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인식 논란, 언론의 현주소는?

입력 2012.09.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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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고 안철수 교수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석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구도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후보들의 활동과 발언 하나하나가 관심사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링에 오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관련 발언이 최근 논란이 됐습니다.

언론들도 이 사안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도 발견됐습니다.

최정근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최기자, 대선 후보의 역사관 논란, 이전 대선 때는 거의 불거지지 않았었죠?

유독 이번 대선에서 과거사 논란과 정치 공방이 심해졌는데, 이유가 뭡니까?

<답변>

네, 무엇보다도 박근혜 후보가 유력한 대선 후보이기 때문이겠죠.

현재 언급되는 과거사라는 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벌어진 일들 아닙니까?

사적으로 부친이 집권한 시절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이 남다를 수 있는 만큼 다른 후보에 비해 더 큰 관심을 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인혁당, 즉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한 이번 논란도 지난 10일 박근혜 후보의 라디오 인터뷰 발언에서 시작됐습니다.

<녹취> 손석희 : "그동안에 정치 과정에서 나름 깊이 생각하고 사과한다는 말도 일부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예를 들면 유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들 얘기하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서 혹시 사과할 생각이 있으신 건지요?"

<녹취> 박근혜 :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또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제가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녹취> 손석희 : "거기서 특별히 더 진전된 것은 없다?"

<녹취> 박근혜 : "예. 왜냐하면, 다른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똑같은 대법원에서."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즉각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녹취> 유인태(민주통합당 의원) : "아버지 때 피해당한 분들에게 죄송하다, 부관참시하면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용진(민주통합당 대변인) : "1차 인혁당 사건과 75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2차 인혁당 사건을 헷갈리고 있는 것이아니냐..."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박 후보는 발언 사흘 만에 유가족을 향한 위로의 말을 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녹취> 박근혜(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 "전부터 제가 당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참 죄송하고 또 이렇게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 연장에서 같은 얘기입니다."

야권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공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면, 여권은 이번 논란 자체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팽팽한 공방을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질문> 대선 후보들의 역사관을 검증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더욱 객관적이고 면밀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이번 논란에 대한 보도가 정치권의 공방이나 언론사의 성향에 매몰돼버린 면이 있지는 않았나요?

<답변>

그렇습니다.

언론사에 따라 이번 논란을 바라보고 보도하는 태도가 무척 달랐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을 중요하게 다뤄 톱기사로 삼는 경우도 있었고,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정치권에서 오간 발언만을 단순 중계하는 데 그친 언론도 있었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이 나온 직후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 색채의 신문들은 박 후보의 역사관이 의심된다며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12.9.11) : "‘통합 행보’한다는 박근혜, 인혁당 사건 인식은 23년 전 그대로"

<녹취> 한겨레(12.9.11) :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을 두고 두 개의 판결이었다며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얼버무리는 것은 결국 5년 전의 재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터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가 민주국가를 이끌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보수 신문들 반응은 달랐습니다.

발언 사실을 전달하는 짧은 기사를 내보냈을 뿐입니다.

<녹취> 조선일보(12.9.11) : "역사평가 논란, “인혁당 사건 피해자 문제 앞으로의 판단에 맡기자“

<녹취> 중앙일보(12.9.11) : "유신 체제 시절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문제에 대해선 “그 부분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 부분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답을 한 번 한 적이 있다“고만 했다."

인혁당 발언이 정치 쟁점으로 부각된 이후에야 점차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정치 공방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미디어비평이, 박 후보의 발언 이후, 주요 일간지의 관련 보도 횟수를 살펴봤더니 조선이 10건, 중앙과 동아가 13건씩, 한겨레와 경향은 각각 35건 안팎으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지상파 뉴스들도 보수 신문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정치권 공방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다가 박근혜 후보의 유족에 대한 위로 발언을 하자 사과를 했다면서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녹취> KBS 뉴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녹취> SBS 뉴스 : "박 후보는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당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고 유가족들이 동의하면 찾아뵙겠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이희완(민언련 사무처장) : "처음에는 거의 묵살하다시피 보도를 하지 않다가 이후에 가서는 논란이 재점화되고 확산되니까 그 논란을 키우기 형식이기 보다는 논란을 축소시키고 박근혜 후보가 마치 사과를 한 것처럼 호도해서 보도를 하면서 관련된 내용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보도 행태를 보인 거죠."

<질문> 언론사마다 보도가 참 많이 달랐군요.

그런데 미래를 봐야지 왜 자꾸 과거에만 매달려 있느냐,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검증하는 게 왜 필요한가요?

<답변>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걸 제대로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정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느냐는 단순히 과거의 일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대한 인식은 곧 미래의 국정 운영, 통치 방식과 직접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고 나라를 이끌어나갈지를 판단하는 근거와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 정근식(서울대 교수) :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헌법으로 보면 5년간 국정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입니다. 근데 5년간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고 때때로 그 영향이 몇십 년, 백 년, 이렇게 갈 수도 있는, 5년간의 잘못이. 그렇잖아요? 불가역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질문> 그런 검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심층적인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앞에서도 살펴봤지만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 이른바 진영 논리에 묻혀서 좀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죠?

<답변>

네, 맞습니다.

반드시 되짚고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사안을 상대적으로 덜 보도한 쪽은 물론이고 의제로 삼아 기사를 쏟아낸 쪽도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사 논란과 관련해 제대로 후보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충분한 조명이 필요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1964년, 중앙정보부는 북한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차 인혁당 사건입니다.

2차 인혁당 사건은 10년 뒤에 일어났는데요,

1974년 중앙정보부가 유신 반대 시위를 한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그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했습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된 180여 명 가운데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8명이었는데요,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이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훗날 관련자 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점과 조사 과정의 고문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재심 판결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녹취> 조선일보(2007년 1월 24일) :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위법한 수사.재판의 희생양이 됐던 8명의 숨진 피고인들은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했고,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게 됐다."

무죄라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졌고 국가 권력에 의한 범죄행위라는 점에서 사법 살인이라고까지 불립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이런 역사적 사실이충분히 설명이 된 뒤에야 박 후보의 발언을 어떻게 볼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보수, 진보 없이 대부분의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알리는 데 소홀했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과 역사인식의 의미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만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12.9.13 ) : "박근혜, 인혁당 피해자들의 아픔 깊이 이해"

<녹취> 중앙일보(12.9.14) : "인혁당 사건 유가족이 동의하시면 뵙겠다"

<녹취> 한겨레(12.9.12) : "인혁당 사실 관계마저 호도, 자기 신념에 갇힌 박근혜"

<녹취> 경향신문(12.9.13) :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

논란 자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모습을 보인 보수 언론들의 태도는 분명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반면, 박 후보 공격에만 치중한 듯한 진보 성향 언론의 태도 역시 신중한 검증으로 보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교수) : "과거를 아예 잊자 하는 한 쪽이 있었는가 하면 또 지나치게 문제를 과거에만 너무 몰두하는 그런 부분들에서 이 과거라는 문제가 분명히 정치 쟁점화가 돼야 하고 후보들의 자질을 점검해보는 중요한 리트머스라는 생각을 갖고 좀 더 꼼꼼히 따져보는 일들 이런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 앞으로 대선 운동이 본격화되면 역사 인식에 대한 공방도 더 격화될 수 있겠죠?

이럴 때 우리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답변>

이런 중요한 시기일수록, 언론이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만큼 객관적인 태도와 심층적인 분석 보도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인혁당 사건 말고도 5.16과 유신 평가, 장준하 선생 사인 등 과거사와 관련한 질문을 꾸준히 받으며 연일 검증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12.7.17) : "5.16은 불가피한 선택, 바른 판단이었다 생각"

<녹취> 경향신문1(2.8.21) : "박근혜, 장준하 타살 의혹엔 “과거 말고 미래 얘기하자”"

<녹취> 서울신문(12.9.14) :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는 늘 공과 과,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논쟁을 거쳐 박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에 대해서는 국민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과거 사건 그 자체의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즉 아버지 시절의 문제를 그 딸에게 직접 추궁하는 것은, 아버지의 업적을 딸의 성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언론들은 현재까지는 주로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날카로운 검증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역사관 역시 언제든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 대한민국이 이룩한 여러 성과와 문제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대선 과정에서 항상 제기되게 마련이고, 그에 대한 후보의 답변은 엄정한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 논란이 된 사안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는지는 반드시 검증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정근식(서울대 교수) : "아무리 민주정부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과가 없을 수가 없고 아무리 보수정부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끌어온 과정에서 성취가 없을 수 없는데 저는 그러니까 과거에 과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인식 위에서만 21세기 정치적 리더십이 튼튼하게 성립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좀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언론이 지금처럼 각자의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후보 감싸기 혹은 후보 깎아내리기에만 머물러서는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더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이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자체의 철저한 반성과 토론을 통해 역사 평가와 후보 검증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교수) : "역사의식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물어봐야 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물어봐야 될지에 대한 부분들이 충분해야 된다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역사 의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 바깥에서의 서베이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점검해 보는 일들, 이런 일들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합니다.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평가를 하느냐는 당연히 검증해야 할 부분입니다.

언론은 국민, 유권자를 대신해 더욱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입니다.

<앵커 멘트>

오늘은 최근에 쟁점이 된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조명했습니다만 미디어비평은 앞으로 다른 대선 후보들을 둘러싼 논란이 부각될 때에도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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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사 인식 논란, 언론의 현주소는?
    • 입력 2012-09-22 08:50:28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고 안철수 교수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석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구도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후보들의 활동과 발언 하나하나가 관심사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링에 오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관련 발언이 최근 논란이 됐습니다. 언론들도 이 사안을 비중 있게 다뤘는데요,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점도 발견됐습니다. 최정근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최기자, 대선 후보의 역사관 논란, 이전 대선 때는 거의 불거지지 않았었죠? 유독 이번 대선에서 과거사 논란과 정치 공방이 심해졌는데, 이유가 뭡니까? <답변> 네, 무엇보다도 박근혜 후보가 유력한 대선 후보이기 때문이겠죠. 현재 언급되는 과거사라는 게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벌어진 일들 아닙니까? 사적으로 부친이 집권한 시절에 벌어진 일들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인식이 남다를 수 있는 만큼 다른 후보에 비해 더 큰 관심을 받은 측면이 있습니다. 인혁당, 즉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한 이번 논란도 지난 10일 박근혜 후보의 라디오 인터뷰 발언에서 시작됐습니다. <녹취> 손석희 : "그동안에 정치 과정에서 나름 깊이 생각하고 사과한다는 말도 일부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예를 들면 유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들 얘기하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서 혹시 사과할 생각이 있으신 건지요?" <녹취> 박근혜 :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또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답을 제가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녹취> 손석희 : "거기서 특별히 더 진전된 것은 없다?" <녹취> 박근혜 : "예. 왜냐하면, 다른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똑같은 대법원에서."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즉각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녹취> 유인태(민주통합당 의원) : "아버지 때 피해당한 분들에게 죄송하다, 부관참시하면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용진(민주통합당 대변인) : "1차 인혁당 사건과 75년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 2차 인혁당 사건을 헷갈리고 있는 것이아니냐..." 인혁당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습니다. 파장이 커지자 박 후보는 발언 사흘 만에 유가족을 향한 위로의 말을 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녹취> 박근혜(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 "전부터 제가 당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참 죄송하고 또 이렇게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 연장에서 같은 얘기입니다." 야권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후보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공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면, 여권은 이번 논란 자체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태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팽팽한 공방을 이어가는 상황입니다. <질문> 대선 후보들의 역사관을 검증하는 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서 더욱 객관적이고 면밀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이번 논란에 대한 보도가 정치권의 공방이나 언론사의 성향에 매몰돼버린 면이 있지는 않았나요? <답변> 그렇습니다. 언론사에 따라 이번 논란을 바라보고 보도하는 태도가 무척 달랐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을 중요하게 다뤄 톱기사로 삼는 경우도 있었고,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정치권에서 오간 발언만을 단순 중계하는 데 그친 언론도 있었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이 나온 직후 한겨레와 경향 등 진보 색채의 신문들은 박 후보의 역사관이 의심된다며 비판적인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12.9.11) : "‘통합 행보’한다는 박근혜, 인혁당 사건 인식은 23년 전 그대로" <녹취> 한겨레(12.9.11) :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을 두고 두 개의 판결이었다며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얼버무리는 것은 결국 5년 전의 재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일 터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과연 그가 민주국가를 이끌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른바 보수 신문들 반응은 달랐습니다. 발언 사실을 전달하는 짧은 기사를 내보냈을 뿐입니다. <녹취> 조선일보(12.9.11) : "역사평가 논란, “인혁당 사건 피해자 문제 앞으로의 판단에 맡기자“ <녹취> 중앙일보(12.9.11) : "유신 체제 시절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문제에 대해선 “그 부분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그래서 그 부분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고 답을 한 번 한 적이 있다“고만 했다." 인혁당 발언이 정치 쟁점으로 부각된 이후에야 점차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정치 공방을 전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미디어비평이, 박 후보의 발언 이후, 주요 일간지의 관련 보도 횟수를 살펴봤더니 조선이 10건, 중앙과 동아가 13건씩, 한겨레와 경향은 각각 35건 안팎으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지상파 뉴스들도 보수 신문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습니다. 정치권 공방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다가 박근혜 후보의 유족에 대한 위로 발언을 하자 사과를 했다면서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녹취> KBS 뉴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녹취> SBS 뉴스 : "박 후보는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당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고 유가족들이 동의하면 찾아뵙겠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이희완(민언련 사무처장) : "처음에는 거의 묵살하다시피 보도를 하지 않다가 이후에 가서는 논란이 재점화되고 확산되니까 그 논란을 키우기 형식이기 보다는 논란을 축소시키고 박근혜 후보가 마치 사과를 한 것처럼 호도해서 보도를 하면서 관련된 내용을 죽이려고 하는 그런 보도 행태를 보인 거죠." <질문> 언론사마다 보도가 참 많이 달랐군요. 그런데 미래를 봐야지 왜 자꾸 과거에만 매달려 있느냐, 이런 주장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검증하는 게 왜 필요한가요? <답변> 대선 후보의 역사 인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걸 제대로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정치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어떤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느냐는 단순히 과거의 일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대한 인식은 곧 미래의 국정 운영, 통치 방식과 직접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고 나라를 이끌어나갈지를 판단하는 근거와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인터뷰> 정근식(서울대 교수) : "대통령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헌법으로 보면 5년간 국정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입니다. 근데 5년간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고 때때로 그 영향이 몇십 년, 백 년, 이렇게 갈 수도 있는, 5년간의 잘못이. 그렇잖아요? 불가역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검증을 해야 합니다." <질문> 그런 검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심층적인 평가와 분석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앞에서도 살펴봤지만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 이른바 진영 논리에 묻혀서 좀 부족했다는 평가가 있죠? <답변> 네, 맞습니다. 반드시 되짚고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번 사안을 상대적으로 덜 보도한 쪽은 물론이고 의제로 삼아 기사를 쏟아낸 쪽도 진영 논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과거사 논란과 관련해 제대로 후보 검증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충분한 조명이 필요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1964년, 중앙정보부는 북한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 인민혁명당을 적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1차 인혁당 사건입니다. 2차 인혁당 사건은 10년 뒤에 일어났는데요, 1974년 중앙정보부가 유신 반대 시위를 한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그 배후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했습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된 180여 명 가운데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가 8명이었는데요,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이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그런데 훗날 관련자 혐의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점과 조사 과정의 고문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임이 밝혀졌습니다. 결국,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재심 판결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녹취> 조선일보(2007년 1월 24일) : "유신정권에 반대해 민주화운동을 했다가 위법한 수사.재판의 희생양이 됐던 8명의 숨진 피고인들은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했고,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게 됐다." 무죄라는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졌고 국가 권력에 의한 범죄행위라는 점에서 사법 살인이라고까지 불립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이런 역사적 사실이충분히 설명이 된 뒤에야 박 후보의 발언을 어떻게 볼지를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보수, 진보 없이 대부분의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알리는 데 소홀했습니다. 박 후보의 발언과 역사인식의 의미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만을 드러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12.9.13 ) : "박근혜, 인혁당 피해자들의 아픔 깊이 이해" <녹취> 중앙일보(12.9.14) : "인혁당 사건 유가족이 동의하시면 뵙겠다" <녹취> 한겨레(12.9.12) : "인혁당 사실 관계마저 호도, 자기 신념에 갇힌 박근혜" <녹취> 경향신문(12.9.13) :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 논란 자체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모습을 보인 보수 언론들의 태도는 분명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반면, 박 후보 공격에만 치중한 듯한 진보 성향 언론의 태도 역시 신중한 검증으로 보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교수) : "과거를 아예 잊자 하는 한 쪽이 있었는가 하면 또 지나치게 문제를 과거에만 너무 몰두하는 그런 부분들에서 이 과거라는 문제가 분명히 정치 쟁점화가 돼야 하고 후보들의 자질을 점검해보는 중요한 리트머스라는 생각을 갖고 좀 더 꼼꼼히 따져보는 일들 이런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질문> 앞으로 대선 운동이 본격화되면 역사 인식에 대한 공방도 더 격화될 수 있겠죠? 이럴 때 우리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답변> 이런 중요한 시기일수록, 언론이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그만큼 객관적인 태도와 심층적인 분석 보도가 필요합니다. 박근혜 후보의 경우 인혁당 사건 말고도 5.16과 유신 평가, 장준하 선생 사인 등 과거사와 관련한 질문을 꾸준히 받으며 연일 검증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녹취> 조선일보(12.7.17) : "5.16은 불가피한 선택, 바른 판단이었다 생각" <녹취> 경향신문1(2.8.21) : "박근혜, 장준하 타살 의혹엔 “과거 말고 미래 얘기하자”" <녹취> 서울신문(12.9.14) :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는 늘 공과 과,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논쟁을 거쳐 박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에 대해서는 국민 전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나 박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로 과거 사건 그 자체의 책임을 물어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갖습니다. 즉 아버지 시절의 문제를 그 딸에게 직접 추궁하는 것은, 아버지의 업적을 딸의 성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언론들은 현재까지는 주로 박근혜 후보의 역사 인식에 대해 날카로운 검증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데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역사관 역시 언제든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기 대한민국이 이룩한 여러 성과와 문제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대선 과정에서 항상 제기되게 마련이고, 그에 대한 후보의 답변은 엄정한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에 대해서 논란이 된 사안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또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보는지는 반드시 검증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 정근식(서울대 교수) : "아무리 민주정부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과가 없을 수가 없고 아무리 보수정부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끌어온 과정에서 성취가 없을 수 없는데 저는 그러니까 과거에 과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인식 위에서만 21세기 정치적 리더십이 튼튼하게 성립할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좀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언론이 지금처럼 각자의 정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후보 감싸기 혹은 후보 깎아내리기에만 머물러서는 유권자들에게 혼란만 더하게 될 것입니다. 언론이 제 몫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자체의 철저한 반성과 토론을 통해 역사 평가와 후보 검증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인터뷰> 원용진(서강대 교수) : "역사의식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물어봐야 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을 물어봐야 될지에 대한 부분들이 충분해야 된다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역사 의식에 대한 내부의 치열한 토론, 바깥에서의 서베이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점검해 보는 일들, 이런 일들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합니다.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미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선 후보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평가를 하느냐는 당연히 검증해야 할 부분입니다. 언론은 국민, 유권자를 대신해 더욱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입니다. <앵커 멘트> 오늘은 최근에 쟁점이 된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조명했습니다만 미디어비평은 앞으로 다른 대선 후보들을 둘러싼 논란이 부각될 때에도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분석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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