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역습…‘귀요미’가 ‘괴물’로?

입력 2016.04.13 (09:05) 수정 2016.04.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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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귀엽습니다. 성격도 온순합니다. 애완동물로 인기입니다. 길거리나 대형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우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생깁니다. 배설물 냄새가 심합니다. 털갈이할 때면 솜털이 집안에 굴러다닙니다. 새끼는 아주 귀엽지만, 성체가 되면 그런 느낌도 반감됩니다. 남에게 주려고 해도 받아줄 곳도 없습니다. 고민 끝에 버립니다. 어디에?

올림픽공원의 토끼들올림픽공원의 토끼들


올림픽공원에 버려진 토끼들

올림픽공원에는 토끼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종 멧토끼가 아니라 애완용으로 들어온 외래종 토끼들입니다. 대부분 집에서 키우다가 공원에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토끼가 맨눈으로 관측된 숫자만 20여 마리에 이릅니다. 공원에 사는 토끼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올림픽공원에는 사적 제297호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백제 시대 토성으로 당시의 토성 축조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발굴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토성 곳곳에 잔디가 파헤쳐지고 움푹 팼다. 토성 곳곳에 잔디가 파헤쳐지고 움푹 팼다.




몽촌토성에는 잔디가 덮여 있습니다. 잔디는 초록색의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할 뿐 아니라 토성의 흙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런데 몽촌토성을 살펴보면 잔디가 패고 구멍이 뚫린 곳이 있습니다. 한두 곳이 아니고 경사면을 따라 곳곳의 잔디가 파헤쳐진 채 붉은 흙이 드러나 있습니다. 범인은 바로 토끼입니다.

몽촌토성 나무 계단 아래 토끼굴몽촌토성 나무 계단 아래 토끼굴


토끼는 굴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몽촌토성 목조 계단 아래에는 토끼들이 판 굴이 있습니다. 20여 마리에 이르는 토끼가 이 굴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토성 주변 여기저기 굴을 팝니다. 토성은 다져진 흙이라서 토끼가 한 번에 구멍을 깊이 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토끼는 점점 더 구멍을 파고듭니다. 비가 오면 그 구멍에 물이 고이고 물길이 만들어집니다. 작은 구멍이라도 물이 고이면 구멍 주변이 점점 크게 허물어집니다. 토끼굴이 토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겁니다.





토끼는 나무 밑동도 파고듭니다. 나무뿌리도 토끼가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뿌리가 노출되고 파먹히면 나무는 병들거나 죽게 됩니다. 피해는 나무만이 아닙니다. 토끼는 야생화를 비롯해 각종 화초도 먹어치웁니다.



올림픽공원 관리직원들은 매일 토성 주변을 순찰합니다. 토끼 구멍이 눈에 띌 때마다 수시로 구멍을 메우고 보수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이지만 실제로는 몽촌토성 사수를 놓고 관리직원들이 매일 토끼와 전쟁을 벌이는 셈입니다.

올림픽공원에서 토끼에게 먹이 주는 시민올림픽공원에서 토끼에게 먹이 주는 시민




일부 시민은 집에서 키우듯 공원에서 토끼를 돌봅니다. 토끼가 즐겨 찾는 덤불 아래 토끼 먹이통을 두고 주기적으로 먹이를 줍니다. 토끼용 사료로 팔리는 건초를 토끼 주변에 쌓아 놓기도 합니다. 공원 측이 말리면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불쌍한 토끼에게 먹이 주는 걸 왜 방해하느냐는 겁니다.



몽촌토성 무너뜨리는 토끼

공원에서 토끼를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숲 속이나 나무 밑, 굴속 등 곳곳에 흩어진 토끼를 모두 잡기도 어렵습니다. 설사 모두 잡더라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중성화 수술은 비용 부담이 큽니다. 분양할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락사시킬 수도 없습니다. 고민 속에 토끼는 자꾸 늘어납니다. 토끼의 번식력이 가져온 재앙은 호주 사례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EBS ‘지식채널e’ 캡처EBS ‘지식채널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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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 호주 이민자가 사냥용으로 토끼 24마리를 영국에서 들여왔습니다. 이 중 일부가 야생으로 탈출했고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했습니다. '토끼 흑사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토끼는 호주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나무뿌리를 파먹자 나무가 죽으면서 숲이 사라져 사막화가 진행됐습니다. 캥거루와 코알라 개체가 급감했고 일부 식생은 멸종했습니다. 심지어 목장 초지도 초토화됐습니다.

호주는 토끼를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울타리 방어선을 만들었지만 이내 뚫렸습니다. 토끼 사냥을 위해 굴속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포상금을 걸기도 했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천적인 여우를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여우가 급증하면서 토끼와 함께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마침내 토끼만 죽이는 바이러스를 개발해 살포했습니다. 바이러스로 전체 토끼의 99.8%인 6억 마리가 죽었습니다. 토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 했지만 내성을 가진 토끼가 등장해 다시 번성했습니다. 지금도 호주는 토끼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림픽공원의 토끼는 20여 마리, 공원 관리 인력의 신속한 복구작업 덕분에 아직 토성에 심각한 위험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토끼가 급증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외래종의 파급 효과는 늘 우리의 상상 범위를 벗어나곤 합니다. 토끼가 토성에까지 영향을 주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개체 수가 급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귀여운 동물이 괴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버려진 동물들, 안전·생태계 위협하기도



공원에 버려진 거위 한 쌍공원에 버려진 거위 한 쌍


올림픽공원에는 토끼만 버려지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거위 한 쌍을 연못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어린이와 할머니가 거위의 공격을 받고 다쳤습니다. 사람이 접근하자 수컷 거위가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 덤벼든 겁니다. 공원 측은 거위를 생포해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공원에 버려진 오리 한 쌍공원에 버려진 오리 한 쌍


누군가는 오리들을 연못에 방사했습니다. 이번엔 수질 유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올림픽공원 연못 물은 원수 자체가 3급수인 한강 물입니다. 수질 유지를 위해 정화시설과 기포 발생장치 가동 그리고 수생식물 식재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오리가 증식하면 배설물 때문에 수질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공원 측은 오리 역시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무심코 애완동물을 버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동식물도 생태계에는 커다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원처럼 고립된 생태계는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다도해 국립공원 무인도에서는 방목된 염소가 섬 식생을 파괴하고 사막화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귀여워 보이는 작은 동물들, 하지만 그들의 역습은 무섭습니다.

[연관기사] ☞ 염소, 섬 생태계 파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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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끼의 역습…‘귀요미’가 ‘괴물’로?
    • 입력 2016-04-13 09:05:26
    • 수정2016-04-14 10:30:40
    취재K
토끼는 귀엽습니다. 성격도 온순합니다. 애완동물로 인기입니다. 길거리나 대형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키우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생깁니다. 배설물 냄새가 심합니다. 털갈이할 때면 솜털이 집안에 굴러다닙니다. 새끼는 아주 귀엽지만, 성체가 되면 그런 느낌도 반감됩니다. 남에게 주려고 해도 받아줄 곳도 없습니다. 고민 끝에 버립니다. 어디에?

올림픽공원의 토끼들

올림픽공원에 버려진 토끼들

올림픽공원에는 토끼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종 멧토끼가 아니라 애완용으로 들어온 외래종 토끼들입니다. 대부분 집에서 키우다가 공원에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토끼가 맨눈으로 관측된 숫자만 20여 마리에 이릅니다. 공원에 사는 토끼는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올림픽공원에는 사적 제297호 몽촌토성이 있습니다. 백제 시대 토성으로 당시의 토성 축조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지금도 한쪽에서는 발굴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토성 곳곳에 잔디가 파헤쳐지고 움푹 팼다.



몽촌토성에는 잔디가 덮여 있습니다. 잔디는 초록색의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할 뿐 아니라 토성의 흙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런데 몽촌토성을 살펴보면 잔디가 패고 구멍이 뚫린 곳이 있습니다. 한두 곳이 아니고 경사면을 따라 곳곳의 잔디가 파헤쳐진 채 붉은 흙이 드러나 있습니다. 범인은 바로 토끼입니다.

몽촌토성 나무 계단 아래 토끼굴

토끼는 굴을 파고 보금자리를 만듭니다. 몽촌토성 목조 계단 아래에는 토끼들이 판 굴이 있습니다. 20여 마리에 이르는 토끼가 이 굴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토성 주변 여기저기 굴을 팝니다. 토성은 다져진 흙이라서 토끼가 한 번에 구멍을 깊이 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토끼는 점점 더 구멍을 파고듭니다. 비가 오면 그 구멍에 물이 고이고 물길이 만들어집니다. 작은 구멍이라도 물이 고이면 구멍 주변이 점점 크게 허물어집니다. 토끼굴이 토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겁니다.





토끼는 나무 밑동도 파고듭니다. 나무뿌리도 토끼가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뿌리가 노출되고 파먹히면 나무는 병들거나 죽게 됩니다. 피해는 나무만이 아닙니다. 토끼는 야생화를 비롯해 각종 화초도 먹어치웁니다.



올림픽공원 관리직원들은 매일 토성 주변을 순찰합니다. 토끼 구멍이 눈에 띌 때마다 수시로 구멍을 메우고 보수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이지만 실제로는 몽촌토성 사수를 놓고 관리직원들이 매일 토끼와 전쟁을 벌이는 셈입니다.

올림픽공원에서 토끼에게 먹이 주는 시민



일부 시민은 집에서 키우듯 공원에서 토끼를 돌봅니다. 토끼가 즐겨 찾는 덤불 아래 토끼 먹이통을 두고 주기적으로 먹이를 줍니다. 토끼용 사료로 팔리는 건초를 토끼 주변에 쌓아 놓기도 합니다. 공원 측이 말리면 거세게 항의하는 시민들도 있습니다. 불쌍한 토끼에게 먹이 주는 걸 왜 방해하느냐는 겁니다.



몽촌토성 무너뜨리는 토끼

공원에서 토끼를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숲 속이나 나무 밑, 굴속 등 곳곳에 흩어진 토끼를 모두 잡기도 어렵습니다. 설사 모두 잡더라도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중성화 수술은 비용 부담이 큽니다. 분양할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락사시킬 수도 없습니다. 고민 속에 토끼는 자꾸 늘어납니다. 토끼의 번식력이 가져온 재앙은 호주 사례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EBS ‘지식채널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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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 호주 이민자가 사냥용으로 토끼 24마리를 영국에서 들여왔습니다. 이 중 일부가 야생으로 탈출했고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했습니다. '토끼 흑사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토끼는 호주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나무뿌리를 파먹자 나무가 죽으면서 숲이 사라져 사막화가 진행됐습니다. 캥거루와 코알라 개체가 급감했고 일부 식생은 멸종했습니다. 심지어 목장 초지도 초토화됐습니다.

호주는 토끼를 잡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울타리 방어선을 만들었지만 이내 뚫렸습니다. 토끼 사냥을 위해 굴속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고 포상금을 걸기도 했지만 막지 못했습니다. 천적인 여우를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여우가 급증하면서 토끼와 함께 생태계를 파괴했습니다.

마침내 토끼만 죽이는 바이러스를 개발해 살포했습니다. 바이러스로 전체 토끼의 99.8%인 6억 마리가 죽었습니다. 토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듯 했지만 내성을 가진 토끼가 등장해 다시 번성했습니다. 지금도 호주는 토끼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림픽공원의 토끼는 20여 마리, 공원 관리 인력의 신속한 복구작업 덕분에 아직 토성에 심각한 위험을 주진 않습니다. 하지만 토끼가 급증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외래종의 파급 효과는 늘 우리의 상상 범위를 벗어나곤 합니다. 토끼가 토성에까지 영향을 주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개체 수가 급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귀여운 동물이 괴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버려진 동물들, 안전·생태계 위협하기도



공원에 버려진 거위 한 쌍

올림픽공원에는 토끼만 버려지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거위 한 쌍을 연못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어린이와 할머니가 거위의 공격을 받고 다쳤습니다. 사람이 접근하자 수컷 거위가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 덤벼든 겁니다. 공원 측은 거위를 생포해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공원에 버려진 오리 한 쌍

누군가는 오리들을 연못에 방사했습니다. 이번엔 수질 유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올림픽공원 연못 물은 원수 자체가 3급수인 한강 물입니다. 수질 유지를 위해 정화시설과 기포 발생장치 가동 그리고 수생식물 식재 등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오리가 증식하면 배설물 때문에 수질 유지가 어려워집니다. 공원 측은 오리 역시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습니다.



사람들은 무심코 애완동물을 버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동식물도 생태계에는 커다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공원처럼 고립된 생태계는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다도해 국립공원 무인도에서는 방목된 염소가 섬 식생을 파괴하고 사막화시킨 경우도 있습니다. 귀여워 보이는 작은 동물들, 하지만 그들의 역습은 무섭습니다.

[연관기사] ☞ 염소, 섬 생태계 파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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