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환기구 규정’ 방치된 사고

입력 2014.10.20 (19:57) 수정 2014.10.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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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사고 현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환기구 덮개를 받치는 보강재만 충분했어도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거에요. 보도용 환기구는 아니지만 돌발 상황에 대비해 더 많은 하중을 견디도록 해야 했는데…"

A씨는 지난 17일 발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 사고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말을 흐렸다. A씨는 환기구 덮개(스틸 그레이팅)를 만드는 업체의 대표다.

A씨는 오늘(20일) KBS와의 통화에서 환기구 관련 안전 규정이 미비해 인명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판교 추락 사고 현장 사진을 보자마자 중간 보강재가 없어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용 환기구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보강 설계를 해야 한다"며 "접근을 막을 수 없는 장치도 없이 무방비로 위험이 노출돼 있었다"고 말했다.


▲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사고 현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붕괴된 판교 환기구 덮개 아래에는 'ㄷ'자형 형강(강철재)이 수평을 이루며 받치고 있었다. 이 형강은 환기구 주변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직각을 이루며 볼트로 연결돼 있었다.

격벽 등 환기구 덮개를 받치는 중간 보강재가 없어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면 쉽게 휘어지는 구조였다.

결국 환기구와 직각을 이루며 환기구 덮개를 받쳐줄 에이치(H) 빔 등 보강재가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재난안전원 김동헌 원장은 "H빔이 들어간 구조물 위에는 100명이 올라가도 문제가 없다"며 "판교 환기구는 여러 명이 올라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 판교 환기구, 보강재 부실했던 이유는?

추락한 환기구 덮개는 왜 H빔과 같은 중간 보강재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것은 해당 환기구가 보행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람이 밟지 않는 환기구는 '건축 구조 기준'에 따라 지붕으로 판단돼 제곱미터(㎡)당 100㎏의 무게만 견딜 수 있으면 된다.

설계상 H빔 없이 형강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하중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비용을 더 들여가며 보강재를 설치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 한 시민이 보도용 환기구를 밟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반면 사람이나 자동차가 밟고 지나갈 수 있는 환기구는 ㎡당 300~500㎏의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해야 한다.

서울의 지하철 환기구는 이 기준에 따라 설계됐다. 현재 서울 지하철 1~9호선의 환기구는 2418개며 이 가운데 사람들이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높이 30㎝ 미만은 199개로 파악된다.

서울 지하철 환기구의 통로 가운데는 콘크리트 구조물(격벽)이 세워져 있어 ㎡당 5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

문제는 보행용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환기구뿐 아니라 보행이 금지된 돌출형 환기구에도 사람들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번 판교 추락 사고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높이가 1.5m인 환기구에 올라가 있었다.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비해 모든 환기구에 더욱 강화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오재응 교수는 "모든 환기구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환기구 안전 규격을 만들고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대 건축학부 안형준 교수는 "외국과 같이 사람들이 환기구 덮개를 밟지 못하도록 조형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환기구 접근 금지 방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성남 분당경찰서는 조만간 환기구 철제 구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자재 불량 및 부실시공 여부, 한계 하중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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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술한 환기구 규정’ 방치된 사고
    • 입력 2014-10-20 19:57:40
    • 수정2014-10-20 20:04:34
    사회

▲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사고 현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환기구 덮개를 받치는 보강재만 충분했어도 이런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거에요. 보도용 환기구는 아니지만 돌발 상황에 대비해 더 많은 하중을 견디도록 해야 했는데…"

A씨는 지난 17일 발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 사고에 대해 큰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말을 흐렸다. A씨는 환기구 덮개(스틸 그레이팅)를 만드는 업체의 대표다.

A씨는 오늘(20일) KBS와의 통화에서 환기구 관련 안전 규정이 미비해 인명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판교 추락 사고 현장 사진을 보자마자 중간 보강재가 없어 사고가 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용 환기구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보강 설계를 해야 한다"며 "접근을 막을 수 없는 장치도 없이 무방비로 위험이 노출돼 있었다"고 말했다.


▲ 판교 테크노밸리 환기구 추락사고 현장 [사진 제공 = 연합뉴스]

붕괴된 판교 환기구 덮개 아래에는 'ㄷ'자형 형강(강철재)이 수평을 이루며 받치고 있었다. 이 형강은 환기구 주변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직각을 이루며 볼트로 연결돼 있었다.

격벽 등 환기구 덮개를 받치는 중간 보강재가 없어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면 쉽게 휘어지는 구조였다.

결국 환기구와 직각을 이루며 환기구 덮개를 받쳐줄 에이치(H) 빔 등 보강재가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재난안전원 김동헌 원장은 "H빔이 들어간 구조물 위에는 100명이 올라가도 문제가 없다"며 "판교 환기구는 여러 명이 올라가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 판교 환기구, 보강재 부실했던 이유는?

추락한 환기구 덮개는 왜 H빔과 같은 중간 보강재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것은 해당 환기구가 보행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람이 밟지 않는 환기구는 '건축 구조 기준'에 따라 지붕으로 판단돼 제곱미터(㎡)당 100㎏의 무게만 견딜 수 있으면 된다.

설계상 H빔 없이 형강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하중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굳이 비용을 더 들여가며 보강재를 설치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 한 시민이 보도용 환기구를 밟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반면 사람이나 자동차가 밟고 지나갈 수 있는 환기구는 ㎡당 300~500㎏의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해야 한다.

서울의 지하철 환기구는 이 기준에 따라 설계됐다. 현재 서울 지하철 1~9호선의 환기구는 2418개며 이 가운데 사람들이 쉽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높이 30㎝ 미만은 199개로 파악된다.

서울 지하철 환기구의 통로 가운데는 콘크리트 구조물(격벽)이 세워져 있어 ㎡당 500㎏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

문제는 보행용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환기구뿐 아니라 보행이 금지된 돌출형 환기구에도 사람들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번 판교 추락 사고 당시,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높이가 1.5m인 환기구에 올라가 있었다.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비해 모든 환기구에 더욱 강화된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한양대 기계공학부 오재응 교수는 "모든 환기구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환기구 안전 규격을 만들고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국대 건축학부 안형준 교수는 "외국과 같이 사람들이 환기구 덮개를 밟지 못하도록 조형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환기구 접근 금지 방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성남 분당경찰서는 조만간 환기구 철제 구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 자재 불량 및 부실시공 여부, 한계 하중 등을 파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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