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올림픽 정신”…넘어진 두 선수에 전 세계 ‘감동’

입력 2016.08.1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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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육상 5000m 예선 경기가 열린 리우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 기록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장 위에 넘어진 두 선수가 서로 손을 내밀며 끝까지 완주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승부보다 더 중요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두 선수에게는 결선 진출이라는 선물도 주어졌다.


16일(이하 한국시간) 육상 여자 5000m 예선이 치러진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 결승선을 2000m 남겨둔 지점에서 니키 햄블린(28·뉴질랜드)은 갑자기 발이 꼬이면서 트랙 위로 넘어졌다. 바로 뒤를 따르던 애비 다고스티노(24·미국)도 햄블린의 몸에 걸려 넘어졌다.

4년간 준비해온 올림픽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멍하게 주저 앉아있던 햄블린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끝까지 달려야지"라는 말도 들렸다. 자신 때문에 걸려 넘어진 다고스티노였다. 햄블린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햄블린은 경기가 끝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가 넘어졌을 때 다고스티노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정말 고마웠고 그에게서 올림픽 정신을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햄블린은 "그의 행동은 감명 깊었고 깊은 울림을 줬다"며 "나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생면부지의 두 선수는 한 걸음씩 다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고스티노의 몸상태가 문제였다. 트랙에 넘어지는 순간 달리기 힘들 정도의 무릎 부상을 당한 것. 그러자 이번엔 햄블린이 그를 도왔다. 통증을 호소하며 주저 앉은 다고스티노를 일으켜 세우고 그가 다시 스스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줬다.

니키 햄블린(오른쪽)이 16일(한국시간) 리우 올림픽 여자 육상 5000m 경기에서 애미 다고스티노를 독려하고 있다니키 햄블린(오른쪽)이 16일(한국시간) 리우 올림픽 여자 육상 5000m 경기에서 애미 다고스티노를 독려하고 있다

햄블린은 "다고스티노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넸기 때문에 나도 그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며 "결승선을 통과한 뒤 돌아봤을 때 그가 여전히 뛰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햄블린은 16분 43초 61로 29위, 부상 투혼을 발휘한 다고스티노는 17분 10초 02로 30위를 기록하며 경기를 마쳤다.

다고스티노가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관중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고, 결승선에 먼저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햄블린은 다고스티노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였던 다고스티노는 결국 휠체어에 올랐고 둘은 잠시 동안 서로의 팔을 꼭 붙잡은 채 서로를 격려했다.

무릎 부상을 입은 미국 애비 다고스티노(왼쪽)와 뉴질랜드 니키 햄블린이 레이스가 끝난 뒤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무릎 부상을 입은 미국 애비 다고스티노(왼쪽)와 뉴질랜드 니키 햄블린이 레이스가 끝난 뒤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

둘 다 결선 진출과는 거리가 먼 기록이었지만 두 선수에게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판은 넘어진 것이 고의가 아니라며 두 선수를 결선 진출자로 추가 선정한 것이다.

AP 통신은 "올림픽에서는 종종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난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집트 유도 선수가 상대로 만난 이스라엘 선수와 악수를 거부했고, 브라질 관중은 프랑스 장대 높이 뛰기 선수를 야유하기도 했다"며 "햄블린과 다고스티노는 올림픽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순간을 남겼다"고 찬사를 보냈다.

USA 투데이도 "선수들의 충돌이 올림픽 정신과 용기를 보여주는 순간이 됐다"고 전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7일 공식 트위터에 두 선수의 사진을 게재하며 "올림픽에선 항상 승리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메시지를 덧붙이기도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SNS 공식 계정 캡처 화면국제올림픽위원회(IOC) SNS 공식 계정 캡처 화면

햄블린도 예선을 마친 뒤 "모든 사람이 메달과 우승을 원하지만, 이기는 것 외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며 "누군가 20년 뒤 리우 올림픽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꼭 이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햄블린은 오는 20일 여자 5000m 결승을 앞두고 훈련 중이다. 반면 다고스티노는 무릎 부상 탓에 결승 출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햄블린은 지난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대회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트랙을 돌다 다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승선을 통과해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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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17 16:20:50
    취재K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육상 5000m 예선 경기가 열린 리우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세계 기록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경기장 위에 넘어진 두 선수가 서로 손을 내밀며 끝까지 완주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승부보다 더 중요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두 선수에게는 결선 진출이라는 선물도 주어졌다.


16일(이하 한국시간) 육상 여자 5000m 예선이 치러진 마라카낭 올림픽 주경기장. 결승선을 2000m 남겨둔 지점에서 니키 햄블린(28·뉴질랜드)은 갑자기 발이 꼬이면서 트랙 위로 넘어졌다. 바로 뒤를 따르던 애비 다고스티노(24·미국)도 햄블린의 몸에 걸려 넘어졌다.

4년간 준비해온 올림픽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멍하게 주저 앉아있던 햄블린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끝까지 달려야지"라는 말도 들렸다. 자신 때문에 걸려 넘어진 다고스티노였다. 햄블린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햄블린은 경기가 끝난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가 넘어졌을 때 다고스티노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정말 고마웠고 그에게서 올림픽 정신을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햄블린은 "그의 행동은 감명 깊었고 깊은 울림을 줬다"며 "나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생면부지의 두 선수는 한 걸음씩 다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고스티노의 몸상태가 문제였다. 트랙에 넘어지는 순간 달리기 힘들 정도의 무릎 부상을 당한 것. 그러자 이번엔 햄블린이 그를 도왔다. 통증을 호소하며 주저 앉은 다고스티노를 일으켜 세우고 그가 다시 스스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줬다.

니키 햄블린(오른쪽)이 16일(한국시간) 리우 올림픽 여자 육상 5000m 경기에서 애미 다고스티노를 독려하고 있다
햄블린은 "다고스티노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넸기 때문에 나도 그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며 "결승선을 통과한 뒤 돌아봤을 때 그가 여전히 뛰고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햄블린은 16분 43초 61로 29위, 부상 투혼을 발휘한 다고스티노는 17분 10초 02로 30위를 기록하며 경기를 마쳤다.

다고스티노가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관중들은 모두 기립 박수를 보냈고, 결승선에 먼저 들어와 기다리고 있던 햄블린은 다고스티노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걷는 게 불편할 정도였던 다고스티노는 결국 휠체어에 올랐고 둘은 잠시 동안 서로의 팔을 꼭 붙잡은 채 서로를 격려했다.

무릎 부상을 입은 미국 애비 다고스티노(왼쪽)와 뉴질랜드 니키 햄블린이 레이스가 끝난 뒤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누고 있다 (사진 AP)
둘 다 결선 진출과는 거리가 먼 기록이었지만 두 선수에게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판은 넘어진 것이 고의가 아니라며 두 선수를 결선 진출자로 추가 선정한 것이다.

AP 통신은 "올림픽에서는 종종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난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집트 유도 선수가 상대로 만난 이스라엘 선수와 악수를 거부했고, 브라질 관중은 프랑스 장대 높이 뛰기 선수를 야유하기도 했다"며 "햄블린과 다고스티노는 올림픽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순간을 남겼다"고 찬사를 보냈다.

USA 투데이도 "선수들의 충돌이 올림픽 정신과 용기를 보여주는 순간이 됐다"고 전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7일 공식 트위터에 두 선수의 사진을 게재하며 "올림픽에선 항상 승리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메시지를 덧붙이기도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SNS 공식 계정 캡처 화면
햄블린도 예선을 마친 뒤 "모든 사람이 메달과 우승을 원하지만, 이기는 것 외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며 "누군가 20년 뒤 리우 올림픽 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꼭 이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햄블린은 오는 20일 여자 5000m 결승을 앞두고 훈련 중이다. 반면 다고스티노는 무릎 부상 탓에 결승 출전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햄블린은 지난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대회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트랙을 돌다 다른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결승선을 통과해 관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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