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미 국무부 브리핑서 ‘한국 얘기’가 화두가 되다니…

입력 2015.03.18 (06:03) 수정 2015.03.18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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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갑자기 전해진 리퍼트 대사의 피습 소식은 워싱턴 특파원들을 모두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워싱턴을 방문한 정의화 국회의장 간담회를 위해 이동중이던 특파원들은 악명높은 워싱턴 퇴근길 속에서도 사무실로 운전대를 돌려야 했습니다. 가방을 싸던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CNN으로 전해지는 속보를 들으며 미국 반응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생방송에 출연중이던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도 갑작스런 소식에 정황 파악을 위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른 특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특보를 위해 화상 연결을 하다보니 서너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 ‘리퍼트 피습’ 한국 얘기가 화두가 되다

리퍼트 대사 피습 소식은 전 세계에도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미 국무부 브리핑 장에선 사건 이후 몇일동안 리퍼트 대사 소식이 비중있게 다뤄졌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과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오늘 밤을 새더라도 관련 질문에 답변할테니 한 사람씩 차례대로 질문하라며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의 핵심은 테러 가능성, 특히 북한의 배후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무부 출입기자 상당수는 한국 방문 경험이 있는터라 안전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에서, 그것도 외교관에게 이같은 일이 벌어진데 대해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데일리 브리핑에서 리퍼트 대사 관련이었지만 한국 얘기가 무려 25분 이상 계속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 미 국무부 브리핑장은 어떤 곳? 질문의 향연…통일성까지



국무부 브리핑은 별다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낮 12시 무렵 시작됩니다. 보통 점심 시간 때이지만 대변인과 출입기자 모두 생생한 표정으로 브리핑 룸 포디엄과 책상을 메웁니다. 국무부 브리핑은 한국의 부처 브리핑과는 사뭇 다릅니다. 활 시위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한 시간동안의 브리핑 내내 유지됩니다. 대변인이 그날의 주제를 한 두개 먼저 던진 뒤, AP 기자의 질문으로 질문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정공법 질문에서부터 에두르지만, 의표를 찌르는 송곳 질문에 대변인은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질문은 계속되지만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다른 기자를 지목하며 화제를 바꾸곤 합니다. 질문을 계속하던 기자로선 머쓱할만도 하지만 워낙 단련되어서 그런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한발 뒤로 물러서는 장수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도 빈틈이 보이는 순간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미국의 부처 브리핑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통일성>입니다. 핫 이슈와 관련해선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 주요 부처의 답변이 녹음기를 틀어대듯 토씨 하나 안 틀린다는 점입니다. 브리핑 시각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간에 브리핑 답변 자료를 사전에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얘기, 뉘앙스 차이를 보여 종종 혼선을 빚는 한국 부처 브리핑과는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 쏟아지는 국제 이슈…한국 질문엔 “Not that I'm aware of”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국무부 출입 기자들의 질문은 참으로 버라이어티합니다. 부처가 부처인만큼 그렇겠지만 자국과 직접 관련없는 아프리카 소식까지 글로벌 이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 사태 등 현안은 물론 우리같으면 뉴스에서 잘 다루지 않을 사소한 국제 이슈까지 폭포같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특히 일본 특파원들이 이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놀라곤 합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지위만큼 국제적인 문제가 자국에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문제는 한국입니다. 한국 관련 질문은 한국 기자들 아니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 한번 한국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 보도 나도 봤다"와 함께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이 "Not that I'm aware of" (내가 아는 한은 없어) 입니다. 오죽하면 한국 특파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푸념이 "대변인이 도대체 아는게 뭐야"이니까요...물론 이제 36살과 33살의 젠 사키 대변인과 마리 하프 부대변인이 준비 안된 답변까지 하기에는 경험 부족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가끔씩 나오는 한국 관련 국무부 반응은 바로 이렇게 의식적으로 공략해 얻어내는 답변들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질문과 답변 사이에 가로채기 하지 않으면 질문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리퍼트 대사 관련 브리핑이 20분 넘게 진행돼 놀랐다는 말이 무슨 얘기인지 이제 이해가 되실 겁니다.

◆ 한국은 어디에? 북한 없인 ‘KOREA’ 없다?

최근 문제가 됐던 웬디 셔먼 차관의 과거사 관련 '한중일 양비론'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우리로선 민감한 현안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북한이 없었다면 브리핑에서 'KOREA'라는 단어를 아예 들을 수 없을 거다 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돕니다.
민감한 현안인 사드와 관련한 내용도 마찬가집니다. 국무부나 국방부 공히 두꺼운 자료를 내려다 보며 국어책 읽듯이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입니다.
"한미간에 사드는 논의한 적도 없고, 검토한 적도 없다"..

그래도 지금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무부 브리핑에 한국 관련 질의 응답을 보는 건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신장된 국력과 함께 한국에 대해 높아진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한 겄이겠죠.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언제쯤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국 관련 질의 응답이 주요 의제가 되는 날이 올런지, 저만의 허황된 바람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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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미 국무부 브리핑서 ‘한국 얘기’가 화두가 되다니…
    • 입력 2015-03-18 06:03:05
    • 수정2015-03-18 07:31:42
    취재후·사건후
퇴근길, 갑자기 전해진 리퍼트 대사의 피습 소식은 워싱턴 특파원들을 모두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워싱턴을 방문한 정의화 국회의장 간담회를 위해 이동중이던 특파원들은 악명높은 워싱턴 퇴근길 속에서도 사무실로 운전대를 돌려야 했습니다. 가방을 싸던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CNN으로 전해지는 속보를 들으며 미국 반응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생방송에 출연중이던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도 갑작스런 소식에 정황 파악을 위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다른 특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특보를 위해 화상 연결을 하다보니 서너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 ‘리퍼트 피습’ 한국 얘기가 화두가 되다

리퍼트 대사 피습 소식은 전 세계에도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미 국무부 브리핑 장에선 사건 이후 몇일동안 리퍼트 대사 소식이 비중있게 다뤄졌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과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마리 하프 부대변인은 오늘 밤을 새더라도 관련 질문에 답변할테니 한 사람씩 차례대로 질문하라며 교통정리를 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의 핵심은 테러 가능성, 특히 북한의 배후 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무부 출입기자 상당수는 한국 방문 경험이 있는터라 안전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에서, 그것도 외교관에게 이같은 일이 벌어진데 대해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데일리 브리핑에서 리퍼트 대사 관련이었지만 한국 얘기가 무려 25분 이상 계속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 미 국무부 브리핑장은 어떤 곳? 질문의 향연…통일성까지



국무부 브리핑은 별다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주말을 제외하곤 매일 낮 12시 무렵 시작됩니다. 보통 점심 시간 때이지만 대변인과 출입기자 모두 생생한 표정으로 브리핑 룸 포디엄과 책상을 메웁니다. 국무부 브리핑은 한국의 부처 브리핑과는 사뭇 다릅니다. 활 시위같은 팽팽한 긴장감은 한 시간동안의 브리핑 내내 유지됩니다. 대변인이 그날의 주제를 한 두개 먼저 던진 뒤, AP 기자의 질문으로 질문의 향연이 시작됩니다. 정공법 질문에서부터 에두르지만, 의표를 찌르는 송곳 질문에 대변인은 얼굴을 붉히는가 하면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질문은 계속되지만 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다른 기자를 지목하며 화제를 바꾸곤 합니다. 질문을 계속하던 기자로선 머쓱할만도 하지만 워낙 단련되어서 그런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한발 뒤로 물러서는 장수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도 빈틈이 보이는 순간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미국의 부처 브리핑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바로 <통일성>입니다. 핫 이슈와 관련해선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 등 주요 부처의 답변이 녹음기를 틀어대듯 토씨 하나 안 틀린다는 점입니다. 브리핑 시각은 서로 다르지만 상호간에 브리핑 답변 자료를 사전에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얘기, 뉘앙스 차이를 보여 종종 혼선을 빚는 한국 부처 브리핑과는 대조적인 풍경입니다.

◆ 쏟아지는 국제 이슈…한국 질문엔 “Not that I'm aware of”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국무부 출입 기자들의 질문은 참으로 버라이어티합니다. 부처가 부처인만큼 그렇겠지만 자국과 직접 관련없는 아프리카 소식까지 글로벌 이슈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시리아 사태 등 현안은 물론 우리같으면 뉴스에서 잘 다루지 않을 사소한 국제 이슈까지 폭포같은 질문을 쏟아냅니다. 특히 일본 특파원들이 이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고 질문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놀라곤 합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지위만큼 국제적인 문제가 자국에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문제는 한국입니다. 한국 관련 질문은 한국 기자들 아니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 한번 한국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그 보도 나도 봤다"와 함께 가장 많이 듣는 답변이 "Not that I'm aware of" (내가 아는 한은 없어) 입니다. 오죽하면 한국 특파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푸념이 "대변인이 도대체 아는게 뭐야"이니까요...물론 이제 36살과 33살의 젠 사키 대변인과 마리 하프 부대변인이 준비 안된 답변까지 하기에는 경험 부족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요즘 들어 가끔씩 나오는 한국 관련 국무부 반응은 바로 이렇게 의식적으로 공략해 얻어내는 답변들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 질문과 답변 사이에 가로채기 하지 않으면 질문 기회를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리퍼트 대사 관련 브리핑이 20분 넘게 진행돼 놀랐다는 말이 무슨 얘기인지 이제 이해가 되실 겁니다.

◆ 한국은 어디에? 북한 없인 ‘KOREA’ 없다?

최근 문제가 됐던 웬디 셔먼 차관의 과거사 관련 '한중일 양비론'이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우리로선 민감한 현안에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북한이 없었다면 브리핑에서 'KOREA'라는 단어를 아예 들을 수 없을 거다 라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돕니다.
민감한 현안인 사드와 관련한 내용도 마찬가집니다. 국무부나 국방부 공히 두꺼운 자료를 내려다 보며 국어책 읽듯이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입니다.
"한미간에 사드는 논의한 적도 없고, 검토한 적도 없다"..

그래도 지금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국무부 브리핑에 한국 관련 질의 응답을 보는 건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 신장된 국력과 함께 한국에 대해 높아진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한 겄이겠죠.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언제쯤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국 관련 질의 응답이 주요 의제가 되는 날이 올런지, 저만의 허황된 바람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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