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흘에 한번 ‘쾅’…부산 도로의 흉기 ‘불법주차’

입력 2016.08.17 (10:51) 수정 2016.08.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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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주차한 트레일러와 추돌한 SUV…일가족 4명 사망불법 주차한 트레일러와 추돌한 SUV…일가족 4명 사망

지난 2일 부산의 한 도로를 달리던 SUV 승용차. 일가족 5명이 타고 있었다. 60대 운전자와 아내, 딸, 그리고 3살, 2개월 된 손자가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에 문제가 생긴 듯 운전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차가 왜 이러지. 이거 왜 이래. 아이고, 아이고…" 빠른 속도로 교차로에서 좌회전한 SUV는 도로에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와 추돌했다. 사고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운전자를 제외한 가족 4명이 숨졌다. 트레일러 적재함이 어른 가슴 높이여서 추돌 사고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변 CCTV에 찍힌 사고 바로 직전 상황. 문제의 트레일러가 도로 3차로에 불법 주차하고, 불과 3~4분이 지난 뒤 추돌 사고가 났다. 블랙박스에 나타난 사고 당시 SUV의 운행은 '정상'이 아니었다. 차량 결함, 정비 불량, 운전사 부주의 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고 차량은 국과수에서 감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트레일러가 여기에 불법 주차하지 않았다면 4명이 숨지는 참사가 났을까? 경찰도 이런 물음표를 갖고 사고 당시 SUV의 운행 속도와 궤적 등을 분석하고 있다. 트레일러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되면 운전사에게 업무상 과실시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화물차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사고 이후 화물차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사고가 난 도로를 다시 찾아갔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주·야간 불법 주정차를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곳은 항만과 인접해 평소 불법 주정차한 트레일러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도로 한 차로를 점령하던 트레일러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한 트레일러 운전사는 "사고 이후 단속이 강화돼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속 효과였다.

늦은 저녁 다시 사고 현장을 찾았다. 낮보다는 밤에 불법 주정차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밤에도 사고 현장 일대에 불법 주정차한 트레일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많던 불법 주정차 화물차는 어디로 갔을까.

의문을 갖고 인근 도로를 찾았다. 편도 2차로 도로 중 한 차로를 점령한 트레일러들. 단속 현수막도 소용 없었다. 줄지어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 5대를 살펴봤다. 단속으로 과태료 통지서가 붙은 차량은 단 한대도 없었다.

황급히 운전사 한 명이 달려왔다. "왜 촬영을 하느냐"고 묻더니, 하소연을 늘어놨다. "주차 공간도 없는 데 단속만 하면 되겠습니까..." 화물차 차고지가 따로 있지만, 항만과 멀리 떨어져 있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게 아니라 장거리 차들은 새벽 2, 3시에 나와서 가는데..."

항만과 인접한 도로에 불법 주정차한 대형 화물차들항만과 인접한 도로에 불법 주정차한 대형 화물차들

SUV와 트레일러간 추돌사고로 다시 부각됐지만, 사실 부산에서 불법 주정차한 화물차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만 사흘에 한건 꼴로 불법 주정차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해 숨진 사람만 5명, 다친 사람도 174명에 이른다.

화물차 불법 주정차를 근절하기 위해 주차장을 확보한다는 건 장기 과제일 수밖에 없다. 부산에 등록된 1톤 이상 화물차만 3만 여대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대형 화물차 전용 차고지는 5곳, 주차면은 천 6백여 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차장 대부분이 항만과 30분 이상 떨어진 도심 외곽에 있다. 부산시는 올해 말까지 화물차 주차장을 추가로 확보해 주차면수를 2천 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항만 인근에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비용 마련도 어렵다.

단기적인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고가 나기 전 항만 주변 도로에는 구청의 이동식 단속 차량이 일주일에 2번 정도만 오갔다. '운이 나빠'(?) 단속에 적발돼도 과태료 4~5만 원이 전부다. 불법 주정차를 상시 단속할 고정형 CCTV는 단 한대도 설치돼 있지 않다.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도로를 '집중 단속 구간'으로 정해 특별 관리할 필요도 있다.

물론 '몰아내기식' 단속이 능사가 아니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화물차들이 도로를 옮겨다니며 불법 주정차할 수도 있다. 화물차 운전사들은 공공기관에서 보유한 도심의 '빈 터'를 임시 주차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화물차 운전사나 지자체 모두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불법 주정차 화물차는 일반 운전자들에게 '도로의 흉기'나 마찬가지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연관기사] ☞ [뉴스9] 자칫하면 ‘추돌’…화물차 불법주차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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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7 10:51:12
    • 수정2016-08-17 10:52:20
    취재후·사건후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와 추돌한 SUV…일가족 4명 사망
지난 2일 부산의 한 도로를 달리던 SUV 승용차. 일가족 5명이 타고 있었다. 60대 운전자와 아내, 딸, 그리고 3살, 2개월 된 손자가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에 문제가 생긴 듯 운전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차가 왜 이러지. 이거 왜 이래. 아이고, 아이고…" 빠른 속도로 교차로에서 좌회전한 SUV는 도로에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와 추돌했다. 사고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운전자를 제외한 가족 4명이 숨졌다. 트레일러 적재함이 어른 가슴 높이여서 추돌 사고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변 CCTV에 찍힌 사고 바로 직전 상황. 문제의 트레일러가 도로 3차로에 불법 주차하고, 불과 3~4분이 지난 뒤 추돌 사고가 났다. 블랙박스에 나타난 사고 당시 SUV의 운행은 '정상'이 아니었다. 차량 결함, 정비 불량, 운전사 부주의 등 여러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사고 차량은 국과수에서 감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트레일러가 여기에 불법 주차하지 않았다면 4명이 숨지는 참사가 났을까? 경찰도 이런 물음표를 갖고 사고 당시 SUV의 운행 속도와 궤적 등을 분석하고 있다. 트레일러의 책임이 크다고 판단되면 운전사에게 업무상 과실시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화물차 불법 주정차 집중 단속하고 있지만…
사고가 난 도로를 다시 찾아갔다. 사고 현장 주변에는 주·야간 불법 주정차를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곳은 항만과 인접해 평소 불법 주정차한 트레일러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도로 한 차로를 점령하던 트레일러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한 트레일러 운전사는 "사고 이후 단속이 강화돼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속 효과였다.

늦은 저녁 다시 사고 현장을 찾았다. 낮보다는 밤에 불법 주정차가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밤에도 사고 현장 일대에 불법 주정차한 트레일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많던 불법 주정차 화물차는 어디로 갔을까.

의문을 갖고 인근 도로를 찾았다. 편도 2차로 도로 중 한 차로를 점령한 트레일러들. 단속 현수막도 소용 없었다. 줄지어 불법 주차한 트레일러 5대를 살펴봤다. 단속으로 과태료 통지서가 붙은 차량은 단 한대도 없었다.

황급히 운전사 한 명이 달려왔다. "왜 촬영을 하느냐"고 묻더니, 하소연을 늘어놨다. "주차 공간도 없는 데 단속만 하면 되겠습니까..." 화물차 차고지가 따로 있지만, 항만과 멀리 떨어져 있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근무하는 게 아니라 장거리 차들은 새벽 2, 3시에 나와서 가는데..."

항만과 인접한 도로에 불법 주정차한 대형 화물차들
SUV와 트레일러간 추돌사고로 다시 부각됐지만, 사실 부산에서 불법 주정차한 화물차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만 사흘에 한건 꼴로 불법 주정차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해 숨진 사람만 5명, 다친 사람도 174명에 이른다.

화물차 불법 주정차를 근절하기 위해 주차장을 확보한다는 건 장기 과제일 수밖에 없다. 부산에 등록된 1톤 이상 화물차만 3만 여대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대형 화물차 전용 차고지는 5곳, 주차면은 천 6백여 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주차장 대부분이 항만과 30분 이상 떨어진 도심 외곽에 있다. 부산시는 올해 말까지 화물차 주차장을 추가로 확보해 주차면수를 2천 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항만 인근에 주차장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고, 비용 마련도 어렵다.

단기적인 대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고가 나기 전 항만 주변 도로에는 구청의 이동식 단속 차량이 일주일에 2번 정도만 오갔다. '운이 나빠'(?) 단속에 적발돼도 과태료 4~5만 원이 전부다. 불법 주정차를 상시 단속할 고정형 CCTV는 단 한대도 설치돼 있지 않다.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도로를 '집중 단속 구간'으로 정해 특별 관리할 필요도 있다.

물론 '몰아내기식' 단속이 능사가 아니다. 이른바 '풍선 효과'로 화물차들이 도로를 옮겨다니며 불법 주정차할 수도 있다. 화물차 운전사들은 공공기관에서 보유한 도심의 '빈 터'를 임시 주차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화물차 운전사나 지자체 모두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불법 주정차 화물차는 일반 운전자들에게 '도로의 흉기'나 마찬가지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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