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치료시설 전전하다 사경 헤매는 ‘수희’

입력 2016.01.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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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가다 교통사고…사경 헤매는 중증 장애아

오후 6시.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단 30분뿐이었습니다. 병상의 수희 양을 내려다보는 가족들의 눈엔 내내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5살 딸에게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그마한 수희의 몸 여기저기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조막만 한 가슴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 째. 수희는 눈을 감은 채 누워만 있었습니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다 변을 당했습니다. 생후 2개월 때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아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중증장애 아동 수희는 몇 년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스스로 조금씩이나마 걷기 시작했는데 비극적인 사고를 당했습니다. 논산에는 치료받을 만한 병원이 없어 대전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수희가 치료 받을 병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생활은 수년째 이어져 왔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이슈&뉴스] 치료시설 전전하다 사경 헤매는 중증 장애아 ‘수희’


▲수희 교통사고 사진

■ 전국 떠도는 재활난민, 예고된 비극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1~2급의 장애를 '중증장애'라고 합니다. 수희처럼 중증장애를 지닌 아동은 전국에 4만 3천 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쓸 수 있는 병상은 전국에 20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마저 대기자가 밀려 있어 입원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합니다. 또 현행 규정상 입원 후 3개월이 지나면 진료비가 삭감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나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중증장애 어린이의 가족들은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기 일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재활 난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처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장애 아동들은 집에서 일반 병원으로 거의 매일 물리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수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고 당일 수희는 오전 9시부터 병원 두 곳을 오가며 30분씩 네 가지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치료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그만큼 치료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수희의 엄마는 수희와 수희 동생을 태운 차를 운전해 서둘러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달리던 차는 눈길에 미끄러져 서 있던 버스에 부딪혔고 수희뿐만 아니라 엄마와 동생도 크게 다쳤습니다.


▲ 오는 4월 개원 예정인 중증장애 아동 전문 재활병원

■ 일본 202 vs 한국 0

선진국들은 중증장애 아동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장애 아동 전문 재활병원'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까운 일본에는 202개, 독일에는 140개, 미국도 40개나 있습니다. 장애 아동들이 치료와 함께 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병원 안에 교육시설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전문 병원이 한 곳도 없습니다. 오는 4월 처음으로 서울에 병원이 하나 문을 열지만 장애 아동의 수에 비하면 치료시설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어린이에 대한 진료와 재활 치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한 '건우법'이 지난해 10월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수희와 마찬가지로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재활병원을 설립해 어린이의 신체에 적합한 의료장비와 시설을 마련하고, 치료와 교육을 함께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입니다. 이에 대해 국가도 예산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재활 난민들도 아직 전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중증 장애아동들의 복지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열악합니다. 늦었지만 제2, 제3의 비극을 막기 위해 사회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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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치료시설 전전하다 사경 헤매는 ‘수희’
    • 입력 2016-01-28 09:05:13
    취재후·사건후
■ 병원 가다 교통사고…사경 헤매는 중증 장애아

오후 6시.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단 30분뿐이었습니다. 병상의 수희 양을 내려다보는 가족들의 눈엔 내내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빠는 5살 딸에게 계속 말을 걸었습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그마한 수희의 몸 여기저기에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조막만 한 가슴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 째. 수희는 눈을 감은 채 누워만 있었습니다.

재활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다 변을 당했습니다. 생후 2개월 때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아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중증장애 아동 수희는 몇 년에 걸쳐 재활치료를 받아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스스로 조금씩이나마 걷기 시작했는데 비극적인 사고를 당했습니다. 논산에는 치료받을 만한 병원이 없어 대전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수희가 치료 받을 병원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생활은 수년째 이어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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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 교통사고 사진

■ 전국 떠도는 재활난민, 예고된 비극

지속적인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1~2급의 장애를 '중증장애'라고 합니다. 수희처럼 중증장애를 지닌 아동은 전국에 4만 3천 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쓸 수 있는 병상은 전국에 20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마저 대기자가 밀려 있어 입원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합니다. 또 현행 규정상 입원 후 3개월이 지나면 진료비가 삭감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나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중증장애 어린이의 가족들은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기 일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재활 난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처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한 대부분의 장애 아동들은 집에서 일반 병원으로 거의 매일 물리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수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고 당일 수희는 오전 9시부터 병원 두 곳을 오가며 30분씩 네 가지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치료를 아예 받지 못하거나, 그만큼 치료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수희의 엄마는 수희와 수희 동생을 태운 차를 운전해 서둘러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달리던 차는 눈길에 미끄러져 서 있던 버스에 부딪혔고 수희뿐만 아니라 엄마와 동생도 크게 다쳤습니다.


▲ 오는 4월 개원 예정인 중증장애 아동 전문 재활병원

■ 일본 202 vs 한국 0

선진국들은 중증장애 아동들이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중증장애 아동 전문 재활병원'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까운 일본에는 202개, 독일에는 140개, 미국도 40개나 있습니다. 장애 아동들이 치료와 함께 교육까지 받을 수 있게 병원 안에 교육시설까지 마련해 놓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전문 병원이 한 곳도 없습니다. 오는 4월 처음으로 서울에 병원이 하나 문을 열지만 장애 아동의 수에 비하면 치료시설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어린이에 대한 진료와 재활 치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어린이재활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한 '건우법'이 지난해 10월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수희와 마찬가지로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재활병원을 설립해 어린이의 신체에 적합한 의료장비와 시설을 마련하고, 치료와 교육을 함께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입니다. 이에 대해 국가도 예산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재활 난민들도 아직 전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중증 장애아동들의 복지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열악합니다. 늦었지만 제2, 제3의 비극을 막기 위해 사회의 움직임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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