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을 아시나요?…부평의 미쓰비시 강제 동원 흔적들

입력 2015.08.14 (19:18) 수정 2015.08.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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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대표적인 군수기업이었던 미쓰비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미쓰비시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지역에서 대규모 동원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허솔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평2동,

이곳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삼릉'입니다.

<인터뷰> 부평2동 주민 : "역전이나 동네 오는 택시들이 '삼릉'이라고 하면 빨리 알아들어요..."

'삼릉'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의 한자 이름,

1940년대 이곳엔 일본의 군수품을 생산하는 미쓰비시 공장과 사택이 있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구조, 삼각 지붕에 작은 창문이 난 일본식 사택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부평역사박물관 : "미쓰비시도 그렇고 사택촌을 굉장히 크게 지었는데, 4만 제곱미터 부지에 근로자분들이 천여 명 정도됐는데 대부분이 조선인 근로자였죠"

당시 부평 일대는 일본군 조병창을 중심으로 미쓰비시 공장 등이 포진한 거대 군수 단지였습니다.

강제 징병 되거나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는 수 천 명의 조선인이 군수품 생산에 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지영례(조병창 근무) : "(조병창에서) 일하다가 팔 떨어져서 팔 따로 사람 따로 오는 거죠. 다 한국사람들이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본 사람은 험한 일 안해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 현장은 부평을 포함해 8천 4백여 곳에 이르고, 연인원 6백 50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이상의(인천대 교수) : "부평 조병창은 일제하 강제동원의 명백한 흔적입니다. 13세나 12세, 40대, 길게 보면 국내 동원 75세 노인도 있거든요."

최근 중국과 미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한 미쓰비시는 가장 많이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강제 동원이 있었음에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잊혀졌던 아픈 역사의 흔적이 삼릉이라는 옛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허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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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릉’을 아시나요?…부평의 미쓰비시 강제 동원 흔적들
    • 입력 2015-08-14 19:20:26
    • 수정2015-08-14 19: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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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의 대표적인 군수기업이었던 미쓰비시는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미쓰비시 군수공장이 있던 인천 부평지역에서 대규모 동원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허솔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평2동,

이곳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삼릉'입니다.

<인터뷰> 부평2동 주민 : "역전이나 동네 오는 택시들이 '삼릉'이라고 하면 빨리 알아들어요..."

'삼릉'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의 한자 이름,

1940년대 이곳엔 일본의 군수품을 생산하는 미쓰비시 공장과 사택이 있었습니다.

다닥다닥 붙은 구조, 삼각 지붕에 작은 창문이 난 일본식 사택이 아직도 일부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부평역사박물관 : "미쓰비시도 그렇고 사택촌을 굉장히 크게 지었는데, 4만 제곱미터 부지에 근로자분들이 천여 명 정도됐는데 대부분이 조선인 근로자였죠"

당시 부평 일대는 일본군 조병창을 중심으로 미쓰비시 공장 등이 포진한 거대 군수 단지였습니다.

강제 징병 되거나 위안부로 끌려가는 걸 피하려는 수 천 명의 조선인이 군수품 생산에 동원됐습니다.

<인터뷰> 지영례(조병창 근무) : "(조병창에서) 일하다가 팔 떨어져서 팔 따로 사람 따로 오는 거죠. 다 한국사람들이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일본 사람은 험한 일 안해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동원 현장은 부평을 포함해 8천 4백여 곳에 이르고, 연인원 6백 50만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인터뷰> 이상의(인천대 교수) : "부평 조병창은 일제하 강제동원의 명백한 흔적입니다. 13세나 12세, 40대, 길게 보면 국내 동원 75세 노인도 있거든요."

최근 중국과 미국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약속한 미쓰비시는 가장 많이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강제 동원이 있었음에도 철저히 외면당하고 잊혀졌던 아픈 역사의 흔적이 삼릉이라는 옛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허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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