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대신 사랑을…경계인의 굴곡진 삶
입력 2014.08.18 (06:38)
수정 2014.08.18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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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더러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도 했지만, 냉대를 못 견디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경계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사연,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70년 전 19살 때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 광부와 결혼한 아오키 할머니.
결혼 이듬해 광복이 되자, 남편을 따라 말도 안 통하는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남편의 구박과 멸시에 지쳐 일본에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아오키(89살) : "(부산에서) 갈치나 고등어 같은 것 여러 가지 시장에서 팔았지. 한국말을 못해서 힘들었어."
96살 에노모토 할머니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광복 이듬해 충북 옥천으로 건너왔지만, 차별과 냉대를 못 견디고 1970년대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 임옥희(에노모토 할머니 딸) : "우리는 일본말을 모르잖아요. 우리 엄마하고 같이 갔는데도 한국사람이라고 집 안 빌려줬어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들은 50년 전 부용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3천 명이 넘던 회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연락이 끊겨 이젠 모임 참석자가 3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구니타 후사코(부용회 회장) : "한 번만이라도 일본 땅을 밟아보고 죽으면 좋은데 결국 못 가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한 일본인 할머니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굴곡진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더러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도 했지만, 냉대를 못 견디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경계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사연,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70년 전 19살 때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 광부와 결혼한 아오키 할머니.
결혼 이듬해 광복이 되자, 남편을 따라 말도 안 통하는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남편의 구박과 멸시에 지쳐 일본에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아오키(89살) : "(부산에서) 갈치나 고등어 같은 것 여러 가지 시장에서 팔았지. 한국말을 못해서 힘들었어."
96살 에노모토 할머니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광복 이듬해 충북 옥천으로 건너왔지만, 차별과 냉대를 못 견디고 1970년대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 임옥희(에노모토 할머니 딸) : "우리는 일본말을 모르잖아요. 우리 엄마하고 같이 갔는데도 한국사람이라고 집 안 빌려줬어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들은 50년 전 부용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3천 명이 넘던 회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연락이 끊겨 이젠 모임 참석자가 3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구니타 후사코(부용회 회장) : "한 번만이라도 일본 땅을 밟아보고 죽으면 좋은데 결국 못 가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한 일본인 할머니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굴곡진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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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대신 사랑을…경계인의 굴곡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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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8-18 06:40:17
- 수정2014-08-18 07:24:48
<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더러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도 했지만, 냉대를 못 견디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경계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사연,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70년 전 19살 때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 광부와 결혼한 아오키 할머니.
결혼 이듬해 광복이 되자, 남편을 따라 말도 안 통하는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남편의 구박과 멸시에 지쳐 일본에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아오키(89살) : "(부산에서) 갈치나 고등어 같은 것 여러 가지 시장에서 팔았지. 한국말을 못해서 힘들었어."
96살 에노모토 할머니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광복 이듬해 충북 옥천으로 건너왔지만, 차별과 냉대를 못 견디고 1970년대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 임옥희(에노모토 할머니 딸) : "우리는 일본말을 모르잖아요. 우리 엄마하고 같이 갔는데도 한국사람이라고 집 안 빌려줬어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들은 50년 전 부용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3천 명이 넘던 회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연락이 끊겨 이젠 모임 참석자가 3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구니타 후사코(부용회 회장) : "한 번만이라도 일본 땅을 밟아보고 죽으면 좋은데 결국 못 가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한 일본인 할머니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굴곡진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일본인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더러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도 했지만, 냉대를 못 견디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채 경계인으로 살아온 이들의 사연, 이진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70년 전 19살 때 일본으로 끌려온 한국인 광부와 결혼한 아오키 할머니.
결혼 이듬해 광복이 되자, 남편을 따라 말도 안 통하는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남편의 구박과 멸시에 지쳐 일본에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가 없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아오키(89살) : "(부산에서) 갈치나 고등어 같은 것 여러 가지 시장에서 팔았지. 한국말을 못해서 힘들었어."
96살 에노모토 할머니는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광복 이듬해 충북 옥천으로 건너왔지만, 차별과 냉대를 못 견디고 1970년대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터뷰> 임옥희(에노모토 할머니 딸) : "우리는 일본말을 모르잖아요. 우리 엄마하고 같이 갔는데도 한국사람이라고 집 안 빌려줬어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들은 50년 전 부용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3천 명이 넘던 회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연락이 끊겨 이젠 모임 참석자가 3명으로 줄었습니다.
<인터뷰> 구니타 후사코(부용회 회장) : "한 번만이라도 일본 땅을 밟아보고 죽으면 좋은데 결국 못 가보고 돌아가신 분들도 있어요."
조국 대신 사랑을 택한 일본인 할머니들,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굴곡진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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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기자 e-gij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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