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투쟁 앞장섰지만…’ 여성 독립운동가 재평가 시급
입력 2016.08.14 (21:18)
수정 2016.08.1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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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하면 주로 남성을 떠올리지만, 상당수의 여성도 독립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열다섯 소녀시절부터독립운동을 한 오희옥 지사를 손서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류저우에서 일본 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청년공작대' 대원들입니다.
아흔 한살의 오희옥 지사도 여기서 활동한 11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녹취> 오희옥(애국지사) : "일본인들의 만행, 압제를 주로 선전하고 전방으로 밀서를 전달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던 오 지사.
하지만 광복 후 40여년이 지난 1990년에야서야 뒤늦게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존의 독립운동 연구가 앞에 나서서 활동한 남성 지도자 중심으로 조명되다 보니 여성 독립 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갑니다.
<녹취> 심옥주(한국여성독립연구소 소장) : "(여성들이) 정말 총과 칼을 들고 나섰을까 궁금해하시는데 실제로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전선에서부터 심리 방송활동에 이르기까지 진취적으로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독립 운동가만 천 9백여 명.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경우도 2백여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립'이란 열망 앞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하면 주로 남성을 떠올리지만, 상당수의 여성도 독립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열다섯 소녀시절부터독립운동을 한 오희옥 지사를 손서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류저우에서 일본 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청년공작대' 대원들입니다.
아흔 한살의 오희옥 지사도 여기서 활동한 11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녹취> 오희옥(애국지사) : "일본인들의 만행, 압제를 주로 선전하고 전방으로 밀서를 전달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던 오 지사.
하지만 광복 후 40여년이 지난 1990년에야서야 뒤늦게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존의 독립운동 연구가 앞에 나서서 활동한 남성 지도자 중심으로 조명되다 보니 여성 독립 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갑니다.
<녹취> 심옥주(한국여성독립연구소 소장) : "(여성들이) 정말 총과 칼을 들고 나섰을까 궁금해하시는데 실제로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전선에서부터 심리 방송활동에 이르기까지 진취적으로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독립 운동가만 천 9백여 명.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경우도 2백여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립'이란 열망 앞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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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투쟁 앞장섰지만…’ 여성 독립운동가 재평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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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08-14 21:18:49
- 수정2016-08-14 22:40:01
<앵커 멘트>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하면 주로 남성을 떠올리지만, 상당수의 여성도 독립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열다섯 소녀시절부터독립운동을 한 오희옥 지사를 손서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류저우에서 일본 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청년공작대' 대원들입니다.
아흔 한살의 오희옥 지사도 여기서 활동한 11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녹취> 오희옥(애국지사) : "일본인들의 만행, 압제를 주로 선전하고 전방으로 밀서를 전달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던 오 지사.
하지만 광복 후 40여년이 지난 1990년에야서야 뒤늦게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존의 독립운동 연구가 앞에 나서서 활동한 남성 지도자 중심으로 조명되다 보니 여성 독립 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갑니다.
<녹취> 심옥주(한국여성독립연구소 소장) : "(여성들이) 정말 총과 칼을 들고 나섰을까 궁금해하시는데 실제로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전선에서부터 심리 방송활동에 이르기까지 진취적으로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독립 운동가만 천 9백여 명.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경우도 2백여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립'이란 열망 앞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우리나라 광복을 위해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하면 주로 남성을 떠올리지만, 상당수의 여성도 독립 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열다섯 소녀시절부터독립운동을 한 오희옥 지사를 손서영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에 찍은 빛바랜 사진 한 장.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류저우에서 일본 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청년공작대' 대원들입니다.
아흔 한살의 오희옥 지사도 여기서 활동한 11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녹취> 오희옥(애국지사) : "일본인들의 만행, 압제를 주로 선전하고 전방으로 밀서를 전달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어 독립 운동에 뛰어들었던 오 지사.
하지만 광복 후 40여년이 지난 1990년에야서야 뒤늦게 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기존의 독립운동 연구가 앞에 나서서 활동한 남성 지도자 중심으로 조명되다 보니 여성 독립 운동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갑니다.
<녹취> 심옥주(한국여성독립연구소 소장) : "(여성들이) 정말 총과 칼을 들고 나섰을까 궁금해하시는데 실제로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전선에서부터 심리 방송활동에 이르기까지 진취적으로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여성 독립 운동가만 천 9백여 명.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경우도 2백여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독립'이란 열망 앞에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졌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KBS 뉴스 손서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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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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