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國記] ‘비상사태’ 깜짝쇼 몰디브, 무엇이 비상인가?

입력 2015.11.11 (10:45) 수정 2015.11.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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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 지도몰디브 지도


■ 몰디브 휴양지는 평온, 정국은 긴박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에서 선포됐던 국가비상사태가 일주일 만에 해제됐다. 당초 1개월 시한으로 발령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몰디브 정부가 서둘러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도 말레를 제외하고 다른 섬과 리조트에서 특이 동향은 없었다. 각국도 자국민들에게 말레 체류 시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을 뿐, 여러 섬에 산재한 리조트 여행까지 말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휴양지로서 몰디브의 시간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비상사태 정국은 긴박했다. 우선 대통령 암살 혐의로 구금된 아흐메드 아디브 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됐다. 의원 85명 가운데 61명이 찬성했다. 최근 제정된 반테러법이 적용되면 아디브 부통령은 최장 25년형을 받을 수 있다. 아디브 부통령 측은 탄핵안이 적법하게 처리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에 청원하겠다고 밝혔다.


▲ 폭탄 적재 차량 부근에서 작전 중인 폭발물제거반


■ 경찰, 민영방송국 급습해 방송 중단시켜
몰디브 경찰은 말레에 있는 민영방송국 '상구TV'를 급습해 방송활동을 일체 중단시키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압수해갔다. 대통령에 대한 살해 위협 내용을 방송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몰디브 방송위원회는 '국가안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어떤 내용'도 방송하지 말 것도 지시했다. 언론사들은 뉴스의 진위를 정부에 확인받은 후 보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물론 비상사태 기간에 영장 없는 압수, 수색, 체포가 가능했고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도 억제됐다. 인도양의 훈풍마저 얼어붙은 가운데 야당인 몰디브민주당 정도가 정부 비판 목소리를 냈다.

야민 가윰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표면적 이유는 지난 9월 28일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부인과 함께 쾌속정을 타고 이동했는데, 배에 폭발이 일어나 부인과 경호원 등 3명이 다쳤다. 누군가 배에 폭발물을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폭탄이 적재된 차량이 발견됐고, 섬 한 곳에서는 무기 은닉장소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 국가 안보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게 몰디브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쾌속정 사건과 관련해 미국 FBI는 "수거된 파편들은 쾌속정의 일부로 폭발물 부품이 아니며, 화학 분석에서도 폭발 원인이 폭탄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차량과 섬에서 발견됐다는 폭탄과 무기들도 정부 발표대로 불순 세력의 거사용인지 분명치 않다.


▲ 야민 가윰 대통령


■ 비판 인사 1,700명 사법 처리…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시계
동서를 막론하고 나라가 긴급한 안보 위험에 처해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권이 필요해서 써먹는 카드다. 이번 몰디브 비상사태 선포도 그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야민 가윰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이후 몰디브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가고 있다. 우선 몰디브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최초의 민주선거로 당선된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탄압하고 있다. 가윰 정권은 올 3월 나시드에게 반테러법 혐의를 적용해 13년 형에 처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자 잠시 가택연금으로 완화시켰다가 다시 감옥에 수감했다. 나시드를 석방하라는 게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일관된 입장이다. 헐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자 인권변호사인 아말 클루니가 무보수로 나시드 변호에 나서면서, 나시드 사건은 더욱 국제적 조명을 받고 있다.

☞ [7國記] 신혼부부는 모르는 ‘몰디브 이야기’

야민 가윰 정권은 나시드 한 명을 탄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야당 지지 성향의 인사들 1,700여 명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해 투옥하려 하고 있다. 몰디브 인구가 35만 명에 불과하니 1,700여 명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가 공격당하고 비판 언론인들이 실종되고 나시드 변호인이 대낮에 피습당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나온 비상사태에 대해 야당인 몰디브민주당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비상사태 선포 이틀 후 열리기로 돼 있던 야당 주도의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당은 비상사태가 발령되자 계획했던 집회를 일단 유보했다. 다른 하나는, 아디브 부통령을 소명 기회를 박탈한 채 탄핵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체포된 아디브 부통령은 법에 의거해 국회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다. 이럴 경우 정치적 격론이 불가피해지고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는 불가능해진다.

■ 비상사태 조기해제…국제사회 압박에 굴복?
야민 가윰 정권의 그간의 행태를 익히 아는 국제사회는 이번 비상사태 선포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중단하고 시민의 헌법적 자유를 즉시 회복하라."고 몰디브 정부를 압박했다. 영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나시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범을 모두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사법위원회는 "정부가 내세운 근거를 갖고 헌법적 자유를 중단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고, 국제사면기구도 "비상사태를 빌미로 자유로운 표현을 침묵시키거나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1개월동안 유지하겠다던 비상사태를 서둘러 해제한 것은 이런 국제적 압박의 결과로 보인다.

비상사태 기간에 몰디브 국내의 반정부 움직임은 확연하게 가라앉았다. 철권에 의한 침묵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침묵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정정 불안은 치명적인 변수다. 아무리 정권의 필요가 있었을지언정 자칫 관광객 감소와 민생 피폐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비상사태 정국을 오래 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번 비상사태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야민 가윰 정권의 독재적 행태다. 몰디브를 그저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알던 사람들이 몰디브 내부의 민낯을 접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몰디브에서 비상인 것은, 국가의 안전이 아니라 야민 가윰 정권의 안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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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國記] ‘비상사태’ 깜짝쇼 몰디브, 무엇이 비상인가?
    • 입력 2015-11-11 10:45:39
    • 수정2015-11-11 10:46:58
    7국기
몰디브 지도
■ 몰디브 휴양지는 평온, 정국은 긴박 인도양의 섬나라 몰디브에서 선포됐던 국가비상사태가 일주일 만에 해제됐다. 당초 1개월 시한으로 발령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몰디브 정부가 서둘러 비상사태를 해제했다.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수도 말레를 제외하고 다른 섬과 리조트에서 특이 동향은 없었다. 각국도 자국민들에게 말레 체류 시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을 뿐, 여러 섬에 산재한 리조트 여행까지 말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휴양지로서 몰디브의 시간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비상사태 정국은 긴박했다. 우선 대통령 암살 혐의로 구금된 아흐메드 아디브 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됐다. 의원 85명 가운데 61명이 찬성했다. 최근 제정된 반테러법이 적용되면 아디브 부통령은 최장 25년형을 받을 수 있다. 아디브 부통령 측은 탄핵안이 적법하게 처리되지 않았다며 대법원에 청원하겠다고 밝혔다.
▲ 폭탄 적재 차량 부근에서 작전 중인 폭발물제거반
■ 경찰, 민영방송국 급습해 방송 중단시켜 몰디브 경찰은 말레에 있는 민영방송국 '상구TV'를 급습해 방송활동을 일체 중단시키고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압수해갔다. 대통령에 대한 살해 위협 내용을 방송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몰디브 방송위원회는 '국가안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어떤 내용'도 방송하지 말 것도 지시했다. 언론사들은 뉴스의 진위를 정부에 확인받은 후 보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물론 비상사태 기간에 영장 없는 압수, 수색, 체포가 가능했고 집회·시위 등 표현의 자유도 억제됐다. 인도양의 훈풍마저 얼어붙은 가운데 야당인 몰디브민주당 정도가 정부 비판 목소리를 냈다. 야민 가윰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한 표면적 이유는 지난 9월 28일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부인과 함께 쾌속정을 타고 이동했는데, 배에 폭발이 일어나 부인과 경호원 등 3명이 다쳤다. 누군가 배에 폭발물을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폭탄이 적재된 차량이 발견됐고, 섬 한 곳에서는 무기 은닉장소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 국가 안보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는 게 몰디브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쾌속정 사건과 관련해 미국 FBI는 "수거된 파편들은 쾌속정의 일부로 폭발물 부품이 아니며, 화학 분석에서도 폭발 원인이 폭탄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차량과 섬에서 발견됐다는 폭탄과 무기들도 정부 발표대로 불순 세력의 거사용인지 분명치 않다.
▲ 야민 가윰 대통령
■ 비판 인사 1,700명 사법 처리…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시계 동서를 막론하고 나라가 긴급한 안보 위험에 처해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정권이 필요해서 써먹는 카드다. 이번 몰디브 비상사태 선포도 그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비상사태를 선포한 야민 가윰 대통령은 2013년 취임 이후 몰디브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가고 있다. 우선 몰디브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최초의 민주선거로 당선된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탄압하고 있다. 가윰 정권은 올 3월 나시드에게 반테러법 혐의를 적용해 13년 형에 처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일자 잠시 가택연금으로 완화시켰다가 다시 감옥에 수감했다. 나시드를 석방하라는 게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일관된 입장이다. 헐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의 부인이자 인권변호사인 아말 클루니가 무보수로 나시드 변호에 나서면서, 나시드 사건은 더욱 국제적 조명을 받고 있다. ☞ [7國記] 신혼부부는 모르는 ‘몰디브 이야기’ 야민 가윰 정권은 나시드 한 명을 탄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야당 지지 성향의 인사들 1,700여 명에게 범죄 혐의를 적용해 투옥하려 하고 있다. 몰디브 인구가 35만 명에 불과하니 1,700여 명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가 공격당하고 비판 언론인들이 실종되고 나시드 변호인이 대낮에 피습당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나온 비상사태에 대해 야당인 몰디브민주당은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비상사태 선포 이틀 후 열리기로 돼 있던 야당 주도의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당은 비상사태가 발령되자 계획했던 집회를 일단 유보했다. 다른 하나는, 아디브 부통령을 소명 기회를 박탈한 채 탄핵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체포된 아디브 부통령은 법에 의거해 국회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다. 이럴 경우 정치적 격론이 불가피해지고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신속한 처리는 불가능해진다. ■ 비상사태 조기해제…국제사회 압박에 굴복? 야민 가윰 정권의 그간의 행태를 익히 아는 국제사회는 이번 비상사태 선포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중단하고 시민의 헌법적 자유를 즉시 회복하라."고 몰디브 정부를 압박했다. 영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나시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범을 모두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사법위원회는 "정부가 내세운 근거를 갖고 헌법적 자유를 중단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고, 국제사면기구도 "비상사태를 빌미로 자유로운 표현을 침묵시키거나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1개월동안 유지하겠다던 비상사태를 서둘러 해제한 것은 이런 국제적 압박의 결과로 보인다. 비상사태 기간에 몰디브 국내의 반정부 움직임은 확연하게 가라앉았다. 철권에 의한 침묵의 시기였다. 하지만 그런 침묵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정정 불안은 치명적인 변수다. 아무리 정권의 필요가 있었을지언정 자칫 관광객 감소와 민생 피폐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비상사태 정국을 오래 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번 비상사태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야민 가윰 정권의 독재적 행태다. 몰디브를 그저 아름다운 휴양지로만 알던 사람들이 몰디브 내부의 민낯을 접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몰디브에서 비상인 것은, 국가의 안전이 아니라 야민 가윰 정권의 안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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