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기마형 인물토기 출토

입력 2002.03.12 (21:00) 수정 2018.08.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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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방 후 처음으로 신라시대의 기마인물형 토기가 출토됐습니다.
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기에는 당시 무사의 모습이 아주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박상민 기자입니다.
⊙기자: 경주시 덕천리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입니다.
높이 20cm, 길이 27cm 크기로 투박스러운 말은 재갈을 물고 긴 몸통에 가죽으로 된 다래와 안장줄로 장식된 마갑을 두르고 있습니다.
머리와 팔이 잘려 있는 무사는 화살통을 등에 두른 것이 아니라 오른편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제시대에 출토된 국보 91호 기마인물상의 말이 머리에 뿔을 단 상징적인 모습인 반면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돼 신라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홍지윤(중앙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당시 의상이라든지 그리고 무사의 어떤 활동상 같은 것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중앙문화재연구원은 모두 5개의 적성목각묘, 즉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기마인물형 토기와 은으로 된 환두대도, 금동관식과 등잔형 토기 등 1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습니다.
특히 경주 외곽에 위치한 이 무덤군은 목관이 들어 있는 사각형의 주각과 부장품이 들어 있는 원형의 부각이 한 쌍으로 무덤 주위는 호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적석 목각분은 과도기적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당시 묘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발굴조사팀은 경주 덕천리 유물과 유적을 모두 6세기 초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박상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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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시대 기마형 인물토기 출토
    • 입력 2002-03-12 21:00:00
    • 수정2018-08-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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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해방 후 처음으로 신라시대의 기마인물형 토기가 출토됐습니다. 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기에는 당시 무사의 모습이 아주 사실적이고 정밀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박상민 기자입니다. ⊙기자: 경주시 덕천리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입니다. 높이 20cm, 길이 27cm 크기로 투박스러운 말은 재갈을 물고 긴 몸통에 가죽으로 된 다래와 안장줄로 장식된 마갑을 두르고 있습니다. 머리와 팔이 잘려 있는 무사는 화살통을 등에 두른 것이 아니라 오른편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제시대에 출토된 국보 91호 기마인물상의 말이 머리에 뿔을 단 상징적인 모습인 반면 소박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돼 신라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홍지윤(중앙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 당시 의상이라든지 그리고 무사의 어떤 활동상 같은 것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중앙문화재연구원은 모두 5개의 적성목각묘, 즉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기마인물형 토기와 은으로 된 환두대도, 금동관식과 등잔형 토기 등 100여 점의 유물을 발굴했습니다. 특히 경주 외곽에 위치한 이 무덤군은 목관이 들어 있는 사각형의 주각과 부장품이 들어 있는 원형의 부각이 한 쌍으로 무덤 주위는 호석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번에 발굴된 적석 목각분은 과도기적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당시 묘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발굴조사팀은 경주 덕천리 유물과 유적을 모두 6세기 초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KBS뉴스 박상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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