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불가사의 섬’의 슬픈 역사

입력 2013.02.24 (08:57) 수정 2013.02.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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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독도와는 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남미 칠레의 한 섬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특파원 현장 보고가 다녀왔죠?

바로 '세계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사람 모양의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 섬을 취재했습니다. 부활절에 발견돼 이스터 섬이라고 그야말로 정복자 중심의 이름으로 불리는 알고 보면 슬픈 역사의 섬입니다.

지금 칠레 영토지만 원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네요. 이재석 순회 특파원이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리포트>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 반. 끝없는 남태평양 위에, 지구에서 가장 외딴 섬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 모양을 본뜬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있는 곳. 풀리지 않는 신비의 섬, 이스터 섬입니다.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8백여 개의 모아이는 전 세계 고고학자들에겐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고 관광객들에겐 매력적인 조각 작품이었습니다.

커다란 머리, 무뚝뚝한 표정, 배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손...언뜻 보면 비슷비슷하지만자세히 보면 오똑한 코, 뭉뚝한 코, 생김새가 조금씩 다릅니다.

작은 것은 3~4미터, 제일 큰 건 20미터가 넘습니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돌 만큼 대표적인 세계 불가사의입니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던 날이 부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터'라는 이름이 붙여졌죠. 하지만 이 섬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라파누이'. '거대한 땅'이라는 뜻의 이 단어가 섬의 원래 이름이자, 자기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고 원주민들은 이야기합니다. 1888년 칠레에 편입되기 전, 이스터 섬은 이들 '라파누이'의 땅이었습니다. 칠레 본토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인종인 이들은 태평양 섬 사람들, 즉 폴리네시아 계통에 속합니다.

<인터뷰> 항우 티아베(라파누이 청년):"다른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에선 보존해야 할 전통이 없습니다. 그러나 라파누이 문화는 기원과 본질이 있는 문화죠. 그들과 다른 점입니다."

해마다 이스터 섬엔 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서 행복한 휴가를 즐기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라파누이 원주민들의 생활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라파누이 원주민 투키 씨. 잠에서 덜 깬 손녀를 데리고 조카네 집으로 향합니다. 부부가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손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투키 씨 부부가 일하는 곳은 재활용품 처리 공장입니다. 부부가 합쳐서 한 달에 백만 원쯤 버는데, 원주민들 중에선 수입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원주민들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버는 정도만으론 유명 관광지가 된 이스터 섬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인터뷰>이티 투키(라파누이 원주민):“물가가 너무 비싸요. 1만 페소(2만 5천 원)를 갖고 가도 물건 2~3개 사면 끝입니다. 칠레에서 천 페소를 쓰는 것처럼요.”

<녹취>아나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공립 유치원이 있지만 더 이상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 맡기려면 돈을 내야 하고요.”

또 다른 라파누이 원주민은 날마다 관광객들이 쏟아내는 이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볼 때마다 섬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토로합니다.

<녹취>이노아 비루후케(라파누이 원주민):“이것 보세요. 이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땅에 있는 칠레의 모습입니다.”

이 60대 라파누이 원주민은3년째 당뇨를 앓고 있습니다. 날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약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섬 인구는 6천 명, 그러나 병원은 딱 한 군데다 보니까 의사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은 겁니다. 병원에 갔다가 발길을 돌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터뷰> 알베르토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새벽에 가도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어요. 어떤 때는 대기표도 못 받습니다. 아침 7시에 가도 대기표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수십 년 된 낡은 병원은 줄기찬 요구 끝에 지난해 새 건물로 바뀌긴 했지만, 전문의가 10명도 안 돼서 열악한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알베르토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조금이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환자는 본토인 산티아고로 보내야 해요. 환자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죠. 하지만 이것도 항상 되는 것은 아닙니다.”

라파누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팍팍해진 건 최근 10년 사이에 특히 심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칠레 정부가 관광 산업을 키우려고 칠레 본토인들을 대거 섬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왔는데, 이 때문에 원주민들의 일자리는 갈수록 없어진다고 합니다.

<인터뷰> 라파누이 원주민:“살기 너무 힘듭니다. 칠레 사람들이 들어와서 적은 임금으로도 일하니까 제 일자리는 없어지는 겁니다.”

최근 4~5년 사이 칠레 본토인들이 천 명 이상 들어오면서 이젠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과 본토인의 수가 3천 명씩 서로 비슷한 수준이 됐습니다. 일자리 측면에서, 또 복지나 환경 측면에서도 섬이 포화 상태가 돼버렸다는 게 원주민들의 생각입니다.

<녹취>라파누이 원주민:“예전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쓰레기도 없었어요. 모든 게 변해버렸습니다. 고기 잡는 일도 모두 바깥 사람들 몫이에요.“

이런 불만에다,"우린 역사적으로 칠레 사람과 다르다"는 민족 정체성까지 겹쳐지면서 칠레 정부에 대한 독립 운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저항은 특히 2010년에 거셌습니다. 관공서를 점령해 독립을 주장하는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칠레 정부는 본토에서 전투경찰을 파견해 원주민들을 진압했습니다. 원주민 부상자들이 잇따랐습니다.

이때부터 라파누이 원주민들의 처지와 그들의 독립 요구가 국제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사태 이후 물리적 충돌은 다소 잦아드는 분위기지만, 불씨는 여전히 잠재해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라파누이 의회를 구성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라파누이 의회 앞에는이런 문구가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칠레에 주권을 넘겨준 적이 없다" 라파누이 사람들의 독립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원주민 35개 씨족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회는 본토인이 섬으로 들어오는 걸 제한하는 법안을 칠레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또 UN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비안테 아라키(라파누이 의회 의장):“지금 독립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 문화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섬의 포화 상태를 막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섬은 완전히 포화 상태입니다.”

취재진은 이스터 섬이 칠레에 병합되기 전, 섬을 다스렸던 마지막 라파누이 왕의 손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올해 82살의 발렌티노 씨. 2년 전, 라파누이 원주민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그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칠레 정부에게 독살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관광산업의 홍수 속에서 원주민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뷰> 발렌티노 투키(라파누이 마지막 왕 손자):“칠레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 것을 돌려달라는 겁니다. 칠레 사람들 모두 나가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곳의 순수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우리 것을 돌려달라는 것뿐입니다.”

지금 당장 칠레에게서 독립하기엔 원주민들이 가진 힘이 미약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독립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토록 독립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이유만큼은 한번쯤 귀기울여 달라고 '모아이'의 후손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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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24 08:57:09
    • 수정2013-02-24 09:47:13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독도와는 좀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남미 칠레의 한 섬도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 특파원 현장 보고가 다녀왔죠?

바로 '세계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사람 모양의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 섬을 취재했습니다. 부활절에 발견돼 이스터 섬이라고 그야말로 정복자 중심의 이름으로 불리는 알고 보면 슬픈 역사의 섬입니다.

지금 칠레 영토지만 원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네요. 이재석 순회 특파원이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리포트>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 반. 끝없는 남태평양 위에, 지구에서 가장 외딴 섬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 모양을 본뜬 거대한 모아이 석상이 있는 곳. 풀리지 않는 신비의 섬, 이스터 섬입니다.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8백여 개의 모아이는 전 세계 고고학자들에겐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었고 관광객들에겐 매력적인 조각 작품이었습니다.

커다란 머리, 무뚝뚝한 표정, 배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손...언뜻 보면 비슷비슷하지만자세히 보면 오똑한 코, 뭉뚝한 코, 생김새가 조금씩 다릅니다.

작은 것은 3~4미터, 제일 큰 건 20미터가 넘습니다. 누가, 왜 만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얘기까지 돌 만큼 대표적인 세계 불가사의입니다.

18세기 유럽인들이 이 섬을 처음 발견했던 날이 부활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터'라는 이름이 붙여졌죠. 하지만 이 섬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라파누이'. '거대한 땅'이라는 뜻의 이 단어가 섬의 원래 이름이자, 자기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고 원주민들은 이야기합니다. 1888년 칠레에 편입되기 전, 이스터 섬은 이들 '라파누이'의 땅이었습니다. 칠레 본토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인종인 이들은 태평양 섬 사람들, 즉 폴리네시아 계통에 속합니다.

<인터뷰> 항우 티아베(라파누이 청년):"다른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에선 보존해야 할 전통이 없습니다. 그러나 라파누이 문화는 기원과 본질이 있는 문화죠. 그들과 다른 점입니다."

해마다 이스터 섬엔 5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와서 행복한 휴가를 즐기지만, 정작 이곳에 사는 라파누이 원주민들의 생활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라파누이 원주민 투키 씨. 잠에서 덜 깬 손녀를 데리고 조카네 집으로 향합니다. 부부가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손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투키 씨 부부가 일하는 곳은 재활용품 처리 공장입니다. 부부가 합쳐서 한 달에 백만 원쯤 버는데, 원주민들 중에선 수입이 좋은 편이라고 합니다.

일자리가 없는 원주민들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버는 정도만으론 유명 관광지가 된 이스터 섬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가 버겁습니다.

<인터뷰>이티 투키(라파누이 원주민):“물가가 너무 비싸요. 1만 페소(2만 5천 원)를 갖고 가도 물건 2~3개 사면 끝입니다. 칠레에서 천 페소를 쓰는 것처럼요.”

<녹취>아나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공립 유치원이 있지만 더 이상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 맡기려면 돈을 내야 하고요.”

또 다른 라파누이 원주민은 날마다 관광객들이 쏟아내는 이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볼 때마다 섬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토로합니다.

<녹취>이노아 비루후케(라파누이 원주민):“이것 보세요. 이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땅에 있는 칠레의 모습입니다.”

이 60대 라파누이 원주민은3년째 당뇨를 앓고 있습니다. 날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문제는 약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섬 인구는 6천 명, 그러나 병원은 딱 한 군데다 보니까 의사를 만나기조차 쉽지 않은 겁니다. 병원에 갔다가 발길을 돌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터뷰> 알베르토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새벽에 가도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어요. 어떤 때는 대기표도 못 받습니다. 아침 7시에 가도 대기표가 떨어질 때가 있어요.”

수십 년 된 낡은 병원은 줄기찬 요구 끝에 지난해 새 건물로 바뀌긴 했지만, 전문의가 10명도 안 돼서 열악한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인터뷰> 알베르토 파코미오(라파누이 원주민):“조금이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환자는 본토인 산티아고로 보내야 해요. 환자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죠. 하지만 이것도 항상 되는 것은 아닙니다.”

라파누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팍팍해진 건 최근 10년 사이에 특히 심해졌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칠레 정부가 관광 산업을 키우려고 칠레 본토인들을 대거 섬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펴왔는데, 이 때문에 원주민들의 일자리는 갈수록 없어진다고 합니다.

<인터뷰> 라파누이 원주민:“살기 너무 힘듭니다. 칠레 사람들이 들어와서 적은 임금으로도 일하니까 제 일자리는 없어지는 겁니다.”

최근 4~5년 사이 칠레 본토인들이 천 명 이상 들어오면서 이젠 섬에 거주하는 원주민과 본토인의 수가 3천 명씩 서로 비슷한 수준이 됐습니다. 일자리 측면에서, 또 복지나 환경 측면에서도 섬이 포화 상태가 돼버렸다는 게 원주민들의 생각입니다.

<녹취>라파누이 원주민:“예전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쓰레기도 없었어요. 모든 게 변해버렸습니다. 고기 잡는 일도 모두 바깥 사람들 몫이에요.“

이런 불만에다,"우린 역사적으로 칠레 사람과 다르다"는 민족 정체성까지 겹쳐지면서 칠레 정부에 대한 독립 운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의 저항은 특히 2010년에 거셌습니다. 관공서를 점령해 독립을 주장하는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칠레 정부는 본토에서 전투경찰을 파견해 원주민들을 진압했습니다. 원주민 부상자들이 잇따랐습니다.

이때부터 라파누이 원주민들의 처지와 그들의 독립 요구가 국제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사태 이후 물리적 충돌은 다소 잦아드는 분위기지만, 불씨는 여전히 잠재해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라파누이 의회를 구성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라파누이 의회 앞에는이런 문구가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칠레에 주권을 넘겨준 적이 없다" 라파누이 사람들의 독립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원주민 35개 씨족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의회는 본토인이 섬으로 들어오는 걸 제한하는 법안을 칠레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또 UN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비안테 아라키(라파누이 의회 의장):“지금 독립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 문화와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섬의 포화 상태를 막아야 합니다. 지금 이 섬은 완전히 포화 상태입니다.”

취재진은 이스터 섬이 칠레에 병합되기 전, 섬을 다스렸던 마지막 라파누이 왕의 손자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올해 82살의 발렌티노 씨. 2년 전, 라파누이 원주민들이 상징적인 의미로 그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칠레 정부에게 독살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관광산업의 홍수 속에서 원주민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뷰> 발렌티노 투키(라파누이 마지막 왕 손자):“칠레에 요구하는 것은 우리 것을 돌려달라는 겁니다. 칠레 사람들 모두 나가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곳의 순수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우리 것을 돌려달라는 것뿐입니다.”

지금 당장 칠레에게서 독립하기엔 원주민들이 가진 힘이 미약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독립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토록 독립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이유만큼은 한번쯤 귀기울여 달라고 '모아이'의 후손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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