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북한 ‘로열패밀리’ 엇갈린 운명

입력 2015.05.30 (08:06) 수정 2015.05.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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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친형이죠.

김정철이 4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정은 일가, 이른바 북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임신설이 나돌던 여동생 김여정도 공개 활동을 재개했는데요.

같은 로열패밀리라도 이들의 삶은 천양지찹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20일, 팝스타 ‘에릭 클랩튼’의 공연이 열린 영국 런던의 콘서트장.

한 남성이 수행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짙은 선글라스와 세련된 가죽재킷 차림...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이다.

<녹취> "북한에서 지위가 어떻습니까? 동생 김정은과 사이가 어떻습니까?"

김정철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엔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했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흥에 겨워 환호하거나,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여인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정철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1년, 역시 에릭 클랩튼의 싱가포르 콘서트장에서 KBS 카메라에 포착된 이후 4년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인 변화이다.

살이 많이 빠지고, 예전에 비해 표정도 다소 편안해 보인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실제로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받았을 것 같고요. 그 과정에서 몸도 이제 많이 상했는데 그런 과정을 나름대로 치료하고 어차피 권력은 동생에게 넘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좀 덜한 그런 입장이고.."

김정철의 재출현과 더불어 김정은 일가, 이른바 북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일성을 출발점으로 한 북한 로열패밀리의 가계도이다.

김일성은 첫째부인인 김정숙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는데, 이들이 바로 2대 세습의 주축이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이다.

1949년 김정숙이 숨진 뒤 김일성은 자신의 비서 출신인 김성애와 재혼해 경진, 평일, 영일 삼남매를 낳게 되는데, 김정일과 그 형제를 주축으로 한 2세대 로열패밀리가 형성된다.

이후 김정일의 결혼과 함께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또 한 번의 세대교체를 맞는다.

가장 오랫동안 김정일의 곁을 지키며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고영희의 정철, 정은, 여정 삼남매 중, 차남 김정은이 3대 권력 세습에 성공한 것이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前 김정일 전속 요리사/2008년) : "농구 게임을 하다 경기가 끝났는데요, 경기가 끝난 뒤 정철은 ‘수고했다 수고했어’ 하며 해산하는데요. 하지만 정은은 끝난 다음에 반드시 미팅을 합니다. 그리고 지명을 하면서 ‘동무! 그 패스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로 해야지’ 그렇게 질타 격려를 할 때도, 화를 낼 때도 알고 기쁘게 할 때도 압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계속 비교하면서 지켜보면 후계자는 정은이다.."

김정일은 고영희 이전 성혜림 과의 사이에서 정남을,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설송, 춘송 자매를 얻은 바 있기 때문에 이들 또한 로열패밀리에 포함된다.

1대 김일성 주석을 시작으로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들 로열패밀리는 세대를 거듭하며 북한의 유일권력으로 뿌리내려 왔다.

이 같은 북한의 ‘가족 세습’은 현대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권력 통치 방식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단순히 공산당, 또는 사회주의 체제의 지도자가 아니라 북한의 어떤 최고 통치자 또는 수령으로서의 지위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고, 결국 후계구도도 세습에 의한, 그의 장자인 김정일에게 권력이 이양이 되고 또 삼대 세습까지...그냥 마치 과거의 왕조와 같은 그런 세습에 의한 권력 이양 그러니까 과거 봉건제와 유사한 그런 권력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이렇게 봅니다."

김정은 시대 가장 눈에 띄는 로열패밀리는 단연 김여정이다.

불과 스물아홉의 나이에 우리의 차관 급에 해당하는 ‘노동당 부부장’ 자리에 앉은 김여정은 다양한 분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고 있다.

특히, 임신설이 나돌던 김여정은 47일 만에 최근 공개 활동을 재개했는데, 사진 상으로는 여전히 다소 몸이 부은 모습이지만, 이미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출산 후 김여정의 권력은 이전보다 더욱 확대될 거란 게 대체적인 예측이다.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지금까지는)어느 정도 주변을 정리를 해준다든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김여정이 상당한 부분 조직지도부 같은 데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이 같은 김여정의 모습은 고모 김경희의 행보와 매우 흡사하다.

김경희 역시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기인 1976년, 오빠를 도와 서른 살의 나이로 당 부부장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 남편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까지 김경희는 오랜 세월 북한의 권력 실세로 군림하는데, 그녀에 대한 김정일의 총애 역시 각별했다고 한다.

<인터뷰> 김흥광(대표/NK 지식인연대 대표) : "‘김경희 동지는 김경희는 나의 충신 중에 충신이다.’ 그랬거든요, ‘모든 내 주변에 있는 간부들은 일하고 싶으면 김경희처럼 일해라’ 이렇게 호령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김경희가 하는 건 다 예뻐 보이고, 자기를 위한 진정한 모습처럼 보였고 그래서 많이 내세우고 했죠."

그렇다면 북한 최고 권력자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로열패밀리의 일원을 권력 핵심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본래 북한 권력구조는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공산당, 혹은 노동당이 최고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정책 결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책 결정이 되면 이것이 비서국을 통해서 실천 이행하는 집행하는 그런 형태로 되어 있는데 최고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렇다면 백두혈통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이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 있어야 한다..."

반대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지만 권력에 근접하지 못하는 인물들도 많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대표적이다.

‘로열패밀리’ 김정남, 불우한 유년시절 보내 1971년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김정남은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한 어머니의 신경쇠약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김정남의 이모이자, 남한으로 망명했다 피살된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은 자서전을 통해 “바깥세상과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기형적으로 키워졌다”고 불우했던 김정남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권력 구도에서 밀려난 후 마카오 등 해외를 떠돌던 김정남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여러 차례 드러내기도 한다.

2010년 일본 아사히 TV와의 인터뷰에선 북한의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김정은의 후계 확정 후 한동안 행적을 감춘 김정남이 프랑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9월.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해외를 전전하는 아들 김한솔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3년, KBS 취재진은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한 김한솔을 찾아가 만남을 시도하기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3년 KBS 인터뷰) : "(국제관계를 공부할 계획입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공식 인터뷰엔 응하지 않았지만, 김한솔은 활발한 SNS 활동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바 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핀란드 YLE 인터뷰) : "할아버지(김정일)과 삼촌(김정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그 분(김정은)과 할아버지(김정일) 사이의 일이고요. 저도 궁금합니다."

권력 실세로 떠오른 김여정과 도피에 가까운 은둔 생활을 하는 김정철 그리고 김정남, 김한솔 부자.

같은 로열패밀리라도 특히 성별에 따라 이토록 운명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북한 체제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유일 지배 체제입니다. 유일이라고 하는 건 오직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최고 지도자가. 소위 태양은 하나라는 거죠. 김정남이라든가 김정철과 같이 또 다른, 소위 남성으로서 뭔가 새로운 태양이 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은 가급적 권력 주변에서 멀리하는 것이 보다 더 안정적으로 유일독재권력 소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해 나가는 방안이 아닌가."

이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 이복동생 김평일에게 외교관 감투를 주고 서둘러 해외로 내보낸 것이다.

이 같은 김정일의 견제엔, 김평일의 외모도 큰 이유를 차지했다고 한다.

<인터뷰> 김흥광(대표/NK 지식인연대 대표) : "김일성하고 완전 모습이 닮았습니다. 하고 있는 목소리까지도 그리고 몸짓이라든지 그런 것까지도 김일성을 굉장히 닮았다 그래요. 그리고 김일성이 그 김평일이 상당히 박식하고 머리가 좋은 자식이란 거에 대해서 늘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이후 약 30년에 걸친 권력 이양 기간을 거쳐 김정일은 마침내 세습을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그런 만큼 김일성에 대한 김정일의 충성은 맹목적이었다고 한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前 김정일 전속 요리사/2008년) :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원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말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김정은의 상황은 다르다.

김정일이 후계 지명 3년 만에 갑자기 숨져 기댈 언덕이 없는데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꾸려놓은 후견인 세력조차 스스로 앞장서 숙청, 축출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적인 김정은의 성격과 유일권력체제라는 특수성으로 미루어 볼 때, 7명의 아들에게 권력을 분산했던 리비아의 카다피나 친동생에게 정권을 물려준 카스트로처 로열패밀리와 권력을 나누는 일은 북한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는 이것이 결국 김정은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북한 체제에 한계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김정은의 정책이나 또는 통치가 폭정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반기를 들 수 있는 그런 요소로 남아있다. 그것이 김정남이 될 수 있고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될 수 있고...혈족에 의한 대안들을 다 제거하거나 다 함께 포용하지 않는 한, 이 세습 독재 권력의 구조적 모순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아들에서 그 아들로, 반세기 넘게 로열패밀리를 통한 ‘왕조정치’를 펼쳐온 북한.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성벽을 허문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북한의 세습체제가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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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북한 ‘로열패밀리’ 엇갈린 운명
    • 입력 2015-05-30 08:20:06
    • 수정2015-05-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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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를 심층 분석하는 [클로즈업 북한]입니다.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친형이죠.

김정철이 4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김정은 일가, 이른바 북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임신설이 나돌던 여동생 김여정도 공개 활동을 재개했는데요.

같은 로열패밀리라도 이들의 삶은 천양지찹니다.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클로즈업 북한에서 집중 분석해 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20일, 팝스타 ‘에릭 클랩튼’의 공연이 열린 영국 런던의 콘서트장.

한 남성이 수행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짙은 선글라스와 세련된 가죽재킷 차림...

김정은 제 1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이다.

<녹취> "북한에서 지위가 어떻습니까? 동생 김정은과 사이가 어떻습니까?"

김정철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엔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회피했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흥에 겨워 환호하거나,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여인과 귓속말을 주고받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정철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11년, 역시 에릭 클랩튼의 싱가포르 콘서트장에서 KBS 카메라에 포착된 이후 4년만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형적인 변화이다.

살이 많이 빠지고, 예전에 비해 표정도 다소 편안해 보인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실제로 후계자가 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스트레스도 받았을 것 같고요. 그 과정에서 몸도 이제 많이 상했는데 그런 과정을 나름대로 치료하고 어차피 권력은 동생에게 넘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좀 덜한 그런 입장이고.."

김정철의 재출현과 더불어 김정은 일가, 이른바 북한 ‘로열패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일성을 출발점으로 한 북한 로열패밀리의 가계도이다.

김일성은 첫째부인인 김정숙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는데, 이들이 바로 2대 세습의 주축이 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이다.

1949년 김정숙이 숨진 뒤 김일성은 자신의 비서 출신인 김성애와 재혼해 경진, 평일, 영일 삼남매를 낳게 되는데, 김정일과 그 형제를 주축으로 한 2세대 로열패밀리가 형성된다.

이후 김정일의 결혼과 함께 북한의 로열패밀리는 또 한 번의 세대교체를 맞는다.

가장 오랫동안 김정일의 곁을 지키며 실질적인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고영희의 정철, 정은, 여정 삼남매 중, 차남 김정은이 3대 권력 세습에 성공한 것이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前 김정일 전속 요리사/2008년) : "농구 게임을 하다 경기가 끝났는데요, 경기가 끝난 뒤 정철은 ‘수고했다 수고했어’ 하며 해산하는데요. 하지만 정은은 끝난 다음에 반드시 미팅을 합니다. 그리고 지명을 하면서 ‘동무! 그 패스는 저기가 아니라 여기로 해야지’ 그렇게 질타 격려를 할 때도, 화를 낼 때도 알고 기쁘게 할 때도 압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계속 비교하면서 지켜보면 후계자는 정은이다.."

김정일은 고영희 이전 성혜림 과의 사이에서 정남을, 김영숙과의 사이에서 설송, 춘송 자매를 얻은 바 있기 때문에 이들 또한 로열패밀리에 포함된다.

1대 김일성 주석을 시작으로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들 로열패밀리는 세대를 거듭하며 북한의 유일권력으로 뿌리내려 왔다.

이 같은 북한의 ‘가족 세습’은 현대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권력 통치 방식이라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단순히 공산당, 또는 사회주의 체제의 지도자가 아니라 북한의 어떤 최고 통치자 또는 수령으로서의 지위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고, 결국 후계구도도 세습에 의한, 그의 장자인 김정일에게 권력이 이양이 되고 또 삼대 세습까지...그냥 마치 과거의 왕조와 같은 그런 세습에 의한 권력 이양 그러니까 과거 봉건제와 유사한 그런 권력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이렇게 봅니다."

김정은 시대 가장 눈에 띄는 로열패밀리는 단연 김여정이다.

불과 스물아홉의 나이에 우리의 차관 급에 해당하는 ‘노동당 부부장’ 자리에 앉은 김여정은 다양한 분야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고 있다.

특히, 임신설이 나돌던 김여정은 47일 만에 최근 공개 활동을 재개했는데, 사진 상으로는 여전히 다소 몸이 부은 모습이지만, 이미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출산 후 김여정의 권력은 이전보다 더욱 확대될 거란 게 대체적인 예측이다.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지금까지는)어느 정도 주변을 정리를 해준다든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김여정이 상당한 부분 조직지도부 같은 데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렇게 볼 수가 있어요."

이 같은 김여정의 모습은 고모 김경희의 행보와 매우 흡사하다.

김경희 역시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기인 1976년, 오빠를 도와 서른 살의 나이로 당 부부장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 남편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까지 김경희는 오랜 세월 북한의 권력 실세로 군림하는데, 그녀에 대한 김정일의 총애 역시 각별했다고 한다.

<인터뷰> 김흥광(대표/NK 지식인연대 대표) : "‘김경희 동지는 김경희는 나의 충신 중에 충신이다.’ 그랬거든요, ‘모든 내 주변에 있는 간부들은 일하고 싶으면 김경희처럼 일해라’ 이렇게 호령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김경희가 하는 건 다 예뻐 보이고, 자기를 위한 진정한 모습처럼 보였고 그래서 많이 내세우고 했죠."

그렇다면 북한 최고 권력자들이 세대를 거듭하며 로열패밀리의 일원을 권력 핵심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본래 북한 권력구조는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공산당, 혹은 노동당이 최고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정책 결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책 결정이 되면 이것이 비서국을 통해서 실천 이행하는 집행하는 그런 형태로 되어 있는데 최고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렇다면 백두혈통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 이것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믿을만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 있어야 한다..."

반대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지만 권력에 근접하지 못하는 인물들도 많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대표적이다.

‘로열패밀리’ 김정남, 불우한 유년시절 보내 1971년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한 김정남은 아버지의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한 어머니의 신경쇠약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김정남의 이모이자, 남한으로 망명했다 피살된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은 자서전을 통해 “바깥세상과 철저하게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명의 친구도 없이 기형적으로 키워졌다”고 불우했던 김정남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권력 구도에서 밀려난 후 마카오 등 해외를 떠돌던 김정남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여러 차례 드러내기도 한다.

2010년 일본 아사히 TV와의 인터뷰에선 북한의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도 밝혔다.

김정은의 후계 확정 후 한동안 행적을 감춘 김정남이 프랑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9월.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해외를 전전하는 아들 김한솔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다.

이에 앞서 지난 2013년, KBS 취재진은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한 김한솔을 찾아가 만남을 시도하기도 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3년 KBS 인터뷰) : "(국제관계를 공부할 계획입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공식 인터뷰엔 응하지 않았지만, 김한솔은 활발한 SNS 활동과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바 있다.

<녹취> 김한솔(김정남 아들/2012년 핀란드 YLE 인터뷰) : "할아버지(김정일)과 삼촌(김정은)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삼촌(김정은)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그 분(김정은)과 할아버지(김정일) 사이의 일이고요. 저도 궁금합니다."

권력 실세로 떠오른 김여정과 도피에 가까운 은둔 생활을 하는 김정철 그리고 김정남, 김한솔 부자.

같은 로열패밀리라도 특히 성별에 따라 이토록 운명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정영태(선임연구위원/통일연구원) : "북한 체제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가 유일 지배 체제입니다. 유일이라고 하는 건 오직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최고 지도자가. 소위 태양은 하나라는 거죠. 김정남이라든가 김정철과 같이 또 다른, 소위 남성으로서 뭔가 새로운 태양이 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은 가급적 권력 주변에서 멀리하는 것이 보다 더 안정적으로 유일독재권력 소위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권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해 나가는 방안이 아닌가."

이는 과거 김정일 시대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 이복동생 김평일에게 외교관 감투를 주고 서둘러 해외로 내보낸 것이다.

이 같은 김정일의 견제엔, 김평일의 외모도 큰 이유를 차지했다고 한다.

<인터뷰> 김흥광(대표/NK 지식인연대 대표) : "김일성하고 완전 모습이 닮았습니다. 하고 있는 목소리까지도 그리고 몸짓이라든지 그런 것까지도 김일성을 굉장히 닮았다 그래요. 그리고 김일성이 그 김평일이 상당히 박식하고 머리가 좋은 자식이란 거에 대해서 늘 자랑하고 다녔다니까.."

이후 약 30년에 걸친 권력 이양 기간을 거쳐 김정일은 마침내 세습을 성공적으로 끝마친다.

그런 만큼 김일성에 대한 김정일의 충성은 맹목적이었다고 한다.

<녹취> 후지모토 겐지(前 김정일 전속 요리사/2008년) : "김정일은 아버지인 김일성을 ‘아버지’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원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말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이죠."

하지만 김정은의 상황은 다르다.

김정일이 후계 지명 3년 만에 갑자기 숨져 기댈 언덕이 없는데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꾸려놓은 후견인 세력조차 스스로 앞장서 숙청, 축출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권위적인 김정은의 성격과 유일권력체제라는 특수성으로 미루어 볼 때, 7명의 아들에게 권력을 분산했던 리비아의 카다피나 친동생에게 정권을 물려준 카스트로처 로열패밀리와 권력을 나누는 일은 북한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는 이것이 결국 김정은의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북한 체제에 한계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인터뷰> 유호열(교수/고려대학교 북한한과) : "김정은의 정책이나 또는 통치가 폭정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반기를 들 수 있는 그런 요소로 남아있다. 그것이 김정남이 될 수 있고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될 수 있고...혈족에 의한 대안들을 다 제거하거나 다 함께 포용하지 않는 한, 이 세습 독재 권력의 구조적 모순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아들에서 그 아들로, 반세기 넘게 로열패밀리를 통한 ‘왕조정치’를 펼쳐온 북한.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성벽을 허문 상황에서, 시대를 역행하는 북한의 세습체제가 언제까지 효과를 발휘할 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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