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은] 8·15 광복, 남북의 시각 외
입력 2014.08.16 (08:03)
수정 2014.08.1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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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해로 광복 69년을 맞았습니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뜻 깊은 날인데요.
당시 남과 북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의미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이 보는 8.15광복의 시각,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리포트>
<녹취> 일왕 항복선언 : “(일본은)미. 영. 소. 중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보하도록 하였다.”
<녹취> "만세, 만세!“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다.
만세의 함성, 태극기의 물결.
‘광복’, 내 나라, 내 조국을 되찾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에서 벗어나 산천초목도 함께 목 놓아 울었다.
굳게 잠겼던 평양교도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항일투사의 손발을 꽁꽁 묶었던 족쇄가 긴 시름과 함께 풀렸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
1945년 8월 8일 대일전에 참전한 소련군은 8월 24일 평양에 진주했고, 김일성은 소련 군함을 타고 9월 19일 원산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10월, 소련군은 7만 여 군중이 참여한 평양시 환영대회에 33살의 젊은 김일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광복을 김일성의 ‘항일투쟁 승리의 역사’로 왜곡하며,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가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 조선인민군창건 80돐 경축 중앙보고대회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군대가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할 수 있게…….”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갈라선 남과 북.
광복을 토대로 민주화와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건설을 이룩한 남한은 식량부족과 일인독재하의 북한을 평화와 협력, 통일의 길로 이끌어 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로 광복 69년을 맞았습니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뜻 깊은 날인데요.
당시 남과 북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의미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이 보는 8.15광복의 시각,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리포트>
<녹취> 일왕 항복선언 : “(일본은)미. 영. 소. 중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보하도록 하였다.”
<녹취> "만세, 만세!“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다.
만세의 함성, 태극기의 물결.
‘광복’, 내 나라, 내 조국을 되찾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에서 벗어나 산천초목도 함께 목 놓아 울었다.
굳게 잠겼던 평양교도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항일투사의 손발을 꽁꽁 묶었던 족쇄가 긴 시름과 함께 풀렸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
1945년 8월 8일 대일전에 참전한 소련군은 8월 24일 평양에 진주했고, 김일성은 소련 군함을 타고 9월 19일 원산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10월, 소련군은 7만 여 군중이 참여한 평양시 환영대회에 33살의 젊은 김일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광복을 김일성의 ‘항일투쟁 승리의 역사’로 왜곡하며,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가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 조선인민군창건 80돐 경축 중앙보고대회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군대가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할 수 있게…….”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갈라선 남과 북.
광복을 토대로 민주화와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건설을 이룩한 남한은 식량부족과 일인독재하의 북한을 평화와 협력, 통일의 길로 이끌어 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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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광복 69년을 맞았습니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뜻 깊은 날인데요.
당시 남과 북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의미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이 보는 8.15광복의 시각,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리포트>
<녹취> 일왕 항복선언 : “(일본은)미. 영. 소. 중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보하도록 하였다.”
<녹취> "만세, 만세!“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다.
만세의 함성, 태극기의 물결.
‘광복’, 내 나라, 내 조국을 되찾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에서 벗어나 산천초목도 함께 목 놓아 울었다.
굳게 잠겼던 평양교도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항일투사의 손발을 꽁꽁 묶었던 족쇄가 긴 시름과 함께 풀렸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
1945년 8월 8일 대일전에 참전한 소련군은 8월 24일 평양에 진주했고, 김일성은 소련 군함을 타고 9월 19일 원산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10월, 소련군은 7만 여 군중이 참여한 평양시 환영대회에 33살의 젊은 김일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광복을 김일성의 ‘항일투쟁 승리의 역사’로 왜곡하며,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가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 조선인민군창건 80돐 경축 중앙보고대회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군대가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할 수 있게…….”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갈라선 남과 북.
광복을 토대로 민주화와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건설을 이룩한 남한은 식량부족과 일인독재하의 북한을 평화와 협력, 통일의 길로 이끌어 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로 광복 69년을 맞았습니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은 뜻 깊은 날인데요.
당시 남과 북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의미의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남과 북이 보는 8.15광복의 시각,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리포트>
<녹취> 일왕 항복선언 : “(일본은)미. 영. 소. 중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보하도록 하였다.”
<녹취> "만세, 만세!“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찾아왔다.
만세의 함성, 태극기의 물결.
‘광복’, 내 나라, 내 조국을 되찾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35년의 고통에서 벗어나 산천초목도 함께 목 놓아 울었다.
굳게 잠겼던 평양교도소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항일투사의 손발을 꽁꽁 묶었던 족쇄가 긴 시름과 함께 풀렸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은 잠시...
1945년 8월 8일 대일전에 참전한 소련군은 8월 24일 평양에 진주했고, 김일성은 소련 군함을 타고 9월 19일 원산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10월, 소련군은 7만 여 군중이 참여한 평양시 환영대회에 33살의 젊은 김일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광복을 김일성의 ‘항일투쟁 승리의 역사’로 왜곡하며,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가는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녹취> 조선인민군창건 80돐 경축 중앙보고대회 :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인민군대가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당의 혁명적 무장력으로서의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할 수 있게…….”
해방과 자유의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갈라선 남과 북.
광복을 토대로 민주화와 세계 10위 규모의 경제건설을 이룩한 남한은 식량부족과 일인독재하의 북한을 평화와 협력, 통일의 길로 이끌어 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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