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이슈] 총 없는 강도…키보드로 은행 털다

입력 2016.03.17 (18:10) 수정 2016.03.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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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 모습은 영화 속 장면입니다.

복면을 쓴 은행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총기로 위협해서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

우리가 '은행강도'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죠.

하지만 인터넷 시대인 요즘은 '총 없는 은행강도'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바로 이 '총 없는 은행강도'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이재석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이 기자, 최근 황당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요.

<답변>
네, 한마디로 돈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정체 불명의 해커들이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서 방글라데시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맡겨놓은 돈을 몰래 빼갔습니다.

사건 개요부터 보시겠습니다.

사건은 지난달 5일 일어났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계좌 이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청한 쪽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었습니다.

요청 건수는 모두 35건, 이체 요청 금액이 우리 돈으로 1조 원이나 됐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쓰는 코드가 일치하는 등 절차가 정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이체 요청에 수령처로 돼 있는 필리핀 은행 계좌로 우리 돈 천억 원을 보내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해커들이 방글라데시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서 벌인 일이었습니다.

문제의 날은 방글라데시 휴일이어서 정작 은행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질문>
해커들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던 범죄가 어떻게 꼬리가 밟힌 건가요?

<답변>
치밀하다 싶었던 해커들이 엉뚱하게도 영문 철자를 잘못 써서 범행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해커들이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곳 중에는 스리랑카 은행 계좌가 있었습니다.

수령자가 '샤리카 재단'이라고 돼있었는데, 영어 철자가 보시다시피 'fandation'이라고 잘못 표기했습니다.

원래 '재단'은 파운데이션(Foundation)이 맞는 거죠.

이걸 수상하게 여긴 스리랑카 은행이 방글라데시쪽에 확인을 했고, 이 과정에서 범행이 발각된 겁니다.

<질문>
중간에 드러나서 그나마 다행인데, 돈이 필리핀 은행으로 갔다면 다시 찾아올 수는 없는 건가요?

<답변>
이미 늦었습니다.

필리핀 은행으로 간 돈, 아까 천억 원 정도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이게 여러 차례 돈 세탁 과정을 거쳤고, 최종적으로는 카지노 업체 관련 계좌 3곳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필리핀에 돈세탁 방지법이 있긴 하지만 카지노는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천억 원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방글라데시가 지금까지 회수한 돈은 불과 8천만 원입니다.

<질문>
그런데 방글라데시가 가난한 나라잖아요.

글쎄요, 천억 원이면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겐 아주 큰 돈일 텐데요.

<답변>
방글라데시 1인당 국민소득이 천 달러 정도거든요.

1년에 우리 돈으로 백만 원 정도 번다는 얘기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시 지역이든 농촌 지역이든 절대 빈곤층이 많습니다.

구호단체가 도와주고 있지만, 상당수 농촌 지역에선 식수로 사용할 물이 부족해서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녹취> 방글라데시 주민 : "아이들 마시게 하려고 물을 끓이고 있어요. 그래도 소금기가 없어지지 않아요. 가족들 모두 힘들지요."

전 세계 대표적인 의류회사나 신발 회사들이 방글라데시에 하청공장을 차려놓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노동 착취라는 비판도 많지만 이런 공장이라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것도 현실입니다.

해커들이 가져간 돈은 그래서 방글라데시에는 더욱 눈물 겨운 돈입니다.

<녹취> 존 고메즈(주 필리핀 방글라데시 대사) : "해킹으로 넘어간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가슴이 아프죠. 충격이에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돈입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총재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질문>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죠?

<답변>
네, 아직 누가 했는지 모릅니다.

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구요.

<질문>
그런데 해킹으로 돈을 빼가는 게, 단지 방글라데시만의 얘기는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답변>
바로 그 지점입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만 특별히 허술하다, 이렇게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해킹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보안업체의 분석을 인용해서 최근 2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 독일, 일본 등 서른 개 나라, 백여 개 은행에서 해킹으로 돈이 빠져나간 피해가 있었다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은행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방글라데시 사례처럼 세계 곳곳의 은행들이 언제든 해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방글라데시는 돈을 관리한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연방은행 측은 연방은행이 해킹된 흔적이 없다며 책임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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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24 이슈] 총 없는 강도…키보드로 은행 털다
    • 입력 2016-03-17 18:13:28
    • 수정2016-03-17 18:20:05
    글로벌24
<앵커 멘트>

이 모습은 영화 속 장면입니다.

복면을 쓴 은행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총기로 위협해서 돈을 빼앗아 가는 모습.

우리가 '은행강도' 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죠.

하지만 인터넷 시대인 요즘은 '총 없는 은행강도'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바로 이 '총 없는 은행강도'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어떤 사연인지 이재석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이 기자, 최근 황당한 은행강도 사건이 발생했어요.

<답변>
네, 한마디로 돈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정체 불명의 해커들이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서 방글라데시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맡겨놓은 돈을 몰래 빼갔습니다.

사건 개요부터 보시겠습니다.

사건은 지난달 5일 일어났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계좌 이체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요청한 쪽은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었습니다.

요청 건수는 모두 35건, 이체 요청 금액이 우리 돈으로 1조 원이나 됐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이 쓰는 코드가 일치하는 등 절차가 정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이체 요청에 수령처로 돼 있는 필리핀 은행 계좌로 우리 돈 천억 원을 보내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해커들이 방글라데시 은행 전산망에 침투해서 벌인 일이었습니다.

문제의 날은 방글라데시 휴일이어서 정작 은행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질문>
해커들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던 범죄가 어떻게 꼬리가 밟힌 건가요?

<답변>
치밀하다 싶었던 해커들이 엉뚱하게도 영문 철자를 잘못 써서 범행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해커들이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곳 중에는 스리랑카 은행 계좌가 있었습니다.

수령자가 '샤리카 재단'이라고 돼있었는데, 영어 철자가 보시다시피 'fandation'이라고 잘못 표기했습니다.

원래 '재단'은 파운데이션(Foundation)이 맞는 거죠.

이걸 수상하게 여긴 스리랑카 은행이 방글라데시쪽에 확인을 했고, 이 과정에서 범행이 발각된 겁니다.

<질문>
중간에 드러나서 그나마 다행인데, 돈이 필리핀 은행으로 갔다면 다시 찾아올 수는 없는 건가요?

<답변>
이미 늦었습니다.

필리핀 은행으로 간 돈, 아까 천억 원 정도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이게 여러 차례 돈 세탁 과정을 거쳤고, 최종적으로는 카지노 업체 관련 계좌 3곳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필리핀에 돈세탁 방지법이 있긴 하지만 카지노는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천억 원을 사실상 포기해야 할 상황입니다.

방글라데시가 지금까지 회수한 돈은 불과 8천만 원입니다.

<질문>
그런데 방글라데시가 가난한 나라잖아요.

글쎄요, 천억 원이면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겐 아주 큰 돈일 텐데요.

<답변>
방글라데시 1인당 국민소득이 천 달러 정도거든요.

1년에 우리 돈으로 백만 원 정도 번다는 얘기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시 지역이든 농촌 지역이든 절대 빈곤층이 많습니다.

구호단체가 도와주고 있지만, 상당수 농촌 지역에선 식수로 사용할 물이 부족해서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입니다.

<녹취> 방글라데시 주민 : "아이들 마시게 하려고 물을 끓이고 있어요. 그래도 소금기가 없어지지 않아요. 가족들 모두 힘들지요."

전 세계 대표적인 의류회사나 신발 회사들이 방글라데시에 하청공장을 차려놓고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노동 착취라는 비판도 많지만 이런 공장이라도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것도 현실입니다.

해커들이 가져간 돈은 그래서 방글라데시에는 더욱 눈물 겨운 돈입니다.

<녹취> 존 고메즈(주 필리핀 방글라데시 대사) : "해킹으로 넘어간 돈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가슴이 아프죠. 충격이에요. 가난한 노동자들의 돈입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총재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질문>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죠?

<답변>
네, 아직 누가 했는지 모릅니다.

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구요.

<질문>
그런데 해킹으로 돈을 빼가는 게, 단지 방글라데시만의 얘기는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답변>
바로 그 지점입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만 특별히 허술하다, 이렇게 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해킹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보안업체의 분석을 인용해서 최근 2년 동안 미국과 러시아, 독일, 일본 등 서른 개 나라, 백여 개 은행에서 해킹으로 돈이 빠져나간 피해가 있었다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은행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방글라데시 사례처럼 세계 곳곳의 은행들이 언제든 해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방글라데시는 돈을 관리한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나 연방은행 측은 연방은행이 해킹된 흔적이 없다며 책임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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