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위안부 강제 동원’ 문서 공개…‘아베 거짓’ 입증

입력 2013.10.07 (21:19) 수정 2013.10.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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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했던 위안부들.

일본 정부는 1993년, 관방장관을 통해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합니다.

이후 일본정부의 기본입장이 된 이 담화를 아베 총리는 뒤짚으려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고노담화의 기초가 된 종전후 위안부 재판기록이 증건데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12년형을 받은 전 육군중장의 판결문에는 네덜란드 여성을 연행해서 매춘을 시켰다는 기록이, 진술 내용에도 승낙서를 받을 때 디소간의 강제가 있었다고 적시돼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부정이 역사적 진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 지 명백히 증언해주는 자룝니다.

도쿄 홍수진특 파원입니다.

<리포트>

194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바타비아 재판 공소장의 일붑니다.

일본군이 포로였던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군이 운영하는 4개의 위안소에 감금하고 매음을 강제하는 전쟁범죄를 일으켰다

위안부 모집 당시엔 가족들까지 공포를 느끼도록 협박했고, 위안소에서도 폭력을 통해 성관계를 맺도록 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습니다.

이 판결로 일본군 등 11명이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군이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이 재판은 일부 내용이 알려져 있었지만, 문서가 공개되기는 처음입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시민단체의 청구에따라 판결문과 공소장, 피고인 진술까지 530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한 것입니다.

피고인 진술 가운데는 1944년 2월 위안부 여성에게 폭력으로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위안소 내에서의 인권유린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내용도 있습니다.

20년전 일본의 과거사 반성 시초가 된 고노담화도 이 재판기록이 핵심근거였습니다.

<인터뷰> 고바야시(日 강제연행 진상규명 네트워크 사무국장) : "사실은 이런 겁니다. 고노담화에서도 군에 의한 강제동원을 인정한 근거의 하나로 쓰여진겁니다라는 것을 아베 총리에게 가르쳐줘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명백한 문서까지 공개된 만큼 국회와 힘을 합해 아베 내각을 압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될 때 일본정부의 반대가 극심했죠.

만행이 드러나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죠.

총리의 궤변도 이어졌습니다.

유괴하듯 하진 않았다, 군이 직접 나서진 않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자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분쟁지역 성폭력을 막자며 30억달러를 내놨습니다.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게 1991년인데, 어떻게 해결됐다는 것인지, 제대로된 설명은 못합니다.

이제 아베총리가 진실로 돌아올 때입니다.

이처럼 명백한 기록, 증거까지 공개됐으니 진심으로 사죄하고 책임있는 입장을 밝혀야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일본의 국익에도 맞을 것입니다.

KBS 뉴스 이효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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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위안부 강제 동원’ 문서 공개…‘아베 거짓’ 입증
    • 입력 2013-10-07 21:19:15
    • 수정2013-10-07 22: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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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했던 위안부들.

일본 정부는 1993년, 관방장관을 통해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합니다.

이후 일본정부의 기본입장이 된 이 담화를 아베 총리는 뒤짚으려하고 있습니다.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고노담화의 기초가 된 종전후 위안부 재판기록이 증건데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이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12년형을 받은 전 육군중장의 판결문에는 네덜란드 여성을 연행해서 매춘을 시켰다는 기록이, 진술 내용에도 승낙서를 받을 때 디소간의 강제가 있었다고 적시돼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과거사 부정이 역사적 진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 지 명백히 증언해주는 자룝니다.

도쿄 홍수진특 파원입니다.

<리포트>

194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바타비아 재판 공소장의 일붑니다.

일본군이 포로였던 네덜란드 여성 35명을 군이 운영하는 4개의 위안소에 감금하고 매음을 강제하는 전쟁범죄를 일으켰다

위안부 모집 당시엔 가족들까지 공포를 느끼도록 협박했고, 위안소에서도 폭력을 통해 성관계를 맺도록 했다는 내용이 적시돼있습니다.

이 판결로 일본군 등 11명이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군이 관여했음을 입증하는 이 재판은 일부 내용이 알려져 있었지만, 문서가 공개되기는 처음입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시민단체의 청구에따라 판결문과 공소장, 피고인 진술까지 530쪽 분량의 문서를 공개한 것입니다.

피고인 진술 가운데는 1944년 2월 위안부 여성에게 폭력으로 성접대를 강요했다는 위안소 내에서의 인권유린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내용도 있습니다.

20년전 일본의 과거사 반성 시초가 된 고노담화도 이 재판기록이 핵심근거였습니다.

<인터뷰> 고바야시(日 강제연행 진상규명 네트워크 사무국장) : "사실은 이런 겁니다. 고노담화에서도 군에 의한 강제동원을 인정한 근거의 하나로 쓰여진겁니다라는 것을 아베 총리에게 가르쳐줘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명백한 문서까지 공개된 만큼 국회와 힘을 합해 아베 내각을 압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미국에 위안부 소녀상이 건립될 때 일본정부의 반대가 극심했죠.

만행이 드러나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죠.

총리의 궤변도 이어졌습니다.

유괴하듯 하진 않았다, 군이 직접 나서진 않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자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분쟁지역 성폭력을 막자며 30억달러를 내놨습니다.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게 1991년인데, 어떻게 해결됐다는 것인지, 제대로된 설명은 못합니다.

이제 아베총리가 진실로 돌아올 때입니다.

이처럼 명백한 기록, 증거까지 공개됐으니 진심으로 사죄하고 책임있는 입장을 밝혀야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일본의 국익에도 맞을 것입니다.

KBS 뉴스 이효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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