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자유 향한 여정 ‘흥남 철수’
입력 2015.12.24 (23:22)
수정 2015.12.25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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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은 대표적인 피란민 철수 작전이었는데요.
딱 65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전야 일입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여정을 전시회로 만나보시죠.
박수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당시 피란민) : "영화(영일)사전하고 화영(일영)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당시 피란민) : "도착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차수연(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6.25 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은 대표적인 피란민 철수 작전이었는데요.
딱 65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전야 일입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여정을 전시회로 만나보시죠.
박수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당시 피란민) : "영화(영일)사전하고 화영(일영)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당시 피란민) : "도착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차수연(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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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년 전 자유 향한 여정 ‘흥남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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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12-24 23:35:04
- 수정2015-12-25 00:47:33
<앵커 멘트>
6.25 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은 대표적인 피란민 철수 작전이었는데요.
딱 65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전야 일입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여정을 전시회로 만나보시죠.
박수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당시 피란민) : "영화(영일)사전하고 화영(일영)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당시 피란민) : "도착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차수연(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6.25 전쟁 때 흥남 철수 작전은 대표적인 피란민 철수 작전이었는데요.
딱 65년 전 오늘, 크리스마스 전야 일입니다.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그 여정을 전시회로 만나보시죠.
박수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인천 상륙 작전 후 북진하던 국군과 연합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크게 패하면서 흥남 철수 작전이 시작됩니다.
후퇴하는 군대를 따라 나선 피란민...
난리 통에도 제사 용품을 챙기고 후일을 위해 전문학교 졸업장과 책을 들고 왔습니다.
<인터뷰> 신유항(당시 피란민) : "영화(영일)사전하고 화영(일영)사전 두권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한에 오면 영어가 필요할 것 같아서..."
바람 찬 흥남 부두를 가득 메운 인파.
9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파도를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항해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동헌(당시 피란민) : "도착하니까 1950년 12월 25일 0시 크리스마스 (교회)종이 땡땡 울리는 거예요.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해요."
군용 담요로 바지를, 포탄 껍질로 등잔을 만들어 쓰며, 새 삶을 일궈냈습니다.
<인터뷰> 차수연(중학생) : "지금은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시대였다는게 잘 믿기지 않았고 한국이 자랑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직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피난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흥남 철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박수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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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기자 supa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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