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사료 관리 부실
입력 2016.11.05 (07:34)
수정 2016.11.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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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 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87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가 크지만 관련 기록과 사료 관리는 부실하기만 합니다.
실태를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1 운동 10년 뒤 일어난 광주 학생독립운동.
통학열차 안 한일 학생들의 싸움에서 시작해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번졌습니다.
5개월 동안 수만 명이 참가한 이 운동을 당시 국내외 언론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학생독립운동 기념관에 보관된 기사는 11점, 사진은 9개, 외신 자료는 아예 없습니다.
유공자 백 10여 명 중 육성이 기록된 건 고작 5명뿐이고 생존인 2명에 대해서는 채록 작업도 안 돼 있습니다.
<인터뷰> 김흥수(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선양팀장) :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해서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내년도에는 예산 확보를 해서 기본 계획과 시행 계획을 수립해서..."
광주의 학생운동기념관과 천안의 독립기념관, 그리고 일부 학교 등에 분산된 자료는 정리가 안 돼 검색도 힘듭니다.
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학생운동 기사가 실린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발굴할 기록이 많지만, 당국은 연구자들의 개인 역량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기(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교육부도) 담당자나 예산이 없어요.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이런 곳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한다든지 (해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큰 학생독립운동.
하지만, 부실한 기록 관리로 저평가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3.1 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87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가 크지만 관련 기록과 사료 관리는 부실하기만 합니다.
실태를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1 운동 10년 뒤 일어난 광주 학생독립운동.
통학열차 안 한일 학생들의 싸움에서 시작해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번졌습니다.
5개월 동안 수만 명이 참가한 이 운동을 당시 국내외 언론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학생독립운동 기념관에 보관된 기사는 11점, 사진은 9개, 외신 자료는 아예 없습니다.
유공자 백 10여 명 중 육성이 기록된 건 고작 5명뿐이고 생존인 2명에 대해서는 채록 작업도 안 돼 있습니다.
<인터뷰> 김흥수(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선양팀장) :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해서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내년도에는 예산 확보를 해서 기본 계획과 시행 계획을 수립해서..."
광주의 학생운동기념관과 천안의 독립기념관, 그리고 일부 학교 등에 분산된 자료는 정리가 안 돼 검색도 힘듭니다.
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학생운동 기사가 실린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발굴할 기록이 많지만, 당국은 연구자들의 개인 역량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기(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교육부도) 담당자나 예산이 없어요.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이런 곳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한다든지 (해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큰 학생독립운동.
하지만, 부실한 기록 관리로 저평가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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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11-05 07:36:58
- 수정2016-11-05 08:48:34
<앵커 멘트>
3.1 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87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가 크지만 관련 기록과 사료 관리는 부실하기만 합니다.
실태를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1 운동 10년 뒤 일어난 광주 학생독립운동.
통학열차 안 한일 학생들의 싸움에서 시작해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번졌습니다.
5개월 동안 수만 명이 참가한 이 운동을 당시 국내외 언론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학생독립운동 기념관에 보관된 기사는 11점, 사진은 9개, 외신 자료는 아예 없습니다.
유공자 백 10여 명 중 육성이 기록된 건 고작 5명뿐이고 생존인 2명에 대해서는 채록 작업도 안 돼 있습니다.
<인터뷰> 김흥수(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선양팀장) :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해서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내년도에는 예산 확보를 해서 기본 계획과 시행 계획을 수립해서..."
광주의 학생운동기념관과 천안의 독립기념관, 그리고 일부 학교 등에 분산된 자료는 정리가 안 돼 검색도 힘듭니다.
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학생운동 기사가 실린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발굴할 기록이 많지만, 당국은 연구자들의 개인 역량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기(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교육부도) 담당자나 예산이 없어요.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이런 곳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한다든지 (해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큰 학생독립운동.
하지만, 부실한 기록 관리로 저평가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3.1 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운동이었던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87주년을 맞았습니다.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가치가 크지만 관련 기록과 사료 관리는 부실하기만 합니다.
실태를 양창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3.1 운동 10년 뒤 일어난 광주 학생독립운동.
통학열차 안 한일 학생들의 싸움에서 시작해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번졌습니다.
5개월 동안 수만 명이 참가한 이 운동을 당시 국내외 언론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하지만 학생독립운동 기념관에 보관된 기사는 11점, 사진은 9개, 외신 자료는 아예 없습니다.
유공자 백 10여 명 중 육성이 기록된 건 고작 5명뿐이고 생존인 2명에 대해서는 채록 작업도 안 돼 있습니다.
<인터뷰> 김흥수(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선양팀장) :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해서 한계가 있었습니다만 내년도에는 예산 확보를 해서 기본 계획과 시행 계획을 수립해서..."
광주의 학생운동기념관과 천안의 독립기념관, 그리고 일부 학교 등에 분산된 자료는 정리가 안 돼 검색도 힘듭니다.
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학생운동 기사가 실린 사실이 확인되는 등 발굴할 기록이 많지만, 당국은 연구자들의 개인 역량에만 맡기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재기(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교육부도) 담당자나 예산이 없어요. 광주시교육청, 광주광역시 이런 곳에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인 조사 연구를 한다든지 (해야 한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큰 학생독립운동.
하지만, 부실한 기록 관리로 저평가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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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 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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