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못 듣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또 별세
입력 2013.08.26 (21:44)
수정 2013.08.2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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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과한마디도 듣지 못한채 또한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눈을 감았습니다.
87세의 최선순 할머니가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유진휘 기자입니다.
<리포트>
침략전쟁의 야욕에 불탔던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해야했던 소녀들.
최선순 할머니도 16살 꽃다운 나이였던 1942년에 끌려가 모진 나날을 보내야했습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3년 동안 견딜 수 없는 폭행과 고통에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인터뷰> 최선순(위안부 피해 할머니) : "석 달 동안 그것(주사)을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귀국 뒤 남편을 만나 슬하에 자식들까지 뒀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줄곧 참여하며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할머니의 한은 생전에 풀리지 못한 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인터뷰> 왕선애(최 할머니 딸) :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하고 그래요."
<인터뷰> 왕상문(아들) : "돌아가신분 영혼이라도 빨리 풀리시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저희를 기르려고 고생하셨는데요."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가운데, 이제 살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6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유진휘입니다.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과한마디도 듣지 못한채 또한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눈을 감았습니다.
87세의 최선순 할머니가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유진휘 기자입니다.
<리포트>
침략전쟁의 야욕에 불탔던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해야했던 소녀들.
최선순 할머니도 16살 꽃다운 나이였던 1942년에 끌려가 모진 나날을 보내야했습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3년 동안 견딜 수 없는 폭행과 고통에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인터뷰> 최선순(위안부 피해 할머니) : "석 달 동안 그것(주사)을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귀국 뒤 남편을 만나 슬하에 자식들까지 뒀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줄곧 참여하며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할머니의 한은 생전에 풀리지 못한 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인터뷰> 왕선애(최 할머니 딸) :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하고 그래요."
<인터뷰> 왕상문(아들) : "돌아가신분 영혼이라도 빨리 풀리시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저희를 기르려고 고생하셨는데요."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가운데, 이제 살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6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유진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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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도 못 듣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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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8-26 21:44:15
- 수정2013-08-26 22:01:43
<앵커 멘트>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과한마디도 듣지 못한채 또한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눈을 감았습니다.
87세의 최선순 할머니가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유진휘 기자입니다.
<리포트>
침략전쟁의 야욕에 불탔던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해야했던 소녀들.
최선순 할머니도 16살 꽃다운 나이였던 1942년에 끌려가 모진 나날을 보내야했습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3년 동안 견딜 수 없는 폭행과 고통에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인터뷰> 최선순(위안부 피해 할머니) : "석 달 동안 그것(주사)을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귀국 뒤 남편을 만나 슬하에 자식들까지 뒀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줄곧 참여하며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할머니의 한은 생전에 풀리지 못한 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인터뷰> 왕선애(최 할머니 딸) :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하고 그래요."
<인터뷰> 왕상문(아들) : "돌아가신분 영혼이라도 빨리 풀리시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저희를 기르려고 고생하셨는데요."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가운데, 이제 살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6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유진휘입니다.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과한마디도 듣지 못한채 또한명의 위안부 피해자가 눈을 감았습니다.
87세의 최선순 할머니가 한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유진휘 기자입니다.
<리포트>
침략전쟁의 야욕에 불탔던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해야했던 소녀들.
최선순 할머니도 16살 꽃다운 나이였던 1942년에 끌려가 모진 나날을 보내야했습니다.
1945년 해방 때까지 3년 동안 견딜 수 없는 폭행과 고통에 사람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은 망가졌습니다.
<인터뷰> 최선순(위안부 피해 할머니) : "석 달 동안 그것(주사)을 맞고 나니까 정신이 돌아오더라고요."
귀국 뒤 남편을 만나 슬하에 자식들까지 뒀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최 할머니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과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줄곧 참여하며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부터는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했고 할머니의 한은 생전에 풀리지 못한 채 8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인터뷰> 왕선애(최 할머니 딸) : "너무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하고 그래요."
<인터뷰> 왕상문(아들) : "돌아가신분 영혼이라도 빨리 풀리시게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이 저희를 기르려고 고생하셨는데요."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가운데, 이제 살아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6명으로 줄었습니다.
KBS 뉴스 유진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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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휘 기자 yuj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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