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서비스직 27% ‘미소 우울증’…기업 풍토 탓

입력 2013.06.03 (21:22) 수정 2013.06.0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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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요즘 기업들은 '고객 감동'이란 말 많이 쓰는데요,

하지만, 일부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소비자 횡포까지 참아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미소 우울증'이라는 말까지 생겼는데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러한 '감정노동'의 피해를 산업재해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먼저, 감정 노동자들의 애환을 우한울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한 대리운전 콜센터의 통화내용입니다.

<녹취> 대리운전 상담원 : "욕은 그쪽은 먼저 하셨죠, 내가 먼저 했습 니까?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해결을 해드리고..."

고객의 거친 항의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습니다.

<녹취> 대리운전 상담원 : "기사한테 기분 나쁜 일었으면 기사한테 따져야지, 왜 상황실에 전화해서 이딴식으로 합니까? 고객님!"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른바 '패기녀 상담'입니다.

<녹취> "서울시 120 상담센텁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

욕설과 성희롱도, 장난 전화도 웃음으로 참아내야 합니다.

<녹취> 120 상담원 : "(캥거루하고 고릴라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인터넷 자료로 확인해보겠습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훈련은 입사 전부터 시작됩니다.

<녹취> "위스키, 위스키~유지하세요."

미소에 자신 없는 여성들은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성민(성형외과 전문의) : "승무원이나 아나운서 지망생들.. 서비스업에서 대인관계를 많이 하시는 분이 자기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

이렇게 서비스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고객 감동을 외치는 사이, 직원들 가슴은 숯검댕이 됩니다.

<인터뷰> 한지혜(전 백화점 판매원) : "제 표정은 없어지는거에요. 가족들하고. 되게 일처럼 여겨져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말이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웃음으로 소비자들에게 헌신하는 감정 노동자들, 속으로는 울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이렇게 화가 나고 눈물이 솟는 상황에서도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직원 평가표입니다.

우선, 매장에 들어서는 고객에게 밝은 표정을 짓는지, 대화할 때는 "아~, 저런~, 네네~" 맞장구를 치는지 확인합니다.

심지어 눈을 맞춘 횟수까지 총 30개가 넘는 항목을 점검합니다.

위장고객이라고 하죠,

직원들 몰래 감시단을 투입해 이렇게 수시로 평가를 하니, 억지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이른바 '미소 우울증'이 생깁니다.

<인터뷰> 남궁 기(세브란스병원 정신의학과) : "본인은 자기가 우울하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도 가족한테 화를 잘 낸다든지, 아떤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난다든지,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서비스직 종사자의 27%는 치료를 요하는 미소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비스업 노동자 가운데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를 신청하는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셉니다.

직종별로 보면 항공기 승무원이 감정노동과 억지미소가 가장 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객 감동'만 강조하고 감정 근로자들의 애환은 무시하는 기업의 풍토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요?

<리포트>

승무원 취업준비 학원입니다.

승객이 소란을 피우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녹취> "(똑같은 비행기값 내고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아, 진짜 이 항공사 이용 못하겠네.) 죄송합니다."

상황극을 통해 승무원 입장에 서 보니 역지사지, 배려의 마음이 생깁니다.

<인터뷰> 이연경(취업준비생) : "승무원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미소까지 강요하던 분위기가 최근 바뀌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고객이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면 아예 전화를 끊도록 했습니다.

<녹취> "비속어 사용으로 더 이상 상담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전화를 먼저 끊겠습니다."

물건에 존칭을 쓰는 잘못된 어법도 고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상담원들의 이직률이 10% 포인트 이상 낮아졌습니다.

<인터뷰> 이보나(현대카드 전화상담원) :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방침이)변경되다 보니까, 퇴사보다는 그 전에 먼저 우리가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서비스 노동자를 위한 감정 수당이나, 심리상담 등 회사의 배려도 필요합니다.

<인터뷰> 심상정(진보정의당) : "회사에도 을이고 고객에도 을, 을 중의 을인 감정노동자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질병에도 산재를 받을 수 있는 법안을 발의..."

과열 서비스 경쟁에 내몰린 이들의 고통을 함께 들여다 보고, 제도적 뒷받침도 모색할 땝니다.

KBS 뉴스 김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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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서비스직 27% ‘미소 우울증’…기업 풍토 탓
    • 입력 2013-06-03 21:23:54
    • 수정2013-06-03 22:12:08
    뉴스 9
<기자 멘트>

요즘 기업들은 '고객 감동'이란 말 많이 쓰는데요,

하지만, 일부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소비자 횡포까지 참아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미소 우울증'이라는 말까지 생겼는데요.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러한 '감정노동'의 피해를 산업재해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먼저, 감정 노동자들의 애환을 우한울 기자가 전합니다.

<리포트>

한 대리운전 콜센터의 통화내용입니다.

<녹취> 대리운전 상담원 : "욕은 그쪽은 먼저 하셨죠, 내가 먼저 했습 니까?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해결을 해드리고..."

고객의 거친 항의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습니다.

<녹취> 대리운전 상담원 : "기사한테 기분 나쁜 일었으면 기사한테 따져야지, 왜 상황실에 전화해서 이딴식으로 합니까? 고객님!"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른바 '패기녀 상담'입니다.

<녹취> "서울시 120 상담센텁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

욕설과 성희롱도, 장난 전화도 웃음으로 참아내야 합니다.

<녹취> 120 상담원 : "(캥거루하고 고릴라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인터넷 자료로 확인해보겠습니다."

감정을 절제하고, 미소를 잃지 않는 훈련은 입사 전부터 시작됩니다.

<녹취> "위스키, 위스키~유지하세요."

미소에 자신 없는 여성들은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김성민(성형외과 전문의) : "승무원이나 아나운서 지망생들.. 서비스업에서 대인관계를 많이 하시는 분이 자기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

이렇게 서비스업체들이 경쟁적으로 고객 감동을 외치는 사이, 직원들 가슴은 숯검댕이 됩니다.

<인터뷰> 한지혜(전 백화점 판매원) : "제 표정은 없어지는거에요. 가족들하고. 되게 일처럼 여겨져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말이 하기 싫어지더라고요."

웃음으로 소비자들에게 헌신하는 감정 노동자들, 속으로는 울고 있습니다.

<기자 멘트>

이렇게 화가 나고 눈물이 솟는 상황에서도 억지 미소를 지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 직원 평가표입니다.

우선, 매장에 들어서는 고객에게 밝은 표정을 짓는지, 대화할 때는 "아~, 저런~, 네네~" 맞장구를 치는지 확인합니다.

심지어 눈을 맞춘 횟수까지 총 30개가 넘는 항목을 점검합니다.

위장고객이라고 하죠,

직원들 몰래 감시단을 투입해 이렇게 수시로 평가를 하니, 억지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이른바 '미소 우울증'이 생깁니다.

<인터뷰> 남궁 기(세브란스병원 정신의학과) : "본인은 자기가 우울하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도 가족한테 화를 잘 낸다든지, 아떤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난다든지,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요."

서비스직 종사자의 27%는 치료를 요하는 미소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비스업 노동자 가운데 정신질환으로 인한 산재를 신청하는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셉니다.

직종별로 보면 항공기 승무원이 감정노동과 억지미소가 가장 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고객 감동'만 강조하고 감정 근로자들의 애환은 무시하는 기업의 풍토에서 비롯된 현상입니다.

대책은 없는 걸까요?

<리포트>

승무원 취업준비 학원입니다.

승객이 소란을 피우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녹취> "(똑같은 비행기값 내고 지금 뭐하는 거에요? 아, 진짜 이 항공사 이용 못하겠네.) 죄송합니다."

상황극을 통해 승무원 입장에 서 보니 역지사지, 배려의 마음이 생깁니다.

<인터뷰> 이연경(취업준비생) : "승무원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지미소까지 강요하던 분위기가 최근 바뀌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고객이 폭언이나 성희롱을 하면 아예 전화를 끊도록 했습니다.

<녹취> "비속어 사용으로 더 이상 상담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전화를 먼저 끊겠습니다."

물건에 존칭을 쓰는 잘못된 어법도 고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상담원들의 이직률이 10% 포인트 이상 낮아졌습니다.

<인터뷰> 이보나(현대카드 전화상담원) :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방침이)변경되다 보니까, 퇴사보다는 그 전에 먼저 우리가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서비스 노동자를 위한 감정 수당이나, 심리상담 등 회사의 배려도 필요합니다.

<인터뷰> 심상정(진보정의당) : "회사에도 을이고 고객에도 을, 을 중의 을인 감정노동자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질병에도 산재를 받을 수 있는 법안을 발의..."

과열 서비스 경쟁에 내몰린 이들의 고통을 함께 들여다 보고, 제도적 뒷받침도 모색할 땝니다.

KBS 뉴스 김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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