의 신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그에 따라 학교교육이 약화되고 이것은 결국 공교육의 역행이라는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연 수능 문제가 EBS 교재와 어느 정도 유사하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2012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2번, 같은 질문, 같은 도표에 선택지까지 유사합니다. 거의 같은 예시를 놓고, 사상가의 주장으로 옳지 않은 것을 물었던 문제를 옳은 것을 묻는 문제로 바꿨습니다. <녹취> "EBS를 봤던 애들은 사상가가 누군지 알고 있어요. 사상가를 파악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자기 사고력 적용해 자료를 분석해야 하는데 그 단계가 없어진 거죠" 영어 36번, 같은 도표에 거의 똑같은 지문, 변형조차 거의 없는 문젭니다. 지문에 들어갈 어휘를 물었던 문제를 그 지문의 주장을 묻는 질문으로 바꿨는데, 선택지가 한글로 돼있습니다. <녹취> "어차피 내용 다 알고 있는데, 이걸 한글로 내면은... 사실 읽을 필요도 없는 문제죠"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전공서적을 이해할 능력을 평가하는, 언어영역의 비문학 문제까지도 EBS 교재와 똑같은 주제의 지문으로 출제했을 정돕니다. <녹취> 문학박사 : "본질적으로 언어 능력 평가는 이해, 감상 추론 능력 등을 평가해야 하는데, 배경지식을 준 상태에서 시험을 보면 그런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볼 수가 없죠." 이같은 높은 연계 출제 결과, 지난해 수능에서는 외국어 영역의 만점자가 3% 가까이 나왔을 정도로 수능의 절대 점수가 올라갔습니다. 교과부는 당초 목표였던 쉬운 수능을 실현했다고 자평합니다. 하지만 수능의 절대 점수가 올라간 이유가 문제가 정말 쉬워졌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EBS 교재를 미리 봤기 때문인지는 논란거립니다. 지난 20여 년간 수능 외국어 영역, 즉 영어에 출제된 단어의 수를 분석한 결과, 2000년대 중반까지 800~900단어 정도에 머물렀던 총 단어 수가 최근엔 1400단어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 <인터뷰> 임형택 : "수능은 분명이 더 어려워졌거든요. 그런데 만점자가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은 수능시험의 출제경향이 EBS의 출제 경향과 정확히 일치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 교과부가 EBS - 수능 연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또 다른 목표는 사교육비의 감솝니다. 학원에 가거나 다른 참고서를 사지 않고 EBS 교재만 봐도 수능을 잘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정종철(교과부) : "농산어촌지역 EBS 교재 활용비율 높아 사교육 혜택조차 받기 어려운 수험생에게 교육 격차 해소 차원에서 EBS 수능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지난해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약 24만 원으로 그 전해에 비해 줄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손주은 : "수능이 변별력이 없다 보니까, 다른 여러 가지 스펙이라든지 새로운 어떤 전형 요소에 대비해 필요한 사교육비가 오히려 파생적으로 늘어서 실질적으로 정부가 기대한 만큼 사교육비가 감소하지 않았다" 교과부는 사교육기관보다는 EBS가 교육의 주도권을 갖는 게 낫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정종철(교과부) : (학교교육이 EBS에 의해 거의 점령되다시피 한 상황인데요?) "사교육기관에 내준 주도권을 학교가 가져오는 과정에서 EBS에서 그 역할을 하도록 했다, EBS한테 내줬다는 게 사교육기관 즉 학원에 내준 것과는 차별화되는 것으로 달리 봐야 되지 않을까?"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면 공교육이 EBS로 대체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뷰> 김종철 : "수능을 국가가 책임지려면 어떤 수능으로 할 것인가 그걸 잘 생각해야 할 텐데 국가가 그 점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생긴 부작용인 사교육비 문제에만 몰두해 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진 게 아닌가?" EBS 교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더욱 까다로워졌습니다. 지난해 교재의 오답과 오류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뒤 EBS는 이를 없애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는 불만이나, 일부 비교육적인 지문 내용 등에 대한 지적은 여전합니다. <인터뷰> 이창용 : "아무래도 영어학습을 하는 것이고 훈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 어떤 가치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적인 어떤 그런 학습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집은 문제집일 뿐 교과서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공교육의 가치는 시험을 잘 보는 데에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종국 : "역사와 경험을 통해 누적된 그런 지식 내용을 담아야 하고, 교육적으로 정당한 가치 신념을 담아낸 것이어야 하고 그 나라의 언어 문자를 가장 정체성 있게 정선해서 만드는 것을 우리는 교과서라고 얘기합니다." 학벌 중시 풍토, 대학 서열화 등 근본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교육적 해법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가장 기본적인 목표를 흔드는 정책이라면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패럴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