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남긴 상처’ 어느 일본인의 참회의 눈물
입력 2013.09.06 (21:35)
수정 2013.09.0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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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거리의 아이들을 섬에 가둔 채 감금과 부역에 동원했던 '감화원'.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일본인이 참회의 마음으로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성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랜만에 만난 두 노인이 서로를 부둥켜 안습니다.
79살 이하라 히로미츠 씨와 친구 홍석민 씨.
어린 시절 선감도의 참상을 목격한 이들입니다.
1942년,일제는 부랑아를 '감화'한다며 5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외딴 섬 '선감도'에 격리 수용하고, 고문과 학대, 강제노역을 시키며 황국의 지원병으로 길러냈습니다.
탈출을 꿈꾸며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은 5백여 미터 떨어진 육지에 닿지 못하고, 화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아이들만 백여 명.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녹취> 홍석민 : "바다 건너서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 헤엄쳐서 나가다가 조류에 의해서 거의 다 익사한 아이들입니다."
일제의 만행이 알려진 건 다름 아닌 이하라 씨가 쓴 '아!선감도'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8살 때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2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이하라씨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그 아이들에겐 지옥이었는데, 그 당시엔 그걸 몰랐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 아이들에게 사죄합니다.)"
위령비를 세우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게 위령비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아리랑'을 잊지 않은 그는 어린 원혼들 곁에 함께 묻히겠다는 유언을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일제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거리의 아이들을 섬에 가둔 채 감금과 부역에 동원했던 '감화원'.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일본인이 참회의 마음으로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성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랜만에 만난 두 노인이 서로를 부둥켜 안습니다.
79살 이하라 히로미츠 씨와 친구 홍석민 씨.
어린 시절 선감도의 참상을 목격한 이들입니다.
1942년,일제는 부랑아를 '감화'한다며 5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외딴 섬 '선감도'에 격리 수용하고, 고문과 학대, 강제노역을 시키며 황국의 지원병으로 길러냈습니다.
탈출을 꿈꾸며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은 5백여 미터 떨어진 육지에 닿지 못하고, 화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아이들만 백여 명.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녹취> 홍석민 : "바다 건너서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 헤엄쳐서 나가다가 조류에 의해서 거의 다 익사한 아이들입니다."
일제의 만행이 알려진 건 다름 아닌 이하라 씨가 쓴 '아!선감도'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8살 때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2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이하라씨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그 아이들에겐 지옥이었는데, 그 당시엔 그걸 몰랐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 아이들에게 사죄합니다.)"
위령비를 세우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게 위령비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아리랑'을 잊지 않은 그는 어린 원혼들 곁에 함께 묻히겠다는 유언을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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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남긴 상처’ 어느 일본인의 참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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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9-06 21:43:44
- 수정2013-09-06 22:21:21
<앵커 멘트>
일제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거리의 아이들을 섬에 가둔 채 감금과 부역에 동원했던 '감화원'.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일본인이 참회의 마음으로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성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랜만에 만난 두 노인이 서로를 부둥켜 안습니다.
79살 이하라 히로미츠 씨와 친구 홍석민 씨.
어린 시절 선감도의 참상을 목격한 이들입니다.
1942년,일제는 부랑아를 '감화'한다며 5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외딴 섬 '선감도'에 격리 수용하고, 고문과 학대, 강제노역을 시키며 황국의 지원병으로 길러냈습니다.
탈출을 꿈꾸며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은 5백여 미터 떨어진 육지에 닿지 못하고, 화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아이들만 백여 명.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녹취> 홍석민 : "바다 건너서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 헤엄쳐서 나가다가 조류에 의해서 거의 다 익사한 아이들입니다."
일제의 만행이 알려진 건 다름 아닌 이하라 씨가 쓴 '아!선감도'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8살 때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2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이하라씨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그 아이들에겐 지옥이었는데, 그 당시엔 그걸 몰랐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 아이들에게 사죄합니다.)"
위령비를 세우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게 위령비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아리랑'을 잊지 않은 그는 어린 원혼들 곁에 함께 묻히겠다는 유언을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일제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데요.
거리의 아이들을 섬에 가둔 채 감금과 부역에 동원했던 '감화원'.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던 일본인이 참회의 마음으로 현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성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랜만에 만난 두 노인이 서로를 부둥켜 안습니다.
79살 이하라 히로미츠 씨와 친구 홍석민 씨.
어린 시절 선감도의 참상을 목격한 이들입니다.
1942년,일제는 부랑아를 '감화'한다며 5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외딴 섬 '선감도'에 격리 수용하고, 고문과 학대, 강제노역을 시키며 황국의 지원병으로 길러냈습니다.
탈출을 꿈꾸며 바다로 뛰어든 아이들은 5백여 미터 떨어진 육지에 닿지 못하고, 화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아이들만 백여 명.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들이 아직도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녹취> 홍석민 : "바다 건너서 육지로 나가기 위해서 헤엄쳐서 나가다가 조류에 의해서 거의 다 익사한 아이들입니다."
일제의 만행이 알려진 건 다름 아닌 이하라 씨가 쓴 '아!선감도'라는 소설을 통해서였습니다.
8살 때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2년 동안 이곳에 살았던 이하라씨는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때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그 아이들에겐 지옥이었는데, 그 당시엔 그걸 몰랐던 내 자신에게 화가 나고 (그 아이들에게 사죄합니다.)"
위령비를 세우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이하라 히로미츠 :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게 위령비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직 '아리랑'을 잊지 않은 그는 어린 원혼들 곁에 함께 묻히겠다는 유언을 가족에게 남겼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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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기자 andrea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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