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 색깔의 진실을 추적하다!
입력 2016.03.05 (09:04)
수정 2016.03.11 (16:4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광화문 현판
경복궁의 정문이자 얼굴인 광화문의 현판 색깔을 눈여겨보신 적 있으신지요?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광화문 세 글자가 새겨져 있지요. 본래 조선 시대 궁궐 현판 색깔 조합은 딱 세 가지입니다. ①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 ② 검정색 바탕에 금색 글씨 ③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 궁궐의 어떤 현판도 이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궁궐과 비교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2010년 광복절에 맞춰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 현판과 달리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경희궁 홍화문 등 다른 궁궐의 정문 현판 색깔은 검정 바탕에 흰 글씨거든요. 덕수궁 대한문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지만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 아니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뭔가 이상하다 싶으실 겁니다. 심지어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걸리기 직전에 광화문에 붙어 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조차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광화문 현판 색깔만 다른 걸까요? 광화문 현판은 예외였던 걸까요? 혹시 색깔이 잘못된 건 아닐까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궁궐 정문 현판 비교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광화문 현판 복원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은 2011년 광복절에 맞춰 새롭게 공개된 겁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대대적인 광복절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광화문 현판 제막이었죠. 경복궁 복원 사업의 화룡점정이라 할 이 역사적인 현장에 저도 있었습니다. 현판을 복원한 근거가 되는 원본은 이미 알려진 대로 1916년에 촬영한 광화문 사진의 유리원판입니다.
유리원판이란 다른 말로 유리건판(琉璃乾板, glass dry-plate)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사진 필름에 해당하는 감광판을 뜻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이 보편화하기 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들은 문화재 복원에 결정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지요.
광화문 현판 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5년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6년 유리원판을 디지털로 분석해 당시 현판을 70%가량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며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공개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공개된 겁니다.
1916년 광화문 유리원판 사진(왼쪽)과 디지털로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오른쪽)
왼쪽의 유리원판 사진을 한 번 보세요. 육안으로는 현판 글씨는 물론 색깔도 전혀 안 보입니다. 그래서 디지털로 복원을 했더니 오른쪽과 같은 글씨가 복원됐다는 겁니다. 문화재청은 이 결과를 근거로 광화문 현판을 복원한 거고요. 복원된 사진을 보면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공개되자 몇몇 분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 대표입니다. 의구심을 풀기 위해 혜문 대표는 2014년 초 문화재청에 질의서를 보냅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였던 박정희 대통령 현판과는 다르게 현재 현판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문화재청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광화문 현판의 색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현판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글씨는 검정으로 결정한 것은 사진 전문가, 디지털 이미지 분석 전문가, 문화재 전문가 등이 유리원판 사진을 분석하고 논의하여 결정한 사항입니다.”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광화문 사진
광화문 현판의 색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같은 해 6월 10일, 문화재청은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풀기 위해 현판 자문회의를 엽니다. 이 자리에서 내린 결론 역시 광화문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재청의 보도 자료를 보면 “국립중앙박물관과 동경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을 자세히 분석 검토한 결과 바탕색보다 글씨 부분이 더 검고, 이음부가 바탕색보다 어둡게 나타나 흰색 바탕의 검은색 글씨임을 재차 확인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논란은 일단락되죠.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은 갈라진 부분을 보수해서 임시로 걸어놓은 것이고, 아시다시피 새 현판은 지금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역시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원판과 일본 동경대 소장 유리원판을 검토한 결과, 현판 색깔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첨단 디지털 기법으로 분석해봤더니 바탕색보다 글씨 색깔이 더 짙다는 게 확인된 만큼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복원한다는 겁니다. 첫머리에 말씀드렸듯 바탕색이 글씨 색깔보다 밝은 경우는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뿐이니까요.
또 다른 광화문 사진
사실 일제강점기에 광화문을 찍은 사진은 꽤 있습니다.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사진집에도 광화문 사진이 여럿 실려 있죠. 그런데 어느 하나도 현판의 색깔이나 글씨가 명확하게 보이는 건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런 사진이 나왔다면 진작에 이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됐겠죠.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 최근 혜문 대표가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열어보니 광화문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왜 보냈느냐고 물었더니 현판을 자세히 보라고 하더군요. 흐릿하긴 하지만 광화문이란 세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것도 짙은 바탕에 밝은색 글씨로 말이죠. 만약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광화문 현판의 모습이 사실이라면 지금 복원하고 있는 현판을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었죠. 가정 먼저 확인해야 할 건 사진의 출처였습니다.
저는 혜문 대표와 함께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문제의 사진이 어디서 나왔는지 국내외 검색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혹시나 싶어 사진을 퍼온 사이트 운영자에게 쪽지와 이메일까지 보냈지요. 그렇게 이곳저곳 뒤지고 묻고 수소문한 결과, 저희는 미국의 한 박물관 홈페이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서 문제의 광화문 사진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국가 인류학 자료보관소’ 홈페이지(위)와 광화문 사진 검색 결과(아래)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국가 인류학 자료보관소’ 홈페이지입니다. 여기에 들어가서 ‘korea palace gate’로 검색하면 위에 보시는 것처럼 광화문 사진 세 장이 나란히 나옵니다. 맨 위 사진을 열어보시면 바로 그 문제의 광화문 현판이 등장합니다. 아래 주소를 누르시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광화문 사진을 볼 수 있는 곳
새로 찾아낸 광화문 사진과 현판 부분 확대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광화문 세 글자 가운데 ‘광’ 자와 ‘화’ 자는 얼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짙은 색 바탕에 밝은색 글씨입니다. 광화문 세 글자가 이렇게 육안으로 보이고 게다가 현판 색깔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발견된 건 사상 최초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이니 믿을 만한 출처까지 확인했지요.
그래도 혹시 몰라 사진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사진을 검토한 한국사진문화연구소의 최봉림 소장은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가 100퍼센트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조작이나 변형의 가능성이 있는지도 물었더니 역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언제 촬영된 걸까요? 사진정보를 열어보니 ‘1893년 9월 이전 사진’이라고 돼 있습니다. 맞는 걸까요?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광화문 입구에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흔히 ‘구 군복’이라 불리는 옛 군복은 1895년 칙령 제78호 발표로 육군의 복장 규칙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서양식 군복으로 싹 바뀝니다. 사진이 적어도 1895년 칙령 발표 이전에 촬영됐다는 걸 알려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 소개(위)와 구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아래)
이제 중요한 사실관계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 광화문 현판 복원의 기준이 되는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건한 1888년입니다. 문화재청이 경복궁 복원의 기준을 이때로 잡고 복원 사업을 해왔으니 광화문도 1888년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 복원의 기준으로 삼은 유리원판이 촬영된 시기는 앞에서 말씀드렸듯 1916년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1893년에 촬영된 것이고요. 어느 것이 복원 기준 시점에 더 가까운지는 다시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광화문 현판 색깔 문제는 이렇게 한 시민단체 대표의 집념 어린 노력 덕분에 결정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결론을 내린 문화재청의 고증은 잘못된 걸까요? 그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문화재청의 고증이 맞다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먼저 촬영됐으면서 글씨와 색깔까지 보여주는 사진이 발견된 이상 광화문 현판 복원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중요한 건 잘잘못을 가리고 따지는 게 아니라 경복궁의 얼굴이자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으로 오늘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광화문에 제대로 된 현판을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문화재청이 이달 안으로 자문회의를 연다고 합니다. 이번엔 부디 광화문의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연관 기사]☞ [단독] 광화문 현판 맞나?…‘결정적 사진’ 발굴 (2016. 2. 29)
■참고한 책
문화재청 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3>(수류산방, 2007)
혜문 <우리 궁궐의 비밀>(작은숲, 2014)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광화문 현판 색깔의 진실을 추적하다!
-
- 입력 2016-03-05 09:04:17
- 수정2016-03-11 16:47:18
경복궁의 정문이자 얼굴인 광화문의 현판 색깔을 눈여겨보신 적 있으신지요?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광화문 세 글자가 새겨져 있지요. 본래 조선 시대 궁궐 현판 색깔 조합은 딱 세 가지입니다. ①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 ② 검정색 바탕에 금색 글씨 ③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 궁궐의 어떤 현판도 이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궁궐과 비교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2010년 광복절에 맞춰 복원된 현재의 광화문 현판과 달리 창덕궁 돈화문, 창경궁 홍화문, 경희궁 홍화문 등 다른 궁궐의 정문 현판 색깔은 검정 바탕에 흰 글씨거든요. 덕수궁 대한문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지만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 아니므로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시면 뭔가 이상하다 싶으실 겁니다. 심지어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걸리기 직전에 광화문에 붙어 있던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조차 검정 바탕에 흰색 글씨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광화문 현판 색깔만 다른 걸까요? 광화문 현판은 예외였던 걸까요? 혹시 색깔이 잘못된 건 아닐까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선 광화문 현판 복원 과정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은 2011년 광복절에 맞춰 새롭게 공개된 겁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대대적인 광복절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광화문 현판 제막이었죠. 경복궁 복원 사업의 화룡점정이라 할 이 역사적인 현장에 저도 있었습니다. 현판을 복원한 근거가 되는 원본은 이미 알려진 대로 1916년에 촬영한 광화문 사진의 유리원판입니다.
유리원판이란 다른 말로 유리건판(琉璃乾板, glass dry-plate)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사진 필름에 해당하는 감광판을 뜻합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필름이 보편화하기 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유리원판들은 문화재 복원에 결정적인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지요.
광화문 현판 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5년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1916년 유리원판을 디지털로 분석해 당시 현판을 70%가량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며 복원된 광화문 현판 글씨를 공개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 공개된 겁니다.
왼쪽의 유리원판 사진을 한 번 보세요. 육안으로는 현판 글씨는 물론 색깔도 전혀 안 보입니다. 그래서 디지털로 복원을 했더니 오른쪽과 같은 글씨가 복원됐다는 겁니다. 문화재청은 이 결과를 근거로 광화문 현판을 복원한 거고요. 복원된 사진을 보면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가 분명히 맞습니다.
그런데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공개되자 몇몇 분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대표적인 분이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 대표입니다. 의구심을 풀기 위해 혜문 대표는 2014년 초 문화재청에 질의서를 보냅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였던 박정희 대통령 현판과는 다르게 현재 현판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문화재청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광화문 현판의 색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현판 바탕을 흰색으로 하고 글씨는 검정으로 결정한 것은 사진 전문가, 디지털 이미지 분석 전문가, 문화재 전문가 등이 유리원판 사진을 분석하고 논의하여 결정한 사항입니다.”
광화문 현판의 색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같은 해 6월 10일, 문화재청은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풀기 위해 현판 자문회의를 엽니다. 이 자리에서 내린 결론 역시 광화문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재청의 보도 자료를 보면 “국립중앙박물관과 동경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을 자세히 분석 검토한 결과 바탕색보다 글씨 부분이 더 검고, 이음부가 바탕색보다 어둡게 나타나 흰색 바탕의 검은색 글씨임을 재차 확인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논란은 일단락되죠.
지금 광화문에 걸려 있는 현판은 갈라진 부분을 보수해서 임시로 걸어놓은 것이고, 아시다시피 새 현판은 지금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역시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원판과 일본 동경대 소장 유리원판을 검토한 결과, 현판 색깔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첨단 디지털 기법으로 분석해봤더니 바탕색보다 글씨 색깔이 더 짙다는 게 확인된 만큼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복원한다는 겁니다. 첫머리에 말씀드렸듯 바탕색이 글씨 색깔보다 밝은 경우는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뿐이니까요.
사실 일제강점기에 광화문을 찍은 사진은 꽤 있습니다. 시중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사진집에도 광화문 사진이 여럿 실려 있죠. 그런데 어느 하나도 현판의 색깔이나 글씨가 명확하게 보이는 건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런 사진이 나왔다면 진작에 이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됐겠죠.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 최근 혜문 대표가 제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열어보니 광화문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왜 보냈느냐고 물었더니 현판을 자세히 보라고 하더군요. 흐릿하긴 하지만 광화문이란 세 글자가 보였습니다. 그것도 짙은 바탕에 밝은색 글씨로 말이죠. 만약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광화문 현판의 모습이 사실이라면 지금 복원하고 있는 현판을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었죠. 가정 먼저 확인해야 할 건 사진의 출처였습니다.
저는 혜문 대표와 함께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문제의 사진이 어디서 나왔는지 국내외 검색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혹시나 싶어 사진을 퍼온 사이트 운영자에게 쪽지와 이메일까지 보냈지요. 그렇게 이곳저곳 뒤지고 묻고 수소문한 결과, 저희는 미국의 한 박물관 홈페이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서 문제의 광화문 사진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국가 인류학 자료보관소’ 홈페이지입니다. 여기에 들어가서 ‘korea palace gate’로 검색하면 위에 보시는 것처럼 광화문 사진 세 장이 나란히 나옵니다. 맨 위 사진을 열어보시면 바로 그 문제의 광화문 현판이 등장합니다. 아래 주소를 누르시면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광화문 사진을 볼 수 있는 곳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광화문 세 글자 가운데 ‘광’ 자와 ‘화’ 자는 얼른 알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짙은 색 바탕에 밝은색 글씨입니다. 광화문 세 글자가 이렇게 육안으로 보이고 게다가 현판 색깔까지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발견된 건 사상 최초입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이니 믿을 만한 출처까지 확인했지요.
그래도 혹시 몰라 사진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습니다. 사진을 검토한 한국사진문화연구소의 최봉림 소장은 “짙은 바탕에 밝은 글씨가 100퍼센트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조작이나 변형의 가능성이 있는지도 물었더니 역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언제 촬영된 걸까요? 사진정보를 열어보니 ‘1893년 9월 이전 사진’이라고 돼 있습니다. 맞는 걸까요?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광화문 입구에 옛 군복을 입은 수문장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흔히 ‘구 군복’이라 불리는 옛 군복은 1895년 칙령 제78호 발표로 육군의 복장 규칙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서양식 군복으로 싹 바뀝니다. 사진이 적어도 1895년 칙령 발표 이전에 촬영됐다는 걸 알려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제 중요한 사실관계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 광화문 현판 복원의 기준이 되는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방치됐던 경복궁을 대대적으로 중건한 1888년입니다. 문화재청이 경복궁 복원의 기준을 이때로 잡고 복원 사업을 해왔으니 광화문도 1888년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복원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문화재청이 광화문 현판 복원의 기준으로 삼은 유리원판이 촬영된 시기는 앞에서 말씀드렸듯 1916년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사진은 1893년에 촬영된 것이고요. 어느 것이 복원 기준 시점에 더 가까운지는 다시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광화문 현판 색깔 문제는 이렇게 한 시민단체 대표의 집념 어린 노력 덕분에 결정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결론을 내린 문화재청의 고증은 잘못된 걸까요? 그 분야에 해박한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문화재청의 고증이 맞다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먼저 촬영됐으면서 글씨와 색깔까지 보여주는 사진이 발견된 이상 광화문 현판 복원은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중요한 건 잘잘못을 가리고 따지는 게 아니라 경복궁의 얼굴이자 조선 왕실 문화의 상징으로 오늘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광화문에 제대로 된 현판을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문화재청이 이달 안으로 자문회의를 연다고 합니다. 이번엔 부디 광화문의 옛 모습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연관 기사]☞ [단독] 광화문 현판 맞나?…‘결정적 사진’ 발굴 (2016. 2. 29)
■참고한 책
문화재청 편 <궁궐의 현판과 주련 2, 3>(수류산방, 2007)
혜문 <우리 궁궐의 비밀>(작은숲, 2014)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