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포착] 숭례문, 5년 만에 시민 품으로

입력 2013.05.07 (08:42) 수정 2013.05.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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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토요일, 숭례문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재로 불탔던 숭례문이 복구공사를 마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2000일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요.

오늘 화제포착에서는 숭례문 복구, 그 뒷이야기까지 알아봅니다.

네, 오늘도 노태영 기자와 함께합니다.

자, 아직 가보진 못 했는데, 참 많이 궁금하거든요, 듣자 하니까 원래 모습에 더 가깝게 복원했다고 하던데.....

5년여 만에 예전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왔는데요.

특히 과거 일제가 철거했던 성곽까지 복원돼 더욱더 옛모습에 가까워졌다는 평갑니다.

이렇게 숭례문이 복구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했었는데요.

숭례문 복구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복구과정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멘트>

5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

국보 1호답게 복구 작업에 참가한 장인만도 모두 6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손끝에서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을 마침내 되찾았습니다.

복구에 걸린 시간은 1916일.

연 투입인원은 3만5천 명에 달하고요 사용한 목재만도 15만 개가 넘습니다.

이런 노력에다 국민들의 응원까지 더해지면서 5년여의 대역사가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2008년 2월 10일.

600년 동안 서울의 상징이었던 숭례문이 화마에 쓰러졌습니다.

진화작업으로 물을 먹은 현판이 떨어지던 순간!

이를 지켜보던 강임산 씨가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인터뷰> 강임산(화재 당시 문화재청 근무) : "위험해서 못 들어간다고 엄청나게 말렸어요. 왜냐하면 위에서 낙하물들도 떨어지니까요. 현판을 반드시 끌고 나와야 한다고 경찰관들을 설득했죠.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1차 붕괴와 2차 붕괴가 일어났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한 순간이었죠."

당시 문화재청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는 강임산 씨.

<인터뷰> 강임산(화재 당시 문화재청 근무) : "누구 한 사람이 복구했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한 것이기 때문에 불리한 와중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수습을 했던 거죠."

산산조각난 숭례문 현판의 복원작업은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맡았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오랜 기간 문화재복원을 전문적으로 해왔지만 숭례문 현판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순관(숭례문복구단 학예연구사) : "(처음 현판을 봤을 때) 한마디로 처참했죠. 16m 높이에서 그 무게가 떨어지는 바람에 거의 전체가 부서지다시피 한 것이죠."

현판 무게만도 150㎏.

낙하하며 더해진 무게로 현판은 산산조각났는데요.

복원에만 1년5개월이 꼬박 걸렸습니다.

조각난 현판을 원래의 모양대로 맞추고 특수접착제로 붙인 후 떨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단단하게 마감재를 덧입혔습니다.

원래 글씨가 한국전쟁 후 훼손됐다는 논란을 의식, 조선시대 탁본을 통해 옛 모습으로 되살릴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김순관(숭례문복구단 학예연구사) : "이제 제대로 잘 걸려야지, 걱정이 또 시작되는 거죠.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좋았습니다. 저 현판이 아빠가 보존 처리한 것인데 아마 100년, 200년도 갈 것이다, 이야기하겠죠.”

일본강점기, 일본 왕세자가 지나가야한다며 철거된 성곽도 이번엔 일부 복원됐습니다.

복원 과정에 가장 큰 난제는 인근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

지하철 안전을 담당한 업체를 찾아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원종승(숭례문 계측 담당) : "성벽이 만들어지면 무게가 꽤 나가게 됩니다. 그 무게로 인해서 밑에 있는 지하철이 안전한지 아니면 불안전한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복구 후 숭례문은 좌우로 약 70m 넓어지고 지반은 조선 후기와 같이 최대 50cm가량 낮아졌는데요.

이 때문에 지하철 안전을 위해 무진동 강관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성곽 복구와 지하철 안전이라는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동욱(숭례문 복구 자문위원) : “숭례문이 있으니까 그 밑에 지하철은 절대 안 된다, 그렇게 접근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불만을 만들게 돼서 오히려 사람들이 문화재를 미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 자세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재 당시 망가진 숭례문의 기와.

숭례문 지붕에 새로 올릴 2만3천여 장의 기와는 제와장 한형준 옹의 지휘 아래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제작했습니다.

<녹취> “눈물의 벽돌이죠.”

2011년 10월.

가마에 첫 불을 때는 화입식 이후 기와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전통기법대로 제작하다 보니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는데요.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가마에 균열이 생기니까 색상이 나오지 않고 어디가 문제가 생기면 온도가 떨어졌습니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기와 1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흙을 빚어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 굽고, 건조하기까지 각 1주일씩, 모두 3주가 걸립니다.

사람이 직접 밟아 흙 반죽의 공기를 빼고 손으로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작업시간은 공장에서보다 배로 걸리지만 훨씬 튼튼합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48시간이나 36시간 못 잘 때도 있고 잠시 눈 붙이고 나올 때도 있고 꿈에서도 가마를 짓고 있어요."

수제기와는 흙의 입자가 고우면서도 공기가 잘 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검은색 막이 있죠? 이것이 탄소가 기와에 코팅이 된 것이에요. 수제 기와가 역시 무게가 KS 기와보다 약 20% 정도 가볍게 나오고 아래의 수분을 빨아 당겨서 건축물에 있는 습기를 배출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건축물을 보호하는 역할이 KS 기와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공장제 기와보다 다채롭고 자연스런 색상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수제 기와만의 장점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일반 분들이야 숭례문 잘됐다고 하지만 저희는 기와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안 보여요. ‘(기와가) 잘 올라갔네, 올해만 견뎌’ 하고 인사하고 그러죠. 다른 분들은 숭례문 (복구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숭례문이 영원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국민 모두의 염원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숭례문.

이제는 그 힘으로 나라의 보물들을 아끼고 지켜나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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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포착] 숭례문, 5년 만에 시민 품으로
    • 입력 2013-05-07 08:46:20
    • 수정2013-05-07 10: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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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토요일, 숭례문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재로 불탔던 숭례문이 복구공사를 마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2000일 가까운 시간이 걸렸는데요.

오늘 화제포착에서는 숭례문 복구, 그 뒷이야기까지 알아봅니다.

네, 오늘도 노태영 기자와 함께합니다.

자, 아직 가보진 못 했는데, 참 많이 궁금하거든요, 듣자 하니까 원래 모습에 더 가깝게 복원했다고 하던데.....

5년여 만에 예전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왔는데요.

특히 과거 일제가 철거했던 성곽까지 복원돼 더욱더 옛모습에 가까워졌다는 평갑니다.

이렇게 숭례문이 복구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했었는데요.

숭례문 복구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복구과정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멘트>

5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숭례문.

국보 1호답게 복구 작업에 참가한 장인만도 모두 6명이나 됩니다.

이들의 손끝에서 예전의 위풍당당했던 모습을 마침내 되찾았습니다.

복구에 걸린 시간은 1916일.

연 투입인원은 3만5천 명에 달하고요 사용한 목재만도 15만 개가 넘습니다.

이런 노력에다 국민들의 응원까지 더해지면서 5년여의 대역사가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2008년 2월 10일.

600년 동안 서울의 상징이었던 숭례문이 화마에 쓰러졌습니다.

진화작업으로 물을 먹은 현판이 떨어지던 순간!

이를 지켜보던 강임산 씨가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인터뷰> 강임산(화재 당시 문화재청 근무) : "위험해서 못 들어간다고 엄청나게 말렸어요. 왜냐하면 위에서 낙하물들도 떨어지니까요. 현판을 반드시 끌고 나와야 한다고 경찰관들을 설득했죠.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1차 붕괴와 2차 붕괴가 일어났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한 순간이었죠."

당시 문화재청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는 강임산 씨.

<인터뷰> 강임산(화재 당시 문화재청 근무) : "누구 한 사람이 복구했다기보다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서 한 것이기 때문에 불리한 와중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수습을 했던 거죠."

산산조각난 숭례문 현판의 복원작업은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맡았습니다.

<녹취> “안녕하세요.”

오랜 기간 문화재복원을 전문적으로 해왔지만 숭례문 현판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순관(숭례문복구단 학예연구사) : "(처음 현판을 봤을 때) 한마디로 처참했죠. 16m 높이에서 그 무게가 떨어지는 바람에 거의 전체가 부서지다시피 한 것이죠."

현판 무게만도 150㎏.

낙하하며 더해진 무게로 현판은 산산조각났는데요.

복원에만 1년5개월이 꼬박 걸렸습니다.

조각난 현판을 원래의 모양대로 맞추고 특수접착제로 붙인 후 떨어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단단하게 마감재를 덧입혔습니다.

원래 글씨가 한국전쟁 후 훼손됐다는 논란을 의식, 조선시대 탁본을 통해 옛 모습으로 되살릴 수 있었는데요.

<인터뷰> 김순관(숭례문복구단 학예연구사) : "이제 제대로 잘 걸려야지, 걱정이 또 시작되는 거죠. 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고 좋았습니다. 저 현판이 아빠가 보존 처리한 것인데 아마 100년, 200년도 갈 것이다, 이야기하겠죠.”

일본강점기, 일본 왕세자가 지나가야한다며 철거된 성곽도 이번엔 일부 복원됐습니다.

복원 과정에 가장 큰 난제는 인근을 지나는 지하철 노선!

지하철 안전을 담당한 업체를 찾아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인터뷰> 원종승(숭례문 계측 담당) : "성벽이 만들어지면 무게가 꽤 나가게 됩니다. 그 무게로 인해서 밑에 있는 지하철이 안전한지 아니면 불안전한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복구 후 숭례문은 좌우로 약 70m 넓어지고 지반은 조선 후기와 같이 최대 50cm가량 낮아졌는데요.

이 때문에 지하철 안전을 위해 무진동 강관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성곽 복구와 지하철 안전이라는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동욱(숭례문 복구 자문위원) : “숭례문이 있으니까 그 밑에 지하철은 절대 안 된다, 그렇게 접근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불만을 만들게 돼서 오히려 사람들이 문화재를 미워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 자세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재 당시 망가진 숭례문의 기와.

숭례문 지붕에 새로 올릴 2만3천여 장의 기와는 제와장 한형준 옹의 지휘 아래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제작했습니다.

<녹취> “눈물의 벽돌이죠.”

2011년 10월.

가마에 첫 불을 때는 화입식 이후 기와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전통기법대로 제작하다 보니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는데요.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가마에 균열이 생기니까 색상이 나오지 않고 어디가 문제가 생기면 온도가 떨어졌습니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기와 1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흙을 빚어 모양을 만들고, 가마에 굽고, 건조하기까지 각 1주일씩, 모두 3주가 걸립니다.

사람이 직접 밟아 흙 반죽의 공기를 빼고 손으로 모양을 만들기 때문에 작업시간은 공장에서보다 배로 걸리지만 훨씬 튼튼합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48시간이나 36시간 못 잘 때도 있고 잠시 눈 붙이고 나올 때도 있고 꿈에서도 가마를 짓고 있어요."

수제기와는 흙의 입자가 고우면서도 공기가 잘 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검은색 막이 있죠? 이것이 탄소가 기와에 코팅이 된 것이에요. 수제 기와가 역시 무게가 KS 기와보다 약 20% 정도 가볍게 나오고 아래의 수분을 빨아 당겨서 건축물에 있는 습기를 배출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건축물을 보호하는 역할이 KS 기와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공장제 기와보다 다채롭고 자연스런 색상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수제 기와만의 장점입니다.

<인터뷰> 김창대(제와장 전수 조교) : “일반 분들이야 숭례문 잘됐다고 하지만 저희는 기와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안 보여요. ‘(기와가) 잘 올라갔네, 올해만 견뎌’ 하고 인사하고 그러죠. 다른 분들은 숭례문 (복구가)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숭례문이 영원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국민 모두의 염원으로 우리 곁에 돌아온 숭례문.

이제는 그 힘으로 나라의 보물들을 아끼고 지켜나갈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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