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셔서 감사…” 64년 만의 부녀 상봉
입력 2014.02.23 (21:04)
수정 2014.02.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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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한 살 젖먹이 때 헤어진 딸은 예순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하경 기자입니다.
<리포트>
평생의 한이 된 이름, 아버지.
<녹취> 남궁봉자(南, 65살):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한 살 젖먹이를 남긴 채 떠났던 북의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안함 때문일까?
아버지는 대신 아내의 안부를 물었고, 숨졌다는 딸의 말에 고개만 끄덕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때마다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두 자매도 북의 오빠가 상봉을 신청하면서 꿈을 이뤘습니다.
<녹취> 리형우 씨(北, 80살): "집 떠난 다음에도 너희들 생각했단 말이야.."
6.25 때 북한군에 징집된 경우가 대다수인 북한 가족들은 애써 훈장 등을 내보이며 남쪽의 가족을 안심시켰습니다.
<녹취> 최준규 씨(北, 77살): "기계 공학과 졸업해서, 기계 공학 기사야."
캐나다 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해외 이산가족들도 60여년 만에 만난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KBS 뉴스 이하경입니다.
한 살 젖먹이 때 헤어진 딸은 예순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하경 기자입니다.
<리포트>
평생의 한이 된 이름, 아버지.
<녹취> 남궁봉자(南, 65살):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한 살 젖먹이를 남긴 채 떠났던 북의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안함 때문일까?
아버지는 대신 아내의 안부를 물었고, 숨졌다는 딸의 말에 고개만 끄덕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때마다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두 자매도 북의 오빠가 상봉을 신청하면서 꿈을 이뤘습니다.
<녹취> 리형우 씨(北, 80살): "집 떠난 다음에도 너희들 생각했단 말이야.."
6.25 때 북한군에 징집된 경우가 대다수인 북한 가족들은 애써 훈장 등을 내보이며 남쪽의 가족을 안심시켰습니다.
<녹취> 최준규 씨(北, 77살): "기계 공학과 졸업해서, 기계 공학 기사야."
캐나다 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해외 이산가족들도 60여년 만에 만난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KBS 뉴스 이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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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계셔서 감사…” 64년 만의 부녀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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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2-23 21:06:12
- 수정2014-02-23 22:27:45
<앵커 멘트>
한 살 젖먹이 때 헤어진 딸은 예순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하경 기자입니다.
<리포트>
평생의 한이 된 이름, 아버지.
<녹취> 남궁봉자(南, 65살):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한 살 젖먹이를 남긴 채 떠났던 북의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안함 때문일까?
아버지는 대신 아내의 안부를 물었고, 숨졌다는 딸의 말에 고개만 끄덕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때마다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두 자매도 북의 오빠가 상봉을 신청하면서 꿈을 이뤘습니다.
<녹취> 리형우 씨(北, 80살): "집 떠난 다음에도 너희들 생각했단 말이야.."
6.25 때 북한군에 징집된 경우가 대다수인 북한 가족들은 애써 훈장 등을 내보이며 남쪽의 가족을 안심시켰습니다.
<녹취> 최준규 씨(北, 77살): "기계 공학과 졸업해서, 기계 공학 기사야."
캐나다 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해외 이산가족들도 60여년 만에 만난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KBS 뉴스 이하경입니다.
한 살 젖먹이 때 헤어진 딸은 예순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하경 기자입니다.
<리포트>
평생의 한이 된 이름, 아버지.
<녹취> 남궁봉자(南, 65살): "아버지, 저 알아보시겠어요?"
한 살 젖먹이를 남긴 채 떠났던 북의 아버지는 차마 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미안함 때문일까?
아버지는 대신 아내의 안부를 물었고, 숨졌다는 딸의 말에 고개만 끄덕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 때마다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두 자매도 북의 오빠가 상봉을 신청하면서 꿈을 이뤘습니다.
<녹취> 리형우 씨(北, 80살): "집 떠난 다음에도 너희들 생각했단 말이야.."
6.25 때 북한군에 징집된 경우가 대다수인 북한 가족들은 애써 훈장 등을 내보이며 남쪽의 가족을 안심시켰습니다.
<녹취> 최준규 씨(北, 77살): "기계 공학과 졸업해서, 기계 공학 기사야."
캐나다 등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해외 이산가족들도 60여년 만에 만난 가족들과 꿈같은 재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KBS 뉴스 이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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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기자 truth20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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