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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를 통해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재들
입력 2015.12.05 (09:05) 수정 2015.12.05 (09:08) 컬처 스토리
▲ 공혜왕후 어보


지난 2011년 6월, 조선왕실 도장인 어보(御寶)가 국내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1496년에 만들어진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비(妃) 공혜왕후의 도장입니다.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의례용으로 만든 겁니다. 어보는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입니다. 당연히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유물이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그럼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귀중한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오게 됐을까. 추적을 해보니까 6·25 때 미군이 불법 반출을 했고, 그 뒤로 어디를 떠돌았는지 무려 6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춘 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국내의 한 수집자가 낙찰받아 보관해 오다가 2011년에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경매를 통해 국내로 가져온 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경매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한가한 돈 놀음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만, 어디에 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우리 귀중한 문화재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순기능도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소장자가 이 유물을 다시 경매에 내놓지 않았다면 국내에 이런 귀중한 왕실 유물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왕실 유물을 누가 낙찰받을 것이냐, 하는 점이었죠. 정부가 움직일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어보의 존재를 저희에게 처음 알려주신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뉴스9] 500년 된 국보급 ‘조선왕실 도장’ 경매 논란 (2011년 6월 8일)

다행히 어보를 최종 낙찰받은 것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었습니다.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소중한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국민의 힘으로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공적 성격의 기구입니다. 4억 6천만 원에 낙찰된 조선왕실 어보는 국가에 무상으로 양도됐고, 이제 어엿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됐습니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요.

호조태환권 원판호조태환권 원판

▲ 호조태환권 원판


경매라는 공개적인 자리가 아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조선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온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사례를 소개할까요? 2010년 5월, 미국 미시건 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리소문없이 경매에 나온 유물 하나가 논란을 불렀습니다. 1893년 대한제국이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호조태환권’의 원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폐를 찍어내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화폐 개혁을 향한 대한제국 황실의 의지가 담긴 소중한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유물이 미국의 자그마한 지방 소도시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왕실 어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라이오넬 헤이즈라는 미군이 1951년 덕수궁에서 반출한 겁니다. 당시 미군이 전리품 삼아 챙겨간 왕실 유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전쟁이란 비극 속에서 초래된 또 다른 비극입니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당시에 액수에 따라 모두 네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국내에는 50냥짜리와 10냥짜리 뒷면만 남아 한국은행의 화폐박물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으로부터 또 한 번 도움을 받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뉴스9] 조선왕실 반출 유물, 美서 무더기 경매 (2010년 6월 28일)

☞ [뉴스광장] 밀반출된 ‘호조태환권’ 다음 달 돌아온다! (2013년 8월 28일)


불법으로 반출된 유물은 ‘장물’, 즉 ‘훔친 물건’입니다. 보도가 나간 이후 미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경매사와 낙찰자를 장물 거래 혐의로 처벌했고, 마침내 호조태환권 원판은 고향 땅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유물 역시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테고, 돌려받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왕실 유물은 일반에 유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해외에 나가 있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장물입니다. 그래서 왕실 유물은 소재만 확인되면 언제든 되찾아올 기회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는 반출 과정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훔친 건지, 아니면 선물로 준 건지, 돈을 주고 사간 건지, 어떤 경로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입증해내지 못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걸 가진 사람이 어서 가져가시오, 하고 알아서 선뜻 내놓겠습니까.

고려나전경함고려나전경함

▲ 고려나전경함


그래서 해외 반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증과 경매입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국내로 돌아온 ‘고려나전경함’이란 유물입니다. ‘경함’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상자란 뜻입니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자에 불경을 귀하게 모셨습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20여 점밖에 안 될 정도로 귀하고, 국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딱 두 점이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나전경함은 그나마도 전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딱 8점뿐인 데다, 국내에는 단 한 점도 없었습니다. 이 귀중한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나서서 일본에서 구입을 해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유물 구입비가 턱없이 부족한 박물관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죠. 뜻있는 기관이나 개인의 기증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이유입니다.

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

▲ 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


얼마 전 이 자리를 통해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지난 일요일(11월 30일) 홍콩에서 열린 경매현장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일본인 소장자들의 문의가 많아 솔직히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이 21억여 원에 최종 낙찰을 받아 국내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함께 경매에 나와 관심을 끈 고려시대 나전칠기 상자도 4억 9천여만 원에 한국인이 낙찰을 받았습니다. 둘 다 당장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귀중한 유물이니만큼 국내로 돌아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유물들 역시 한 일본인 소장자가 50년 넘게 보관해오던 것들입니다. 워낙 아끼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선뜻 경매에 내놓지 않으려 했답니다. 그래서 경매 주관사인 서울옥션이 무려 3년 넘게 공을 들여 설득했다는군요. 그렇게 해서 경매에 나왔으니 우리가 그 존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고, 한국인이 낙찰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경매가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죠.

해외로 빠져나간 우리 문화재를 비싼 돈을 주고 다시 사올 수밖에 없는 현실은 씁쓸합니다만, 더 늦기 전에 이런 식으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하나둘씩 되찾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유물들이 국보로, 보물로 지정되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공동체의 유산이 될 때 그 문화재의 가치는 더 찬란하게 빛나겠지요. 이번에 돌아오는 백자 달항아리와 고려나전칠기도 가까운 시일 안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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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옥션 홍콩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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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9] ‘국보급 유물’ 경매 통해 고국 품으로 (2015년 11월 30일)
  • 경매를 통해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재들
    • 입력 2015-12-05 09:05:55
    • 수정2015-12-05 09:08:07
    컬처 스토리
▲ 공혜왕후 어보


지난 2011년 6월, 조선왕실 도장인 어보(御寶)가 국내에서 경매에 나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유물은 1496년에 만들어진 조선 9대 임금 성종의 비(妃) 공혜왕후의 도장입니다. 실제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의례용으로 만든 겁니다. 어보는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모두 국보급입니다. 당연히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유물이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그럼 도대체 어떤 경로로 이 귀중한 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오게 됐을까. 추적을 해보니까 6·25 때 미군이 불법 반출을 했고, 그 뒤로 어디를 떠돌았는지 무려 6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춘 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에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국내의 한 수집자가 낙찰받아 보관해 오다가 2011년에 경매에 내놓은 겁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경매를 통해 국내로 가져온 건 정말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경매라는 것이 가진 자들의 한가한 돈 놀음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만, 어디에 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었던 우리 귀중한 문화재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순기능도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소장자가 이 유물을 다시 경매에 내놓지 않았다면 국내에 이런 귀중한 왕실 유물이 있는지조차 몰랐을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왕실 유물을 누가 낙찰받을 것이냐, 하는 점이었죠. 정부가 움직일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어보의 존재를 저희에게 처음 알려주신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뉴스9] 500년 된 국보급 ‘조선왕실 도장’ 경매 논란 (2011년 6월 8일)

다행히 어보를 최종 낙찰받은 것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었습니다. 함부로 처분할 수 없는 소중한 공동체의 문화유산을 국민의 힘으로 지켜내고 우리 모두의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공적 성격의 기구입니다. 4억 6천만 원에 낙찰된 조선왕실 어보는 국가에 무상으로 양도됐고, 이제 어엿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 됐습니다. 지금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지요.

호조태환권 원판호조태환권 원판

▲ 호조태환권 원판


경매라는 공개적인 자리가 아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조선왕실 유물이 경매에 나온 또 하나의 기억할 만한 사례를 소개할까요? 2010년 5월, 미국 미시건 주의 한 작은 도시에서 소리소문없이 경매에 나온 유물 하나가 논란을 불렀습니다. 1893년 대한제국이 지폐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호조태환권’의 원판입니다. 결과적으로 지폐를 찍어내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화폐 개혁을 향한 대한제국 황실의 의지가 담긴 소중한 유물입니다. 그런데 이 유물이 미국의 자그마한 지방 소도시 경매에 나왔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요.

왕실 어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라이오넬 헤이즈라는 미군이 1951년 덕수궁에서 반출한 겁니다. 당시 미군이 전리품 삼아 챙겨간 왕실 유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전쟁이란 비극 속에서 초래된 또 다른 비극입니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당시에 액수에 따라 모두 네 종류가 만들어졌는데, 국내에는 50냥짜리와 10냥짜리 뒷면만 남아 한국은행의 화폐박물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으로부터 또 한 번 도움을 받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 [뉴스9] 조선왕실 반출 유물, 美서 무더기 경매 (2010년 6월 28일)

☞ [뉴스광장] 밀반출된 ‘호조태환권’ 다음 달 돌아온다! (2013년 8월 28일)


불법으로 반출된 유물은 ‘장물’, 즉 ‘훔친 물건’입니다. 보도가 나간 이후 미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경매사와 낙찰자를 장물 거래 혐의로 처벌했고, 마침내 호조태환권 원판은 고향 땅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유물 역시 경매에 나오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테고, 돌려받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왕실 유물은 일반에 유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해외에 나가 있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장물입니다. 그래서 왕실 유물은 소재만 확인되면 언제든 되찾아올 기회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는 반출 과정을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훔친 건지, 아니면 선물로 준 건지, 돈을 주고 사간 건지, 어떤 경로를 거쳐 해외로 빠져나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불법으로 반출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입증해내지 못하면 돌려받을 수가 없다는 거죠. 그걸 가진 사람이 어서 가져가시오, 하고 알아서 선뜻 내놓겠습니까.

고려나전경함고려나전경함

▲ 고려나전경함


그래서 해외 반출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증과 경매입니다. 위 사진은 지난해 국내로 돌아온 ‘고려나전경함’이란 유물입니다. ‘경함’은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상자란 뜻입니다. 불교 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이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자에 불경을 귀하게 모셨습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20여 점밖에 안 될 정도로 귀하고, 국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딱 두 점이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나전경함은 그나마도 전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딱 8점뿐인 데다, 국내에는 단 한 점도 없었습니다. 이 귀중한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회가 나서서 일본에서 구입을 해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유물 구입비가 턱없이 부족한 박물관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죠. 뜻있는 기관이나 개인의 기증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이유입니다.

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

▲ 백자대호(좌) 나전칠국당초문합(우)


얼마 전 이 자리를 통해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가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요. 지난 일요일(11월 30일) 홍콩에서 열린 경매현장에 직접 다녀왔습니다. 일본인 소장자들의 문의가 많아 솔직히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이 21억여 원에 최종 낙찰을 받아 국내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함께 경매에 나와 관심을 끈 고려시대 나전칠기 상자도 4억 9천여만 원에 한국인이 낙찰을 받았습니다. 둘 다 당장 국보나 보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귀중한 유물이니만큼 국내로 돌아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유물들 역시 한 일본인 소장자가 50년 넘게 보관해오던 것들입니다. 워낙 아끼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선뜻 경매에 내놓지 않으려 했답니다. 그래서 경매 주관사인 서울옥션이 무려 3년 넘게 공을 들여 설득했다는군요. 그렇게 해서 경매에 나왔으니 우리가 그 존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고, 한국인이 낙찰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올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경매가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죠.

해외로 빠져나간 우리 문화재를 비싼 돈을 주고 다시 사올 수밖에 없는 현실은 씁쓸합니다만, 더 늦기 전에 이런 식으로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하나둘씩 되찾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돌아온 유물들이 국보로, 보물로 지정되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모두가 볼 수 있는 공동체의 유산이 될 때 그 문화재의 가치는 더 찬란하게 빛나겠지요. 이번에 돌아오는 백자 달항아리와 고려나전칠기도 가까운 시일 안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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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옥션 홍콩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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