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PD까지…‘통신자료’ 조회 논란

<앵커 멘트>

누군가 모르는 사이에 내 통신 자료를 들여다봤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무척 당혹스럽겠죠.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정보수사기관이 이통통신사를 통해 조회한 개인 통신 관련 자료가 수천 만 건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논란이 뜨겁습니다.

물론 해당기관들은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통신 사찰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통신 자료 조회를 둘러싼 논란, 김진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PD인 이진성씨.

이 씨는 최근 통신회사가 경찰 측에 자신의 인적사항이 담긴 통신자료를 네 차례나 넘겨준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 씨는 지난해 한 익명 제보자의 신원을 알려달라는 경찰 요구를 거부한 적이 있었고, 그 직후 한 달 동안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진성(CBS PD) : "요청 사유도 적혀 있지 않았고요. 짧은 기간에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 이게 순간적으로, 굉장히 쉽게 언론이, 언론인이 사찰되고 감시될 수 있구나 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전기통신사업법에는 법원, 검사, 수사관서나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 국가안전 등을 위해 통신자료를 요청하면 전화나 인터넷 가입자등의 전기통신사업자는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이 통신자료에는 이용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서비스 가입, 해지일 등이 포함됩니다.

수사기관은 영장 없이도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조회 대상자에게 통보 의무도 없습니다.

이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정하는 통신내역 조회나 감청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언제, 누구와 통화했는지, 또 인터넷 로그기록까지 뒤지는 통신내역 조회나 통화내용 또는 이메일 내용을 감시하는 감청의 경우엔 반드시 법원의 영장이 필요합니다.

또, 조회가 이뤄진 이후 뒤늦게나마 자료제공사실을 통보해야 합니다.

전기통신사업법과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국정원과 검찰, 경찰 등이 들여다 본 통신자료와 감청, 통신내역 등 개인의 통신 관련 자료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8천2백만 건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전기통신사업법에 의거해 영장 없이도 가능한 통신자료 조회는 해마다 늘어, 3년간 3천만 건, 전체의 37%에 달했습니다.

조회 대상에는 기자나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국회의원, 일반 회사원 등 범죄에 뚜렷한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은 이들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통신자료 조회를 가장 많이 한 경찰 측에 그 배경을 물었습니다.

경찰측은 이에 대해 통신자료는 관련법에 따라 수사 목적으로만 요청하고 있고, 수사 진행 중 특정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피의자,피해자,참고인 등의 신원 파악을 위해 확인하고 설명했습니다.

또, 범죄 관련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수사 대상자가 아닌 제 3의 가입자 자료도 조회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통신자료는 전화번호 가입자가 누구인지만 확인하는 것으로, 통화내역 조회보다 개인의 권익 침해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됩니다.

<인터뷰> 고학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수사기관이 조회하는 통신자료에) 주민등록번호가 일단 나타나면 그로부터 그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내부에 있는 여러 가지 DB를 통해서 예컨대 전과 기록을 조회해볼 수도 있고, 차적 조회같은 걸 해볼 수도 있고 이런 추가적인 조회를 해 볼 수 있죠.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경우는 주민등록번호가 어떤 의미에서 만능키로 작동을 해서 굉장히 다양한 부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창구가 열리게 되는 것이죠."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언론인 사이에서도 실태 조사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수사기관으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한 기자나 PD 등 언론인은 확인된 것만 97명.

이번 조사에선 지상파 방송사 등 법인 휴대폰을 사용하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아 실제 수사기관에서 조회한 언론인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취재원 보호’입니다.

아이디나 주민번호를 바탕으로 다른 조회나 추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이승선(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언론인에 대한) 통신자료 요청은 그것이 단순 정보라고 볼 수 없는 취재원과의 접촉, 또 위치의 이동이라고 하는 취재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언론인 스스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인터뷰> 이진성(CBS PD) : "어떤 식으로든 만약에 꼬투리가 잡히거나 하면 나중에 굉장히 악용될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한 분노. 또, 굉장히 나이 어린 신입피디도/ 여기 통신 자료 제공이 이루어진 걸 나중에 알게 됐거든요. 이번에. 신입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위축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다."

통신자료 조회 논란은 19대 국회에서도 뜨거운 쟁점이었습니다.

관련 내용에 대한 개정안만 12건. 여야가 낸 개정안 모두 수사기관의 남용 가능성을 제한할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진행은 여전히 답보 상탭니다.

관련법의 주무부처 입장은 어떨까?

<녹취> 미래창조과학부 서면 답변 :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범죄수사에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수사기관의 의견도 충분히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 위해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여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통신사업자들 역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관련법에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 등의 통신자료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반드시 그 요청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현재 네이버와 다음 카카오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요청할 경우, 이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2년, 한 누리꾼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한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2심에서 일부 승소하자, 이후 포털사들이 영장 없이는 수사기관에 개인정보를 넘기지 않기로 결정한 겁니다.

지난달, 대법원이 네이버는 잘못이 없다는 취지의 최종 판결을 내렸지만, 포털사들은 여전히 영장 없이는 통신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이동통신사들은 영장 없이도 통신자료를 협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수사기관이 조회한 통신자료의 75% 이상이 이동통신사들로부터 제공받은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통사들은 강제적인 요청과 합법적인 요청을 구분해서, 단순히 합법적인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실제로 이것이 필요한 것인지, 어떤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이런 것들을 좀 분류를 해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안할 것은 안하고. 이렇게 해서 이용자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줄 필요가 있고요."

지난해 11월, 유엔 자유권 위원회는 우리나라 전기통신사업자들이 ‘수사 목적’이라는 포괄적인 이유로 영장 없이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또, 지난달, 국회 입법조사처는 관련 법의 근간이 유선전화 중심이던 1980년대에 만들어졌고, 지금은 통신 환경이 급변한 만큼, 수사상 편의 뿐 아니라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안도 균형있게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찰은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특별팀을 구성했고, 자료 요청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신 자료 조회는 몇몇 특정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누구라도 관련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각 이동통신사에 직접 문의하거나 통신사 홈페이지를 통해 내역을 달라고 신청하면, 수사기관이 조회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범죄 수사를 원활히 하면서도 국민 개개인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 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