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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북한] ‘이순신 열풍’…북한의 역사 인식
입력 2014.08.23 (08:07) 수정 2014.08.23 (08:31)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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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명량’의 활약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우직한 충신, 성웅 이순신의 모습이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선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어린이 프로그램에선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그대로 전하며 그의 애국심과 용맹성을 부각시킨다.

<녹취> 옛말할아버지 <애국명장 리순신> : "12척 밖에 안 되는 싸움배를 거느리고 유리한 지형인 해남 앞 바다로 이동했습니다. 적들의 배는 330척이나 됐습니다. 군사들! 겁을 먹지 말라! 죽기로써 싸우면 이기는 법이다! 저 피 묻은 원수 왜놈들을 족치자!"

북한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이순신 훈장’을 제정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엔 거북선을 1/70로 축소 제작해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하는 등 거북선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민족 영웅들에 비해 이순신 장군은 비교적 언급이 많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터뷰>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김일성 수상의 자기 회고에 따르면 자기가 중학교 시절에 읽은 책 중에 이순신 장군의 전기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읽었던 책 들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 애국명장과 관련되어서는 이순신 장군이 유일합니다.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싸운 애국명장으로써 존경해야 될 인물이다라고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는 남북한의 어떤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즐겨봤다고 알려져 이순신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관심을 알 수 있다.

<녹취> 북한영화 <임진왜란> (1991년) : "(여해! 기별도 없이 언제 올라오셨소?) 꽃 시절, 좋은 날에 그대 홀로 나라 근심에 잠 못 이루나니. 애국의 뜻 맑고 깊어라."

왜군에 맞서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그려지곤 있지만 우리에게 각인된 ‘영웅’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뷰> 김00 (교원 출신 탈북자/음성변조) : "북한 사람들은 이순신에 대해서 그냥 왜적들 하고 싸운 배를 타고 남해 바다를 지켜낸 그러한 이순신으로서 잠시 잠깐 그런 교육이 있었다 뿐이지 그것에 대해서 한국처럼 영화를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그러한 건 아니거든요."

역사적 영웅들에 대한 평가가 유일영도체제가 구축된 시대에 맞춰 재해석된 것으로 풀이된다.

90년대 접어들면서 북한 당국은 단군을 실재 인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녹취> 조선중앙TV (2011년 10월) :" 기원전 2993년 10월 3일, 평양을 도읍으로 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단군 조선은 동방에 일떠선(세워진) 첫 국가였습니다."

<인터뷰>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단군의 뼈를 발견했다고 하는 이후에 있어서는 단군에 대한 관 심을 지속적으로 높여오고 있습 니다. 사회주의로 써 묶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현실이 발생했고. 따라서 새롭게 북한 주민들을 우리 역사 전통 속 에서 애국주의라는 것으로 묶어내는데 있어서 단군만한 인물이 없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는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됐다고 선전하고 있고, 고구려와 고려까지 이어지는 북방의 역사를 민족의 정통성으로 강조한다.

지난 2010년부터 총 7부작으로 제작된 역사물 만화영화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이다.

북한 당국은 역사자료에 기초해 당시 사람들의 차림새와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렇듯 고구려를 중시하는 반면, 조선과 신라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해석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 : "역사관이라고 하는 정통성 문제에 있어선 이제 고조선과 고구려와 고려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제 통일신라시대라던가 조선에 대해 서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고요. 통일신라, 신라 같은 경우에도 보면 외세와 결탁을 했다라는 점 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고. 지리적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이 북쪽 지역에 있고 그런 점에서 아마 높이 평가하는 것 같고요."

지난해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구려 고분군에 이어 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셈이다.

이밖에도 사회과학원 산하에 고고학연구소를 포함해 여러 역사연구기관을 운영하며 꾸준히 유적과 유물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4월)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일꾼들과 연구사들이 평양시 삼석 구역에서 고구려 시기의 벽화 무덤을 발굴 고증했습니다."

또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조선중앙혁명박물관과 각 지역별로 다양한 역사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엔 북한의 역사유적과 문화 풍속을 엿볼 수 있는 평양민속공원을 개장했다.

대성산 기슭에 위치한 평양민속공원은 60만평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녹취> 평양민속공원 현지지도 (2012년 8월) : "금당사탑, 경천사탑, 보현사 팔각13층탑, 백제의 미륵사탑, 신라의 황룡사탑 등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유물들이 1:1 또는 축소 모형으로 잘 전시 됐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이곳엔 실물 크기의 거북선 모형과 고조선 벽화,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 석굴암 모형까지 대량의 유적유물들의 모형이 설치돼있다.

북한의 역사교육은 어떨까?

<인터뷰> 김00 (교원 출신 탈북자/음성변조) :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을 역사 교육을 시킬 때도 그냥 간단히 알려주는 형식. 우리 나라(북한) 역사 흐름에 이러한 장군도 있었다. 이런 개념으 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는 역사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 당국은 역사적 인물들과 역사 상식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퀴즈대회에선 역사 문제가 다뤄지기도 한다.

을지문덕 장군과 주몽, 연개소문과 정몽주, 그리고 최영 등 주로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활동한 인물들을 다룬다.

<녹취> 옛말할아버지 (지난해 5월) : "(거북선을 만든 리순신 장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애국명장들이 있나요? (연개소문 장군도 있습니다! 계백장군! 최영장군! 할아버지 강감찬 장군도 있습니다!) "

그러나 역사 인물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엔 차이가 있다.

이성계를 권력에 눈이 멀어 고구려 영토를 회복할 기회를 놓친 ‘만고의 역적’으로 평가하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 부른다.

<인터뷰> 김00(교원 출신 탈북자 /음성변조) : "이성계에 대해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역도로, 우리 땅덩이를 완전히 중국에다 팔아먹은 매국노처럼 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고 우리 인민의 슬기로운 그러한 지혜로 만든 글이다."

최근 한 북한매체는 북한 주민들에게 드라마 ‘정도전’을 볼 경우 엄벌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린 것으로 전하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3월) : "최근 일본 반동들은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열사를 테러 분자로 모독하는 등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면서 과거 일제의 침략적 죄악상을 가려보려고 파렴치하게 놀아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 방송 장면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극복한 우수한 민족이라는 점을 남북 모두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에 주체사상이 정립되면서 북한의 역사인식도 이에 맞게 변화한다.

우리는 개항시기인 1880년대를 근대의 기점으로 보지만 북한은 반침략 반외세 투쟁과 관련한 1860년대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의 초기 혁명 활동 시기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된 1926년을 현대사의 시점으로 규정한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 : "북한에서 규정한 근대사 자체가 김일성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이죠. 오직 그 유일한 김일성의 항일무장 혁명 투쟁 외 에 다른 것들은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고. 그렇다 보니까 이게 여러 가지 다 양성이라고 하 는 해석들은 다 놓쳐 버리게 되는 상황들이죠."

따라서 북한의 역사교육을 받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와서 겪는 혼란은 클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고구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를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하기 위한 사업이 3년 만에 재개됐다.

개성 만월대 사업에 참가했던 김광운 연구관은 남북 역사교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북 지역에 있는 우리의 어떤 유적, 유물들을 공동으로 발굴 보존하는 것을 우리가 지원하고 그런 과정에서 남북 역사학계가 교류협력을 해나갈 수 있다면 이 역사 공간에서는 통일을 이룰 수 있겠고요. 또 그것이 향후에 있어서 민족 통일을 위한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 같은 역사와 같은 인물을 놓고도 남과 북은 다른 역사관을 갖게 됐다.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측면에서 서로의 간격을 줄여나갈 때 통일의 날은 가까워질 것이다.
  • [클로즈업 북한] ‘이순신 열풍’…북한의 역사 인식
    • 입력 2014-08-23 08:22:12
    • 수정2014-08-23 08:31:35
    남북의 창
<리포트>

한국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명량’의 활약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우직한 충신, 성웅 이순신의 모습이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선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어린이 프로그램에선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그대로 전하며 그의 애국심과 용맹성을 부각시킨다.

<녹취> 옛말할아버지 <애국명장 리순신> : "12척 밖에 안 되는 싸움배를 거느리고 유리한 지형인 해남 앞 바다로 이동했습니다. 적들의 배는 330척이나 됐습니다. 군사들! 겁을 먹지 말라! 죽기로써 싸우면 이기는 법이다! 저 피 묻은 원수 왜놈들을 족치자!"

북한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이순신 훈장’을 제정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엔 거북선을 1/70로 축소 제작해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하는 등 거북선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민족 영웅들에 비해 이순신 장군은 비교적 언급이 많은 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터뷰>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김일성 수상의 자기 회고에 따르면 자기가 중학교 시절에 읽은 책 중에 이순신 장군의 전기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읽었던 책 들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 애국명장과 관련되어서는 이순신 장군이 유일합니다. 일본 침략자들에 맞서 싸운 애국명장으로써 존경해야 될 인물이다라고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는 남북한의 어떤 공통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즐겨봤다고 알려져 이순신에 대한 북한 지도자의 관심을 알 수 있다.

<녹취> 북한영화 <임진왜란> (1991년) : "(여해! 기별도 없이 언제 올라오셨소?) 꽃 시절, 좋은 날에 그대 홀로 나라 근심에 잠 못 이루나니. 애국의 뜻 맑고 깊어라."

왜군에 맞서 나라를 구한 장군으로 그려지곤 있지만 우리에게 각인된 ‘영웅’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뷰> 김00 (교원 출신 탈북자/음성변조) : "북한 사람들은 이순신에 대해서 그냥 왜적들 하고 싸운 배를 타고 남해 바다를 지켜낸 그러한 이순신으로서 잠시 잠깐 그런 교육이 있었다 뿐이지 그것에 대해서 한국처럼 영화를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그러한 건 아니거든요."

역사적 영웅들에 대한 평가가 유일영도체제가 구축된 시대에 맞춰 재해석된 것으로 풀이된다.

90년대 접어들면서 북한 당국은 단군을 실재 인물로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녹취> 조선중앙TV (2011년 10월) :" 기원전 2993년 10월 3일, 평양을 도읍으로 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습니다. 단군 조선은 동방에 일떠선(세워진) 첫 국가였습니다."

<인터뷰>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단군의 뼈를 발견했다고 하는 이후에 있어서는 단군에 대한 관 심을 지속적으로 높여오고 있습 니다. 사회주의로 써 묶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운 현실이 발생했고. 따라서 새롭게 북한 주민들을 우리 역사 전통 속 에서 애국주의라는 것으로 묶어내는데 있어서 단군만한 인물이 없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역사는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됐다고 선전하고 있고, 고구려와 고려까지 이어지는 북방의 역사를 민족의 정통성으로 강조한다.

지난 2010년부터 총 7부작으로 제작된 역사물 만화영화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이다.

북한 당국은 역사자료에 기초해 당시 사람들의 차림새와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렇듯 고구려를 중시하는 반면, 조선과 신라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해석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 : "역사관이라고 하는 정통성 문제에 있어선 이제 고조선과 고구려와 고려를 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제 통일신라시대라던가 조선에 대해 서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고요. 통일신라, 신라 같은 경우에도 보면 외세와 결탁을 했다라는 점 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고. 지리적으로 많은 문화유산들이 북쪽 지역에 있고 그런 점에서 아마 높이 평가하는 것 같고요."

지난해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구려 고분군에 이어 두 번째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셈이다.

이밖에도 사회과학원 산하에 고고학연구소를 포함해 여러 역사연구기관을 운영하며 꾸준히 유적과 유물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4월) :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의 일꾼들과 연구사들이 평양시 삼석 구역에서 고구려 시기의 벽화 무덤을 발굴 고증했습니다."

또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조선중앙혁명박물관과 각 지역별로 다양한 역사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엔 북한의 역사유적과 문화 풍속을 엿볼 수 있는 평양민속공원을 개장했다.

대성산 기슭에 위치한 평양민속공원은 60만평에 이를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녹취> 평양민속공원 현지지도 (2012년 8월) : "금당사탑, 경천사탑, 보현사 팔각13층탑, 백제의 미륵사탑, 신라의 황룡사탑 등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유물들이 1:1 또는 축소 모형으로 잘 전시 됐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이곳엔 실물 크기의 거북선 모형과 고조선 벽화, 그리고 광개토대왕비를 비롯해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 석굴암 모형까지 대량의 유적유물들의 모형이 설치돼있다.

북한의 역사교육은 어떨까?

<인터뷰> 김00 (교원 출신 탈북자/음성변조) : "수업 시간에도 아이들을 역사 교육을 시킬 때도 그냥 간단히 알려주는 형식. 우리 나라(북한) 역사 흐름에 이러한 장군도 있었다. 이런 개념으 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는 역사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북한 당국은 역사적 인물들과 역사 상식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퀴즈대회에선 역사 문제가 다뤄지기도 한다.

을지문덕 장군과 주몽, 연개소문과 정몽주, 그리고 최영 등 주로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활동한 인물들을 다룬다.

<녹취> 옛말할아버지 (지난해 5월) : "(거북선을 만든 리순신 장군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애국명장들이 있나요? (연개소문 장군도 있습니다! 계백장군! 최영장군! 할아버지 강감찬 장군도 있습니다!) "

그러나 역사 인물에 대한 남북한의 시각엔 차이가 있다.

이성계를 권력에 눈이 멀어 고구려 영토를 회복할 기회를 놓친 ‘만고의 역적’으로 평가하지만,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으로 부른다.

<인터뷰> 김00(교원 출신 탈북자 /음성변조) : "이성계에 대해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역도로, 우리 땅덩이를 완전히 중국에다 팔아먹은 매국노처럼 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고 우리 인민의 슬기로운 그러한 지혜로 만든 글이다."

최근 한 북한매체는 북한 주민들에게 드라마 ‘정도전’을 볼 경우 엄벌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린 것으로 전하기도 했다.

<녹취> 조선중앙TV (지난 3월) : "최근 일본 반동들은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열사를 테러 분자로 모독하는 등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면서 과거 일제의 침략적 죄악상을 가려보려고 파렴치하게 놀아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안중근 의사에 대한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 방송 장면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극복한 우수한 민족이라는 점을 남북 모두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에 주체사상이 정립되면서 북한의 역사인식도 이에 맞게 변화한다.

우리는 개항시기인 1880년대를 근대의 기점으로 보지만 북한은 반침략 반외세 투쟁과 관련한 1860년대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의 초기 혁명 활동 시기로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된 1926년을 현대사의 시점으로 규정한다.

<인터뷰> 전영선(건국대 통일인문학 연구교수) : "북한에서 규정한 근대사 자체가 김일성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이죠. 오직 그 유일한 김일성의 항일무장 혁명 투쟁 외 에 다른 것들은 용납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고. 그렇다 보니까 이게 여러 가지 다 양성이라고 하 는 해석들은 다 놓쳐 버리게 되는 상황들이죠."

따라서 북한의 역사교육을 받은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와서 겪는 혼란은 클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고구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를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하기 위한 사업이 3년 만에 재개됐다.

개성 만월대 사업에 참가했던 김광운 연구관은 남북 역사교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터뷰>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북 지역에 있는 우리의 어떤 유적, 유물들을 공동으로 발굴 보존하는 것을 우리가 지원하고 그런 과정에서 남북 역사학계가 교류협력을 해나갈 수 있다면 이 역사 공간에서는 통일을 이룰 수 있겠고요. 또 그것이 향후에 있어서 민족 통일을 위한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 같은 역사와 같은 인물을 놓고도 남과 북은 다른 역사관을 갖게 됐다.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측면에서 서로의 간격을 줄여나갈 때 통일의 날은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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