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동계스포츠 역사의 페이지 장식

입력 2014.02.21 (04:25) 수정 2014.02.2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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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24)는 피겨스케이팅을 넘어 한국 동계스포츠에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인물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가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100년사를 다시 썼다면, 4년이 흐른 올해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김연아는 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 역사상 첫 메달을 금빛으로 물들인 것은 그 업적의 시작이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직·간접적으로 한국 동계스포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바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유치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재수'에 나섰으나 실패한 평창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한국에 쇼트트랙 말고 다른 인기 종목이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평창의 '삼수 도전'을 1년 앞두고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 외에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이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주인공은 단연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을 제패한 김연아였다.

특히 김연아는 당시 228.56점의 '불멸의 신기록'을 작성, 밴쿠버올림픽에서 탄생한 최대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피겨 여왕'의 탄생과 함께 한국 동계스포츠의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이후 김연아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전에도 발벗고 나섰다.

IOC 위원들까지도 만나보고 싶어하는 대형 스타가 대회의 유치 여부를 결정하는 2011년 더반 IOC 총회에까지 참석하면서 평창은 큰 힘을 얻었다.

당시 프레젠테이션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김연아의 연설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청중의 집중력을 끌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김연아에게는 '국보 소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한국 동계스포츠에는 각종 후원이 늘면서 봄바람이 불었다.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치올림픽에서 여자 컬링이 사상 첫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고 봅슬레이가 전 종목에 선수를 출전시키는 등 미래의 희망을 키운 것은 김연아가 일으킨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평창 유치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빙판에 복귀한 김연아는 다시 자신의 종목인 피겨에서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 홀로 출전해 우승, 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 3장을 한국에 안긴 것이다.

그 덕에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김해진(17·과천고)과 박소연(17·신목고)이 소중한 큰 무대 경험을 쌓고 양적으로도 성장한 한국 피겨의 현재를 보여줄 수 있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는 종목이 많은 한국 동계스포츠는 평창올림픽의 유치를 계기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4년간 이어질 한국 동계체육의 발전상 가운데서도 일부는 '김연아의 유산'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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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아, 동계스포츠 역사의 페이지 장식
    • 입력 2014-02-21 04:25:39
    • 수정2014-02-21 04:34:42
    연합뉴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24)는 피겨스케이팅을 넘어 한국 동계스포츠에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인물이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가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100년사를 다시 썼다면, 4년이 흐른 올해 소치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김연아는 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 역사상 첫 메달을 금빛으로 물들인 것은 그 업적의 시작이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직·간접적으로 한국 동계스포츠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바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유치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재수'에 나섰으나 실패한 평창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한국에 쇼트트랙 말고 다른 인기 종목이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평창의 '삼수 도전'을 1년 앞두고 열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 외에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쓸어담으며 이런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주인공은 단연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을 제패한 김연아였다.

특히 김연아는 당시 228.56점의 '불멸의 신기록'을 작성, 밴쿠버올림픽에서 탄생한 최대의 스타 중 한 명으로 우뚝 섰다.

'피겨 여왕'의 탄생과 함께 한국 동계스포츠의 위상은 크게 올라갔다.

이후 김연아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전에도 발벗고 나섰다.

IOC 위원들까지도 만나보고 싶어하는 대형 스타가 대회의 유치 여부를 결정하는 2011년 더반 IOC 총회에까지 참석하면서 평창은 큰 힘을 얻었다.

당시 프레젠테이션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김연아의 연설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청중의 집중력을 끌어냈다는 평을 들었다.

김연아에게는 '국보 소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한국 동계스포츠에는 각종 후원이 늘면서 봄바람이 불었다.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치올림픽에서 여자 컬링이 사상 첫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고 봅슬레이가 전 종목에 선수를 출전시키는 등 미래의 희망을 키운 것은 김연아가 일으킨 '나비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평창 유치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빙판에 복귀한 김연아는 다시 자신의 종목인 피겨에서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 홀로 출전해 우승, 사상 최초로 올림픽 출전권 3장을 한국에 안긴 것이다.

그 덕에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김해진(17·과천고)과 박소연(17·신목고)이 소중한 큰 무대 경험을 쌓고 양적으로도 성장한 한국 피겨의 현재를 보여줄 수 있었다.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있는 종목이 많은 한국 동계스포츠는 평창올림픽의 유치를 계기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 4년간 이어질 한국 동계체육의 발전상 가운데서도 일부는 '김연아의 유산'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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