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냉혹했던 일제강점기, 단파 방송을 통해 항일 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가 68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김용덕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제는 불리해진 전황을 숨기기 위해 외국 방송 청취를 일절 금지합니다.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던 20대 중반의 고 이근창 선생은 그러나 임시정부의 라디오 단파방송 등을 몰래 듣고 주변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내레이션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미국이 이겨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니 조선 동포들은 미국과 영국을 도와라.
방송으로 항일운동을 하던 이 선생은 1년 만에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른바 '단파방송 수신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들은 3백여 명,
이들의 업적을 기려 훗날 기념비까지 세워졌습니다.
<인터뷰> 이장춘(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 "그때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놓는겁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이 선생은 광복도 맞이하지 못한 채 28살의 나이에 옥사하고 맙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이휘웅 씨.
아버지의 유품은커녕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지만 방송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부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휘웅(故 이근창 선생 아들) : "이런 곳에서 고생하시고 옥사하면서 고문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죠."
정부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68년 만에 고 이근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냉혹했던 일제강점기, 단파 방송을 통해 항일 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가 68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김용덕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제는 불리해진 전황을 숨기기 위해 외국 방송 청취를 일절 금지합니다.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던 20대 중반의 고 이근창 선생은 그러나 임시정부의 라디오 단파방송 등을 몰래 듣고 주변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내레이션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미국이 이겨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니 조선 동포들은 미국과 영국을 도와라.
방송으로 항일운동을 하던 이 선생은 1년 만에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른바 '단파방송 수신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들은 3백여 명,
이들의 업적을 기려 훗날 기념비까지 세워졌습니다.
<인터뷰> 이장춘(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 "그때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놓는겁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이 선생은 광복도 맞이하지 못한 채 28살의 나이에 옥사하고 맙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이휘웅 씨.
아버지의 유품은커녕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지만 방송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부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휘웅(故 이근창 선생 아들) : "이런 곳에서 고생하시고 옥사하면서 고문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죠."
정부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68년 만에 고 이근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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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국선열의 날’ 68년만 빛 본 방송 항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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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11-17 21:50:34
<앵커 멘트>
냉혹했던 일제강점기, 단파 방송을 통해 항일 투쟁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가 68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순국 선열의 날을 맞아 그의 발자취를 김용덕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제는 불리해진 전황을 숨기기 위해 외국 방송 청취를 일절 금지합니다.
당시 경성방송국에서 근무하던 20대 중반의 고 이근창 선생은 그러나 임시정부의 라디오 단파방송 등을 몰래 듣고 주변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내레이션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미국이 이겨 조선을 독립시킬 것이니 조선 동포들은 미국과 영국을 도와라.
방송으로 항일운동을 하던 이 선생은 1년 만에 결국 일본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른바 '단파방송 수신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들은 3백여 명,
이들의 업적을 기려 훗날 기념비까지 세워졌습니다.
<인터뷰> 이장춘(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 "그때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외국의 방송을 듣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놓는겁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이 선생은 광복도 맞이하지 못한 채 28살의 나이에 옥사하고 맙니다.
당시 3살이던 아들 이휘웅 씨.
아버지의 유품은커녕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았지만 방송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부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휘웅(故 이근창 선생 아들) : "이런 곳에서 고생하시고 옥사하면서 고문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죠."
정부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68년 만에 고 이근창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KBS 뉴스 김용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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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기자 kospiri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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