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 부른 ‘불산사고’ 보도

입력 2012.10.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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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8일, 불산 누출 사고가 난 경북 구미를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주민 3천 여 명은 여전히 고통이 심각한 상황인데요.

여기에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사고수습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미디어비평 첫 순서로 홍희정 기자와 함께 불산 누출 보도를 집중 점검해 봅니다.

<질문>

홍기자, 구미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 초기부터 언론이 어떻게 보도를 해왔는지 먼저 살펴볼까요?

<답변>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언론은 구미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 정도로 다뤘습니다.

그나마 사고가 난 후 며칠 뒤에는 언론에서 그 내용이 잊혀지는 듯 했는데요.

구미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방송사들은 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 누출 사고를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녹취> 신지혜 리포트(KBS9 9.27) : "(오늘 오후 경북 구미 화공약품 가공공장에서 원료탱크가 폭발해 12명이 숨지거나 다쳤습니다.)"

<녹취> 이홍갑 리포트(SBS8 9.27 ) :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근로자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사고 관련 소식은 방송 뉴스에서 사라졌습니다.

신문도 마찬가지.

후속 피해를 우려한다는 전문가의 의견까지 들며 불산 누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기사는 이틀 이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경북대 화학과 정종화 교수는 “불산은 이화성이 강한 용액은 아니지만 공기중으로 확산될 경우 인체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불산이 어디까지 퍼져 나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고는 갈수록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다시 주요 뉴스로 등장했습니다.

반경 700m 화학폭탄 맞은 듯 잎도 열매도 만지면 부서져.

가스유출 5일째...주민 수백 명 두통·구토 치료.

<녹취> 신지혜리포트(KBS9 10.5 ) : "치료를 받은 주민은 오늘 하루만 천 명을 넘어서 2천 명에 이릅니다. 가축과 농작물 피해뿐만 아니라 지역 생태계 자체가 무너져 후유증이 계속될 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

지난 8일 정부가 구미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나서야 방송은 비로소 첫 번째 뉴스로 이 사고를 다뤘습니다.

<녹취> 김명환 리포트(KBS9 10.8 ) : "구미 불산 누출사고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하고 오늘 중 모든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은 정부가 늑장대응을 했고 사고에 대한 위기 대응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달 27일 사고 발생부터 이날까지 보여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수준이다. 미숙한 초동대응과 허술한 대처는 당국의 안전관리 수준이 무방비나 다름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질문>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대해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는데, 사실 언론도 이렇게 심각한 사고인 줄 몰랐던 거죠?

<답변>

네, 사건당일 지역방송국에서는 이 사고를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불산이라는 생소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뿐더러 이렇게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 못했던 겁니다.

현장 취재에 나선 기자들 또한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기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방독면이나 마스크만 쓴 채 보도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습니다.

<녹취> 도성진 리포트(MBC 9.27 ) : "이렇게 제가 현장에서 마스크를 끼고 방송을 해야 될 정도로 여기까지 유독가스가 심하게 퍼진 상태인데요."

<인터뷰> 문 일(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 "불산 이 분자 된 공기보다 가볍습니다. 이게 피부로도 들어옵니다 이게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사실은 온몸을 막을 수 있는 그런 장구를 하는 것이 제일 좋죠"

현장 기자들은 화재나 LP가스사고 같은 단순사고로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대구지역 방송국 기자 :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취재하는데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독면을 챙겨서 현장에 갔어요. 그런데 방독면만 쓰는 것으론 불산을 막는데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역 방송국들은 주민들의 대피 요령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취재나 보도방식은 재난방송 매뉴얼을 참고하지 않고, 재난 사고의 판단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KBS 재난방송 매뉴얼 (나)사고 혹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대규모 환경오염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유독성 물질 또는 방사능이 유출됐거나 유출될 위험이 매우 커졌을 경우 상황에 따라 재난방송 단계를 정해 방송을 실시한다. (마.)화재 현장은 유독가스가 남아있고 붕괴위험이 있으므로 현장 접근은 안전이 확인되기 전에는 하지 않는다.
언론 역시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만큼누출된 불산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취> 이종웅 리포트(SBS 9.28) : "전혀 모르고 연기만 조금 피하면 안 되겠나 하면서 계속 일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양병운 리포트(SBS 10.2) : "얼마나 독하고 얼마나 우리 몸에 먹으면 해롭다는 자체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애들이 인터넷보고 만지면 안 된다..."

<질문>

결국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도 이번 사고 앞에 속수무책이었군요.

추석 연휴를 넘기면서 이 사고는 다시 주요 뉴스로 등장했는데, 그 사이 SNS에서는 괴담까지 번졌다면서요?

<답변>

‘불산’으로 불리고 있는 ‘불화수소산’은 유리까지 녹일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인데요.

언론이 불산 누출 사고 보도에 소극적인 가운데 SNS에서는 불산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됐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이틀 뒤, 추석연휴가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들의 행보와 캠프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불산 사고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불산이 지나간 구미의 농작물은 농심과 함께 타버렸고, 마을은 결국 폐허가 됐습니다.

불산 누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언론이 잠잠하자 SNS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방사능 터졌을 땐 모금까지 하던 나라가 정작 구미 가스 사건 때는 관심도 없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SNS와 인터넷매체를 통해 불산 누출의 심각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확인되지 않는 내용들이 한때 괴담으로까지 번져 불안감을 더 크게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뒷북이지만 내가 알기론 불산은 뼈를 녹이기 때문에 불산에 노출된 부위에 칼슘 주사같은 것에 맞아야하는 것으로 안다. 극소량에 노출돼도 위험한데 정부에서는 그냥 방치만 하는구나

스치기만 해도 사망?...불안 조장 ‘불신괴담’

이로 인해 사고 발생 12일이 지났는데도 피해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일반인의 불안감이 좀처럼 가라않지 않고 있다. 이는 불산이 비교적 생소한 화학물질인데다 관련기관들이 초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불산의 위험성을 언론이 일찍 알리지 않았던 것은 문제를 더 키운 셈이 됐습니다.

게다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터진 사고라 더욱 언론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습니다.

<인터뷰> 최민성(한신대학교 교수/문화평론가) : "거기에 가장 크게 작용했던 문제는 우리 사회에 굉장히 뿌리 깊은 수도권 중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불산 사고가 서울이나 경기 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이번과 같은 보도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피해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고 피해 주민의 숫자도 굉장히 많고 피해 지역도 광범위 함에도 불구하고, 중앙 언론에서 굉장히 침묵했던 것은 그런 뿌리 깊은 수도권 중심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질문>

늦었지만 구미 지역이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이후부터는 언론의 보도량이 급증하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다행인 상황으로 보이는데요.

<답변>

문제는 보도량만 급증했을 뿐, 이번에 드러난 산업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사고의 원인을 일부 근로자들의 실수로 보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데 한계를 보였습니다.

불산이 누출된 사고 당시 현장의 CCTV가 공개되자 언론은 집중적으로 이를 보도했습니다.

<녹취> 이재민 리포트(KBS9 10.9 ) : "작업자들이 불화수소를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옮기기 위해 호스를 연결하려는 순간, 불산 가스가 갑자기 솟구쳐 오릅니다. 희뿌연 연기가 사라지자 작업자들은 보이지 않고 불산 가스만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작업자가 실수로 원료밸브의 잠금장치를 건드려 가스가 분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은 한목소리로 사고 당시 작업 현장에서 숨진 근로자들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당시 CCTV 화면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근로자 몇 명의 단순 실수라기보다는 안전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이 숨지는 모습을 방송 화면에서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산업위생실장) : "화학공장은 그런 벨브 하나가 열린다고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60년대 50년대 공장도 그러지 않았었어요. 이 중의 차단막 삼 중의 차단 막. 사람들이 실수 할 거다 라는 걸 가정한 상태의 안전 시스템들을 가동 시키거든요. 그런 것들이 전혀 안 이루어졌다는 건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적어도 인재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안전 시스템. 어떤 오류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려고 했어야 됐죠."

문제는 이 뿐 만이 아닙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구미 불산 가스 누출사고’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공장인 ‘휴브글로벌’이라는 업체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기업명이 아닌 지역명이 사고 이름 앞에 나오면 천재지변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히려 언론이 피해 지역 이름을 강조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녹취> 이종영리포트(KBS 10.8) "구미 농산물이라고 하면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판매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게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앞이 막막합니다."

이같은 언론 보도 속에서 구미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됐고 결국 주민 스스로 대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질문>

결국 정부와 지자체뿐 만 아니라 언론까지 이번 사고를 대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일텐데요.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답변>

이번 불산 가스유출 사고로 인해 화학적 재난 대응 시스템에 총체적인 구멍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언론이 이러한 구조적 허점이 개선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화학 산업 재해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과 주문을 내놓았습니다.

차제에 정부는 불산사고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전면 재점검해 실패백서를 만들어야한다.

마을 곳곳에 내려앉은 불산은 빗물과 함께 땅속에 스며들어 토양과 지하수 주변 하천을 오염시킬 위험성이 있다. 정부는 이런 3차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신속하고 광범위한 조사에 나서야한다.

언론은 구미와 유사한 환경인, 주택가 근처 화공약품 공장이 있는 지역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노윤정 리포트(KBS 10.10) : "유독물 관리 기준에 따라 정기 점검을 받고는 있지만 유독물 취급 공장이 470곳이 넘는데다 감독 기관도 제각각, 6곳으로 분산돼 체계적인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관심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민의 입장에서 관련기관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문 일(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해야 되는 매뉴얼들 이런 것들이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고 또 잘 돼 있는 부분도 있고 안 돼 있는 부분 도 있는데 너무 빈공간이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번기회에 잘 정리를 해야 하고 사실 더 중요한 거 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사실은 좀 국가적인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좀 그런 대책에 대해서 심도 있는 그런 논의를 했으면 좋겠어요."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관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정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이 그 바닥을 드러낸 것입니다.

최근 언론에 불산 누출 보도는 줄고 있지만 구미 지역은 여전히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사고가 재앙으로 번지는 화학 산업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언론의 정부 기관 감시와 재난보도 점검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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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 부른 ‘불산사고’ 보도
    • 입력 2012-10-20 11: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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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8일, 불산 누출 사고가 난 경북 구미를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습니다. 주민 3천 여 명은 여전히 고통이 심각한 상황인데요. 여기에 정부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지면서 사고수습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미디어비평 첫 순서로 홍희정 기자와 함께 불산 누출 보도를 집중 점검해 봅니다. <질문> 홍기자, 구미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 초기부터 언론이 어떻게 보도를 해왔는지 먼저 살펴볼까요? <답변>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언론은 구미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 정도로 다뤘습니다. 그나마 사고가 난 후 며칠 뒤에는 언론에서 그 내용이 잊혀지는 듯 했는데요. 구미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방송사들은 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불산 누출 사고를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녹취> 신지혜 리포트(KBS9 9.27) : "(오늘 오후 경북 구미 화공약품 가공공장에서 원료탱크가 폭발해 12명이 숨지거나 다쳤습니다.)" <녹취> 이홍갑 리포트(SBS8 9.27 ) : "경북 구미 국가산업단지 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근로자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사고 관련 소식은 방송 뉴스에서 사라졌습니다. 신문도 마찬가지. 후속 피해를 우려한다는 전문가의 의견까지 들며 불산 누출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지만, 기사는 이틀 이상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경북대 화학과 정종화 교수는 “불산은 이화성이 강한 용액은 아니지만 공기중으로 확산될 경우 인체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불산이 어디까지 퍼져 나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잊혀지는 듯 했던 이 사고는 갈수록 피해가 심각해지면서 다시 주요 뉴스로 등장했습니다. 반경 700m 화학폭탄 맞은 듯 잎도 열매도 만지면 부서져. 가스유출 5일째...주민 수백 명 두통·구토 치료. <녹취> 신지혜리포트(KBS9 10.5 ) : "치료를 받은 주민은 오늘 하루만 천 명을 넘어서 2천 명에 이릅니다. 가축과 농작물 피해뿐만 아니라 지역 생태계 자체가 무너져 후유증이 계속될 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 지난 8일 정부가 구미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나서야 방송은 비로소 첫 번째 뉴스로 이 사고를 다뤘습니다. <녹취> 김명환 리포트(KBS9 10.8 ) : "구미 불산 누출사고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하고 오늘 중 모든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언론은 정부가 늑장대응을 했고 사고에 대한 위기 대응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난달 27일 사고 발생부터 이날까지 보여준 정부의 미숙한 대응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수준이다. 미숙한 초동대응과 허술한 대처는 당국의 안전관리 수준이 무방비나 다름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질문>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대해 언론의 질타가 쏟아졌는데, 사실 언론도 이렇게 심각한 사고인 줄 몰랐던 거죠? <답변> 네, 사건당일 지역방송국에서는 이 사고를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불산이라는 생소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뿐더러 이렇게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 못했던 겁니다. 현장 취재에 나선 기자들 또한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기자들이 사고 현장에서 방독면이나 마스크만 쓴 채 보도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습니다. <녹취> 도성진 리포트(MBC 9.27 ) : "이렇게 제가 현장에서 마스크를 끼고 방송을 해야 될 정도로 여기까지 유독가스가 심하게 퍼진 상태인데요." <인터뷰> 문 일(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 "불산 이 분자 된 공기보다 가볍습니다. 이게 피부로도 들어옵니다 이게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 때문에 사실은 온몸을 막을 수 있는 그런 장구를 하는 것이 제일 좋죠" 현장 기자들은 화재나 LP가스사고 같은 단순사고로 생각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대구지역 방송국 기자 :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취재하는데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독면을 챙겨서 현장에 갔어요. 그런데 방독면만 쓰는 것으론 불산을 막는데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지역 방송국들은 주민들의 대피 요령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취재나 보도방식은 재난방송 매뉴얼을 참고하지 않고, 재난 사고의 판단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KBS 재난방송 매뉴얼 (나)사고 혹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대규모 환경오염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유독성 물질 또는 방사능이 유출됐거나 유출될 위험이 매우 커졌을 경우 상황에 따라 재난방송 단계를 정해 방송을 실시한다. (마.)화재 현장은 유독가스가 남아있고 붕괴위험이 있으므로 현장 접근은 안전이 확인되기 전에는 하지 않는다. 언론 역시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만큼누출된 불산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피해가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녹취> 이종웅 리포트(SBS 9.28) : "전혀 모르고 연기만 조금 피하면 안 되겠나 하면서 계속 일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양병운 리포트(SBS 10.2) : "얼마나 독하고 얼마나 우리 몸에 먹으면 해롭다는 자체를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저 애들이 인터넷보고 만지면 안 된다..." <질문> 결국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도 이번 사고 앞에 속수무책이었군요. 추석 연휴를 넘기면서 이 사고는 다시 주요 뉴스로 등장했는데, 그 사이 SNS에서는 괴담까지 번졌다면서요? <답변> ‘불산’으로 불리고 있는 ‘불화수소산’은 유리까지 녹일 정도로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인데요. 언론이 불산 누출 사고 보도에 소극적인 가운데 SNS에서는 불산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됐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이틀 뒤, 추석연휴가 이어지면서 대선 주자들의 행보와 캠프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불산 사고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불산이 지나간 구미의 농작물은 농심과 함께 타버렸고, 마을은 결국 폐허가 됐습니다. 불산 누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언론이 잠잠하자 SNS는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방사능 터졌을 땐 모금까지 하던 나라가 정작 구미 가스 사건 때는 관심도 없다.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화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SNS와 인터넷매체를 통해 불산 누출의 심각성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확인되지 않는 내용들이 한때 괴담으로까지 번져 불안감을 더 크게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뒷북이지만 내가 알기론 불산은 뼈를 녹이기 때문에 불산에 노출된 부위에 칼슘 주사같은 것에 맞아야하는 것으로 안다. 극소량에 노출돼도 위험한데 정부에서는 그냥 방치만 하는구나 스치기만 해도 사망?...불안 조장 ‘불신괴담’ 이로 인해 사고 발생 12일이 지났는데도 피해지역 주민은 물론이고 일반인의 불안감이 좀처럼 가라않지 않고 있다. 이는 불산이 비교적 생소한 화학물질인데다 관련기관들이 초기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불산의 위험성을 언론이 일찍 알리지 않았던 것은 문제를 더 키운 셈이 됐습니다. 게다가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터진 사고라 더욱 언론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습니다. <인터뷰> 최민성(한신대학교 교수/문화평론가) : "거기에 가장 크게 작용했던 문제는 우리 사회에 굉장히 뿌리 깊은 수도권 중심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불산 사고가 서울이나 경기 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이번과 같은 보도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피해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고 피해 주민의 숫자도 굉장히 많고 피해 지역도 광범위 함에도 불구하고, 중앙 언론에서 굉장히 침묵했던 것은 그런 뿌리 깊은 수도권 중심주의가 작동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질문> 늦었지만 구미 지역이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이후부터는 언론의 보도량이 급증하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다행인 상황으로 보이는데요. <답변> 문제는 보도량만 급증했을 뿐, 이번에 드러난 산업 현장의 문제를 개선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사고의 원인을 일부 근로자들의 실수로 보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데 한계를 보였습니다. 불산이 누출된 사고 당시 현장의 CCTV가 공개되자 언론은 집중적으로 이를 보도했습니다. <녹취> 이재민 리포트(KBS9 10.9 ) : "작업자들이 불화수소를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옮기기 위해 호스를 연결하려는 순간, 불산 가스가 갑자기 솟구쳐 오릅니다. 희뿌연 연기가 사라지자 작업자들은 보이지 않고 불산 가스만 계속 뿜어져 나옵니다. 작업자가 실수로 원료밸브의 잠금장치를 건드려 가스가 분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론은 한목소리로 사고 당시 작업 현장에서 숨진 근로자들의 실수를 지적하면서 당시 CCTV 화면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근로자 몇 명의 단순 실수라기보다는 안전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이 숨지는 모습을 방송 화면에서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김신범(노동환경건강연구소/산업위생실장) : "화학공장은 그런 벨브 하나가 열린다고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60년대 50년대 공장도 그러지 않았었어요. 이 중의 차단막 삼 중의 차단 막. 사람들이 실수 할 거다 라는 걸 가정한 상태의 안전 시스템들을 가동 시키거든요. 그런 것들이 전혀 안 이루어졌다는 건 이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다. 적어도 인재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안전 시스템. 어떤 오류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지목하려고 했어야 됐죠." 문제는 이 뿐 만이 아닙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구미 불산 가스 누출사고’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공장인 ‘휴브글로벌’이라는 업체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기업명이 아닌 지역명이 사고 이름 앞에 나오면 천재지변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산업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짚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오히려 언론이 피해 지역 이름을 강조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녹취> 이종영리포트(KBS 10.8) "구미 농산물이라고 하면 아주 부정적으로 보고 판매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게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앞이 막막합니다." 이같은 언론 보도 속에서 구미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됐고 결국 주민 스스로 대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질문> 결국 정부와 지자체뿐 만 아니라 언론까지 이번 사고를 대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문제일텐데요. 앞으로가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답변> 이번 불산 가스유출 사고로 인해 화학적 재난 대응 시스템에 총체적인 구멍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언론이 이러한 구조적 허점이 개선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화학 산업 재해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과 주문을 내놓았습니다. 차제에 정부는 불산사고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전면 재점검해 실패백서를 만들어야한다. 마을 곳곳에 내려앉은 불산은 빗물과 함께 땅속에 스며들어 토양과 지하수 주변 하천을 오염시킬 위험성이 있다. 정부는 이런 3차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신속하고 광범위한 조사에 나서야한다. 언론은 구미와 유사한 환경인, 주택가 근처 화공약품 공장이 있는 지역을 점검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노윤정 리포트(KBS 10.10) : "유독물 관리 기준에 따라 정기 점검을 받고는 있지만 유독물 취급 공장이 470곳이 넘는데다 감독 기관도 제각각, 6곳으로 분산돼 체계적인 관리가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은 언론의 관심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민의 입장에서 관련기관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이 요구된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문 일(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 : "실제로 사고가 났을 때 해야 되는 매뉴얼들 이런 것들이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고 또 잘 돼 있는 부분도 있고 안 돼 있는 부분 도 있는데 너무 빈공간이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이번기회에 잘 정리를 해야 하고 사실 더 중요한 거 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사실은 좀 국가적인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좀 그런 대책에 대해서 심도 있는 그런 논의를 했으면 좋겠어요."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관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정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이 그 바닥을 드러낸 것입니다. 최근 언론에 불산 누출 보도는 줄고 있지만 구미 지역은 여전히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사고가 재앙으로 번지는 화학 산업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언론의 정부 기관 감시와 재난보도 점검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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