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현장을 가다] 희생자 69년째 방치

입력 2014.08.13 (21:29) 수정 2014.08.1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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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 현장을 취재한 연속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일본 본토의 첫 번째 강제 징용지로 14만 명이 끌려갔던 홋카이도 탄광을 KBS 취재진이 처음으로 찾아가 봤습니다.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홋카이도 삿포로시 외곽의 한 야산.

폐광산 입구가 2중.3중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미쓰비시가 금과 은을 캐던 곳으로, 지금은 원석을 분류하던 건물과 일부 갱도 시설만 남아있습니다.

이 광산은 일본 후생성의 강제동원령에 따라 1939년 10월 4일 처음으로 조선인 310명이 배치됐던 곳입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전국에서 강제징용 제1호가 이 테이네광산이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선발대는 모두 충남에서 강제 동원된 20~40대의 농민들이었고, 그 뒤 더 많은 사람들이 끌려왔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 : "탄광에 조선인이 들어간 것은 확실합니다."

미쓰비시가 운영했던 또다른 광산,

여기서도 조선인 2천8백 여명이 끌려와 일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숨진 조선인은 5백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강제징용 사실을 밝힌 글이나 추모시설은 하나도 없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홋카이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14만 5천 명.

영하 20~30도의 혹한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사람은 2천2백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유골은 광복 69주년이 되도록 강제징용의 땅에서 아직도 방치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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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강제징용 현장을 가다] 희생자 69년째 방치
    • 입력 2014-08-13 21:31:15
    • 수정2014-08-13 22: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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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8.15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 현장을 취재한 연속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일본 본토의 첫 번째 강제 징용지로 14만 명이 끌려갔던 홋카이도 탄광을 KBS 취재진이 처음으로 찾아가 봤습니다.

박재우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홋카이도 삿포로시 외곽의 한 야산.

폐광산 입구가 2중.3중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미쓰비시가 금과 은을 캐던 곳으로, 지금은 원석을 분류하던 건물과 일부 갱도 시설만 남아있습니다.

이 광산은 일본 후생성의 강제동원령에 따라 1939년 10월 4일 처음으로 조선인 310명이 배치됐던 곳입니다.

<인터뷰> 채홍철(홋카이도 포럼 공동대표) : "일본 전국에서 강제징용 제1호가 이 테이네광산이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선발대는 모두 충남에서 강제 동원된 20~40대의 농민들이었고, 그 뒤 더 많은 사람들이 끌려왔지만,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웃 주민 : "탄광에 조선인이 들어간 것은 확실합니다."

미쓰비시가 운영했던 또다른 광산,

여기서도 조선인 2천8백 여명이 끌려와 일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숨진 조선인은 5백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강제징용 사실을 밝힌 글이나 추모시설은 하나도 없습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홋카이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14만 5천 명.

영하 20~30도의 혹한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사람은 2천2백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유골은 광복 69주년이 되도록 강제징용의 땅에서 아직도 방치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KBS 뉴스 박재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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