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비누 할머니

입력 2001.10.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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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폐기름으로 재활용비누를 만들어 쓰면 환경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세정력도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하지만 워낙에 손이 많이 가고 냄새도 역해서 꽤 고되다는 이 일을 칠순 가까운 나이에 매일 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출동삼총사의 정혜경 프로듀서가 비누할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남양주시 덕소리 노인정.
건물 뒤편으로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아닌 빨래비누입니다.
이곳에 비누를 쌓아놓은 윤용란 할머니.
⊙기자: 한 만 개는 돼요?
⊙윤용란(67살): 만 개만 돼요? 한 상자에 20개씩, 30개씩...
셀 수도 없어요.
(비누를 만들어서) 갖고 내려오고 했으니까.
영감이 집 무너져서 식구들 다 죽는다고 난리쳐서...
⊙기자: 할머니네 집도 비누천지입니다.
울퉁불퉁한 모양의 색깔도 누런 비누.
모두 할머니가 손수 만든 것들입니다.
3년 전부터 비누를 만들어 온 윤 할머니는 동네에서도 비누할머니로 통합니다.
⊙인터뷰: 무공해비누 할머니라고 그러고 무공해할머니라고 그러는데 돼지기름이나 소기름, 식용유 기름, 뭐 폐유를 가지고 하니까 재활용 할머니 그런 소리들도 하시고...
⊙기자: 할머니네 집 옥상이 비누를 만드는 작업장입니다.
재생비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고기비계와 폐기름.
여기에 가성소다를 넣고 적당량의 물과 섞습니다.
비율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할머니는 여간해서 저울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이순자(이웃 주민): 잿물만 12kg을 넣고 콩기름은 저어가면서 분량을 맞추지.죽 쑤듯이, 눈대중으로...
⊙기자: 그래도 얼추 맞아요?
⊙이순자(이웃 주민): 맞죠, 맞으니까 그 많은 비누를 했죠.
⊙기자: 할아버지는 밤낮없이 비누를 만드는 할머니가 못 마땅했지만 혼자 애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허 훈(69살/윤 할머니 남편): 소굴 들어가는 것 같애 이거 만들러 올라오려면 도와줘야지.
혼자 하다가는 죽게 생겼는 걸.
⊙기자: 비누를 굳혀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일은 이제 할아버지 몫입니다.
어느 새 호흡이 척척 맞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하지만 요즘도 곧잘 티격태격입니다.
⊙윤용란: 똑바로 잘 잘라요.
잘 잘라.
⊙기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한사코 비누만들기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윤용란(67살): 덕소 한강물이 다 서울로 빠지잖아요.
오염이 얼마나 돼요.
여기 그냥 기름까지 다 수채로 들어가고 우리 네 고기국 끓여가지고 먹고서는 그냥 수채에다 부어봐요.
거기에 기름기가 덕지덕지 붙지.
⊙기자: 할머니는 한강으로 흘러들어갈 폐유를 비누재료로 쓰기 위해 곳곳에 공급처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고기비계는 읍내에 있는 단골 정육점에서 얻어옵니다.
이렇게 만든 비누는 동네사람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김필순(이웃 주민): 맨날 오면 줘서 가져가요.
⊙기자: 어때요, 쓰시면?
⊙김필순(이웃 주민): 쓰면 너무 좋아요.
⊙기자: 하지만 매일 같이 만드는 재생비누는 아무리 나눠줘도 쌓여만 갑니다.
할머니는 이 비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윤용란(67살): 누구든지 갖고 가라 필요한 사람들 갖고 가서 써 가지고 오염만 안 되게 말이지...
⊙기자: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담긴 윤 할머니의 재생비누.
가져갈 사람도 없고 마땅히 쌓아둘 곳도 없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정성스레 비누를 만듭니다.
KBS뉴스 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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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활용 비누 할머니
    • 입력 2001-10-26 20:00:00
    뉴스투데이
⊙앵커: 폐기름으로 재활용비누를 만들어 쓰면 환경에 좋을 뿐만 아니라 세정력도 아주 뛰어나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하지만 워낙에 손이 많이 가고 냄새도 역해서 꽤 고되다는 이 일을 칠순 가까운 나이에 매일 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출동삼총사의 정혜경 프로듀서가 비누할머니를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남양주시 덕소리 노인정. 건물 뒤편으로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다름아닌 빨래비누입니다. 이곳에 비누를 쌓아놓은 윤용란 할머니. ⊙기자: 한 만 개는 돼요? ⊙윤용란(67살): 만 개만 돼요? 한 상자에 20개씩, 30개씩... 셀 수도 없어요. (비누를 만들어서) 갖고 내려오고 했으니까. 영감이 집 무너져서 식구들 다 죽는다고 난리쳐서... ⊙기자: 할머니네 집도 비누천지입니다. 울퉁불퉁한 모양의 색깔도 누런 비누. 모두 할머니가 손수 만든 것들입니다. 3년 전부터 비누를 만들어 온 윤 할머니는 동네에서도 비누할머니로 통합니다. ⊙인터뷰: 무공해비누 할머니라고 그러고 무공해할머니라고 그러는데 돼지기름이나 소기름, 식용유 기름, 뭐 폐유를 가지고 하니까 재활용 할머니 그런 소리들도 하시고... ⊙기자: 할머니네 집 옥상이 비누를 만드는 작업장입니다. 재생비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고기비계와 폐기름. 여기에 가성소다를 넣고 적당량의 물과 섞습니다. 비율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할머니는 여간해서 저울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이순자(이웃 주민): 잿물만 12kg을 넣고 콩기름은 저어가면서 분량을 맞추지.죽 쑤듯이, 눈대중으로... ⊙기자: 그래도 얼추 맞아요? ⊙이순자(이웃 주민): 맞죠, 맞으니까 그 많은 비누를 했죠. ⊙기자: 할아버지는 밤낮없이 비누를 만드는 할머니가 못 마땅했지만 혼자 애쓰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허 훈(69살/윤 할머니 남편): 소굴 들어가는 것 같애 이거 만들러 올라오려면 도와줘야지. 혼자 하다가는 죽게 생겼는 걸. ⊙기자: 비누를 굳혀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일은 이제 할아버지 몫입니다. 어느 새 호흡이 척척 맞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하지만 요즘도 곧잘 티격태격입니다. ⊙윤용란: 똑바로 잘 잘라요. 잘 잘라. ⊙기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한사코 비누만들기를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윤용란(67살): 덕소 한강물이 다 서울로 빠지잖아요. 오염이 얼마나 돼요. 여기 그냥 기름까지 다 수채로 들어가고 우리 네 고기국 끓여가지고 먹고서는 그냥 수채에다 부어봐요. 거기에 기름기가 덕지덕지 붙지. ⊙기자: 할머니는 한강으로 흘러들어갈 폐유를 비누재료로 쓰기 위해 곳곳에 공급처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고기비계는 읍내에 있는 단골 정육점에서 얻어옵니다. 이렇게 만든 비누는 동네사람들에게 큰 인기입니다. ⊙김필순(이웃 주민): 맨날 오면 줘서 가져가요. ⊙기자: 어때요, 쓰시면? ⊙김필순(이웃 주민): 쓰면 너무 좋아요. ⊙기자: 하지만 매일 같이 만드는 재생비누는 아무리 나눠줘도 쌓여만 갑니다. 할머니는 이 비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윤용란(67살): 누구든지 갖고 가라 필요한 사람들 갖고 가서 써 가지고 오염만 안 되게 말이지... ⊙기자: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담긴 윤 할머니의 재생비누. 가져갈 사람도 없고 마땅히 쌓아둘 곳도 없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정성스레 비누를 만듭니다. KBS뉴스 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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