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유일한 민간 마을의 ‘환갑잔치’
입력 2013.08.02 (21:40)
수정 2013.08.0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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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우리 비무장지대에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4백 미터 떨어진 곳에 민간인 마을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일한 이 마을이 조성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송형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전쟁의 막바지, 한 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투가 벌어진 땅.
끝내 이뤄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마을 한 곳씩을 두기로 합의합니다.
이렇게 1953년 8월3일 조성된 비무장지대 안의 유일한 마을.
마을 조성 60주년을 맞아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평생을 긴장 속에 이곳을 지켜온 주민 모두가 환갑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인터뷰> 김경래(77/대성동마을 주민) : "전쟁통에 비행기 폭격으로 해서 집은 다 타고요. 집은 몇 채 안남았는데 고쳐주는 게 없으니까 움막 삼아서 집을 짓고 살았어요."
대성동 마을엔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유엔의 철저한 통제 속에 52가구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800m 앞 손에 닿을 듯한 곳에 북한 측 비무장지대 마을인 기정동 마을이 보입니다.
주민들은 남북 간의 긴장이 해소되길 바라며 직접 빚은 떡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인터뷰> 신금식(대성동마을 주민) : "79년도에 시집을 왔는데요 서울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이북이 바로 보이잖아요. 굉장히 무서워갖고..."
삼엄한 군사분계선을 지척에 둔 대성동 주민들은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평화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기를 기원합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우리 비무장지대에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4백 미터 떨어진 곳에 민간인 마을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일한 이 마을이 조성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송형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전쟁의 막바지, 한 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투가 벌어진 땅.
끝내 이뤄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마을 한 곳씩을 두기로 합의합니다.
이렇게 1953년 8월3일 조성된 비무장지대 안의 유일한 마을.
마을 조성 60주년을 맞아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평생을 긴장 속에 이곳을 지켜온 주민 모두가 환갑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인터뷰> 김경래(77/대성동마을 주민) : "전쟁통에 비행기 폭격으로 해서 집은 다 타고요. 집은 몇 채 안남았는데 고쳐주는 게 없으니까 움막 삼아서 집을 짓고 살았어요."
대성동 마을엔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유엔의 철저한 통제 속에 52가구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800m 앞 손에 닿을 듯한 곳에 북한 측 비무장지대 마을인 기정동 마을이 보입니다.
주민들은 남북 간의 긴장이 해소되길 바라며 직접 빚은 떡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인터뷰> 신금식(대성동마을 주민) : "79년도에 시집을 왔는데요 서울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이북이 바로 보이잖아요. 굉장히 무서워갖고..."
삼엄한 군사분계선을 지척에 둔 대성동 주민들은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평화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기를 기원합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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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유일한 민간 마을의 ‘환갑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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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8-02 21:51:07
- 수정2013-08-02 22: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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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우리 비무장지대에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4백 미터 떨어진 곳에 민간인 마을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일한 이 마을이 조성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송형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전쟁의 막바지, 한 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투가 벌어진 땅.
끝내 이뤄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마을 한 곳씩을 두기로 합의합니다.
이렇게 1953년 8월3일 조성된 비무장지대 안의 유일한 마을.
마을 조성 60주년을 맞아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평생을 긴장 속에 이곳을 지켜온 주민 모두가 환갑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인터뷰> 김경래(77/대성동마을 주민) : "전쟁통에 비행기 폭격으로 해서 집은 다 타고요. 집은 몇 채 안남았는데 고쳐주는 게 없으니까 움막 삼아서 집을 짓고 살았어요."
대성동 마을엔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유엔의 철저한 통제 속에 52가구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800m 앞 손에 닿을 듯한 곳에 북한 측 비무장지대 마을인 기정동 마을이 보입니다.
주민들은 남북 간의 긴장이 해소되길 바라며 직접 빚은 떡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인터뷰> 신금식(대성동마을 주민) : "79년도에 시집을 왔는데요 서울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이북이 바로 보이잖아요. 굉장히 무서워갖고..."
삼엄한 군사분계선을 지척에 둔 대성동 주민들은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평화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기를 기원합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인 우리 비무장지대에는 군사분계선과 불과 4백 미터 떨어진 곳에 민간인 마을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일한 이 마을이 조성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송형국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전쟁의 막바지, 한 치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사투가 벌어진 땅.
끝내 이뤄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에 민간인 마을 한 곳씩을 두기로 합의합니다.
이렇게 1953년 8월3일 조성된 비무장지대 안의 유일한 마을.
마을 조성 60주년을 맞아 환갑잔치가 열렸습니다.
평생을 긴장 속에 이곳을 지켜온 주민 모두가 환갑잔치의 주인공입니다.
<인터뷰> 김경래(77/대성동마을 주민) : "전쟁통에 비행기 폭격으로 해서 집은 다 타고요. 집은 몇 채 안남았는데 고쳐주는 게 없으니까 움막 삼아서 집을 짓고 살았어요."
대성동 마을엔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유엔의 철저한 통제 속에 52가구 200여 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800m 앞 손에 닿을 듯한 곳에 북한 측 비무장지대 마을인 기정동 마을이 보입니다.
주민들은 남북 간의 긴장이 해소되길 바라며 직접 빚은 떡으로 탑을 쌓았습니다.
<인터뷰> 신금식(대성동마을 주민) : "79년도에 시집을 왔는데요 서울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이북이 바로 보이잖아요. 굉장히 무서워갖고..."
삼엄한 군사분계선을 지척에 둔 대성동 주민들은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평화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기를 기원합니다.
KBS 뉴스 송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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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 기자 spianat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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