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아버지 자살…‘태권도 승부조작’ 전말은?

입력 2014.09.17 (08:38) 수정 2014.09.1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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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국체전 태권도 선수 선발 과정에서 승부 조작 의혹이 불거졌고, 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승부조작 과정에서 편파판정으로 피해를 입은 선수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파문이 일고 있는데요.

이승훈 기자, 자세한 내용 취재했죠?

<리포트>

지난해 5월에 열린 전국체전 서울시 고등부 대표 선발전입니다.

빨간색 보호대를 찬 선수가 5대 1로 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5대 1이 딱 됐을 때 자신감은 있었죠, 이기고 있는 상황이니까. (상대 선수는) 2번째 만나는 건데요, (이전 시합에서) 제가 이겼었어요. 그래서 좀 자신이 있었고......"

경기 종료까지는 이제 50초 정도가 남은 상황.

그런데, 갑자기 경기의 흐름이 이상해집니다.

심판이 이기고 있는 선수에게 잇따라 경고를 주기 시작한 것.

50초가 흐르는 사이 무려 6개의 경고가 잇따라 주어졌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처음에 경고 몇 개 받을 때는 내가 잘못 해서 받았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경고가 계속 오니까 이게 경고 사항인가......"

이렇게 누적된 경고가 8개.

결국 앞서고 있던 선수는 반칙패로 경기에 지고 말았습니다.

<녹취> 전 태권도 협회 관계자 (음성변조) : "30점을 따더라도 경고 8개 받으면 30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바로 반칙패, 감점패가 되는 거예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 경기.

태권도장의 관장이었던 패배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질책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네가 더 열심히 하고 그런 경기 안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잘 해야 된다’ 그러니까 당근보다는 채찍을 주신 거죠.

하지만, 누가 봐도 납득이 어려운 경기 결과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얼마 뒤 결국 아버지는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삭여지지 않은 분노가 유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는데요.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태권도 협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믿기 힘든 사건의 전모를 발표합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2013년 5월,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서 편파판정에 항의하며 선수 아버지가 자살한 시합은 조직적인 승부 조작으로 드러나 각 승부조작 가담자 7명을 입건하여 수사 중에 있습니다."

경찰이 밝혀낸 건 협회 임원 등이 개입된 승부 조작이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대학 진학에 쓸 입상 경력 확보를 위해, 지인에게 잘 봐 달라는 청탁을 했고, 이 청탁은 서울시 태권도 협회의 한 간부에게 전달됐다는게 경찰의 설명.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지시하는 사람하고, 지시 받는 사람하고 친분이나 학연이나 이런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밀하게 말로만 전달되는"

이 은밀한 청탁은 협회 내 다른 간부와 심판부 등을 거쳐, 경기 당일 주심에게까지 하달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경기 주심은 5번째와 7번째 경고는 주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다며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체육대회에서 오래된, 내려오는 관행이에요. 청탁이지만 여기는 사실 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선수가 오랫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편파판정.

게다가 경찰이 이번 수사로 밝힌 협회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서울시 태권도 협회 임직원들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비상군 임원들에게 허위로 활동 보고서를 작성, 40여 명에게 약 11억 원의 활동비를 부당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쉬쉬하며 관행처럼 이뤄진 부조리가 터져 나온 겁니다.

경찰은 승부조작과 관련해 협회 간부와 심판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업무상 배임 혐의로는 모두 11명을 입건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늦었지만 그 진실을 밝혀주신, 경찰 관계자분들이 힘써주신 거잖아요. 이걸 아빠가 알면 좋지 않았을까요."

<기자 멘트>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입니다.

그런데, 그런 태권도에서 이런 비리 파문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면 태권도는 물론 국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부조리를 하루빨리 근절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리포트>

부끄러운 편파 판정은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어린 학생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힘들었죠. 운동 열심히 해서 서울시 대표 선발전, 최종 선발전에 나와서 했는데 허무하고 허탈했죠."

다행히 지금은 주변의 도움으로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합 직후에는 한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을 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그게 5월이었잖아요. 5월부터 계속 방황하고 그러다 보니까 시합 뛰어도 막 지고, 우울하니까 떨어지고, 다리 떨림 심해지고, 징크스 생기고 그랬죠."

협회 안팎에서는 현행 시스템은 승부 조작의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윗선의 간섭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심판 문제를 많이 꼬집습니다.

<녹취> 전 태권도 협회 관계자 (음성변조) : "생계형 심판이죠. 심판비가 8만 원이거든요. 그거 받고 또 다른 일도 하면서 가족을 그렇게 꾸려 나가는 거예요."

생계가 걸려 있다보니, 심판 배정권을 행사하는 심판 위원장이나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는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정국현(교수/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 "상임심판제를 줘서, 예를 들어서 연봉제를 도입한다든가 그런 다음에 그러한 심판들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세워서 엄격하게 심판이 오심을 보고 있다든가, 행동이 올바르지 못할 때는 탈락시키는.."

물론 인맥과 학연에 파묻혀, 곪을 대로 곪아버린 태권도계의 고질적인 부조리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인터뷰> 정국현(교수/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 "어느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우리 태권도인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바른 태권도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에 우리가 힘을 써야 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도로서 태권도가 다시 국민 앞에 떳떳하기 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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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아버지 자살…‘태권도 승부조작’ 전말은?
    • 입력 2014-09-17 08:12:12
    • 수정2014-09-17 16: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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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전국체전 태권도 선수 선발 과정에서 승부 조작 의혹이 불거졌고, 경찰 조사 결과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승부조작 과정에서 편파판정으로 피해를 입은 선수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파문이 일고 있는데요.

이승훈 기자, 자세한 내용 취재했죠?

<리포트>

지난해 5월에 열린 전국체전 서울시 고등부 대표 선발전입니다.

빨간색 보호대를 찬 선수가 5대 1로 앞서고 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5대 1이 딱 됐을 때 자신감은 있었죠, 이기고 있는 상황이니까. (상대 선수는) 2번째 만나는 건데요, (이전 시합에서) 제가 이겼었어요. 그래서 좀 자신이 있었고......"

경기 종료까지는 이제 50초 정도가 남은 상황.

그런데, 갑자기 경기의 흐름이 이상해집니다.

심판이 이기고 있는 선수에게 잇따라 경고를 주기 시작한 것.

50초가 흐르는 사이 무려 6개의 경고가 잇따라 주어졌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처음에 경고 몇 개 받을 때는 내가 잘못 해서 받았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경고가 계속 오니까 이게 경고 사항인가......"

이렇게 누적된 경고가 8개.

결국 앞서고 있던 선수는 반칙패로 경기에 지고 말았습니다.

<녹취> 전 태권도 협회 관계자 (음성변조) : "30점을 따더라도 경고 8개 받으면 30점 아무 의미가 없어요. 바로 반칙패, 감점패가 되는 거예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 경기.

태권도장의 관장이었던 패배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질책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네가 더 열심히 하고 그런 경기 안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잘 해야 된다’ 그러니까 당근보다는 채찍을 주신 거죠.

하지만, 누가 봐도 납득이 어려운 경기 결과는 아버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얼마 뒤 결국 아버지는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삭여지지 않은 분노가 유서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는데요.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태권도 협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믿기 힘든 사건의 전모를 발표합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2013년 5월,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서 편파판정에 항의하며 선수 아버지가 자살한 시합은 조직적인 승부 조작으로 드러나 각 승부조작 가담자 7명을 입건하여 수사 중에 있습니다."

경찰이 밝혀낸 건 협회 임원 등이 개입된 승부 조작이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대학 진학에 쓸 입상 경력 확보를 위해, 지인에게 잘 봐 달라는 청탁을 했고, 이 청탁은 서울시 태권도 협회의 한 간부에게 전달됐다는게 경찰의 설명.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지시하는 사람하고, 지시 받는 사람하고 친분이나 학연이나 이런 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밀하게 말로만 전달되는"

이 은밀한 청탁은 협회 내 다른 간부와 심판부 등을 거쳐, 경기 당일 주심에게까지 하달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경기 주심은 5번째와 7번째 경고는 주지 않아도 될 사안이었다며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체육대회에서 오래된, 내려오는 관행이에요. 청탁이지만 여기는 사실 지시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선수가 오랫동안 흘린 땀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편파판정.

게다가 경찰이 이번 수사로 밝힌 협회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김도상(팀장/경찰청 특수수사과) : "서울시 태권도 협회 임직원들은 2009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비상군 임원들에게 허위로 활동 보고서를 작성, 40여 명에게 약 11억 원의 활동비를 부당 지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쉬쉬하며 관행처럼 이뤄진 부조리가 터져 나온 겁니다.

경찰은 승부조작과 관련해 협회 간부와 심판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업무상 배임 혐의로는 모두 11명을 입건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늦었지만 그 진실을 밝혀주신, 경찰 관계자분들이 힘써주신 거잖아요. 이걸 아빠가 알면 좋지 않았을까요."

<기자 멘트>

우리나라는 태권도 종주국입니다.

그런데, 그런 태권도에서 이런 비리 파문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면 태권도는 물론 국가의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요?

이런 부조리를 하루빨리 근절시켜야 하는 이유입니다.

<리포트>

부끄러운 편파 판정은 태권도 선수가 되겠다는 어린 학생의 꿈을 짓밟았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힘들었죠. 운동 열심히 해서 서울시 대표 선발전, 최종 선발전에 나와서 했는데 허무하고 허탈했죠."

다행히 지금은 주변의 도움으로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가고 있지만, 시합 직후에는 한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을 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편파 판정 피해 학생 : "그게 5월이었잖아요. 5월부터 계속 방황하고 그러다 보니까 시합 뛰어도 막 지고, 우울하니까 떨어지고, 다리 떨림 심해지고, 징크스 생기고 그랬죠."

협회 안팎에서는 현행 시스템은 승부 조작의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윗선의 간섭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심판 문제를 많이 꼬집습니다.

<녹취> 전 태권도 협회 관계자 (음성변조) : "생계형 심판이죠. 심판비가 8만 원이거든요. 그거 받고 또 다른 일도 하면서 가족을 그렇게 꾸려 나가는 거예요."

생계가 걸려 있다보니, 심판 배정권을 행사하는 심판 위원장이나 윗선의 지시를 거부하는게 쉽지만은 않다는 것.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정국현(교수/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 "상임심판제를 줘서, 예를 들어서 연봉제를 도입한다든가 그런 다음에 그러한 심판들에 대한 평가 기준을 세워서 엄격하게 심판이 오심을 보고 있다든가, 행동이 올바르지 못할 때는 탈락시키는.."

물론 인맥과 학연에 파묻혀, 곪을 대로 곪아버린 태권도계의 고질적인 부조리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인터뷰> 정국현(교수/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 "어느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우리 태권도인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바른 태권도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에 우리가 힘을 써야 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도로서 태권도가 다시 국민 앞에 떳떳하기 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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