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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제 18대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로 본 대선
입력 2012.11.17 (09:46) 미디어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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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여론조사 추이에 따라 후보 진영이 울고 웃기도 하죠.

요동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단순히 판세를 읽는 자료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 정치를 좌우하기까지 합니다.

여론조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요?

선거와 여론조사의 역사, 그리고 둘의 상관관계를 짚어봤습니다.

최정근 기자입니다.

<리포트>

우리나라 대선에 여론조사가 등장한 것은 25년 전, 1987년입니다.

6월 항쟁에 이은 6.29 선언과 개헌으로 15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바로 그 해입니다.

지지율이 오리무중이던 당시, 1노 3김, 후보 네 명은 저마다 승리를 장담하며 지지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갤럽이 우리 대선 사상 처음으로 가구 방문조사 기법으로 지지율을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예측은 실제 선거 결과와 들어맞았습니다.

1위 노태우 후보 득표율을 35.3%로 예측했는데, 실제 득표율은 36.6%, 1.3%포인트의 차이로 당선자를 맞혔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조사 결과는 당시 선거법 때문에 발표되지 못했고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언론도 선거가 끝난 뒤에야 여론조사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 : "여론조사 신뢰도 높아졌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현상은 사회 여론조사가 많이 활용됐다는 점이다. 이들 조사는 선거 결과를 거의 예측한 것으로 밝혀져 그동안 반신반의 해왔던 각종 사회조사가 널리 활용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인터뷰> 허진재(한국 갤럽 이사) :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노태우의 안정적인 당선이 예측 가능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나왔고요. 그로써 아 여론조사가 정확하고 믿을 만하고 내 생각 뿐 아니라 내 주위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대중의 목소리를 측정하는 도구구나 라는 인식을 강하게 하게 된 거죠."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선거운동 과정부터 여론조사가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녹취> KBS뉴스 : "국회의 대통령선거법 개정심의반은 오늘 인기투표와 모의투표 같은 여론조사는 허용하되 선거일 전 29일 동안에는 그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방송사들도 여론조사에 관심을 갖고 여론조사를 정식 의뢰해 선거 보도와 개표 방송에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도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녹취> KBS뉴스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에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39.5~39.6%의 득표율로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는데, 실제 42.0%의 득표로 김영삼 후보가 14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여론조사는,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에게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인터뷰> 김영원(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 "아무리 전문가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토론을 하더라도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보다는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민심을 읽는데 있어서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상황이거든요. 따라서 정당이나 투표후보자나 일반 유권자든지 여론조사에 대해서 선거 때는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거죠."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선거 판세에 직접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지율 1위를 지키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 대표직을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녹취> 동아일보 : “민심 드러났다” 이 대표 결단 촉구. 본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6.3%에 이르자 다른 경선주자 진영의 대표직 사퇴 요구가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자,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탈당과 함께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 지사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고 신한국당은 내홍을 겪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지사의 탈당 뒤 이회창 후보가 다시 지지율을 회복했지만, 여론조사 결과에 정치권이 요동친 사례로 남았습니다.

<녹취> 한겨레: "소신 실종, 지지율 따라 수십 명 의원들 우왕좌왕. 선거 여론 조사는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측면도 크다."

여론 조사의 이런 속성에 편승해 정치적 소신이나 명분보다 오직 조사 결과만을 좇아 행동하는 사례들이 이번 대선 과정에선 적잖이 나타났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더욱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우세가 계속되자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녹취> 연합뉴스 : "盧.鄭 후보단일화 협상 착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5일 후보단일화 협상 창구를 개설키로 하는 등 12월 대선의 최대변수로 부상한 두 진영간 후보단일화 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진통 끝에 결정한 단일화 방식도 여론조사였고 여기서 이긴 노무현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됐습니다.

이후, 투표 전날 정몽준 후보의 갑작스런 지지 철회로 판세가 요동쳐 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녹취> 한국일보 : "판별분석에서는 투표율이 73%이상 돼야 노 후보에게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투표율이 70.2%에 그쳤는데도 노 후보가 승리한 것을 보아 막판에 부동층의 상당수가 노 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이해된다."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이른바 언더독 효과가 나타나 급박한 상황에 놓인 노 후보에게 표가 쏠렸다는 해석입니다.

<인터뷰>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 "당선 가능성이 뒤 바뀌어서 이회찬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됐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니까. 그런 위기의식에 따른 노무현 후보 지지층의 집결. 그리고 지지층은 아니었어도 동정하는 표들. 이른바 언더 독 효과가 작동해서 플러스마이너스 상쇄했던 효과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언더독 효과와는 정반대로 유권자에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현상입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독보적인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녹취> 경향신문 : "지지율 60%대 육박, '이풍' 위력 어디까지"

<녹취> 한겨레 : "여론조사가 만든 '대세론 1년'. 1년여에 걸친 대선 여론조사의 추이는 '이명박 독주'로 간추릴 수 있다.
범여권의 실정으로 이반된 민심은 여론조사를 통해 이명박 지지로 나타났고 이게 다시 여론조사에 반영되면서 '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했다. 뚜렷한 정책 대결이 없는 이번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력을 떨쳤다."

지지율 우세에 힘입은 이명박 후보는 BBK 의혹과 네거티브 검증 속에서도 대세론을 굳히고 17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예측여론조사의 대 실패로 기록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큰 흠집이 났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15% 포인트 이상 앞서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문화일보 : "문화일보가 실시한 6.2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23.3%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는 0.7% 포인트, 간발의 차이로 겨우 당선됐습니다.

<녹취> 서울신문 : "못 믿을 여론조사. 이번 선거에서도 서울과 경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10% 넘게 크게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개표 결과와 들어맞지 않았다. 일각에서 숨은 5%를 넘어 숨은 10% 가능성을 제기할 때 이를 일축했던 전문가들만 무색하게 됐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는 줄곧 야당의 과반 확보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부실한 표본 추출과 낮은 응답률에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원(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 "예를 들면 2%라 함은 전화를 100명에게 돌렸는데 그 중에 특수한 2명만 응답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수는 응답을 안했는데 굳이 핸드폰으로 걸려온, ARS로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는 사람이 응답하지 않은 98명의 어떤 선거 경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이런 문제를 곰곰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과거 대선을 돌이켜보니 여론조사는 민심을 읽는 잣대이면서도 거꾸로 민심을 움직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대선 기간에는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또 예측은 얼마나 들어맞을지 큰 관심입니다.
  • 여론조사로 본 대선
    • 입력 2012-11-17 09:46:25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여론조사 추이에 따라 후보 진영이 울고 웃기도 하죠.

요동치는 여론조사 결과는 단순히 판세를 읽는 자료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 정치를 좌우하기까지 합니다.

여론조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대선에 큰 영향을 미쳤을까요?

선거와 여론조사의 역사, 그리고 둘의 상관관계를 짚어봤습니다.

최정근 기자입니다.

<리포트>

우리나라 대선에 여론조사가 등장한 것은 25년 전, 1987년입니다.

6월 항쟁에 이은 6.29 선언과 개헌으로 15년 만에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바로 그 해입니다.

지지율이 오리무중이던 당시, 1노 3김, 후보 네 명은 저마다 승리를 장담하며 지지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갤럽이 우리 대선 사상 처음으로 가구 방문조사 기법으로 지지율을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예측은 실제 선거 결과와 들어맞았습니다.

1위 노태우 후보 득표율을 35.3%로 예측했는데, 실제 득표율은 36.6%, 1.3%포인트의 차이로 당선자를 맞혔습니다.

하지만 이 예측조사 결과는 당시 선거법 때문에 발표되지 못했고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언론도 선거가 끝난 뒤에야 여론조사에 주목했습니다.

<녹취> 경향신문 : "여론조사 신뢰도 높아졌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새로운 현상은 사회 여론조사가 많이 활용됐다는 점이다. 이들 조사는 선거 결과를 거의 예측한 것으로 밝혀져 그동안 반신반의 해왔던 각종 사회조사가 널리 활용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인터뷰> 허진재(한국 갤럽 이사) :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노태우의 안정적인 당선이 예측 가능했습니다. 실제 그렇게 나왔고요. 그로써 아 여론조사가 정확하고 믿을 만하고 내 생각 뿐 아니라 내 주위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대중의 목소리를 측정하는 도구구나 라는 인식을 강하게 하게 된 거죠."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선거운동 과정부터 여론조사가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녹취> KBS뉴스 : "국회의 대통령선거법 개정심의반은 오늘 인기투표와 모의투표 같은 여론조사는 허용하되 선거일 전 29일 동안에는 그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방송사들도 여론조사에 관심을 갖고 여론조사를 정식 의뢰해 선거 보도와 개표 방송에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도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녹취> KBS뉴스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에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39.5~39.6%의 득표율로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는데, 실제 42.0%의 득표로 김영삼 후보가 14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여론조사는, 정치권과 유권자 모두에게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인터뷰> 김영원(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 "아무리 전문가들이 모여서 나름대로 토론을 하더라도 과학적인 여론조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보다는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민심을 읽는데 있어서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는 상황이거든요. 따라서 정당이나 투표후보자나 일반 유권자든지 여론조사에 대해서 선거 때는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거죠."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선거 판세에 직접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지율 1위를 지키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 대표직을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녹취> 동아일보 : “민심 드러났다” 이 대표 결단 촉구. 본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66.3%에 이르자 다른 경선주자 진영의 대표직 사퇴 요구가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자,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탈당과 함께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 지사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고 신한국당은 내홍을 겪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지사의 탈당 뒤 이회창 후보가 다시 지지율을 회복했지만, 여론조사 결과에 정치권이 요동친 사례로 남았습니다.

<녹취> 한겨레: "소신 실종, 지지율 따라 수십 명 의원들 우왕좌왕. 선거 여론 조사는 긍정적 측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측면도 크다."

여론 조사의 이런 속성에 편승해 정치적 소신이나 명분보다 오직 조사 결과만을 좇아 행동하는 사례들이 이번 대선 과정에선 적잖이 나타났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더욱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의 우세가 계속되자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가 단일화에 나섰습니다.

<녹취> 연합뉴스 : "盧.鄭 후보단일화 협상 착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국민통합 21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5일 후보단일화 협상 창구를 개설키로 하는 등 12월 대선의 최대변수로 부상한 두 진영간 후보단일화 협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진통 끝에 결정한 단일화 방식도 여론조사였고 여기서 이긴 노무현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됐습니다.

이후, 투표 전날 정몽준 후보의 갑작스런 지지 철회로 판세가 요동쳐 이회창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노무현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녹취> 한국일보 : "판별분석에서는 투표율이 73%이상 돼야 노 후보에게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투표율이 70.2%에 그쳤는데도 노 후보가 승리한 것을 보아 막판에 부동층의 상당수가 노 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이해된다."

불리한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이른바 언더독 효과가 나타나 급박한 상황에 놓인 노 후보에게 표가 쏠렸다는 해석입니다.

<인터뷰>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 "당선 가능성이 뒤 바뀌어서 이회찬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됐었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니까. 그런 위기의식에 따른 노무현 후보 지지층의 집결. 그리고 지지층은 아니었어도 동정하는 표들. 이른바 언더 독 효과가 작동해서 플러스마이너스 상쇄했던 효과가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언더독 효과와는 정반대로 유권자에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다수의 의견을 따라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현상입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독보적인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녹취> 경향신문 : "지지율 60%대 육박, '이풍' 위력 어디까지"

<녹취> 한겨레 : "여론조사가 만든 '대세론 1년'. 1년여에 걸친 대선 여론조사의 추이는 '이명박 독주'로 간추릴 수 있다.
범여권의 실정으로 이반된 민심은 여론조사를 통해 이명박 지지로 나타났고 이게 다시 여론조사에 반영되면서 '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했다. 뚜렷한 정책 대결이 없는 이번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력을 떨쳤다."

지지율 우세에 힘입은 이명박 후보는 BBK 의혹과 네거티브 검증 속에서도 대세론을 굳히고 17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예측여론조사의 대 실패로 기록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큰 흠집이 났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15% 포인트 이상 앞서 서울시장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문화일보 : "문화일보가 실시한 6.2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23.3%나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세훈 후보는 0.7% 포인트, 간발의 차이로 겨우 당선됐습니다.

<녹취> 서울신문 : "못 믿을 여론조사. 이번 선거에서도 서울과 경기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10% 넘게 크게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개표 결과와 들어맞지 않았다. 일각에서 숨은 5%를 넘어 숨은 10% 가능성을 제기할 때 이를 일축했던 전문가들만 무색하게 됐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는 줄곧 야당의 과반 확보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부실한 표본 추출과 낮은 응답률에 있습니다.

<인터뷰> 김영원(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 : "예를 들면 2%라 함은 전화를 100명에게 돌렸는데 그 중에 특수한 2명만 응답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수는 응답을 안했는데 굳이 핸드폰으로 걸려온, ARS로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는 사람이 응답하지 않은 98명의 어떤 선거 경향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이런 문제를 곰곰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과거 대선을 돌이켜보니 여론조사는 민심을 읽는 잣대이면서도 거꾸로 민심을 움직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번 대선 기간에는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또 예측은 얼마나 들어맞을지 큰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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